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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리풀사진방 원문보기 글쓴이: 임윤식
가거도 독실산을 오르다
우리국토의 가장 순결한 땅
오래 전부터 꼭 가고싶었던 섬, 드디어 가거도를 다녀왔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해상으로 약 150km, 여객선으로 4시간 걸리는 대한민국 국토 최서남단 섬이다.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중국 땅과 가장 가깝다는 섬. 먼저 흑산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가거도로 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시인인 이생진 시인과 함께 떠나는 섬 여행이다.
이생진 시인은 1955년부터 시집을 펴내기 시작해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33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우리나라 섬의 전경과 섬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담은 시를 주로 써오고 있다. 특히 1978년에 처음 펴낸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수십 년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尙火시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주자치도 명예도민이 되었고, 2009년 성산포 오정개 해안에 ‘이생진 시비공원' 이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그가 쓴 성산포에 관한 대표시 19개가 시비로 세워져 있다. 2012년에는 신안군 명예군민으로 추대받기도 했다. 신안군은 우리나라에서 섬을 가장 많이 가진 지자체이다. 무려 1004개에 이른다.
가거도는 산세가 높고 절벽으로 형성되어 웅장하고 기괴한 절경과 함께 길쭉한 해안선, 가파른 해안절벽 위로 항상 구름을 머금고 있는 듯한 독실산(639m)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소흑산도'란 이름으로도 불리워지기도 했는데 이는 일제시대 때의 명칭이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가히 살만한 섬'이란 뜻의 ‘可居島'로 불리게 된 것은 1896년부터이다.
쾌속선으로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2시간, 다시 흑산도에서 가거도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흑산도에서 아침 10시 20분 동양훼리호에 승선, 40분 쯤 가니 중간에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가 나타난다. 세 개 섬에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가거도로 떠나는 배. 쾌속선이라 항해 중에는 객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답답하지만 우리국토의 최서남단 끝섬을 간다는 기대로 지루함도 잊었다.
흑산도에서 2시간 만에 드디어 가거도항에 도착. 배에서 내리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파제 시설이다. 사람 몇 배 높이의 콘크리트 담벽 앞에는 집채 만한 규모의 사각콘크리트 구조물이 줄지어 놓여져 있다. 언론으로 만 접했던 가거도항의 태풍피해와 방파제 규모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가거도항은 지리적 여건상 태풍의 진로권에 위치하여 태풍피해가 빈번히 발생되는 지역이다. 최근의 경우, 2011년 태풍 ‘무이파’와 2012년 태풍 ‘볼라벤’ 영향으로 방파제 350m가 파손되고, 테트라포트(T.T.P. 일명 ‘삼발이’) 2,500여개가 유실되는 대규모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가거도항 방파제 유실 등의 피해를 막고 100년 주기의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슈퍼방파제’ 복구를 시작, 64t 짜리 테트라포트 대신 초대형 파도에도 견딜 수 있는 1만t급 사각 콘크리트(케이슨) 19개와 100t급 소파블록으로 교체해 나가고 있다. 케이슨은 높이 28.7m, 폭 28m로 아파트 10층 높이이다. 슈퍼방파제는 국비 2,154억 원을 투입, 오는 2020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선착장 방파제와 주위풍경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민박집 트럭이 기다리고 있어 서둘러 차에 탄다.
가거도에는 1구 대리마을, 2구 항리마을, 3구 대풍리마을 등 3개 마을이 있다. 우리 일행이 머물 곳은 이중 항리마을의 다희네 민박집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트럭을 몰고 선착장까지 우리 일행을 태우기 위해 마중나왔다. 운전석 옆에 이생진 시인, 나머지 일행은 트럭짐칸에 탄다.
덜컥거리는 중고트럭을 타고 짐칸에 서서 샛개재를 넘는다. 샛개재는 대리마을에서 항리마을과 대풍리마을로 가는 고갯길이다. 꼬불꼬불한 굽이길이라 차가 코너를 돌 때 마다 손잡이를 잡고 가까스로 버틴다. 고개를 넘으면 독실산 허릿길. 시야가 트이면서 독실산 능선과 바다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리 용머리 모양의 섬등반도도 보인다. 아름다운 전경에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약 15분 쯤 걸렸을까? 곧 추락할 것 같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겁도 없이 달리는 가 싶더니 곧 민박집 마당에 이른다. ‘다희네’(010-9213-5514)라고 쓴 집 간판이 보인다. 섬등반도 입구에 위치한 항리마을 민박집.
숙소를 정한 후 일단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마당에 나가 사방을 둘러본다. 경관이 정말 좋다. 뒤에는 폐교가 보이고 바다 속으로 기어드는 모양의 섬등반도가 우람하게 누워있다. 정면은 독실산, 좌측으로는 깎아지른 해벽이 내려다보인다. 눈부시도록 파란 바다, 경계를 서듯 멀리 구굴도가 수평선을 막는다.
점심식사 후 오후 2시 경, 필자와 함께 등산을 좋아하는 여자분 2명은 산행에 나서고, 나머지 분들은 섬등반도 능선 산책길에 오른다.
오후 산행이라 독실산-신선봉-노을전망대-섬등반도 코스로 3시간 정도 가볍게 산행할 예정이었는데 독실산 오르는 도중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디 쯤에서 잘못 들어갔는지 감이 잡히지않는다. 섬 산행에서는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않아 등산로가 잘 보이지않는 게 보통이다. 이정표도 별로 없다. 독실산 역시 그렇겠지 하고 별 걱정없이 사람 다닌 흔적 만 찾아 오르다 보니 길을 잃은 것 같다. 원시림 및 바위능선에서 무려 4시간이나 헤매다 겨우 하산했다. 등산로가 선명하지않은 섬 산행에서 조심해야 할 교훈이다.
산행에서 돌아와 저녘 무렵 섬등반도 능선도 걸어본다. 안개 자욱한 능선 너머로 해가 저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떨어지는 해, 바로 그 해가 바다 속으로 숨자 어둠이 밀려온다. 난간으로 이어진 능선 끝에는 전망대가 보인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예쁜 계단길도 보인다. 지재그로 이어진 데크계단 아래에는 비밀의 해안같은 오붓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아무도 없는 이 해안에서 원시인같이 벌거숭이가 되어 나 혼자 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다음 날 새벽 6시. 필자는 산우 1명과 함께 정식으로 독실산 산행에 나선다. 전날 밤 미리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 준비해 둔 주먹밥을 챙긴다.
독실산 등산은 항리마을에서 출발시 ⑴항리-독실산-480봉-신선봉-노을전망대-섬등반도 코스, ⑵항리-신선봉--백년등대-항리 코스, ⑶ 항리-독실산-480봉-백년등대-신선봉-항리 코스, ⑷항리-독실산-삼거리-방공호-달뜬목-땅재전망대-대리마을 코스 등이 있다. 이 중 필자 일행은 오늘은 제일 긴 코스인 ⑷코스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독실산에는 최근에는 뱀이 거의 보이지않는다는 기사를 어디에선가 본 듯 한데 만일에 대비, 다리에 겨울등산시 시용하는 스팻츠를 차고 각자 스틱을 준비한다. 스팻츠는 뱀 대비 뿐 아니라 산거머리가 붙는 걸 막는 데도 유용할 것 같아서이다. 가거도는 아열대성 기후 지역으로 섬 전체가 습기가 많아 육지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산거머리가 있다.
독실산 산행은 민박집 정면 계단길이 들머리이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그림같이 보이는 집 한 채. 그 집을 향해 수백 개의 가파른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집 한 채를 위해 저토록 긴 계단이 만들어졌는가 싶었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 계단 꼭대기 뒤로 여러 채의 또 다른 마을이 펼쳐져 있다. 돌담 골목과 낮은 슬라브지붕들. 동네풍경이 전형적인 섬마을 모습이다.
여기저기 폐가도 보인다. 2구 항리마을은 민박집인근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 마을 중심인 것 같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민박집은 가장 경치가 좋은 곳, 오히려 항리마을의 외곽인 셈이다.
마을 골목을 따라가면 ‘독실산’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 골목을 따라가면 풀밭길, 서서히 조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민박집에서 약 30분 쯤 오르면 시야가 완전히 트인다. 섬등반도가 발 아래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민박집도 성냥갑 만큼 작게 들어온다. 풀섶을 헤치고 계속 오르다 보면 조망포인트에서 15분 쯤 후에 철망문을 만난다.
철망문을 지나 15분 쯤 가면 약수가 나오는 바위, 다시 7-8분 더 가면 찔레꽃밭과 무덤을 만난다. 민박집에서 출발한지 1시간. 후박나무숲길인 등산로가 완만하고 호젓하다. 새벽산책길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덤에서 다시 40분 쯤 오르면 능선이다. ‘독실산 10분’ 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좌측으로 신선봉 1시간, 등대 1시간 반이라고 쓰여진 표지판도 걸려있다. 너무 쉽게 오른 능선, 정말 반갑다.
능선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가면 ‘전망좋은 곳’이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만난다. 전망바위 위에 서본다. 앞바다와 좌측 독실산 허릿길 일부가 보인다.
능선길에서 인부 몇사람을 만난다. 등에 중국 사람들이 메고 다니는 모양의 바구니를 메고 간다. 무엇하는 분들이냐고 물으니 ‘유도로프’ 설치 중이란다. 독실산은 현재 등산로 정비가 한창이다. 등산로 및 산책로를 새로 정비하고 로프난간, 유도로프와 전망대데크, 계단데크, 이정표 등을 설치 중이다. 민박집 옆에 세워져 있는 ‘송년우체통’도 이 공사의 일환이다.
민박집에서 출발한지 정확히 2시간. 드디어 독실산 정상(639m)이다. 정상 오르는 비탈은 철계단으로 되어 있다. 정상 자체는 숲 속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조망이 전혀 없다. 군 레이더 시설 옆에 ‘犢實山-海拔 639m'라고 쓰여진 표지석 만 있을 뿐이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은 후 하산한다. 정상 아래 군부대 정문에 ‘하늘별장’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붙어 있다. 재미있다. 허긴 그렇지. 가거도 독실산 정상에 위치한 숙박시설이니 ‘하늘에 있는 별장’이 아닌가?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시멘트길을 10분 정도 내려와 아침식사를 위해 준비해온 주먹밥을 꺼낸다. 반찬은 배추김치, 무우채, 나물무침 등. 내 평생에 주먹밥을 먹기는 처음인 것 같다. 갑자기 6.25전쟁 당시를 생각해 본다. 반찬도 없이 약간 소금끼있는 주먹밥 만 먹으며 적과 싸웠던 국군용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침식사 후 조금 내려가면 삼거리를 만난다. 우측으로 직진하면 샛개재로 가는 시멘트차도, 좌측은 대풍리마을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는 정자와 함께 ‘가거도등산안내도’와 ‘생태탐방로종합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필자 일행은 우측 시멘트 차도 대신 가운데 길, 새로 정비된 생태탐방로로 들어간다. 숲길이 정말 호젓하다. 좌우는 거의 대부분 후박나무숲. 연분홍 색깔의 후박나무 새순이 꽃처럼 아름답다. 평평한 숲길도 있고 바위길도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새소리, 풀벌레소리들을 들으며 걷고 또 걷는다.
삼거리에서 약 1시간 정도 가면 다시 삼거리. 우측 철문 쪽으로 가면 샛개재 방향, 좌측으로 직진하면 달뜬 목 방향이다. 계속 능선을 타기 위해 좌측으로 직진한다.
이곳 삼거리에서 4분 정도 가면 정자 쉼터를 만나고, 정자쉼터에서 후박나무군락지를 거쳐 약 30분 쯤 더 가면 ‘독실산에서 바라본 가거항’사진판이 세워져 있는 독실산 능선 최고의 조망포인트에 이른다.
이곳 조망포인트에 서면 뒤로는 독실산 전체능선이 한 눈에 보이고 반주암 해벽이 웅장한 자태로 다가온다. 또, 우측으로는 가거항이 위치한 대리마을과 샛개재 굽이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어 다시 20분 정도 더 가면 달뜬목, 달뜬목에서 바라본 해뜰목 경관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제부터 가거항으로 내려가는 본격적인 하산길. 달뜬목에서 20분 쯤 내려가면 가거도항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데크에 이르고, 전망데크에서 다시 20분 정도 내려가면 산행 날머리인 대리마을 큰길을 만난다.
항리 민박집에서 독실산 정상까지 2시간, 정상에서 독실산 능선길을 따라 대리마을에 이르는 생태탐방로 4시간, 조망을 즐기면서 여유있는 산행을 하다보니 거의 6시간이나 걸렸다. 보통걸음으로 걸을 경우 5시간 이내로 충분할 것 같은 코스이다.
이번 가거도 여행에서는 등산에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다 보니 어선이나 낚싯배를 타야 볼 수 있는 일부관광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또 갯바위낚시를 해보지못한 것이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가거도 8경은 일반적으로 독실산 조망, 회룡산과 선녀바위, 돛바위와 기둥바위, 섬등반도, 구절곡, 망향바위, 남문바위, 천연기념물 구굴도 등을 드는 데 이들 8경을 두루 감상하려면 어선이나 낚싯배를 빌려 타는게 좋다. 대체로 적정 승선인원(6-10명 내외)이 모이면 1인당 20,000원~30,000원 선에 배를 대절할 수 있고, 섬을 한바퀴 돌아보는 데에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또한 여름철에 시원한 해수욕을 즐기려면 대리항 왼쪽의 콩돌해변이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가거도 팔경인 소퉁이 부근의 큰짝지해변과 작은짝지해변을 찾아가는 게 좋다. 그러나 소퉁이 부근의 두 해변은 육로로는 접근할 수 없으므로 배를 타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거도는 섬 자체가 후박나무 군락지이다. 섬 가득 후박나무, 굴거리나무, 천리향이 빽빽이 우거져 있고 후박나무 약재 전국 생산량의 70%가 가거도에서 나온다. 이 외에도 음양곽, 현삼, 목단피, 갈근 등의 희귀 약초가 자생하고 있으며, 대엽난, 콩난, 새우난, 춘난 등도 자생하고 있다.
가거도는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 흰날개해오라기, 바다직박구리 등 희귀 조류가 서식하는 자연의 낙원이기도 하다. 가거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고기잡이를 나가 노를 젓고 그물을 당기면서 민요를 불렀는데, ‘가거도 멸치잡이노래'는 그 중 하나로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거도는 주변 해역의 수심이 깊고 해저가 대부분 암초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 갯바위 최후의 보루라고 말할 정도로 국내 최고의 감성돔, 돌돔, 볼락 낚시터로 손꼽힌다. 갯바위, 방파제 가릴 것 없이 아무 데나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금세 입질을 받을 수 있다.
대개 6월 초순경이면 농어와 참돔, 우럭이 선을 보이고, 6월말에서 7월 중순까지 돌돔이 가세하여 갯바위, 방파제 가릴 것 없이 아무 데나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금세 입질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섬 북쪽의 국흘도 일대에 좋은 포인트들이 많다.
가거도 특산물은 일반적으로 후박나무(한약재), 흑염소(방목), 뿔소라, 멸치, 전복, 해삼, 돌김, 돌미역 등을 들 수 있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