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이 정부와 제주도의 적극적인 사태해결 노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부현일 기자>
한라병원이 폐업을 조건부로 유보, 일단 파국은 면했다. 의료법인 한라의료재단(이사장 김병찬)은 30일 “병원 폐업 때 의료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생명이 위독한 중증환자들을 고려, 일단 폐업을 유보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는 오전 10시30분 이사장 자택에서 열렸으며 이사 5명을 비롯해 감사 2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사회 개최에 앞서 병원 임직원 대표 5명은 “제주도민의 건강권을 위해 폐업 결정만은 유보해달라”며 “병원 정상화가 될 때까지 의사는 임금의 50%, 간호사 및 일반직원은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반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임종 이사는 이날 오후 3시 기자회견을 갖고 “병원 임직원들의 자구노력이 뒷받침되고, 노동조합도 병원의 진료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경우 조건부로 폐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8일 노사협상이 결렬되면서 폐업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던 한라병원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기자회견 직후 김성수 원장은 “정신적 충격이 크다. 아무튼 병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해준 직원들의 노력에 감사한다”며 “노사교섭 재개에 대해서는 마음을 정리한 뒤 추후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상태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은 “재단 이사회의 조건부 폐업 유보 결정은 철저하게 노조를 배제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사회의 결정을 재검토한 뒤 향후 투쟁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폐업’소식에도 병원에는 외래환자 400여명이 진료를 받았고, 지난 29일 퇴원 통보를 받았던 입원환자 130여명 가운데 80여명은 그대로 남아 치료를 받고 있다.
<< 좌용철 기자 >>
한라병원 조건부 폐업 유보 배경
의료법인 한라의료재단이 30일 이사회를 갖고 일단 3가지 조건을 달아 폐업을 유보키로 했다. 하지만 조건부 폐업유보는 노조의 대응에 따라 폐업을 강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단 이사회는 폐업유보 이유에 대해 “한라병원이 도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폐업에 들어갈 경우 의료대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게다가 한라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중증환자들의 생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이사회 개최 이전에도 예견됐었고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도내 각계각층에서 “폐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던 점을 감안하면 병원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책임을 면키 어렵다.
결국 병원 진로와 관련, 폐업도 불사하겠다던 재단의 입장은 병원 임직원들이 임금 삭감 등 자구노력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 한 발짝 물러난 형국이다.
거기에다 폐업유보 조건으로 노동조합도 자구노력에 동참해야 하고, 병원진료와 관련해 일체의 방해를 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또한 노조원뿐만 아니라 외부세력들의 진료업무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관계당국의 단호한 조치를 요구, 노조의 쟁의행위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사회는 노사분규의 근본적인 해결책과 관련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다만 노사협상은 병원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책임소재를 떠넘기고 향후 병원 폐업에 대한 결정은 김병찬 이사장에게 전권을 위임한다고 덧붙였다.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노사문제로 인해 사태가 악화됐는데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어 유감스럽다”며 “이 때문에 병원이 ‘폐업’을 노조탄압 도구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