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남창의대장 박동의 격문 | 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ㆍ호남 항일의병 최고 지도자 중 한사람으로 알려진 산청 출신 경남창의대장 박동의(사진ㆍ朴東義ㆍ1867~1908) 선열 호적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박동의 대장은 산청군 덕산을 중심으로 하동ㆍ함양ㆍ합천ㆍ거창ㆍ진주ㆍ구례ㆍ광양ㆍ남원 등지에서 일제와 맞서 싸우다 전사 순국한 경남 최고 항일의병장이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 소장은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박 대장 출생년도와 가족관계 등을 산청군 ‘을유식(乙酉式 1885년) 단성호적대장’에서 처음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
|
|
▲ 박동의 경남창의대 조직표 | 공개된 자료와 내용 중에는 나이ㆍ본관ㆍ가족관계ㆍ신분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아직 직계 후손은 미확인 상태다.
단성호적 대장에는 “박동의(동언) 의병장은 밀양 박씨로 단성현 도산면(현 산청군 신안면) 진태마을 출신으로 1885년 당시 19세로 정묘생(1867년)이다.
|
|
|
▲ 박동의 경남창의대장 ‘단성호적’ | 부인은 성주 이(李)씨로 병인생(1866년) 20세이다. 부(父)는 박정식 병자년생(1816년) 70세. 모(母)는 석(石)씨로 세상을 떠났다. 조부 박상진ㆍ증조부 박치원ㆍ고조부는 박계중이며 집안에 종(奴)이 있는데 이름은 귀돌(貴乭)이며 계사생(1873년) 13세”라고 기록돼 있다.
정 소장은 “그동안 박 대장의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알 수 없어 연구활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으나 이번에 그의 호적으로 보이는 130년 전 자료를 발굴해 독립운동가 연구와 선양사업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성호적은 38책으로 1976년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됐다. 박 대장 관련 단성호적은 현재 일본 동경 가쿠슈인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으며 지난 1980년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영인 출간했다.
한편, 이번 자료공개는 지난달 4일 박 대장 관련 방송이 나간 후 밀양 박씨 졸당공파 후손 박맹제(70ㆍ산청군 신안면 진태출신) 씨가 경상대학 고문헌 도서관 문천각에서 해당 영인본 자료를 찾아 정 소장에게 자료를 제공해 이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