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선물
이 향 숙
비가 쏟아진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고 있다.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한 끼 정도는 직접 해 먹을 요량으로 쌀, 라면, 양념, 여행용 버너도 준비했다. 작은 아이는 수학경시대회를 포기하고 학원도 하루 쉬기로 했다. 결혼 21주년 여행을 2박3일간 떠나기 위해서다. 큰 아들이 다니는 대전의 학교로 출발했다. 날씨가 오락가락 하지만 기분은 산뜻했다. 수업이 끝난 큰 아들을 태우고 서해안의 대천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직원들이 휴가에서 돌아오고 남편이 제주행 비행기표를 알아보았지만 우리처럼 늦은 휴가를 즐기는 이들로 이미 매진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서운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삶터의 일로 늘 바빴고 방학 동안은 작은 아이의 학원과 큰 아이의 합숙이 길어져서 여행은 언감생심 이었다.
어둠속의 대천해수욕장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숙소를 알아 보았다. 이미 한풀 꺾인 숙박업소는 저렴한 가격에 최상의 써비스를 자랑하며 허리를 굽혔다. 그중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짐을 풀었다. 헌데 에어컨이 고장이나 있었고 주인장은 옆방으로 안내하면서 두 방을 모두 쓰도록 배려해 주었다. 물론 숙박비는 객실 하나 값이었다. 대충 짐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 가까운 음식점은 시내의 고급 음식점보다 훨씬 비싼 값이었지만 허름했다. 아이들에게 의사를 묻자 다른 식당에 가잔다. 그렇게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해서 걷다보니 광장이란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힐끔거리던 중년의 남자가 숙소는 정했는지 식사는 했는지 묻더니 저렴하고 푸짐한 식당을 소개 하겠다고 한다. 속는 셈치고 그러마 하자 쏜살같이 승용차 한 대가 온다. 뒷좌석에는 애호박이 흩어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밀치고 앉았다. 휙휙 거리를 가로질러 술 취해 질척이는 사람 ,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을 피해 작은 식당에 다 달았다. 소개해준 사람의 말처럼 깔끔하면서도 맛있고 푸짐하면서도 저렴했다. 아이들에게 절약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기회가 되었다. 주인장은 다시 오리라는 기약도 없는 뜨내기손님인 우리에게 숙소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앞장섰지만 한사코 만류하고 우리 가족은 맨발로 보슬비를 즐겼다.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은 어머니의 젓 가슴에 손을 넣던 유년기처럼 느껴졌다. 파도가 밀려가고 폭죽이 하늘의 별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모래사장의 유희는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졌다.
숙소에 들어와 이제 좀 쉬어볼까 하던 참에 큰아이가 대금을 들고 나간다. 걱정하는 우리를 향해 옆방에서 연습 좀 하겠단다. 그러더니 한 시간 가량 갈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연스럽게 여름밤의 배경 음악이 되었다.
어디선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베란다 한쪽에 마련된 간이 주방에서 남편이 라면을 끓이고 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아침은 비록 라면이지만 최고의 밥상이었다. 상을 물리고 작은 아이와 산책길에 나섰다. 카카오 스토리에 여행하는 모습을 올렸더니 고향과 가까워선지 친구들에게서 보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남편이 돌아가는 길에 커피라도 마셔보란다. 친구들과 약속을 하고 대천 항에 들렀다. 바다를 따라 수산시장 쪽으로 걸었다. 맑게 개인 하늘의 햇살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걸을 때마다 스치는 작은 바람과 갯내음 마저도 , 세 남자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함께 그려 넣고 싶었다. 시장은 제철을 만난 꽃게와 대하로 활기가 넘쳤다. 그리고 끝자락엔 그 시간까지 개시를 못했다는 반 건조된 생선을 파는 노파가 있었다. 남편은 그 말이 못내 걸리는지 우럭 세 마리를 샀다. 근처 식당에서 회 한 접시를 먹고 다시 길을 나서는 우리를 알아보고 노파가 뒤뚱거리며 얼음 한 덩어리를 우럭 담은 봉투에 넣어 주신다.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커피숍에 들어섰다. 아래층엔 젊은 친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층 계단을 오르면서 목도리도마뱀처럼 목을 쭈욱 빼고 고개를 번쩍 들어 두리번거렸다. 거기 소녀 적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친구들이 있었다. 반가움에 주의의 시선은 생각 할 수 없었다. 3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깔깔거리며 우리들은 시골 학교의 교정을 추억했다.
큰 아이가 방학 내내 집을 떠나 있었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복을 입은 채 따라 온 여행이라선지 피곤해 하며 집이 그립다고 한다. 하루 더 있기로 한 일정을 취소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혼기념일선물로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워하던 친구들을 만났고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했으니 참으로 행복한 여름날의 선물이었다.
첫댓글 작은것에서 행복을 찾으시는 님은 그래서 행복이 넘치지요.
남의 손에 쥔 떡을 부러워 하느니 내 손에 부스러기에 감사하며 살지요. 마음을 비우면 그렇게 되더이다.
또 가고 싶은 가족여행~~~
나두~~참으로 행복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