어린 시절을 보낸 만리동, 청파동과 이웃한 동네가 효창동인데……
여기에 효창운동장이 자리잡고 있답니다.
그 시절에는……
대표팀 경기나 국제시합은 물론 잔디구장인 성동원두, 서울운동장(훗날의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렸으나……
국내대회의 대부분을 소화하던 곳이 맨땅의 흙먼지 날리는 효창운동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6년전 1974년의 일입니다.
그 바로 전해인 1973년에 한국은 호주와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홈 앤드 어웨이 두 경기를 모두 무승부로 마감하여, 갑작스레 홍콩에서 열리게 된 최종 3차전에서 호주에게 통한의 중거리포를 허용하고 분루를 삼키며 독일 월드컵의 티켓을 넘겨주었던바……
1974년 3월……
프로축구도 없던 그 시절에 시즌을 개막하는 종합축구대회가 효창운동장에서 개막하였고……
국가대표로 전해의 월드컵예선에서 선전하였던 차범근의 고려대와 김재한의 주택은행이 맞붙는 빅게임이 개막일의 경기였습니다.
마침 토요일인바......
방과후에 친한 친구 두 명과 용돈을 탈탈 털었는데……
그래도 입장권 두 장 값 밖에는 되지 않아 검표원 아저씨에게 봐달라고 사정해보고......
안되면 가위 바위 보 승부로 한 명은 집에 가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너그러운 아저씨 덕에 3명 모두 입장이 허용되어 만세를 부르며 입장……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건……
터치라인 밖에 볼보이도 없던 그 열악한 구장에서……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차범근이 아무도 집으러 가지 않는, 터치 아웃된 공을 잡으러 논바닥 같던 효창구장의 트랙을 질퍽이며 내딛던 모습입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하던 그 시절이라 당대의 톱스타이나 아직 대학 3학년이던 차범근은......
경기 후 기합을 피하기 위해서도 공을 집으러 가야 했겠지요.
그 경기에서 차범근도 김재한도 골을 넣지 못해 승부차기 끝에 고려대가 이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경기 후에……
- “아저씨 사인해주세요!”
- “졌는데 무슨 사인이냐?”: 김재한
반면에 차범근은 구름 같이 몰려드는 수 많은 아이들에 둘러싸여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인에 응해주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차범근감독이 다시 해설을 맡기로 했고, 그 해설료가 10억이다 어쨌다…… 말이 많은듯합니다.
그래도 논리가 명쾌하면서도 가슴이 뜨거운 그 해설을 들을수 있는 한국에 계신 분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차범근 감독은 말과 행동이 다른 분이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해설료의 많은 부분은 축구발전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내일 밤 저는 들리지 않는 영어중계 들으며, 또 고향생각에 잠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필승을 기원하면서……
또 월드컵 전야에 한국축구를 추억하며 적어보았습니다.
첫댓글 짝짝짝 짝짝
울 남편 월드컵 한국경기 볼 수 있다고 좋아라 하더군요.시간표 다 적어놓고 오늘 개막식부터 벼르고 있네요.ㅋㅋ 내일 꼬~옥 이겼으면 좋겠어요.대한민국 화이팅~
네... 꼭 이겨서 국민들 사기 좀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전 효창운동장에서 겨울에 스케이트 탄 기억이 납니다. 용마로에서 공덕동 가까운 효창동에 살았거든요.
혹시 초등학교는 어디 다니셨는지... 선배님 아닐까해서요.
금양초등학교 다녔습니다 킬리만자로님은 어디 나오셨나요?
봉래... 아시는지요?
예 들어봤어요.
전 호주가 얼마나 선전할지가 더 궁금한데...꼭 이겨하는 건 아니쟎아요...
우리 다 같이 즐겁게 응원합시다..시티에서 한인들끼리 같이 모여 응원하는 곳도 있던데요..?
저는 한국에서 예선 경기는 다 보고 가려합니다. 23일 출국 예정입니다. 여긴 분당입니다.
아! 한국 방문중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축구하면....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월드컵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것 같습니다..정말 축구가 재미있었고 가슴 조리며 보았었는데....이제 1승하였고 이번 목욜 경기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좋겠네요...대한의 아들들^^
내일밤 또다시 새로운 축구 역사를 쓰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