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면 강산이 3번 변한다. 강산이 3번 변하는 동안 인류는 어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냈을까. 미국 PBS의 비즈니스 프로그램 ‘나이틀리 비즈니스 리포트(Nightly Business Re port, 이하 NBR)’는 방송 30주년을 맞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과 함께 지난 30년간 나온 30가지 혁신적인 발명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약 1200가지의 발명품이 추천됐고 와튼스쿨의 심사위원들이 평가해 최종적으로 순위를 정했다.
선정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할 것, 또 하나는 사용자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였다. 선정에 참여한 칼 울리히 교수는 “혁신적인 발명품은 대부분 사용자의 ‘필요’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순위에 오른 내용을 살펴보면, 1위는 인터넷이 차지했다. 심사위원인 토마스 콜리건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부학장은 NBR의 방송인터뷰에서 “인터넷은 정보를 얻는 데 필요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고 선정배경을 밝혔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번 순위선정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는 것. 시청자와 독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번 설문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IT분야의 발명들이 상위권에 연이어 오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터넷에 이어 PC, 휴대전화, 이메일이 나란히 1~4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했다는 특징이 있다. 인터넷은 1979년부터 가능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야 그 진가를 발휘했다. 이메일(4위) 사용이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인맥을 관리하고(20위), 온라인 쇼핑(15위)의 매출이 오프라인을 넘어서면서 인터넷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힘들어 졌다.
IBM은 1981년 IBM5150이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했다. 당시 개인 컴퓨터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기계였다. 같은 해 오스본컴퓨터사는 최초의 노트북인 오스본1을 선보였다. 당시 이 노트북의 무게는 약 10kg. 오늘날처럼 휴대할 수 있는 생활의 일부가 되기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7위), LCD의 탄생(13위), 플래시메모리(29위)의 역할이 컸다.
의학분야에서는 인간게놈지도(5위), 자기공명장치(MRI, 6위), 레이저·로봇 수술(10위)이 10위 안에 올랐다. 의학분야에서 이룬 혁신은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현재진행형이다. DNA의 구조가 1953년 처음 밝혀진 후 구체적인 연구는 진행 중이다. DNA 연구와 함께 유전적인 질병,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병들의 치료약들도 개발 중이다. MRI기기의 경우 1977년 처음 사용됐을 때만 해도 이동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후 MRI는 이동이 가능해 지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정밀한 검사를 쉽게 받을 수 있게 됐다. 레이저·로봇 수술 역시 80년대 처음 시도된 이후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IT분야와 의학분야의 발명이 상위에 오른 것에 대해 콜리건 부학장은 “IT기술의 발달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꿨고, 의학기술의 발달은 삶의 질을 바꿨다”고 평가했다.
대체에너지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태양광 에너지와 대형 풍력터빈도 나란히 18위, 19위를 차지했다. 사실 이 둘은 30년보다 더 오래전에 처음 발명됐다. 태양광 에너지는 이미 19세기에 발명됐고 풍력터빈의 원형도 오랜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집약적인 발전이 이뤄져 30위 안에 꼽혔다. 특히 크기와 소음이 줄어든 풍력터빈은 일반 건물에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또 하나의 대체에너지인 바이오 연료는 25위에 올랐다.
사실 ‘혁신’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선정에 참여한 패널들은 ‘혁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것 이상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혁신의 가치는 발명 그 순간의 놀라움보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에 있다. 와튼스쿨 법과 기업윤리학과의 케빈 월박 교수는 NBR와의 위성인터뷰에서 “발명이 새로운 산업이나 시장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혁신”이라고 했다.
오늘날 경제상황에서는 ‘혁신’이 주는 의미가 더욱 크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전략이 경쟁력이 된다. 새로운 것, 다른 것을 시도해 보는 것도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만든다. 선정에 참여한 콜리건 부학장은 “혁신은 매일 일어난다”고 했다.
혁신은 의학이나 정보산업과 같은 기술적인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의사결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도 혁신이 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때 발휘하는 팀워크나 조직문화도 다른 조직이 따라할 수 없는 혁신이다. 다만 그것이 한순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변화와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뷰 / 토마스 콜리건 와튼스쿨 최고경영자과정 부학장] ■ ‘혁신적인 생각이 경쟁력이다’
혁신이란 무엇입니까. 역사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나 도약을 이룬 것들을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남들이 따라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을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을 하셨는지, 선정된 것들 사이에 공통점들이 있나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것들을 선정했습니다. 지난 30년간 정보통신 기술의 영향은상당하죠.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바꿨으니까요. 이제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연결돼 있지 않습니까. 30년 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삶의 모습들을 바꿨는지를 평가하다 보니 기술적인 것들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순위에 오른 혁신적인 것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십니까.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이 많은 노동력을 공급했죠. 덕분에 삶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보통신 부문은 소통의 핵심이 됐다는 점입니다. 의학 부문의 발달 역시 삶의 질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죠. 앞으로는 비용을 더 낮춰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겠죠.
최고경영자과정의 부학장으로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에 관한 수업들을 많이 진행하고 계실 텐데, ‘혁신적인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혁신적인 것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합니다. 생산성 측면에서 말하자면 초기에 새 제품이 나왔을 때는 수익을 많이 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효과는 떨어지게 됩니다. 기존의 제품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보탠다면 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죠.
어떻게 경영자들에게 ‘혁신’을 독려할 수 있을까요. 조직의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조직에서 가장 위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아랫사람들에게 실험이나 다른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합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경영모델들을 재점검할 필요도 있죠.
와튼스쿨에서는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기업들에도 경영자문을 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조언을 해주시나요. 혁신이라는 것은 소비재나 의학 기술 같은 것에 한정돼 있지 않습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는 오히려 혁신이 자주 일어나죠. 보다 전문적으로 발전한 서비스가 ‘혁신’이 될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을 꾸려서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합니다.
끝으로 덧붙이실 말은 없나요. 오늘날 제약 부문에서 혁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재 시장의 70%를 복제약이 차지하고 있어요. 제약 회사들은 혁신적인 능력을 더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도 발전하고, 경쟁력도 생깁니다.
* 출처 : 매경이코노미 제1496호(09.03.11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