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곤붕(北溟鯤鵬)-6 통권 116
괴성을 지르던 잔폭광마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라혼은 임시로 지은 원두막에서 대수영의 수뇌들과 회의를 계속했다.
“이번에 해황가가 보내온 답장 내용은 그들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겁니다.”
“무슨 말이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해남군도가 조정에 반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매모호한 이유들 들어 확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조정에 대한 반역에 뜻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드리어 라혼이 기다리던 답서가 도착했다. 그러나 그 답서의 내용 어디에도 해남군도가 처한 상황만 나열되어 있을 뿐 입장을 분명히 하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친서를 보내자는 쪽과 대수영의 위세를 과시하는 무력시위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양쪽 다 경우의 차이는 있으나 해남군도와 분쟁을 바라지는 않았다.
“해남군도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 그런 수를 쓰면 당장 분쟁이 발생할 것이오.”
“주군이 바다의 패자임을 자처한 이상 그만한 영향을 행사 못한대서야 말이 되지 않소.”
작도인, 상초는 무력시위를, 모석, 고학은 다시 한 번 친서를 보내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그들이 아니었다.
“해남군도 사람이 자존심이 세다지만 나도 그에 못지않지. 내일 심천도로 갈 것이다.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라!”
“주군, 그럼 그들을 자극하게 될 텐데요?”
“그들이 어찌 나오든 상관없지. 대수영의 힘은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만큼은 되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 후선 수군과 드잡이질 벌일 생각이 없다.”
심천도(深川島)는 남례 극남성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섬으로, 전체 해남군도를 통틀어 중간 정도 크기의 섬이었다. 주민은 약 5백가구 3천여 명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섬은 해황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중요한 섬이기도 했다.
한 달 후, 라혼은 작도인으로 하여금 심천도를 점령하게 했다. 그리고 해황가에 심천도를 대수영의 요새로 사용한다는 통보를 하고 군사 1만을 주둔시켰다. 작도인은 주위의 작은 섬들을 대수영에 복속시키고 해남군도 내에 대수영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라혼의 대수영 함대는 현재 후선 수군이 장악하고 있는 남례성 동남쪽 끝의 남상 소동도 정도 크기의 큰 섬인 은석도(銀石島)를 목표로 남례성 남쪽 연안을 따라 동진시켰다.
***
어느새 대륙은 가을이 되었다. 산천초목(山川草木)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대륙은 슬슬 추수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맘때가 3년 전부터 조정의 세곡을 대신 걷는 토금전장이 바빠지는 시기이며, 또한 흑막 웅랑교와의 밀무역과, 후선과의 밀무역도 이 시기가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리고 그간 막혀 있던 인시드 남주 무역 항로의 뱃길이 열리면서 인시드로 가장 먼저 떠났던 서경과 동경의 상선들이 접안하자 전에 없는 물건을 구하려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토금전장에 소속된 상선들이라 천하상계에 토금전장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전구(傳球)와 전환(傳環)으로 원주 상경 황진성에 새로 마련한 토금전장의 대본장에서 천하 각처의 물동량을 한꺼번에 관리하였는데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상단의 운영은 일사불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산학(算學)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인재를 한곳에 모아 토금전장이 벌이는 모든 일을 한곳에서 관리하니 모든 것이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한꺼번에 움직였다. 게다가 연일 승전보를 원주로 보내는 백호나한의 대수영을 바로 토금전장의 주인이 지원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금 대인이야말로 천하를 거래하는 상인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금 대인, 내 선금을 걸 테니 내게 물건을 주시오.”
“우리는 값을 두 배로 쳐주겠소.”
토금전장이 서경에 물건을 내리지 않고 대하의 물길을 따라 곧바로 원주로 온다는 소식에 천하 각처의 상인들이 원주 상경 황진성으로 몰려들었다. 원래 이러한 상인들은 중경의 토금전장에서 처리하지만 금 대인과 직접 만나 해결하기 위해 상경 대본장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토금전장이 원주로 가져오는 것은 양탄자, 유리, 보석 따위의 사치품이었지만 천하 각처의 전란이 무색할 정도로 뒤숭숭한 지금 그런 것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니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토금전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하의 물길로 그것들을 원주까지 가져오는 이유는 바로 라혼이 드래곤 드라오디프의 레어에서 얻은 보석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귀림 드워프들의 손을 거친 보석들은 상당한 값어치를 하면서도 정작 처리하기가 곤란했다. 황금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보석은 황금의 몇 배 가치를 하니 쉽사리 취급할 수가 없었다. 장사를 하기에 따라 가격이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널을 뛰는 터여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상당히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인시드와 칸 대륙에 보석을 파는 것이었다.
“물건은 충분하다 하니 너무 조급해들 할 필요는 없소. 양탄자나 유리 등은 많은 물량을 가져오지 못했으나 보석 세공품은 상당하다고 하니 여러분 모두에게 넉넉하게 돌아갈 겁니다.”
토귀는 자신을 찾아오는 상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돌려보내고, 모든 보석상들에게는 따로 은밀히 사람을 보내 필요한 양만큼 챙겨주겠다는 밀약을 나누었다. 그리고 호황가와 십제가 부인들의 몫을 따로 준비하는 등 토금전장의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휴우~! 정신없군.”
“금 대인, 올해엔 적자 폭이 꽤 줄어들었습니다. 인시드 남주 무역이 활성화되고 북주와 무역도 어느 정도 지분을 갖게 되어 내년쯤엔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겠지. 이제 대량의 자금이 한꺼번에 소요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태회진에서 철장, 가옥, 성채, 선거, 백호대함 건조 등 입에서 ‘으헉!’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어마어마한 자금이 한꺼번에 투입되니 매년 어마어마한 적자가 발생했다. 거기다 대상계를 자리잡게 하기 위해 투입된 자금, 운송망을 만드는 데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어 지금 토금전장의 금고는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황금으로 2천만 냥분의 보석이 세공된 상태로 들어와 있고, 대수영이 인시드 무역로의 지분을 토금전장에 맡긴 덕에 많은 무역 상인들이 자금을 맡겨와 다소 숨통이 트이는 형국이었다. 토귀는 그 자금으로 관으로부터의 수조권을 얻어내기 위해 미리 세금을 납부한 뒤 세곡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사실 라혼의 에텔 스페이스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곡식이 쌓여 있었지만 라혼은 그것을 풀 생각이 없었다. 황금보다는 군량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한꺼번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일은 이제 없었으며 태회진의 철장에서 철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남상에서 만들어진 석밀이 또 다른 수입원이 되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된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간 투자된 자금들이 회수될 것이었다.
“그보다 금 대인이 만들라 해서 만들었는데, 목우유마 말입니다.”
“목우유마는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야. 아직은 껍데기만 만들지만 곧 동력 기관도 만들 수 있을 것이네. 아, 그리고 이번에 배가 들어오면 그것들을 남상으로 옮길 예정이야. 그곳에서 완성하여 본격적으로 사탕수수 농장을 개간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네.”
“그렇습니까?”
“아직은 우리가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론 우리 토금전장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물건이니 공방의 숙련공이 많을수록 좋아!”
“알겠습니다.”
토귀는 대본장의 대총관 일을 맡고 있는 골의찬(骨意贊)이 나가자 벽에 걸려 있는 천하 전도를 바라보았다. 토금전장의 분장은 동영을 제외한 천하 전역에 산재했다. 이제 곧 인시드 남북으로 토금전장의 분장을 만드는 작업이 완성되면 바야흐로 진정한 천하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