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펜던스 데이>의 한 장면. 외계인이 세계 주요 도시 상공에 출몰한다. 뉴욕의 어느 고층 빌딩 옥상 위에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이상한 옷을 입고… 한마디로 시집, 장가 가는 사람들마냥 설렌 모습으로 모여 있다. 임박한 외계인의 등장에 전세계가 긴장하는 시국에 무슨 난리냐고? 이들은 외계인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늘을 향해 외친다. “우리를 데려가줘요!” “환영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외계인의 영접을 받아 낯선 별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느냐고? 글쎄, 인간의 몸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게 새로 개발된 외계인의 텔레포트 방법이 아니라면 저승에 다들 가 있는 것 같다만. 요점은 이것이다. 세상에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아주 적지 않다는 것.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들에서 그들의 존재는 대개 희화화되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종교까지 있는 것을 보면(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다) 외계인이란 아이들이나 믿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두편의 외계인 영화 사이의 간극이다. <E.T.>가 그려 보인 눈물나는 우정의 대상이었던 외계인과 <우주전쟁>에서 지구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외계인은 어떻게 다를까?
혹시 당신도 은밀하게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지 않은가? 으응? 10여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TV시리즈 <X파일>의 주인공 멀더를 생각해보라. 그는 외계인을 믿었지만 미치광이라고 기억되는 대신 외계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상처를 지닌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우리의 호기심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외계인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래서 우리를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은 외계인과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외계인과 우정을 나누고 싶은가? 외계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가? 아니면, 다 필요없으니 외계인을 죽이고 싶은가? 자, 원하는 항목을 골라 읽어보자. 나중에 외계인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써먹을 수 있게.
내 친구는 외계인
외계인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은밀한 소망을 가진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일명 “외계인을 친구로 만드는 비법!” 그동안 친구에게 무시당할까봐, 애인에게 차일까봐, 부모님께 의절당할까봐 외계인을 친구 삼고 싶다는 말을 고백하지 못하신 분들은 열심히 들어주시라(도움이 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기자도 외계인을 대면한 적은 없는 터라).
<E.T.>
<E.T.>를 벤치마킹할 생각이라면 무엇보다 집 위치가 중요하다. 홀로 남은 외계인이 우연히 당신 헛간으로 피신오게 하기 위해 추천하는 장소는 한적한 시골이나 교외 지역. <E.T.>에서는 어느 한적한 마을의 숲속에 우주선이 나타난다. 우주선에서 내린 외계인들은 지구의 각종 표본들을 채취하던 중 인간들이 나타나자 서둘러 지구를 떠나는데, 그 와중에 뒤처진 한 외계인만 홀로 남게 된다. 방황하던 외계인은 한 가정 집에 숨어들고, 그 집 꼬마 엘리어트와 조우하게 된다. 정부 기관에 외계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게 각별히 조심할 것. 운이 좋다면 당신은 외계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있다. <E.T>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호적인 외계인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일반 지구인과 친구가 되는 법과 거의 유사하다는 점이다. 마음을 열 것. 마음만 연다면 세상 그 어떤 존재인들 친구가 될 수 없겠는가.
<맨 인 블랙>
다른 이의 병을 낫게 하고 싶은 사람은 의사가 되고, 속세에 찌들지 않고 종교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은 종교인이 되면 된다. 그런 맥락에서 외계인을 자주 접하고 심지어 친구가 되어보고 싶은 사람은 외계인을 자주 접하는 직업을 택해보면 어떨까. MIB(맨 인 블랙) 임무는 지구상의 외계인 거주자를 지도편달(?)하며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어떻게 MIB가 될 수 있느냐고? <맨 인 블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세상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저질이라며 무시하는 타블로이드지밖에 없다(한국에는 이마저도 제대로 선정적이지 못한 게 유감이지만). 요원 모집은 비밀리에 이루어지지만 MIB들의 정보지인 타블로이드지를 유심히 살피며 업계 동정을 주시하면 언젠가 검은 슈트의 사나이들이 당신에게 접근할 것이다. MIB가 된 뒤 당신의 부모나 옆집 꽃미남이 실은 날개 달린 거대한 벌레 같이 생긴 외계인임을 깨닫고 절망한다면, MIB 동료에게 기억을 지우는 빔을 쐬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나는 외계인과 결혼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외계인과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면 당신은 정말 사회적으로 외톨이일 가능성이 높다. 혹시 당신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괴로움에 외계인을 사귀어보고자 한다면 일단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스승님에게 진지하게 상담을 먼저 받아볼 일이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원하는 게 “색다른 존재”와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면 다음의 필살기를 적용해보자.
<애스트로넛>
조니 뎁과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한 <애스트로넛>은 극한의 심리극이자 공포영화다. <애스트로넛>에서 질리안은 외계인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편이 외계인에 씌인 상태. 다시 말해 자발적이지 않은 이유로 외계인과 살게 되는 것이다. 우주비행사 스펜서는 우주에서 동료와 함께 인공위성을 수리하던 중 지구와 송신이 두절되고 2분간 완벽하게 암흑의 순간을 보낸 뒤 지구로 귀환한다. 스펜서의 아내 질리안은 남편의 귀환 직후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질리안은 임신한 쌍둥이가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질리안이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얼굴과 몸은 조니 뎁인데…”라며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부디 우주조종사와 결혼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그(혹은 그녀)에게 위험한 지역으로 탐사를 나갈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하지만 당신의 소원이 벽에 x칠할 때까지 사는 거라면, 그들이 소기의 목적(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을 낳는다는)을 달성한 뒤 당신을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피임에 신경쓰는 게 좋을 것이다.
<새 엄마는 외계인>
킴 베이싱어 같은 외계인이라면(여자 입장으로 상상하자면 브래드 피트 같은 외계인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어서 옵쇼, 감사합니다”하며 살림을 차리고 볼 일이다. 특히 <새 엄마는 외계인>에 나오는 외로운 홀아비 스티브에게 킴 베이싱어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 별볼일없는 홀아비가 쭉쭉빵빵 금발 미녀 아내를 두게 된 사연은 이렇다. 어린 딸과 사는 과학자 스티브는 호기심으로 우주에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데 지구에서 90억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이 광선을 수신한 외계인 셀레스트는 조사차 지구를 찾는다. 셀레스트는 지구의 관습을 몰라 실수 연발이지만, 스티브는 이 아름다운 외계인에게 한눈에 반한다. 셀레스트는 결혼, 사랑 등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체험하기 위해 스티브와 결혼한다. 잊지 말아야 할 중대한 사실 하나. 셀레스트의 경우, 식사는 배터리로 한다. 밥보다 배터리가 더 비싸다는 점을 감안, 절전 대책을 세워보자. 외로움에 밤잠 설치며 하늘에서 미남, 미녀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 간절함을 담아 우주로 레이저를 발사해보자. 혹시 아는가. 안젤리나 졸리를 똑 닮은 외계인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체험해보고 싶어”라며 당신에게 진한 시선을 던질지.
외계인을 죽이는 두세 가지 방법
외계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사실 공포다. 외계인은 그야말로 미확인 비행물체를 타고 나타난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게다가 인종문제에서 보아 익히 알고 있듯, 인간은 생긴 게 조금만 달라도 요란을 떨며 학대하고 죽이지 않던가? 우왕좌왕하다가 외계인에게 잡아먹히거나 몸을 점령당하거나 외계 종족 번식의 도구로 이용되기 전에 외계인을 그냥 죽여 없애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솔루션이 여기 있다.
<화성침공>
어느 날 화성인이 지구에 출현한다. 세계 평화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 대통령은 이들을 맞을 채비를 하지만, 평화를 원한다던 화성인들은 환영 인파를 무참히 살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요 인사의 살육. 미군 장성부터 지구 수비대원들, 화성인이 우호적이라고 주장했던 대통령 과학 자문위원,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제 지구는 멸망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구를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설치던 화성인이 맥없이 죽는 것이다. 원인은 바로 주인공 리치의 할머니가 즐겨 듣던 올드팝의 특이한 선율과 파장 때문. 화성인들의 머리가 터지면서 죽는 모습을 본 리치는 전세계 방송사에 같은 노래를 틀도록 한다. 한물간 노래를 들은 외계인이 자폭하는 대목은 팀 버튼식 유머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자, 그런데 어떤 곡을 듣고 외계인이 죽게 될지 무슨 수로 알 수가 있느냐고? <화성침공>을 벤치마킹해서 <가요무대>를 들어놓는 것은 어떨까? 할머니들이 듣는 음악이 특히 효과가 좋은 것 같으니 말이다. 주의할 점,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계인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은 안티 디카프리오 사이트가 퍼뜨린, 디카프리오가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지구를 지켜라!>의 영감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 엉뚱한 시작이었으나 2003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손꼽힌 이 영화는 홀로 외계인의 지구 점령을 걱정하는 청년 병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강원도 한 탄광촌에서 마네킹 만드는 일을 생계수단으로 살아가는 병구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들이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의 음모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병구는 지구인으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는 화학공장 사장 강만식을 납치한다. 사각팬티만 걸친 백윤식의 열연과 장준환 감독의 재치가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병구는 결국 사랑하는 녹색별 지구를 지키지 못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설명에 따르면 외계인을 분석한 병구의 노트는 정확하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재벌 집 비밀금고 번호라든가, 좋아하는 배우의 휴대폰 전화번호 같은 걸 알아내고 싶다면 다음의 방법을 이용해보자. 병구의 치밀한 연구에 따르면 물파스는 외계인의 신경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물파스를 바르는 것만으로 효과가 없을까 우려된다면, 때수건, 일명 ‘이태리 타올’로 외계인의 발등을 피가 날 때까지 문지른 뒤 물파스를 듬뿍 발라준다. 주의할 점,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도 이런 방법을 쓰면 뭐든 불게 되어 있다. 차카게 살자!
영화화된 SF소설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은 올 여름 최고의 블록버스터. SF소설의 거장 H. G. 웰스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웰스의 <우주전쟁>은 최고의 SF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공격적 성향의 화성인들이 지구를 먼저 공격하면서 사람들이 겪는 일을 그린다. 시대 배경이 19세기 말엽이기 때문에 책에서는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도망다니는데, 그래서 요즘 SF영화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지루하거나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1898년에 이런 상상력을 발휘한 웰스에게 경의를. 스필버그-크루즈 콤비가 영화화를 결정한 SF소설은 웰스의 것뿐은 아니다. 2002년 개봉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의 단편을 각색한 것. 필립 K. 딕은 많은 성공적인 SF영화들의 젖줄을 댄 작품들을 쓴 작가다. <블레이드 러너>는 그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낳았고, 같은 문제제기가 <공각기동대>에서 확장된다. <토탈 리콜>과 <페이첵> 역시 필립 K. 딕의 작품들에서 탄생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은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는 압축미 있는 이야기 진행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SF소설이지만, 때로 여러 번 깊이 생각하지 않고는 그 뜻을 따라가기 힘든 작품도 있을 정도.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도서관에서 가장 훔치고 싶은 책’이라는 도발적인 설명과 함께 전 5권이 재출간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국내 개봉을 앞둔 작품으로, 코믹 SF의 진수를 보여준다. 참고로, 책의 서문이 가장 웃기니 놓치지 말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