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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
헤세의 {데미안}과 융의 종교심리학
정 경 량 (목원대)
I. 들어가는 말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충격과 개인적인 위기 상황으로 말미암아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는 그 동안의 유미주의적, 낭만주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작품 {데미안} 함께 새로운 제2의 창작시기를 시작한다. {데미안}의 주제는 내면으로의 길에서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자기실현"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헤세가 심리학, 특히 융의 종교심리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이제 헤세가 어떻게 심리학과 만나게 되었는가, 심리학은 헤세의 삶과 문학에 어떤 의미와 영향을 주었는가, 헤세와 융은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그리고 융의 종교심리학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작품 {데미안}에, 특히 주인공 싱클레어의 자기실현과 개성화에 어떠한 의미와 영향을 주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II. 헤르만 헤세와 심리학
II.1. 헤세와 심리학의 만남
헤세는 1948년에 쓴 글에서 심리학과의 만남이 그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몇몇 정신분석학 책들을 알게 되고 또 나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심리분석 치료는 그저 하나의 센세이션 이상의 그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실제로 강력한 힘과의 만남이었다.
이처럼 헤세 자신이 회고하는 바와 같이 심리학은 헤세 자신의 삶과 문학에 커다란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면 헤세는 어떻게 심리학, 특히 융의 심리학과 만나게 되었는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스위스에 거주했던 헤세는 전쟁포로 구호사업에 온 정성을 기울이면서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독일 언론으로부터 헤세는 '배신자', '변절자'라는 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그의 아내(마리아 베르눌리)의 신경쇠약으로 인한 심한 발작증세, 아버지의 사망, 막내아들 마르틴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입원 등 안팎의 충격으로 인해, 헤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1916년 5월부터 1917년 11월까지 융의 제자인 랑 J. B. Lang 박사의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랑 박사를 통하여 융과 프로이트의 분석심리학을 접하게 된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중요하게 된 분석심리학을 나는 대략 1913년 혹은 1914년에 문헌을 통하여 알게 되었고, 1916년에는 나 자신이 심리분석 치료를 받았다. 부분적으로, 데미안은 그로부터 나온 결과물이었다.
헤세에게 심리분석 치료를 해 주었던 랑 박사는 정신과 의사로서 신화를 탐구하는 연구가였고 동방언어학자였다. 그의 노트들에는 그와 헤세가 성서이야기들의 신화적 의미를 토론한 대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심리학은 내면세계와 무의식의 세계 등에 관한 헤세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헤세에게서 심리학은 신화 및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다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융은 1950년 3월 24일의 편지에서 랑 박사와 헤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헤세의 작품을 알고 있으며, 그를 개인적으로 압니다. 나는 헤세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의사는 몇 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를 통해 나의 저술들은 헤세에게 확실한 영향을 주었습니다.(그 영향은 {데미안}, {싯달타} 그리고 {황야의 이리}에 나타나 있습니다.)
대략 그 시기(1916년)에 나는 헤세와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정신과 의사는 J. B. 랑 박사였습니다. 그는 아주 특이한, 그러나 아주 탁월한 학자였는데, 동방의 언어〔...〕를 연구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노시스의 사상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를 통하여 그노시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었으며, 그는 또한 그 지식을 헤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소재를 가지고 헤세는 그의 {데미안}을 쓴 것입니다.
이처럼 융이 말하고 있듯이 작품 {데미안}에는 랑 박사를 통한 융의 영향과 더불어 그노시스의 신비주의 종교적 요소가 나타난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말로 명명되는 융의 근본 사상은 시종 일관 종교적인 영역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을 신화와 종교적 표상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 융의 분석심리학은 헤세에게 신화적, 종교적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내면으로의 길에 들어선 헤세는, 진정 흥미 있고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세는 이러한 내면적 세계의 삶이 종교인이나 작가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세는 1918년에 [예술가와 심리분석 Knstler und Psychoanalyse]이라는 글을 프랑크푸르트 신문 Frankfurter Zeitung에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학문적 심리학에 결코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던 나 자신에게 프로이트, 융, 쉬테켈 등의 몇몇 저술에서 뭔가 새롭고 중요한 것이 발견되어 나는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그것들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영적인 현상에 대한 그들의 견해 속에서 내가 작가들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의 관찰로부터 얻은 거의 모든 예감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예감과 순간적 착상으로서,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 지식으로서 이미 나에게 속했던 것들이 (그 안에) 표현되고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헤세는 프로로이트와 융을 중심으로 하는 심층심리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자신의 생각과 공통되는 많은 사상들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II.2. 헤세와 융
헤세는 융을 1917년 9월 7일에 처음 만났는데 융에게서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세는 일기에 "그에 대한 나의 판단은 이러한 초기의 만남 동안에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의 강한 자의식은 어떨 때는 마음에 들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것이 내게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다
융과 처음 만난 이 자리에서 "우리들은 〔...〕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노시스적인 것과 중국적인 것에 대해 얘기했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가치있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1921년 여름 헤세는 퀴스나흐트에 있는 융의 집에서 몇 주에 걸쳐
심리분석 치료를 받는다. 당시에 쓴 편지에서 헤세는 다음과 같이 쓴다:
현재 나는 어렵고 종종 거의 견딜 수 없는 삶의 상황 속에 있는 가운데 융에게서 심리분석의 충격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뼈속 깊이 파고 들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적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 융박사가 나의 심리분석을 아주 확실하고 훌륭하게,
정말이지 천재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만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융에게서 심리분석 치료를 끝낸 후 1921년 5월 H. 라인하르트 Reinhart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융에게 받은 심리분석 치료를 나는 기꺼이 더 오래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성인이자 개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훌륭하고, 활동적이며, 천재적인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으며, 내가 한동안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뻐한다.
한편 1919년 12월 3일 헤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융은 작품 {데미안}이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등대의 불빛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여기에서 융은 작품 {데미안}이 과거의 모든 것이 실제로도 종말을 고하고, 그와 더불어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가능성의 결말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헤세(1877-1962)와 융(1875-1961) 사이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놀랄만한 유사점들이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헤세는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했던 아버지와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기독교적인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일생 동안 동, 서양의 여러 종교사상을 섭렵하게 된다.
헤세보다 2년 앞서 스위스의 동북부 투르가우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융도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목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융은 종교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일생 동안 헤세와 마찬가지로 동, 서양의 여러 종교사상을 섭렵하였으며, 비교종교학에 관한 모든 것들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융의 심리학은 대부분의 다른 심리학자들의 비종교적인 태도와는 달리 대단히 종교적이라는 데에 커다란 특징이 있다. 1907년에 융은 빈에서 프로이트를 만났지만, 프로이트가 인간의 문제를 거의 모두 성(性)의 문제로 귀착시키는 것과는 달리, 융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신화와 종교적 표상 등을 통하여 규명하려 하였다. 이러한 서로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하여 융과 프로이트는 만난 지 6년만에 결별을 고하게 되었다.
강한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융의 심리학은 헤세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면서 헤세 자신의 종교적 경험과 인식 속에 재확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헤세는 부모로부터 받은 종교적 교육과, 성경으로부터 시작하여 부처의 어록과 논어 그리고 우파니샤드와 도덕경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전적인 종교적 경전을 읽음으로써 종교적인 면에서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융의 심리학은 헤세의 종교적 인식 및 사상과 접목이 되었으며, 헤세의 종교적 인식과 사상을 아주 매혹적인 방식으로 체계화시켜 주고, 확증시켜주고, 보충시켜 주었으며, 헤세로 하여금 인습적인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헤세는 1930년 4월 13일의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데미안}에서 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에는 어떤 문헌적인 출처가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그노시스파에 그와 비슷한 내용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신학이었던 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보다 더 심리학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똑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헤세 역시 융 심리학의 종교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융은 모든 종교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종교들 간에 서로 깊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 것이다.
융은 수십 년에 걸쳐서 여러 신비주의 사상을 연구했는데, 1918년에서부터 1926년 사이에 융은 영지주의의 연구에 진지하게 몰두해 있었다. 융은 영지주의자들에게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 무의식의 본래적인 세계와 접촉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III. 종교심리학적 관점의 자기실현
III.1. (집단) 무의식의 인식 및 수용
헤세는 {데미안}의 서문에 "모든 인간의 인생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며, 하나의 길을 가는 시도이며, 하나의 좁은 길의 암시이다.
"자기실현"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천명하였다. 그러면 이 자기실현의 길은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는가? 헤세는 "데미안"의 서문 모토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정말이지 나 자신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인생을 살려고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던가?
이것은 바로 싱클레어가 추구하는 자기실현의 길이 내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것은 융의 심리학적 용어로 "개성화의 과정(Individuationspro- ze )"인 것이다.
융의 "개성화"는 한마디로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융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여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전체적 개성(Individual)이 되어야만 온전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융은 무의식과의 접촉이 정신 건강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도 주된 준거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삶에서의 의미 문제는 사람들이 전일성을 향해 나아갈 때 해결될 것이라고 융은 결론지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개성화에로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에는 억압된 성적인 욕구나 충동 뿐만 아니라 종교적 원천과 같은 창조적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는 모든 인류에게 태초의 시간부터 내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원형"이라 명명하였다.
집단무의식은 인간정신의 본능적인 힘의 원천이며 그 정신의 본능들을 조절하는 행동의 유형이나 범주의 원천인 것이다. 환언하면 집단무의식의 내용은 신화적인 것으로서 비인격적인 정신의 영역에서 생기는 것이며, 집단무의식은 주로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원형 또는 근원적 유형은 지리적 또는 문화와 인종의 차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유형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화를 산출하는 기원이며 종교적 원천이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이 세계가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즉 선과 악의 세계, 양극성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아울러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악동을 만나면서 악의 세계, 어두운 세계에 접하게 된다.
싱클레어는 이 크로머의 어두운 힘에 이끌린다고 느끼는데,
나중에는 이 크로머가 자기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전에 프란츠 크로머에게 있었던 것이 이제는 내 자신 안에 숨어있었다 Was einst Franz Kromer gewesen war, das stak nun in mir selber.(5, 50)"고 말하면서,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에 대한 인식과 관찰"(10, 49)을 시작한 것이다.
크로머는 악의 형상화요, 악마의 사자 혹은 악마 자체이며, 싱클레어의 억압된 부분과 금지된, 억압된 충동이 투사된 것이요, (자기를) 괴롭히는 융의 그림자이다. 융에 의하면 그림자는 인간 안에 있는 어두운 면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융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은 인격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헤세는 이러한 심리학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리분석의 길, 기억과 꿈과 연상으로부터 영적인 근원 탐구의 길을 진지하고 폭넓게 걸어간 사람은, 우리가 대략 "자기 무의식과의 내면적인 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획득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풍부하고 생산적이며 열정적으로 왕래하는 것을 체험한다.
이처럼 헤세는 심리분석에 대해, 그리고 무의식과의 만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오로지 집중적으로 심리분석적 자기탐구를 할 때에, 우리는 성장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한편 싱클레어는 다음과 같이 집단 무의식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한다.
내 문제가 모든 사람들의 문제요, 모든 삶과 사상의 문제라는 인식이 갑자기 성스러운 그림자처럼 날아들었다. 그리고 깊고도 가장 고유한 나의 개인적
삶과 생각이 위대한 이념들의 영원한 흐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고 갑자기 느꼈을 때,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엄습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문제는 전체 인류의 문제와 공통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집단 무의식에 대한 인식과 수용을 바탕으로, 이제 싱클레어는 자기실현과 개성화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III.2. 싱클레어의 자기실현과 개성화
헤세는 1929년 2월 어느 젊은 여성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작품({데미안})은 개성화를 위한 투쟁, 인격체의 형성을 위한 투쟁 Es ist der Kampf um die Individualisierung, um das Entstehen einer Persnlichkeit."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데미안}의 주제인 "자기실현"이 융이 말하는
"개성화 Individuation"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개인'(in-dividual), 즉 독립되어 있으며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통일체 또는 '전인'으로 되어 가는 과정을 지칭하기 위해서, 나는 '개성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따라서 융이 말하는 개성화는 진정한 개성을 실현한다는 의미로서 '자기실현'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융에 의하면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인데, 이것이 바로 융이 "개성화"라는 단어로써 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융에게 있어서 종교 체험이란 궁극적으로 대극 통일의 체험이었다.
개성화 과정의 전(全)과제는 이 대극들의 재통합 - 무의식을 의식으로 재통합하는 면모이다. 융에 의하면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원초적인 충동 본능에 대하여 정신적인 반대의 위치를 세우도록 해 주며, 그저 충동적인 성향에 대하여 문화적인 관점을 가능하게 해 주는 형상과 상징의 체계이다. 이 말은 인간이 오직 종교의 도움과 종교를 통하여 개성화의 길을 간다는 말이다.
싱클레어의 자기실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 우리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베아트리체, 에바 부인 등을 들 수 있다. {데미안}에 그려진 인물들은 모두 인물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지도자로서 싱클레어가 지향하는 목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말하자면 융의 관점에서 볼 때 양극성을 포괄하는 전일성적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데미안은 작품에서 결코 싱클레어로부터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사실상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이며, 싱클레어의 가장 깊은 자아이자, 우리들 모두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일종의 원형적 주인공이다.
"데미안은 사실상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원리이며, 진리의 현현이거나 혹은, 당신이 원한다면, 하나의 교리의 현현입니다.
데미안은 하나의 형상으로서, 싱클레어의 내면의 목소리이다.
데미안은 내면적 가능성으로서 싱클레어 안에서 그의 머나먼
아직 형상화되지 않은 채 잠재되어 있는 운명의 상인 것이요,
싱클레어가 지향하는 이상적 자기 자신의 정신적 형상인 것이다.
그런데 종교심리학적 관점에서 싱클레어를 지도하는 작중 인물은 누구보다도 피스토리우스이다. 그러므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의 종교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나의 아버지는 이곳 도시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경을 받는 분이고,
저명한 목사이며 설교가라오. 이것으로도 곧 아시겠지만, 나는 재능 있고 앞날이 유망한 아들이었으나 탈선해 버리고 약간 정신도 이상하게 되어 버렸어요. 난 신학생이었으며 국가시험 직전에 그 고루한 학과를 포기해 버렸지요.
개인적 연구로 친다면 나는 사실 아직도 여전히 그 과를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말이오. 사람들이 그때그때 어떠한 신들을 고안해 냈는가 하는 것이, 여전히 내게는 가장 중요하고 흥미 있는 문제라오.
이 피스토리우스는 대체로 헤세의 심리분석 치료를 담당했던 랑 박사를 대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융의 종교심리학적 견해를 많이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을 통하여 싱클레어는 우선 신비주의와 관련된 내재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우리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연의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성은 서로 나눌 수 없는, 동일한 신성인 것이다. 그리고 만일 외부의 세계가 몰락한다면,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그것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등 자연에 있어서 모든 형성물이란 우리의 내면에 미리 형성되어 있는 것이며, 그 본질이 영원하지만 우리가 그 본질을 알지 못하는 영혼에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우리에게 대개는 사랑의 힘과 창조의 힘으로서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존재이며, 인간과 자연 안에 동일한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이와 같은 견해는 융의 종교심리학적 신관과 일맥상통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들 개인성의 한계를 언제나 너무 좁게 그리고 있지요! 우리는 개인적인 것으로 구분이 되고 다른 것과는 다르다고 인식되는 것만을 개성이라고 취급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가 이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또 우리의 육체가 어류에까지, 그보다 더욱 아득한 데까지 이르는 발달의 계보를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 속에도 여전히 인간 영혼 속에서 살았던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존재했었던 모든 신과 악마들이란 그것이 그리이스인이나 중국인의 것이든, 혹은 추울루카페르인의 것이든 간에 모두가 가능성으로서, 소원으로서, 탈출구로서 우리들의 내면에 함께 존재하고 있고 현존하고 있는 것이예요.
만일 인류가 여하한 교육도 받지 못한 단 한 가지의 재능도 별로 없는 아이만을 제외하고 다 멸망해 버린다면, 그 아이는 사물의 전 과정을 다시 찾아낼 것이며 그 아이는 모든 신들, 악마들, 천국, 계명과 금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등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피스토리우스는 융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 이론을 연계시키고 있다. 융은 "어떤 한 삶의 역사가 우리가 우연히 기억하고 있는 어떤 곳, 어떤 한 장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삶의 연원은 몹시 복합적인 것이며,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집단무의식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나는 모든 영적인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든 개인들의 두뇌조직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라고 말했다.
모든 신화와 신들의 형상은 모든 인간 안에 들어 있고 또 추후에 형성될 수 있는 영혼의 형상들 이 외에 다름 아니라는 융의 사상은 피스토리우스의 가르침 속에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모든 상징과 신화와 원형 그리고 최고의 "신"까지도 융에게는, 인간의 영혼이 그를 통해 자신의 완전성을 동경하고 그 완전성에 도달하고자 한 영혼의 형상과 "리비도의 비유"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무의식과 전체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대한 피스토리우스의 이론은 분명 융의 심리학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아, 모든 종교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종교는 영혼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 성만찬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메카로 순례를 하든지 간에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로써 피스토리우스는 어떤 전통적인 특정한 종교에 특별한 우선권을 주지 않는 상대주의적인 종교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피스토리우스는 기독교와 회교는 물론 배화교, 그노시스파, 불교, 힌두교 등 동,서양의 모든 종교를 아름다운 영혼으로 본다. 모든 종교의 신화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 그리하여 자기실현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 피스토리우스가 피력하는 근본 사상인 것이다.
싱클레어는 또한 에바 부인과 데미안 주위의 여러 종류의 구도자들을 통해서 "[...] 이제까지의 인류가 가졌던 모든 이상이란 무의식적인 영혼의 꿈으로, 즉 인류의 손으로 더듬어서 자기들의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예감을 추구한 꿈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싱클레어의 자기실현에서 가장 결정적인 상징은 다름아닌 아브락사스다. 이 아브락사스가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논란을 거듭해 왔다.
융은 아브락사스의 신성에 대해 알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아브락사스는 "무한하며, 선악의 어머니"라고 설명한다. 작품에서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신과 악마 등 양극성을 하나로 포괄하는 상징적 신성으로 나오는데, 융 역시 아브락사스가 삶과 죽음, 저주와 축복, 참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 등 양극적인 것을 포괄하는 신성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헤세는 아브락사스에 대한 이러한 융의 견해를 받아들여 작품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데미안}에는 또한 융의 원형인 아니마가 주요한 기능을 차지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에바 부인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 에바 부인은 "모든 존재의 어머니 die Mutter aller Wesen"(5, 142)라는 "신적인 형상"으로서, 이 "어머니"는 종교적인 근원 체험과 영원한 것의 계시가 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작품에서 종교적인 상징이 되었다. 에바 부인의 어머니상은 선과 악의 저편에 서 있으며, 싱클레어의 종교적 발전에서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이다.
헤세의 작품 중에서 "어머니"가 주인공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오직 {데미안}에서 이다. "에바"라는 이름 자체가 신화적인 "모든 어머니"를 말해준다. 그러므로 사실상 에바 부인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상"인 것이며, 실제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에바 부인은 결국 여성적 신성이라고 치올코브스키는 말한다. 뤼티 Lthi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에바는 어머니 신이다. 이리하여 {데미안}에는 "어머니에 대한 찬가, "에바 부인"에 대한 찬가가 생겨났다"고 후고 발은 말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힘을 노래한 것이며, 인간 존재의 근원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데미안}에서 헤세가 추구했던 "푸른 꽃"은 "여성적 원형의 상, 어머니의 상"이었던 것이다. 에바 부인은 (작품에서) 싱클레어의 모든 것이자 전체이다. 그녀는 융의 관점의 아니마이자 영혼이며 무의식이다.
그녀는 또한 싱클레어의 이상이요 자기 실현이다.
IV. 맺는 말
"자기원형은 우리 삶의 목표이다.
그것은 우리가 개성이라고 부르는 운명적인 결합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라고 융은 말했다. 즉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원형"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는 전일성 또는 온전성을 나타내는 자기원형과의 만남이다.
융에게 있어서 종교체험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인 자기원형을 체험하여 자신의 대극을 통합시켜 개성화가 되는 것이다. {데미안}의 작가 헤세에게 모든 인간 발전의 목표는,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힘을 인식하고, 그 힘으로부터 나오는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작품 {데미안}에는 헤세가 융의 종교심리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있다. 이처럼 융의 종교심리학과 강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이제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뛰어 넘어 신화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은 젊은이가 시간을 초월하여 종교적 관점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 참고문헌
서정찬: 칼 융의 개성화와
종교체험과의 상관관계. 호서대학교 대학원(석사학위 논문) 1990.
융, C. G.: 융의 생애와 사상. 기억과 꿈과 회상들.
A. 야페 엮음. 이기춘, 김성민 옮김. 서울(현대사상사) 1995.
클리프트, W. B.: 융의 심리학과 기독교. 이기춘, 김성민 역.
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