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鎭安) 운장산(雲長山.1126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4월28일 쾌청한 날씨다. 반고개 사거리(6:40)를 첫 출발하여 서남시장, 죽전사거리(한국광유), 칠곡 IC에서 최총 출발하니 빈자리가 꽤 많슴니다. 잔치가 많아서 인가? 절기는 청명(淸明) 곡우(穀雨)를 지나 입하(立夏5/5)를 향해 달리니, 온 누리에 녹색(綠色)의 기운이 넘쳐남니다.
거창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줄곧 내달아 진안 IC 부근을 지날때는 마이산(馬耳山)의 모습이 연화봉(蓮花峰)을 연상(聯想)케 하며, 사물은 보는 방향에 따라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진안에서 다시 725번 지방도를 타고 정천면(程川面) 방향으로 20여 분을 달리니, 용담호(龍潭湖)의 잔잔한 은물결이 태양빛에 파문(波紋)을 일으키며 나그네의 여심(旅心)을 부채질 합니다!
‘내처사동’을 향해서 달리는 길은 구~불 구~불 그야말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주자천(朱子川)을 따라 10여 분을 달려서 운일암(雲日巖), 반일암(半日巖) 계곡을 지날때는 모두들 “이~야!” 하면서 탄성을 지르는데... 사진촬영을 못하고 지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슴니다.
그럭 저럭 내처사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40분을 가르킨다. 필자의 구령에 맞춰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자유롭게 진행을 하며 커다란 개울을 건너니, 우측의 넓은 밭에는 토종닭을 기르고 있어 목가적(牧歌的)인 풍경에 평화로워 보인다.
코오롱 산악회에서 처음 오신 네분들은 선두로 나서 잘도 걸어신다. 그 산악회는 남산에 백문주 부회장님이 단골로 가시는 산악회(매월 둘째주)여서, 특별히 초대하신 분들이다. 뒤 이어 김명숙 회원님 친구분들이 오르고, 또 모처럼만에 참석하신 김석제님, 황필순님, 허인정님을 비롯하여 금복주(부총무)님, 박태옥(총무)님, 천여순님, 황고문님, 구윤서(부대장)님, 최영수(산대장)님 등 끝이 없슴니다.
20여 분을 올랐을까? ‘바람재’에서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쉬면서 이정표를 보니, 삼장봉(동봉) 2.1Km라 적혀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가벼운 맘으로 오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다.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또 경치가 좋은 곳은 사진촬영도 해 가면서, 쉬엄 쉬엄 오르니 이름모를 풀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진달래도 뛰엄 뛰엄 만발(滿發)하다! 소나무는 드물고 주로 잡목이 대종을 이룬다.
한 봉우리 한 고개를 오르고 넘을 때 마다 개념도에는 설명이 없어 더욱 짐작키 어렵고, 1시간 여를 올라 동봉(삼장봉1133m) 정상에 도착하니 시계는 12시30분을 조금 지나 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다시 이정표를 보니, 운장대(산) 0.6Km라 적혀있다.
시장끼도 더하여 선착(先着)한 최대장님을 비롯하여 여러회원님들과 서둘러 운장산으로 떠남니다. 그럭 저럭 운장산(운장대 1126m) 정상에 도착하여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김광열님이 미리 깔아놓은 자리에 길게 모여 앉아 도착하는데로 점심을 드심니다. 어찌나 시장턴지 한참을 맛나게 들고나니, 밥 한 그릇에 반찬은 12가지도 넘는다.
게다가 대구산악회에서 오신 능선(닉네임)님은 자연산 두릅을 따 오셔서 권하시는데, 향기가 특별해서 인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먼저 드신분들은 후미에 도착하신분들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해 가면서 함께 드시니... 山 인심이 푸근 합니다 그려! 우리네 삶도 늘 오늘만 같았으면 세상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겠다는 생각이 듬니다.
점심후 잠시 사방을 둘러 봅니다. 이곳 운장산은 백두대간의 영취봉 부근에서 서북쪽으로 장안산(1237m), 팔공산, 마이산, 부귀산을 거쳐 이곳 운장산(雲長山.1126m)에 이르고, 다시 복두봉, 구봉산을 거쳐 매봉산(489m)에서 그 맥을 금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운장지맥이라 한다.
또 운장산의 이름은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자(字)가 운장(雲長)인데, 그의 字를 따서 ‘운장산’이라 했다 하며, 그는 조선 중기때 문인으로 본관은 여산(麗山), 사련(祀連)의 아들이다.
연하여 이율곡(李栗谷), 성우계(成牛溪)와 사귀어 성리(性理)를 논(論)하여 통달했고, 예학(禮學)에도 뛰어났으며, 특히 문장(文章)에도 능해서 8문장가의 한사람이라 하였고, 시(詩)에도 유명 하였으며, 문하(門下)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정엽(鄭曄) 등 여러 제자를 길러 냈다.
특히 김장생(1548~1631)은 스승의 예학을 계승해서 예학의 대가(大家)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중에 7명의 대제학(大提學)이 나왔고, 또 그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우리나라 18현의 한분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운장산 부근에 상여바위, 오성대(吾星臺)가 있는데 송구봉은 젊은시절 오성대에서 공부 하였다 하며, 그는 눈에 정기(精氣)가 하도 빛나서 용상(龍床)에 선조 임금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한다.
아름다운 전설을 상기하면서 서봉(오성대)과 연석산(硯石山)으로 향합니다. 여러 회원님들과 능선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금강산 식후경”이라 하드니, 점심후라 배도 든든하여 한결 힘이 솟고, 천하가 발아래로 펼쳐지니 더는 부러울 것이 없으며, 힘들게 山 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
20여 분을 걸어 칠성대(서봉, 오성대)에 도착하니, 거대한 바위들이 뭉쳐서 기운(氣運)이 엄청나다. 어떤 회원님들은 기(氣)를 받는다면서 암벽에 착 달라붙어 있으며, 그 위로 정상표석(標石)에는 개념도와 달리 칠성대(七星臺)로 새겨져 있다.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臺) 옆에는 이름모를 고혼(孤魂)이 잠들어 계신다. 이 높은 곳 까지 옮겨 모신 후손들의 정성이야 하늘에 닿을 것이 지만, 누운 자리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슴니다.
주위에는 험한 바위들이 많고, 풍해(風害)도 심하게 받겠으며, 수맥 또한 있어 보인다.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이 너무 멀고 허(虛)하며, 전순(前脣)도 없으며 경사가 급해서 좋을 것이 없는데... 어찌 이 곳에 모셨는고!
山川은 푸르고 아름다운데 이 내 마음을 놓을 곳이 없구나
영겁(永劫)의 세월동안 침묵하는 그대 모습을 닮고 싶어라!
지나 온 길에 ‘상여바위’는 식별(識別)치 못했으며, 오래전(1996년)에 본 ‘오성대’의 기이(奇異)한 바위도 어느 곳에 있는지 볼 수 없으니 아쉬운 마음이 큼니다. 일정상 더는 머물지 못하고 연석산으로 떠남니다.
가는 길 중간 중간 기이한 바위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능선님과 김광남님에게 사진촬영도 해드리고 ‘만항재’를 지나 1시간여 만에 연석산(925m) 정상에 도착하니, 후미(後尾)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10여 분 이상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남산의 꼬리표를 바닥에 표시해 놓고 주차장으로 하산합니다.
이 곳 연석산(硯石山.925m)은 금남정맥(錦南正脈)의 능선(稜線)상에 있으며, 운장산 일대에서 비교적 낮은 山 이지만 계곡이 깊고 물이 맑아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이 몰려드는 곳이다.
하산길은 돌 너덜이 많아 조심 조심 진행할 것을 전달하고, ‘마당바위’를 지나 20여 분을 내려오니 후미에 최대장님이 휴대전화로 연락 해 오신다. 몇 번을 서로간에 연락 해 보지만 통신이 계속 끊어진다.
내려 갈수록 계곡은 깊어 개울물 소리는 더욱 요란하고, 숲은 울창해서 요새(要塞) 중에 요새로다! 안내문에 아름다운 전설이 있어 잠시 옮겨 봅니다. 연석계곡(硯石溪谷)의 폭포 아래는 “베틀바위”라 불리워지는 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에는 작은 소(沼)가 있어 각시가 베를 짜면서 선녀(仙女) 놀음을 하였다 하여 “각시 소(沼)”라 한다.
또 계곡 중간에는 옛날 “도이리”라는 암자터가 있으며, 연동리 남쪽 시평(詩坪)마을은 원래 시평(嘶坪)이라 표기(表記) 되었던 곳으로, 유명한 문장가와 명필가들이 모여 시문(詩文)을 논(論)하던 곳이라 하며, 오늘날에도 문인과 교육자가 많이 있다고 한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30여 분을 더 내려오니, “암자터”로 짐작되는 곳이 보이는데 터는 작아도 상당한 길지(吉地)다. 그럭 저럭 주차장에 도착하니 선발대로 내려오신 코오롱산악 회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는 지근(至近)한 거리에 ‘연석사(硯石寺)’를 잠시 답사 합니다.
연석사 대웅전(大雄殿)은 정면3칸 측면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으로 근래에 지어 고색(古色)어린 멋은 없으며, 도량(道場) 내에는 요사채와 더불어 전각(殿閣)이 단촐하다. 그 왼편으로는 작은 불단(佛壇)위에 “동자보살님”을 모셔 놓았으며, 뒤로는 두개의 석등(石燈)이 세워져 있다.
법당에 들어 간단한 예(禮)를 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금성(金星) 모양으로 수려하고, 백호(白虎)는 웅장하나 멀리 지나있고, 청룡(靑龍)은 지근한 거리에서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하고 있어 그만 그만합니다.
그 아래쪽에는 개울가에 기도처(祈禱處) 비슷한 건물이 한 채 있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 문틈으로 살짝 엿보니, 마당에는 3층석탑(三層石塔)이 한기 모셔져 있으며, 대문에는 태극마크와 춘첩(春帖)이 붙어있다.
용(龍), 호(虎)라는 글자와 “춘광광도노인가(春光光到老人家) 일진고명만왕도(一振高名滿王都)”라는 글귀가 붙어있다.(봄날에 밝고 밝은빛이 늙은이 집에 비추어) (높은 이름 한번 떨치니 왕도에 가득하도다!) 비록 주인을 친견(親見)하지는 못했지만 호방한 대장부를 뵙는 것 같아 가슴이 후련합니다!
단기 4346년(2013년) 4월28일
진안(鎭安) 운장산(雲長山.1126m)을 가다.
첫댓글 금번 운장산 산행에 참석하신 모든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김해진님 사진자료와 벽산님
사진자료도 활용하였씀니다. 이점 감사드리며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이하여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람니다.
가파른 너덜길을 조심스럽게 오르고 트여서 마음이 펑 뚤리고
전망이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운장대에서 추억을 한아름 담아 왔지요
항상 회장님 수고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감니다
황고문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지난세월 남산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셨는데,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임원으로 봉사하셨던 분들의 노력은 물론이요, 또 모든 회원님들의 정성으로 오늘날의 남산이 있다고 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라며, 건전한 산악회를 만들어서 후배님들에게 물려드렸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회장님 참으로 부지런 하십니다.
남도여행과 운장산 산행 많은 분량의 여행및 산행후기는 먼훗날
남산의 소중하고 귀한 자료로 남을것 같습니다.
긴 장문쓰시느라 많은 수고하셨고 산행후기를 다시볼수있게끔 해주셔서 깊은 감사의마음을 전합니다
벽송님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남산의 큰 힘이 되고 있슴니다. 게다가 운장산 사진자료까지 활용할 수 있어
감사드리며, 부족한 글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슴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귀 가정에 행운을 빌겠슴니다.
고회장님 산행후기 너무나 생생하여 산행하지 않아도
운장산을 다녀 온듯합니다.
회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같이 산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 고회장님 존경합니다.~^&^
이 고문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아직은 부족한점이 많슴니다. 고문님께서 늘 사랑과 격려를 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졸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았슴니다. 앞으로 많은 협조와 질정이 계시기를
바라오며, 내내 건강하시고 이 고문님의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빔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