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0일 태평양은 국내 제약사의 해외 라이센싱 계약 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수출을 통해 독일의 글로벌 제약사 슈바르쯔와 차세대 진통제 PAC20030의 공동 연구 및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하는 쾌거를 거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성과는 태평양의 신약개발 의지와 꾸준한 투자, 그리고 연구 영역간 교류를 통한 아이디어 창출과 6년여에 걸친 끈질긴 연구활동을 이어 온 약대 교수진의 노력이 결합되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번 호에는 바로 이들 PAC20030를 탄생시킨 주인공,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서영거 교수팀을 만나봤다.
'바닐로이드수용체 길항제 개발 과제팀'. 이것이 PAC20030을 개발한 연구팀의 공식적인 명칭이다.
서울대 약대 오우택 교수가 통증발현 창의연구단 지정 연구를 통해 캡사이신 채널을 세계 최초로 입증하면서 캡사이신과 동일한 작용을 하는 내인성 물질이 있을 것이며 120-(S)-HPETE라는 물질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하면서 시작됐다.
오우택 교수의 이 같은 천연물 분야 연구 결과를 합성분야 연구자인 서영거 교수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바닐로이드 수용체에 대한 길항작용을 하는 형태의 진통제를 개발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것.
두 교수의 이 같은 아이디어를 듣게 된 신의약품개발연구센터(ERC)의 당시 소장이던 김낙두 교수가 태평양의 이유영 사장(당시 태평양 연구소장)에게 소개하게 됐고, 이상섭 교수(신의약품개발연구센터 소장)의 지원사격까지 더해져 1998년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서영거 교수가 팀장이 돼 합성분야에 김희두 교수(숙명여대 약대)·박형근 교수(서울대 약대)·이지우 교수(서울대 약대), 평가분야에 오우택 교수(서울대 약대)·박영호 박사(태평양 연구팀 팀장)·이상섭 명예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이 결성됐고 추후 태평양의 주영협 박사가 합성분야에 합류하는 한편 이지우 교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도 탈락했다.
천연물로부터 발견된 물질과 내인성 화학물질에 대한 아이디어가 만나 새로운 신약후보물질의 합성이라는 획기적인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연구팀은 우선 캡사이신의 작용이 통증을 전달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지만 지속적인 투여시 체온 저하 등 극심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 내인성 물질인 120-(S)-HPETE의 구조를 변경시킨 합성물질을 통해 효능제가 수용체 채널에 결합하는 것을 막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으로 연구의 방향을 정했다.
'PAC20030 신약물질 합성'
화합과 배려, 끈기가 낳은 기적
이들의 연구는 우선 캡사이신과 120-(S)-HPETE이 체내 수용체에 동일한 기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서 시작됐고 당시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민경은 박사가 120-(S)-HPETE의 합성에 성공, 두 물질이 3차원적으로 볼 때 다른 물질이지만 각각의 약리작용단이 동일한 위치에 붙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120-(S)-HPETE의 A 파트는 서영거 교수, B 파트는 김희두 교수, C파트는 박형근 교수가 각각 나누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매달 1회씩 미팅을 통해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전체적인 연구 방향을 수정하는 등 신물질 합성과 평가의 지루한 싸움이 이어졌다.
동시에 태평양 주영협 박사는 세 교수가 합성한 물질들을 통해 또 다른 분야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분자설계 및 합성과정과 함께 개발 이후 대량생산과 물질특허를 위한 종합과정을, 오우택 교수와 박영호 교수는 길항작용과 동물실험 등 각 합성물질을 평가하는 과정을 진행했다.
특히나 서영거 교수는 이 과정에서 각 파트를 담당한 교수들의 원활한 협력관계가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의 특성상 자신의 연구 방향에 대해 굽히지 않는 경향들이 무척 강한 점이 공동 연구의 어려운 점이며, 저도 팀장으로서 회사와 각 연구자들 간의 조율에 무척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팀에는 각 연구자들이 서로의 조언과 연구결과에 대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방향을 수정하고 협력해 왔고, 회사 또한 연구자들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주어 큰 잡음 없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각 파트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출해 내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서로에게 자극제와 촉매제 역할을 해 연구의 진행을 더욱 가속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었죠."
이 과정에서 총 1,500여개의 물질이 합성됐으며, 2002년 PAC20030은 특허 출원과정에서 이중 효과가 뛰어나면서도 가장 안정적인 후보 물질로 선택된 것이다.
특히 라이센싱을 위해서는 물질 개발 이후 효율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함께 제공해야 하는데,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4단계에 합성할 수 있는 높은 효율성을 갖고 있어 생산과정에서의 경쟁력도 확보하고 있다.
연구팀은 지난 6년 동안 매달 한자리에 모이는 오랜 '연애'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회식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서영거 교수도 "태평양이 연구비는 지원해 주는데 술 인심은 너무 박한 거 아니냐고 서로 농담을 한다"며 "이제 라이센싱도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으니 술에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세 교수와 거하게 한잔해야 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또한 6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연구 과제에 묶여 논문 제출에도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연구활동에 임해 준 연구실의 여러 학생들이 없었다면 이 같은 성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석박사 과정에서 연구에 동참해 준 학생들의 공로를 높이 샀다.
연구팀은 신물질 개발 이후 신약후보물질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거액의 해외 라이센싱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정작 신약개발 단계까지는 현재 끝나가는 전임상 단계에 이어 임상에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10년은 더 연구에 매달리며 부작용 발생 시 이를 대체할 후보물질(backup compound)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더욱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 PAC20030 이란? -
PAC20030은 VR1(Vavilloid Receptor 1)이라는 유해자극에 대한 통합적 신경수용체에 작용하는 차세대 진통제 신약후보물질이다.
1998년 태평양이 서울대 약대 ERC와 공동연구를 통해 Proof Concept 및 1차 선도물질 도출에 성공한 이후 1999년 효능 개량된 2차 선도물질이 개발되었고, 2000년 PAC-20030을 도출해 특허 4건을 출원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2001년 개발 가능한 다각도 평가(PCT 국제특허 3건 출원)를 거쳐 2002년부터 해외 전임상 시험에 돌입(복지부 신약제품화과제 선정), 2003년 전임상 및 Biz Development에 본격적으로 나서 2004년 2월20일 독일의 글로벌 제약사인 슈바르쯔(Shhwarz Pharma)사와 공동연구 및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해외 라이센싱 계약 사상 최대규모로, 한화 약 48억원 상당의 계약금을 받고 신약판매 허가 시까지 최대 1,610억원의 기술료를 추가로 받게 될 뿐 아니라 신약 판매 시에는 별도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
바닐로이드 수용체 길항제는 최근 유망한 신경계 신약개발 Target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시장규모가 큰 다양한 임상 적응증에의 응용가능성이 기대되어 최근 Global Big Pharma를 중심으로 개발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분야다.
김정준 기자
입력 2004.03.10 03:45 PM, 수정 2004.03.10 03:4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