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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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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스크랩 2012년 성균관 대성전 춘기석전(春期釋奠) 봉행(奉行)식 에서 - (1/4)
이장희 추천 0 조회 21 14.05.10 12: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년 성균관 대성전 춘기석전(春期釋奠) 봉행(奉行)식 에서 - (1/4)

(2012/05/11 현재)


2012년5월11일(금)오전10시 성균관(成均館) 대성전(大成殿)에서 거행된 공기(孔紀) 2563년
춘기(春期) 석전(釋奠) 봉행(奉行)식 전경 입니다. 석전(釋奠) 의례 순서는 국민의례에 이어
석전 봉행으로 전폐례(奠幣禮),초헌례(初獻禮),아헌례(亞獻禮),종헌례(終獻禮),분헌례(分獻禮),
헌다례(獻茶禮),음복례(飮福禮),망료례(望燎禮)를 마치고 일반분향 순서로 진행 되었습니다. 


 

 

 

 

 

 

 

 

 

 

 

 

 

 

 

 

 

 

 

 

 

 

 

 

 

 

 

 

 

 

 

 

 

 

 

 

 

 

 

 

 

 

 

 

 

 

 

 

 

 

 


■석전대제 (釋奠大祭)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지정(등록)일 1986.11.01
-소 재 지 서울 서울전역   
-관리자(관리단체) 석전대제보존회

 

석전대제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으로, 문묘대제 또는 석전제(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이라고도 한다. 유교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유교 교육을 위한 국립대학)을 설립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고대 중국의 제사 관례에 따라 의식을 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전대제는 매년 2월과 8월 정해 놓은 날에 공자를 비롯한 옛 성인들의 학덕을 추모하며 지낸다. 절차는 영신례, 전폐례, 초헌례, 공악,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의 순서로 진행된다. 연주 음악은 문묘제례악이라 하는데, 기악과 성악, 춤을 총칭하는 대성아악으로, 여덟 개의 아악기만 사용하고, 등가와 헌가 두 개의 악단이 절차에 따라 번갈아 연주한다. 현재는 조선 전기 세종(재위 1418~1450)때 영신곡, 황종궁 이하 12곡과 송신악 중에서 송신협종궁, 송신임종궁 등 15궁을 채택하여 전승하고 있다.

 

석전대제는 국가적인 행사로서 정숙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데,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곁들여지는 종합예술적 성격을 때고 있다.

 

석전대제(釋奠大祭)란 공자를 모신 사당(祠堂)인 문묘(文廟)에서 지내는 큰 제사를 말한다. 석전이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원래는 산천, 묘사(廟祀), 선성(先聖: 공자. 739년에 문선왕으로 추존됨) 등 여러 제향에서 이 석전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으나 다른 제사는 모두 사라지고 오직 문묘의 석전만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은 문묘제향을 뜻하는 것으로 굳어졌다.

 

현재 석전대제는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에서 공자를 중심으로 공자의 제자들과 우리나라의 유학자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등 명현 16위의 위패를 모셔놓고 봄, 가을 매년 두 차례 즉,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 첫째 丁日)에 거행하고 있으며, 지방에서는 향교(鄕校)에서 주관한다.

 

이 제향의 절차는 영신례(迎神禮), 전폐례(奠幣禮), 초헌례(初獻禮), 공악(空樂),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徹변豆), 송신례(送神禮), 망료(望僚)의 순서로 진행된다.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문묘제례악은 세종(재위 1418∼1450) 때 박연(朴堧)이 원나라의 『대성악보 大成樂譜 』에 의거하여 만든 것인데 십이율(十二律)을 각기 궁(宮)으로 한 12곡과 송신황종궁, 송신협종궁, 송신임종궁을 합하여 모두 15곡이다. 박연이 만든 이 음악의 악보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하며, 지금도 『악학궤범』에 있는 그대로 연주한다.

 

문묘제례악에는 아악기만 사용하여 팔음(八音: 악기를 제작하는 여덟 가지 재료)을 갖추어야 하고, 등가(登架)와 헌가(軒架) 두 개의 악단이 절차에 따라 번갈아 연주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댓돌 위[堂上]에 배열되는 등가에는 편종, 편경, 특종, 특경, 절고, 소, 훈, 지, 약, 적, 금, 슬, 박, 축, 어, 노래 등이, 그리고 댓돌 아래[堂下]에 위치하는 헌가에는 편종, 편경, 노고, 노도, 진고, 부, 훈, 지, 약, 적 박, 축, 어, 노래 등이 편성되는데 등가에서는 음려(陰呂)를 쓰고 헌가에서는 양율(陽律)을 쓴다.

문묘제례악은 그 음넓이가 십이율(十二律) 4청성(淸聲)에 불과하며, 7음음계로 이루어져 있고 주음(主音)으로 시작하여 주음으로 끝난다. 선율은 장식음이 없고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여 화평정대(和平正大)한 맛을 자아낸다. 제례악에는 악기연주(樂), 노래(歌), 춤(舞)이 포함되는데 노래는 악장(樂章)이라 하고 춤은 일무(佾舞)라 한다. 문묘제례에서는 모두 8구 32자의 한문가사로 된 악장을 부르며 팔일무(八佾舞)라 하여 8열 8행 64명이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를 춘다. 


▶석전 [釋奠] - 브리태니커


산천이나 공자를 모신 문묘(文廟) 등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 석전제, 석채(釋菜), 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정제, 상정제라고 한 것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첫 丁日)에 행해졌기 때문이다. 석전은 〈예기 禮記〉의 왕제(王制) 문왕세자편(文王世子篇)에 나오는 말로 석(釋)은 '놓다'[舍也], '두다'[置也]의 뜻이고 전(奠)은 '그치다'[停也]의 뜻으로 처음에는 소박하게 채소만 놓고 제사를 지내다가, 뒤에 고기와 과일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했다. 중국에서는 이미 주대(周代)부터 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 등 여러 성인들에게 석전을 올렸으며,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숭상하면서 공자(孔子)를 제사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후한의 명제(明帝)는 공자의 옛집을 찾아가 공자와 그의 72제자에게 제사를 올리기도 했으며, 당(唐)나라 이후 공자를 선성(先聖), 안회(顔回)를 선사(先師)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739년에는 공자에게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그뒤 명(明)나라 때 태학(太學)의 문묘를 대성전(大成殿)이라 하여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석전이 실시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고구려·백제·신라 모두에 교육기관이나 유학을 교육한 관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석전을 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경우 717년(성덕왕 16) 당나라에서 공자와 10철(十哲) 72제자의 화상을 가져와 국학(國學)에 모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국학에서 석전을 지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국자감(國子監:成均館)에 문묘를 두어 제사를 지냈는데, 왕이 직접 잔을 올렸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건국이념이 유교인 만큼 처음부터 성균관에 문묘를 설치하고 중국의 현인(賢人)과 우리나라의 18현인을 합친 112현인의 위패를 모신 뒤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지방에서는 향교(鄕校)에서 석전을 주관했다. 1949년 전국유림대회의 결정으로 112현인 가운데 우리나라의 18현인만 대성전에 모시고, 중국 94현인의 위패는 묻었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고 기·예능보유자에 강정희(姜正熙, 1996 해제)·권오흥(權五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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