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최 건 차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는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문예영화다. 이 영화는 작고한 신상옥 감독께서 내가 80년대 중반부터 목회를 하며 생활하는 수원에서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서울의 축소판 같은 수원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정겨웠다. 수원의 심장처럼 인 팔달산 아래 있는 정조 대왕의 행궁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원시 팔달구 남문 뒤에서 ‘한우물길’이란 이정표를 따라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했던 곳을 찾게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바로 그 골목 앞에 흐르던 개울물은 오래전에 복개 되었고 그때 사용했던 우물은 뚜껑이 덮인 채 남아 있었다. 영화에 나온 기와집에는 <1961년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주연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촬영장소>라는 아크릴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영화에서처럼 골목과 기와집은 그대로였다. 대문이 닫혀 있어 그 집 주인이 경영한다는 바로 옆 <한우물 주차장>을 찾았다. 오십대 중반으로 뵈는 여주인께 찾아온 용건을 말했더니 “예 맞습니다. 제가 이 집에 시집을 오기 전에 우리 집에서 그 영화를 찍었답니다. 그 때 아역으로 나온 전영선과 제 남편이 같은 또래여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여기 있습니다.”라며 50년 전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부인이 내온 차를 마시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는 주요섭 선생이 1935년 문예잡지 ‘조광’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을 한국영화계의 제작과 감독의 귀재 신상옥이 영화로 재구성해 냈다. 영화는 제작과 출연진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능력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은 신 필름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1953년 당대의 스타 최은희와 결혼하여 58년 ‘지옥화’ 61년 ‘성춘향’ ‘상록수’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64년 ‘벙어리 삼룡’등을 발표하여 히트하면서 한국영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는 최은희를 옥희 엄마로, 역시 미남배우 김진규를 화가선생님으로 한 명콤비의 열연이었다. 조연배우들도 유명한 중견배우들이었다. 아역 전영선을 옥희로, 한은진은 시어머니로, 농익은 스타일의 도금봉은 식모 안성댁으로, 합죽이 김희갑은 계란장수로, 신영균은 옥희 외삼촌 역으로 스토리가 전개 되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는 효행의 도시 수원의 정서와 기독교인의 보수적인 신앙생활이 잘 드러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초대문광부장관이었던 이창동감독이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밀양’을 보면서 감독의 성향과 기독교인의 시대상을 절감하게 되었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토양으로 만들어진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제작자의 의도와 감독의 성향에 따라 같은 제목을 가지고서도 내용이 전혀 다르게 꾸며져 비판과 이념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1955년 4월 어느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광복동을지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으로 달려가 ‘가거라 슬픔이여’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최은희를 가까이 보게 되었다. 그녀는 실물도 예쁘고 어딘지 우수에 젖은 듯 참신해 보이는 게 미국여배우 ‘수잔 헤이워드’를 닮아 보였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에 출연했던 김희갑 김진규 한은진 도금봉은 타계했다. 2013년 4월 25일 현재까지 최은희 신영균은 80대의 고령이고 아역이었던 전영선도 60대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아빠가 없는 여섯 살짜리 옥희는 아빠의 친구였던 사랑방손님을 선생님이라고 따르며 조석으로 선생님 방에 드나든다. 그러면서 옥희는 선생님이 계란부침을 좋아한다고 어머니에게 졸라 매일 아침상에 올리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난기가 발동하여 화단에 핀 수선화를 한 묶음 꺾어들고 안방에 들어와 “엄마, 이 꽃 선생님이 엄마한테 드리라고 주셨어”라고 내밀었다. 어머니는 “얘 너, 괜히 그런 심부름하고 다니면 안 돼”라고 하면서 꽃을 받아 두었다가 화병에 꽂는다. 그날 밤 사랑방손님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윗목에 덮어두었던 피아노를 열어 <♬ 명랑한 저 달빛아래 들리는 소리 무슨 비밀이 있어 소근 거리나…>라는 노랫말이 담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황홀하게 연주한다.
한편 자주 드나들던 계란장수를 가까이 하던 안성댁이 임심을 한다. 이때부터 이상한 소문이 동네에 떠돌자 옥희 할머니는 필경 사랑방손님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그 사람을 당장에 내보내야 된다고 한다. 이에 옥희 엄마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좀 더 알아보시지요.”라는 다음 날 안성댁이 계란장수와 그런 사이가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며 떠나게 되고, 사랑방손님은 옥희 편에 사랑을 고백하는 쪽지를 보내온다. 며칠 후 옥희 외삼촌이 찾아와 할머니에게 “동생을 이대로 만 둘 수 없어 친정으로 데려가겠습니다.”라고 하자 할머니가 극구 반대를 하고 옥희 엄마도 오빠의 뜻을 뿌리치게 된다.
어느 날 신앙심으로 고고하게 사시는 할머니께서 젊은 며느리를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고뇌의 시간을 정리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옥희를 위해 살겠다고 하는데, 사랑방손님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이 순간부터 <♬… 떠나가면 나만 홀로 외로움을 어이 하리/ 언제 다시 만려나 아! 그리운 님 …>이란 쇼팽의 이별 곡이 겨울안개처럼 애잔하게 흐른다. 옥희 엄마는 꽃샘바람에 날리는 소복 같은 치맛자락을 여미면서 어린 딸을 데리고 팔달산에 오른다. 멀리 허허 벌판 같은 정거장에는 희미하게 보이다 만 선생님을 태운 기차가 하얀 김을 뿜어내며 이별의 기적을 울리며 멀어져 간다. 201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