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하동 형제봉
남쪽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훈훈한 봄바람이 섬진강을 따라 소리 없이 지리산자락으로 파고든다. 평사리 들녘의 보리밭이 동풍에 깨어나 푸른빛을 더하고, 섬진강을 따라 터전을 마련한 매화는 한껏 부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봄을 시샘하는 몇 번의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잔설이 남아있는 계곡의 고로쇠나무가 올해도 변함없이 수액을 토해내는 자연의 순환이 경이롭다.
형제봉(1,115m)은 지리산 주능선인 영신봉에서 뻗어 내린 남부능선이 섬진강으로 내려앉기 전 우뚝 솟아 맺힌 곳이다. 산의 이름은 서로 높이를 다투며 마주선 가장 높은 두개의 봉우리가 의좋은 형제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봉은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가 속한 악양면의 서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섬진강과 맞댄 곳을 제외하고는 동쪽과 북쪽도 칠성봉과 구재봉 같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악양은 한 골이 하나의 면으로, 형제봉에 올라서면 지도를 펼쳐보듯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섬진강변인 한산사에서 고소산성, 신선대로 이어지는 형제봉 능선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나 양쪽 사면은 경사가 급하다. 주로 등산은 형제봉의 끝자락인 한산사에서 출발하여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청학사로 하산을 하거나, 역으로 오르내리게 된다.
능선을 타고 오르내리는 등산로는 다소 긴 편이나,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를 비롯한 악양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걷는 산행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또한, 영호남을 가르며 굽이치는 은빛모래가 있는 섬진강 청류를 가까이 두고, 고소산성과 통천문, 신선대와 같은 전망 좋은 바위가 곳곳에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르게 된다.
바람이 차고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잦아도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빨리 느끼는 것이 식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온의 변화에도 민감하지만 햇살이 도타와 졌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싹을 내밀고 꽃이 핀다.
낮은 등산로 옆 양지바른 언덕바지에는 ‘쇠별꽃’이 벌써 꽃망울을 열었다. 겨울을 넘긴 놈이라 잎이 두텁고 솜털 같은 털이 많은 털북숭이 그대로다. 추위에 단련된 것일까, 제 계절의 ‘쇠별꽃’보다 잎이 작고 두터우며 실해 보인다. 가운데가 갈라져 열장처럼 보이는 다섯장의 꽃잎에 암술과 수술이 뚜렷한 ‘쇠별꽃’은 줄기 가운데 질긴 관다발이 있어 당기면 굵은 실같이 뽑혀져 나온다. 석죽과인 별꽃이나 ‘쇠별꽃’처럼 꽃이 작은 식물은 무리지어 꽃을 피워 곤충을 유혹한다. 제철에 무리지어 꽃이 핀 모습을 보면 밤하늘에 작은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지나치면 불과 1cm 정도의 볼품없는 작은 꽃으로 여겨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꽃이다.
오르고 내리는 형제봉 등산로에서 지난해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삽주’를 자주 보게 된다. ‘삽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가을에 연보라를 띠는 흰 꽃이 핀다. 신기하게도 ‘삽주’는 생명을 다해도 마른채로 형태를 유지하며 이듬해 봄 새싹이 틀 때까지 남아 있다. 다소 거친 톱니가 있는 잎을 지닌 ‘삽주’의 뿌리는 한약재로 백출, 창출이라 하여 이뇨, 건위제 등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누군가가 필요하여 말려 둔 것처럼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삽주’가 초봄 산행을 추억이 있는 산행으로 이끌어 준다.
고사리과 식물 중에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종류가 많다. 형제봉 들머리와 날머리의 바위틈이나 돌담사이, 햇빛이 잘 드는 다소 건조한 언덕에서 쉽게 발견되는 ‘봉의꼬리’도 그 중의 하나다. 고사리과 식물인 ‘봉의꼬리’는 같은 종의 다른 식물과 구별되는 특이한 모습으로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도 새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진 이 식물의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직 푸른 잎을 지닌 식물이 귀할 때 마주하게 되는 ‘봉의꼬리’는 귀공자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형제봉(성제봉) 산행은 어디서 시작하고 마치든 6~7시간은 잡아야 한다. 능선으로 이어진 등산로의 위험한 곳에는 구름다리와 철사다리가 놓여 정비가 잘 되어 있으나, 경사가 급한 청학사 방향은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라 날씨가 궂은 날은 조심해야 한다.
0.찾아가는 길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 하동 IC > 19번국도 하동방향 >악양면 평사리 외둔마을(소상낙원 표지석, 한산사)
-.일반국도를 이용할 경우
2번국도 하동 > 19번국도 구례방향 > 악양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하동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하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수시 운행하는 악양행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하동터미널 055-883-2662) 하산지점을 달리하여 교통편이 불편하면 개인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개인택시 011-830-5100, 한산사~청학사간 요금 9,000원)
(농협중앙회 서진주지점장)
[사진설명](아래 왼쪽에서)봉의꼬리, 별꽃, 삽주
등록시간 2005-03-10 21:2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