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쥬코>는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배우들을 위한, 배우들에 의한, 배우들의 Text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인물들은 비주류의 개성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의 향연으로 가득 차 있다.
9명의 배우가 펼쳐내는 앙상블
<로베르토 쥬코>는 약 3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성격이 규정된 20명의 인물 남자들, 여자들, 창녀들, 포주들 등으로 등장하는 주변의 인물들까지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 많은 캐릭터들이 남.녀 주인공을 제외한 7명의 배우가 각 장에서 번갈아 가며 소화한다.
이 익명의 인물들은 때로 닮아 있고, 때로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장면이 진행될 수록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에 또 한 번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총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은 작품의 내용만큼이나 서로 만나거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단절적으로 전개되고 전환된다. 공간과 시간은 생략과 비약을 거듭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 시간과 공간이만나고 충돌하는 사이에 시?청각적인 무대미학이 연출될 것이다. 미니멀하고 초현실적인 공간창조와 함께 빛과 사운드의 조화로움은 대사 고유의 울림을 더욱더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2003년 새롭게 태어난 문제작 <로베르토 쥬코>
작년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성공리에 무대에 올려졌던 <로베르토쥬코>가 의욕적인 연출가를 다시 만나 76극단의 2003년 문제작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로베르토 쥬코>는 현실 속에 잠자고 있는 미치광이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하여 2003년 9월 12일(金) ~ 9월 14일(日) 오후 4시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그 막을 연다. 2002년 <로베르코 쥬코>를 조연출하는 등 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연출가 박정석씨가 맡아 정적이면서도 차가움이 강한 작품의 분위기와 함께 로베르토 쥬코가 가진 카리스마를 연극적으로 맛깔 나게 표현해 낼 것이다.
로베르토 쥬코란 누구인가?
이 극의 주인공인 로베르토 쥬코는 아버지, 어머니, 형사, 어린아이를 살해한 살인자이다. 그는 두 번의 투옥과 두 번의 탈옥을 감행할 만큼 괴기스러운 사나이이며 또한 신화 속의 이카루스이다. 로베르코 쥬코는 태양에도 성기가 있고, 그 성기 안에 바람의 근원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와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다. 표면상으로는 우리와 다른 살인자이다. 그러나 로베르코 쥬코가 우리와 아주별개의 사람일까? 요즘 언론매체를 보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살인과 자살이야기이다. 이렇듯 로베르코 쥬코는 연극에만 존재하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니라 현대인의 고독과 폭력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적 인물인 “Roberto Zucco”를 만들어낸 실제 살인마 “수코”
주인공 로베르토 쥬코의 모델이 된 수코는 14세에 부모를 살해하였고 정신병자로 판명되어 정신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았다. 수코는 정신과 치료를 통해 정상의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사회에 복귀하나 다시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된 후, 비닐 봉지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감방에서 자살하였다. 수코의 자살 방식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방식, 즉 비닐 봉지에 의한 질식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콜테스는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연쇄 살해범을 찾는 수코의 몽타주를 보게 되었고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하철역에는 각기 다른 4장의 수코의 몽타주가 붙어 있었는데, 이 4장의 몽타주는 한 인물이 아닌 각기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른 면모의 수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콜테스는 수코라는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수코는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후 하루만에 탈옥을 시도하며 감옥의 지붕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다 지붕 위에서 떨어지며, 이 장면은 TV에 생중계 되었다. 이를 우연히 시청한 콜테스는 수코라는 살인범에 강한 관심을 표명하며 자신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으로 수코를 채택하게 된다.
철학적 언어 속에 잠겨있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는 <로베르토 쥬코>
살아있는 언어를 살려내는 일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렇다고 희곡을 배우가 말하기 편한 상태로 바꾸는 일을 무턱대고 옹호할 수만은 없다. 이에 이번 작품에서는 원작에 충실한 언어의 묘미를 살려내려는 의미 깊은 도전을 한다. 이 도전으로 인해 우리는 프랑스에 가서 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원작 그대로가 지닌 색다른 공연의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익명 화된 등장인물들의 독백!!
로베르토 쥬코를 제외한 그 외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다만 “쥬코의 어머니, 여자아이, 여자아이의 언니, 늙은 신사, 우아한 부인, 조급한 포주, 겁에 질린 창녀, 우울한 형사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 희곡의 인물들은 ”그냥 있고, 말을 할 뿐“이다. 그래서 이 극에는 인물들의 아주 긴 독백이 자주 나온다.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는 사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있는 우리에게 <로베르토 쥬코>라는 작품은 익명 화된 등장인물들의 독백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의 단절로 인해 드러나는 고독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느껴볼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