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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산을 에워싸고 산자락 주위를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도시는 바다가 되고 산은 바다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외로운 섬처럼 되어 버렸다. 산 주위로는 사통팔달 큰 길들이 뚫리고 그것도 모자라 산 아래로는 터널까지 뚫렸다. 안양시와 군포시의 아파트들로 둘러싸인 수리산의 모습이다.
‘뽕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고 했다. 桑田碧海(상전벽해)-. 메트로폴리스 서울 주변의 도시들이 아파트촌을 형성하면서 변천해온 과정을 보면 바로 이 말을 실감케 한다.
인구 63만의 대도시 안양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주거생활이 이루어진 곳이다. 1989년, 넓은 들판이던 평촌을 도시로 개발할 때 발굴된 석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1914년에 과천군, 안산군, 시흥군이 통합되면서 시흥군 서이면으로 분류됐던 이곳은 1941년에는 안양면으로 개칭됐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에 읍으로 승격됐다가 1974년에 시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9년 시로 승격된 군포시는 1914년 시흥군 남면, 1979년 시흥군 군포읍의 과정을 거쳤고, 지금의 인구는 27만 명이다.
인구 70만의 안산은 1976년 시흥군의 수암면과 군자면, 화성군의 반월면 일부가 반월신공업도시로 조성되면서 해마다 인구가 증가되어 1986년 1월1일 시로 승격했다. 안산의 뿌리를 찾아 안산시로 부르게 된 신흥 대도시다.
1천만 인구 서울과 1백만을 넘긴 인천, 수원, 그리고 안양 군포 안산 등 수도권 도시들이 지금도 얼마 남지 않은 숨통인 녹지공간 산을 계속 침식해 들아가고 있다. 도시여! 이제는 더 이상 산 위로 올라가지 말자!
서울 구로구 벤처산업단지에 있는 K사 직원들로 구성된 K산악회의 단골 산행코스는 ‘안양 수리산’이다. 산 이름 앞에 지명을 꼭 붙인다. 이유가 있어서다. 수리산은 안양시와 군포시, 그리고 안산시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K산악회가 안양 수리산을 단골로 오르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산행하는 날, 집합장소는 언제나 전철 1호선 안양역전이다. 대원들이 다 모이는 시간이면 안양9동 속칭 병목안에 있는 식당 ‘원두막(031-444-9933)’에서 이들을 모시러 온다. 15인승과 25인승 차량을 운행하고 있기에 K산악회에서는 미리 인원을 통보해 준다.
안양역에서 수리산 태을봉이나 슬기봉 관모봉 산행들머리인 병목안 시민공원까지는 10분 거리. 여기서 하차, 산행을 시작하면 2시간 안팎의 시간으로 공군부대 앞쪽 제2만남의 광장으로 내려올 수 있다. 산 정상에서는 군자 앞바다와 안산, 인천, 수원 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즐거움! 하산지점에는 원두막의 승합차가 대기해 있고 이 차편으로 식도락을 만끽할 수 있는 지점인 원두막까지 5분 거리. K산악회가 안양 수리산을 단골코스로 정하게 된 사연을 알만하게 하는 대목이다.
병목안 깊은 계곡 속에 위치한 ‘원두막’은 안양 토박이인 정기춘(52)씨가 부인 신강예씨와 부창부수, 함께 운영하는 17년 연륜의 업소다. 식당건물 한 동, 옥내 식탁에는 80석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계곡가에는 평상을 펼쳐 놓았는데 12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규모다. 오리고기 전문점으로 생오리 숯불회전구이가 대표음식인데, 여름철에는 보신탕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닭백숙과 닭도리탕도 차려낸다.
‘원두막’이 위치하고 있는 병목안은 마을 지세가 병목처럼 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린 안양9동의 마을 별칭이다
열차역은 도시의 시발점이다. 안양이 시로 승격되기 전인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안양은 서울사람들이 열차로 주말나들이를 가는 곳쯤으로 알고 있었다. 안양역에 내리면 주위에는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고, 단골로 찾아가던 곳이 안양유원지였다. 유원지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내렸고, 대형 풀장이 있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나들이 코스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지금 안양시에서는 안양8경을 선정해 놓았다. 그 8경 중 한 곳이 안양일번가다. 안양역전, 안양 최대의 번화가가 바로 이곳인데, 2000년 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가 잘 어우러져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 먹거리집이 빠질 수야 없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인 이곳에서는 모범음식점으로 지정된 업소만도 20개가 넘는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이만, 도시의 번화가에는 젊음이 넘쳐나는데,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다.
롯데백화점과 안양역 역사 건너편 광장 맞은편 먹거리 골목 안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의 ‘물레방아(031-445-2591)’가 하루 24시간 문을 열어 놓고 손님들을 모신다. 왕갈비, 생등심, 돼지갈비 등 고기집으로 크게 알려져 있지만, 해장국솥밥·냉면(각 5,000원), 설렁탕솥밥·갈비탕솥밥·육개장솥밥·회냉면(각 6,000원) 등 가장 대중적인 음식 손님들로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업소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이라 심야나 이른 아침에도 이용할 수 있다. 주말 이른 아침에는 수리산이나 삼성산, 관악산 산행팀들이 이 집에서 모여 아침을 함께 해결하고 산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젊음의 거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옛맛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업소측의 긍지라고 하는데, 안주인 김재분(55) 여사는 대한민국 팔각회 안양여성팔각회 회장직을 맡아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수인산업도로에서 꺾어서 들어가면 등산로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산행길에 찾아 들어갈 만한 먹거리 집 몇 곳이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들 업소 중 현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집, 외지 사람들이 하산길 단골로 이용하는 집이 ‘약수터손두부(031-482-7952)’라는 소문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으로 9년 전에 개점했다.
집주인 김진자(55) 여사가 슬하의 다섯 자매 교육비 충당을 위해 시작한 업소라는데, 김 여사 스스로도 성공한 사례라고 말한다. 다섯 자매 모두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했으니 그 동안 자신의 집을 찾아 주신 손님들이 고맙기만 하다고 했다. 음식맛이야 기본이겠지만 이 업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집주인의 넉넉한 인정. 한번 찾은 손님들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내는 후덕한 인상, 넉넉한 인정의 집주인으로부터 고향의 어머니를 느끼게 되고 단골이 된다니 식당의 성공은 당연한 귀결이겠다.
잔치국수 3,000원. 순두부·칼국수 각 4,000원. 된장백반·순두부백반·비지찌개백반 각 4,500원. 묵말이·특미참느름냉면·막국수·청국장·콩국수·산채비빔밥·버섯매운탕(소) 각 5,000원.
수리산 남쪽 자락, 반월저수지 건너편 교통망은 참으로 복잡하다. 30년 전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수인산업도로라는 42번 국도 하나만 놓여 있었다. 당시의 경기도 인천시에서 경기도청 소재지 수원시까지는 이 길 하나만으로도 막힘없이 싱싱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용도폐기(?)라는 이유로 사라진 협괘열차 수인선이 놓여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소래 포구까지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털털거리며 달리던 그 열차는 이제 아득한 추억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낭만이 됐다.
이후 4호선 전철이 개통되어 반월저수지 남쪽을 가로질렀고, 그것도 모자라 50번 영동고속국도가 반월저수지 북단 호안을 달린다. 그 얼마 후 15번 서해안고속국도가 남북으로 길게 달리게 되었는데, 2004년부터는 반월저수지 서단에는 최첨단의 교통수단인 경부고속철도가 개통, 그 위로 KTX가 센 바람처럼 질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반월저수지 앞, 옛 동네 안쪽의 길들은 3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실로 이곳은 대한민국 도로망의 박물관이나 전시장이라는 표현이 무리는 아니겠다.
여기에다가 참으로 신기할 정도의 풍광 하나까지 수리산 자락에서는 볼 수 있다. 반월저수지에서 천년고찰 수리사까지는 10km 안쪽 거리, 자그만한 갈치저수지를 지나 나즈막한 덕고개를 넘으면 천 년의 침묵을 간직한 듯한 마을이 펼쳐진다. 수리사 입구 군포시 속달동. 이 마을에 있는 식당 ‘초원가든(031-502-8554)’을 가던 날 안내를 위해 대야미역까지 마중나온 초원가든 대표 이근장(李根庄.49)씨는 갈치저수지를 지나 덕고개를 넘기 전 “이 고개를 넘게 되면 강원도땅 깊은 산골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실제 풍광이 그랬는데,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 납덕골을 ‘경기도내 강원도땅’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초원가든은 대야미역에서 갈치저수지를 지나 덕고개를 넘어 반월저수지에서 수리사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에 있는 오리고기 전문점이다. 지금은 산자락 어느 곳이나 간판이 걸린 집으로 들어가 보면 오리고기가 차림표 제1순위에 올려져 있다. 그런데 초원가든의 오리요리는 조금 이채로웠다. 녹차 먹인 오리고기에 잘게 자른 생부추를 섞어 주물럭으로 대쳐서 차려낸다. 익은 고기와 부추는 깻잎절임에 싸서 먹도록 했다. 남편과 동갑내기인 부인 조희현(曺喜鉉)씨는 단골손님들로부터 ‘이모’로 호칭된다는데, 자신이 조리한 음식에 대한 자신감과 자랑이 대단했다.
서울로 가는 KTX를 타고 천안아산역을 지났다. 여기서 광명역까지는 20분 거리, 기차 진행방향 오른쪽 창 밖 풍경을 내다본다. 잠시 후 열차는 호수 위로 놓인 철길을 달렸다. 차창 밖으로 나즈막한 산들이 시야를 스치고 지나간다. 곧바로 눈 깜빡할 사이 열차가 건넌 호수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의 어천저수지이고, 손에 닿을 듯 시야를 스친 산은 수원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이루는 칠보산(238.8m)이다.
잠시 후 열차가 또 하나의 작은 저수지 송라저수지를 건너고 나니 이번에는 차창 밖 오른쪽으로 조금 더 큰 저수지가 한 폭의 그림인양 펼쳐졌다. 경기 군포시 둔대동의 반월저수지다. 유명한 화가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호수 건너편에 솟아 있는 산꼭대기 돔형의 시설물이 조각작품인양 시각을 즐겁게 한다. 산 정상을 망가뜨린 시설물에 대한 평소의 불만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에 깊이 각인되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호수 건너편 물가에 있는 집이다. 시속 300km라는 고속열차 속에서 찰나에 스치고 간 그림이라 머릿속에서도 스케치가 되지 않았다. 다만 상상의 나래 속에다 빨간 색 지붕과 벤치가 놓여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담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 보고 싶네.’ 1960년대에 유행한 가요의 노래말 끝 소절 ‘호반의 벤치로 가 봐야겠네’를 흥얼거려 본다.
호반의 그 집 지붕 색깔은 빨강이었고, 물가 넓은 잔디마당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아! 상상 속의 풍광만이 아니었구나!
빨간 지붕 호반의 집 ‘감로수(031-437-5003)’로 취재를 가기 직전, 집 주인 손태진(孫太眞·55) 여사와 전화가 닿았다. 4호선 대야미역에 내려 택시로 가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마시고 산본역을 지나시면서 전화를 주세요. 빨간 색 작은 승용차로 역까지 모시러 가겠습니다”는 것이 돌아온 전화 목소리였다. ‘우리 이웃’이란 빨간 모표가 붙은 빨간 모자를 쓴 ‘소년’이 서 있겠다는 말을 전화로 알려 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빨간 색의 작은 승용차였다. 대야미역에서 ‘감로수’까지는 5분 거리, 승용차 뒷좌석에는 책 한 권이 달랑 놓여 있었다.
군포시 둔대동은 신안주(朱)씨 집성촌이었고, 지금도 이들 선산이 있는 곳으로 연이 이어지고 있는 마을이다. 서울에서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란 처녀가 이곳 주(朱)씨 집안으로 시집을 왔다. 넉넉하게 살던 시가에서는 못가에 넓은 땅을 갖고 있었다. 부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늘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그렇게 자란 부인이 슬하의 자녀들이 자랄만큼 자랐을 때, 내가 나누며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 아름다운 경치를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1995년 1천여 평 호반의 땅에다 야외카페를 연 것이 ‘감로수’였다고 한다.
카페를 찾은 많은 사람들의 권유로 2003년에는 한정식집으로 전환했다는데, 한 차례 다녀가신 분들은 모두가 단골손님이 된다는 것이 ‘감로수’의 진가를 잘 대변해 주는 대목이라고 한다. 군포시가 선정한 군포8경 중 반월저수지 석양은 바로 ‘감로수’ 앞뜰에서 보는 석양인 만큼 이 집의 분위기는 길게 설명할 여지가 없겠다.
한정식이라면 일반적으로 비싼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정성을 다한 정갈한 음식으로 차려내는 감로수의 한정식은 품격부터가 빼어났는데, 음식값은 대중적이었다. 17,000~25,000원. 2가지로 차려낸다. 일요일은 휴점. 예약하고 찾아가는 것이 주객 서로가 편하겠다.
/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상임고문·경북대 산악회 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