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까뮈의 글은 차분하다 못해 서늘함을 느낀다. 오래전 ‘이방인’을 읽을 때도 소설 속 따가운 햇살과 달리 그랬었다. 그의 글은 늘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 같았다. ‘페스트’도 그랬다. 아직 한여름의 기운이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지만 그의 차가운 기운은 여전했다.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건조했고, 차분해서 더러 음울한 듯했다. 그의 목소리는 계속 낮은 곳에서 웅얼거렸고 그 웅얼거림 탓에 더러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의 웅얼거림은 끝이 없었다. 마치 일정하게 들리는 낯선 기계소리 같기도 했다.
어느 날 오랑 시에서 쥐들이 사방에서 수도 없이 죽어 나뒹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의사들의 견해로 증세는 페스트였다. 도시는 급격히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고 도청에서는 도시 폐쇄 조치가 취해졌다. 사람들은 도시 바깥을 오갈 수 없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 확산을 막는 방법은 외부와의 차단이 최고인 모양이다. 우리는 지금 2년이 넘도록 코로나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끝은 알 수가 없다. 상하이에서는 도시 폐쇄뿐만 아니라 아예 사람들이 집 바깥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상하이뿐만이 아니었다. 하이난이 그랬고 북경이 그랬다. 우리도 조선시대에 고을에 역병이 돌면 마을로 들고나는 입구에 마을 사람들이 지켜 서서 출입을 금지시켰다. 사람들은 마을에 갇혔고 그곳에서 죽거나 역병이 물러가거나 둘 중 하나인 채로 살았다.
이런 상황을 까뮈는 거의 80여 년 전에 먼저 본 것이다. 페스트로 인구 20만 규모의 도시가 폐쇄되었다. 도시는 외부와 차단되고 그 안에서 그 도시의 사람들은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로 나뉘어 격리된 공간 속 사람들은 모두 갈등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까뮈는 격리된 공간 속 사람들의 감정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방인’속의 뫼르소는 그렇게 조금씩 지쳐갔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삶은 일반적인 삶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자연적으로 페스트로 인한 사회 혼란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심리 상태는 사뭇 달라질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소설에서는 먼저 도시의 거주민과 도시에 여행을 왔거나 업무로 잠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구분한다. 외부에서 와서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던 사람들은 이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해하며 도시를 빠져나가고자 한다. 기자 랑베르의 도피적인 행동이 바로 그런 상황을 대변한다.
랑베르는 자기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므로 특별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외도 그 점은 대체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로서는 랑베르 같은 사람이 많으며 따라서 그것이 자신의 생각처럼 그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했다. 랑베르에게 리외는 형식주의자였다.
그는 모든 기관을 다 찾아다니며 모든 절차를 다 해보았지만 그 방면의 해결책은 당분간 막혀있었다. 그는 카페를 전전하며 신문을 뒤적여 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페스트가 곧 끝나간다는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불법적인 방법으로 도시를 탈출하고자 한다.
또 다른 부류가 있다. 도시민이건 외부인이건 모두들 이런 예기치 않는 유배 생활이 달가울 리가 없다. 빨리 페스트 상황이 물러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사람들은 종교를 찾는다. 신에 의지하여 자신들이 답답한 상황이나 현실을 해결하려고 한다.
파늘루 신부의 설교에서 이러한 초월적인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부는 모두 불행 속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페스트를 겪게 된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오랫동안 세상은 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님의 자비 위에서 안식하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
그 결과 사람들은 되는대로 살았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은 자비를 거두었고 도시는 페스트의 암흑에 갇힌 것이다. 이제 알았으니 본질적인 것에 다가가야 한다. 그러므로 신부는 사라들이 진리에 다가가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진리가 바로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일 저녁 대로에서는 계시를 받았다는 어떤 노인이 펠트모자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군중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외쳐댔다. “신은 위대하십니다. 그분에게 오십시오” 우리도 끊임없이 들은 소리다. 2000년이 끝날 즈음에는 특히 더 그랬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는 페스트와 맞서 싸워 이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다. 타루의 행동이 그런 경우다. 보름이 지나면 의사도 여기서 아무 쓸모도 없게 될 것이다.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고 끌려 갈 것이다. 위생업무의 체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타루는 생각했다.
도청에서 전반적인 구급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건강한 남자들을 동원하려고 일종의 시민 봉사활동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도지사가 망설이지만 그렇게 하도록 요청했으나 결과가 시원치 않았다. 이를 답답하게 여겨 타루는 보건자원봉사 단체를 조직하고 의료 봉사에 뛰어들었다.
도시는 암울했다. 여름으로 치달을수록 사망자 숫자는 늘어났다. 도지사는 차량운행과 식량보급을 제한했다. 휘발유도 배급제로 제한되었고, 절전까지도 시행되었다. 다만 생필품만은 육로와 항공으로 오랑에 공급되었다. 차량운행은 줄고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페스트는 모든 쾌락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시간은 행복한 계절의 구릿빛 광채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 질병으로 인한 커다란 변혁 중 하나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던 중 페스트가 가래톳에서 패혈증성으로 옮겨갔다.
페스트는 도시 변두리 밀집지역에서 도시 중심부로까지 퍼졌고, 군인, 수도자, 감옥 등 공동생활을 하는 곳에서 유독 많이 퍼졌다. 마침내 9월과 10월엔 페스트가 온 도시를 굴복시켰다. 사람들은 모두 체념했다. 그러던 중 카스텔이 혈청을 만들어냈다.
그는 혈청을 페스트에 걸려 거의 절망적인 오통 판사의 아들에게 주사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죽고 말았다. 첫 번째 실험 결과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혈청이 몇 번의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페스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즈음부터 폐질환이 도시 사방으로 퍼져나갔지만 임파선종창 페스트가 줄어들어 통계 그래프는 평형을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자 식량 보급에 어려움이 생겼고 여러 다른 종류의 불안이 대두되었다. 페스트는 죽음이라는 평등을 제외하고는 불평등을 가져왔다.
12월이 되어도 페스트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그 무렵 그랑이 페스트에 걸렸지만 혈청을 주사하고 호전되었다. 그랑 뿐만 아니라 마침내 현저하게 페스트 증상 환자들이 줄어들었다. 도시에서 쥐와 고양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병세가 잦아들었다. 통계숫자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모두들 페스트 이후 달라질 생활방식에 대해 즐겨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거 생활의 편리함은 단번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복구보다는 차라리 파괴가 더 쉽다고 여겼다. 1월이 되자 페스트의 위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마침내 페스트의 실질적인 지배는 사실상 끝났다. 페스트의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사람들은 계속 페스트를 기준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제력을 잃고, 오랜 고통 속에 갇혀 있었다. 공포가 사로잡아 불안 증세를 나타냈다.
그러자 도청은 의료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페스트는 제동이 걸린 것으로 관찰되었다고 발표했다. 마침내 1월 25일이 되자 도시는 즐거운 소란으로 가득했다. 도지사는 등화관제를 해제했다. 사람들의 거리로 몰려나와 웃고 떠들었다. 모처럼 도시는 소음으로 들끓었다.
도청은 페스트가 끝났다고 하지만 2주 동안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낙관을 했지만 페스트가 모두 물러간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 여겼다. 마침내 2월의 어느 날 도시의 출입문이 열렸다. 성대한 축제가 밤낮으로 열렸다.
소설은 주인공인 베르나르 리외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의사였으므로 페스트의 한가운데 있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으므로 가급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페스트의 끝에서 리외가 다음과 같은 말로 기록을 마친다.
코로나 균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수십 년 동안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또 인간의 불행과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쥐들을 깨워서 어떤 행복의 도시로 몰래 넣고는 그곳에서 죽게 하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코로나가 자꾸 머릿속으로 기어들었다. 벌써부터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이전 시대와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징조는 벌써부터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균은 늘 인간의 나약한 곳으로 기어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