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메시지 전송 오류사건
김지영(kjyoung123@hanmail.net)
출근하자마자 유 선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십년 전에 수필문학 활동을 같이 했던 이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방송국에서 케이팝 가수들이 총 출현하는 한국방송 가수대상 시상식에 그녀와 나를 초청했으니 꼭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전언에 의하면 티켓비용이 22만원이고, 이 선생님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며, 우리를 특별히 생각해서 초청을 했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고 한다. 나는 수업을 앞당겨 서둘러 하고는 그 시간에 맞춰서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를 하는 63빌딩에 유 선생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유명가수들이 총출연한다는 말에 맹 선생이나 나는 무척 들뜬 기분으로 스마트폰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행사장 분위기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수수한 옷차림을 한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유 선생이 핸드폰으로 문자를 전송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잠시 후 사색이 되어서는 큰 일 났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연신 전화기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
“젠장, 그건 제 친구 애칭이에요. 친구를 젠장이라고 부른 거예요. 죄송해요, 정말 죄송......‘
통화가 끝난 뒤 그녀는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녀의 휴대폰을 보는 순간 아찔했다. 친구한테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우리를 초대한 이 선생님한테 보낸 것이다.
‘이게 케이팝이냐, 젠장!’
우리는 어쩔 줄 모르며 에스컬레이터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선생님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 오셨다. 연세가 여든이 가깝지만 190센티에 몸무게에 백 킬로가 넘는 거구의 위풍당당한 기세는 여전하셨다. 우리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선생님께 머리를 조아렸는데 선생님은 유 선생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개의치 않은 듯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셨다. 그리고는 우리를 만날 때면 늘 그랬듯이, 헛기침을 크게 한 번 하시고는 당신이 ‘16살에 S대 법학과에 입학을 해서 학생회장을 했고, 22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군수를 지냈다는 화려한 이력을 장엄하게 읊으셨다. 사실 유 선생이나 나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말씀하시는 그 이력을 이십년 전부터 듣다보니 이제는 훤히 외울 정도가 되었고, 언제쯤이면 끝날 것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유타대학과 독일 뮌헨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력까지 덧붙여져서 이십분이나 지나서야 끝이 났다. 우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대통령치사라도 듣는 것처럼 말씀이 끝날 때까지 미동조차 않았다. 그렇게 긴 이력의 말씀이 끝이 나자 다시 헛기침을 하시고는
‘내가 말이여 그 티켓을 얼마나 힘들게 구했는지 알기나 햐, 티켓 값이 22만원이나 되고, 케이팝 걸 그룹들이 총출연한단 말이여! 맹 선생이나 김 선생이니까 내가 티켓을 구해서 준거여’
우리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한 후에야 겨우 숨을 내 쉬었다. 선생님은 오늘 행사의 귀빈이신지라 행사관계자들하고 인사를 하고 있는 틈에 가수들이 하나 둘 오는데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 와중에 마이클 잭슨으로 분장한 가수가 등장했다. 복장은 물론이고 특이한 턱선이나 뾰족한 코까지 마이클 잭슨이 살아온 듯 했다. 마이클 잭슨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막 내려서자 유 선생이 그의 곁으로 바짝 붙어서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마이클 잭슨은 부드러운 율동을 곁들이며 연신 기묘한 포즈를 취했다. 유 선생은 그걸 따라 한답시고 킬킬 거리며 엉거주춤 괴이한 포즈를 취했고, 나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 주위로 몰려들자 군중에 밀려 난, 유 선생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는 사진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보내 달라고 어찌나 보채든지, 나는 수 십장이나 되는 유 선생의 사진을 단숨에 카톡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사진이 모두 우리 식구들이 공유하는 카톡방으로 전송이 된 것이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맥이 빠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행사장 바로 옆에 사는 효숙이가 우리를 만나러 와서는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끌었다는데, 난 효숙이가 왔는지조차도 모르고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게 누구여?’
나는 한참을 궁리 끝에
‘제자여, 박 칠순이라고 어쩌다가 여기서 만났구먼!’
그러자
‘뭔 제자가 이렇게 늙었댜?‘
이거 큰일이 났구나 싶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겠는데 유 선생과 효숙이가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내 손을 이끌었고, 이 선생님은 시상식이 곧 시작되니 자리로 빨리 돌아오라고 연신 전화를 하셨다.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나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밥이고 공연이고 다 팽개치고 끌려가다시피 감자탕 집으로 가는데 감자탕 집 앞에 어떤 키 큰 사내가 나를 가로 막았다. 비켜가려다 짐짓 올려다보니 근처에 사는 친구 도윤이었다. 유 선생이 어느새 도윤이에게도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도윤이의 손에 이끌려 감자탕 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까지 한 대 얻어서 뻐끔거렸다. 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낄낄댔지만 나는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먼저 일어나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데 바람까지 씽씽 불고 발까지 시러웠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내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날씨가 왜 이리 춥댜’ 하는데도 대꾸가 없기에 옷을 갈아입는 둥 마는 둥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아니 여고에 부임한지 이제 십년 겨우 지났는데 뭐 그렇게 늙은 제자가 다 있어?’
드디어 올게 왔구나. 난 정신을 가다듬고는
“응, 1학년 담임을 할 때 포항서 전학 온 아이여,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게 살았는디,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결혼을 했댜, 결혼하고 나서도 고생을 엄청나게 한 모양이여!”
고생을 했다는 말에 아내의 표정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 했다. 나는 그제야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해서는 이 선생님한테 어제 좋은 공연에 초대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하다는 장문의 사과문을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데 도윤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니가 그렇게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몰라어야, 그래도 어쩌것냐, 삶을 받아들여라. 팔자가 그런 것을, 지영아, 우리가 어젯밤에 너한테 맞는 니 호를 하나 지었어야, 모지리라구, 인자들 너를 그렇게 부를 것이여, 너도 맘에 들지? 사진 좀 보냈다고 혼이 빠져가지고 사색이 되어버린 모지리 너 때문에 우리가 웃니라고 죽는 줄 알았어야.’
며칠째 문자를 보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가지나 심장이 안 좋은데 이렇게 벌렁거리니 오래 살긴 애시당초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