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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 37:1-10)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난생 처음 백화점에 가 본 시골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기한 듯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문이 열리고서는, 예쁜 아가씨가 내리니까, 이 할아버지는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손자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니네 할머니도 저 기계 속에 넣었다가 끄집어내야겠다.”
그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가 할머니를 예쁜 아가씨로 변화시키는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 새로워진다는 것, 죽었던 이가 살아난다는 것,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 단단하고 굳은 돌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된다는 것, 교만한 마음이 겸손한 마음이 된다는 것, 움켜쥘 줄만 아는 사람이 손을 펴게 된다는 것, 하나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들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청년이 되고, 할머니가 예쁜 아가씨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할까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겼을 때는 나라가 부강하고 적군이 쳐들어와도 전쟁애서 승리하고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는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떠나, 적군이 쳐들어와서 재산을 탈취해가고, 전쟁에 패배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무려 70년 동안, 포로생활로 인해 갖은 학대를 받고, 굶주리며,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포로생활로 인해,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 뼈의 골짜기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너희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면, 내가 나의 민족을 회복시키고, 다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다시 나라를 흥하게 하리라”고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갔는데, 이 골짜기는 보통 골짜기가 아니었습니다. 마른 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 말라 비틀어진 뼈들을 보고,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주님,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에스겔 선지자에게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고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들을 보고, 하나님 말씀대로 대언을 했더니, 이 뼈, 저 뼈가 움직여서 서로 들어맞고, 뼈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니까, 뼈들이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뼈의 골짜기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이렇게 처절하게 고생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이 큰 군대가 되어, 나라가 다시 부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살기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내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희망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때에 따라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마른 뼈가 살아난 것처럼, 어떠한 시련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을 통해서도, 큰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라 있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멋진 자연경관, 좋은 경치를 보여주시지 않고, 골짜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안생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 마른 뼈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골짜기에는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라 있었습니다.
‘뼈가 말랐다’는 것은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의미로,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절망과 죽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질문하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인간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말입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모든 뼈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뼈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면, 이 뼈들이 썩어서 먼지와 흙으로 뒤덮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이 뼈들이 살아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마른 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절망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른 뼈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다시 회복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 앞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 앞에 달려 있습니다. 정치가 잘되고 못되고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하락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달려 있습니다.
왜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인간들이 타락하여 죄악과 불신앙에 빠지고, 우상에 빠지며,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점점 죽어가고, 마지막에는 마른 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마른 뼈를 다시 일으키셔서, 큰 군대가 되게 하신 것처럼, 다시금 회복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너에게 소망이 있는가?”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왕이 되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고난의 시기가 많았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어려움을 당하여 고생할 때도 있고, 배신당할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여성은, 자신의 중풍병으로 죽기 전에,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절망 속에서 속히 빠져 나오려고 하지 마라. 절망하려면 100% 절망하라. 철저하게 절망하면 앞이 보인다. 완전히 절망하라.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물 속에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면, 물 속으로 더 깊이 빠집니다. 그러나 물에 빠져서 들어가도록 내버려두면,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발로 바닥을 차면, 물위로 올라오게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절망 자체가 우리의 인생에 마지막이 아닙니다. 절망 끝에는 희망과 새로운 역사,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모든 뼈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4-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마른 뼈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네가 이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대언하였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렇게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 그 위에 가죽이 덮이고, 마른 뼈가 일어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요즘, 신유학교를 준비하면서, 또 말씀을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말씀이 요한복음 10:10절 말씀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건강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미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기도 했던 다윗은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것이 자기를 살린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다윗을 살리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어떠한 곤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으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말씀을 보면,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묻히고 무덤문을 돌로 봉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가셔서 돌을 옮기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무덤 문을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외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이렇게 말씀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동인 채로 살아서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얻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죄악, 가난이 떠나고, 형통의 축복을 받고, 병도 고침을 받습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습니다.
나폴레옹은 성경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모든 것을 정복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성전을 완공하고, 육성 설교가 뒤에까지 잘 전달되는지, 시험해보려고, 강단에 서서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세 번 외쳤을 때, 천장에서 한 사람이 벌벌 떨면서 내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빌며, “용서하여 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당신 누구요?”라고 묻자, “예 사실 도둑질 하려고 들어와서 천장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두려워 내려 왔습니다”고 말하더랍니다.
여러분, 도둑도 말씀을 바로 받으면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어 쓸모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해롤드 럿셀’이라는 청년이, 공수부대 요원으로 참전하였다가, 불행하게도,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은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두 팔을 잃었으니,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이제 ‘나는 쓸모없는 고기 덩어리가 되었구나’라고 절망하던 중에,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는 설교를 듣고, 그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 후에 그는 무엇인가를 하여야 하겠다는 계획을 하던 중에, 그를 돕고자 하는 의사로부터 쇠붙이로 된 손(의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손으로 글씨도 쓰고, 나중에는 타자까지 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1948년,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하여, 영화계 최고상인 ‘아카데미 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절망 중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살다가, 그렇게 영광스러운 자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는 브라질의 펠레입니다. 펠레는 천재적인 선수로 열일곱 살 때 스웨덴 월드컵 출전하여 조국에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세 번이나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우승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병원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이어서 집이 아주 가난하였답니다. 그러나 축구를 좋아하는 그의 아버지는 그가 축구에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축구를 하게 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담배를 피우다 아버지에게 들켰습니다.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면서 아들에게 축구를 시키는데, 그 아들이 담배를 피우니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루는 아버지가 낡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그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것은 담배 한 갑 값이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라. 네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축구를 하면 절대로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 축구를 하려면 90분간 피곤을 모르고 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90분간 피곤을 모르고 뛰려면 술 담배를 하면 안 된다. 술 담배를 하면 몸이 망가져서 그렇게 뛸 수가 없다. 너 이 돈으로 담배를 즐기면서 무명하게 사는 사람이 되겠니? 담배와 술을 끊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니?”
그때 펠레가 아버지에게 돈을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아빠, 이제 담배 안 할게요. 술 안 할게요.”
그리고 그 때부터 술과 담배를 딱 끊고, 체력을 연마하고 연습하여, 열일곱 살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도 그렇게 되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해서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을 들으시고, 그대로 받아 그대로 하면, 안 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마른 뼈가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큰 군대였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아멘.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더니 마른 뼈가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들은 희망이 없고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니까, 큰 군대가 되어, 그 어느 누구도 공격할 수 없는 용맹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마른 뼈가 군대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약한 자가 강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버림받았던 사람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절망적인 사람이 희망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는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서, 이 세상 죄악과 가난과 질병과 싸워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0:22절을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가장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사모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날, 그들이 다같이 한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은 그들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심령과 내 가정과 이 나라에 신령한 바람,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 속에 오셔서 힘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절망 가운데 있는 너희가 소망을 갖게 되겠느냐”
“몇 사람 모이지 않는 작은 교회가 큰 교회가 되겠느냐”
“사람도 없고, 일군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너희가 과연 주의 일을 하겠느냐”
“물질적으로 어려운 너희가 풍족해지겠느냐”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과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마른 뼈가 살아났습니다. 절망의 골짜기, 사망의 골짜기가 소망의 골짜기, 부활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이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절망이지만, 하나님께는 절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른 뼈와 같은 우리의 삶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메말랐던 우리의 심령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 질문에 “예, 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가 대답했던 것처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이 줄어 가족밖에 안 남아 풀이 죽은 개척교회 목사님을 방문했답니다.
“목사님은 참 희망적입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젠 더 줄어들 리는 없잖아요. 늘어날 일만 남았잖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 걱정, 근심, 질병, 절망,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주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말씀 가운데, 주의 성령이 충만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면 놀라운 회복의 역사, 소망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마른 뼈가 일어나 큰 군대가 됩니다.
우리 심령과 가정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주의 말씀이 임하고, 주의 영이 임함으로, 놀라운 변화의 역사, 다시 살아나는 역사,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마른 뼈와 같은 우리 심령에 말씀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주님 말씀에 순종하오니,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심령이 살아나고,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우리의 육신이 질병으로부터 건강함을 얻게 하시고, 우리 교회가 부흥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