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조 선생]
잘 보았습니다, 선생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치적인 측면을(누가 전쟁을 시작했나) 제거해버린다면 괜찮은 심리, 스릴러물인 것 같습니다. 이라크전이나 아프간 전이나 그 모든 시작은 석유에 대한 이권, 그 이권을 놓고 다툰 패권에 기인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거기에 있는 주민들은, 말 그대로, 순수히 피해자들인 셈이죠. 그렇게 끈덕지게, 스토리가 전개될 수록 마치 RPG게임처럼, 레벨을 올려가며 다가오는 위험조차도, 순수히 주인공 시선을 따라가자면, 바로 죽여야 할 적의 만행에 불과할 따름이겠지만, 일정 때 이봉창이나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본다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침략자들을 응징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디어헌터에서처럼 전쟁에 참전해서 망가져가는 한 영혼을, 그것도 피해자 측에서 보았을 때 침략자의 한 영혼을 그린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죠.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한 번도 이라크인들에게 공평하지 않더군요. 그 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협 아니면, 애까지 죽여 시체안에 폭탄을 집어넣는 악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서양의 일리어드 오디세이 서사전통의 영웅의 모습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고전 헐리우드 서부극의 존웨인의 모습까지 가미되는 듯 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loose cannon이란 표현이 있지요. 언뜻 들으면 부적응자를 가리키는 듯 들립니다만 가만히 보면 습속에 억매여 사는 평범한 자들이 그런 관습에 억매이지 않는 자들의 자유를 시기하여 부르는 볼멘 듯한 표현이죠.
존이라는 주인공은 바로 이 단어에 아주 잘 들어맞는 인물이었습니다. 800번을 넘는 폭파물 해체를 통해 무수히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으며 그에게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도박의 대상이거나 아니면 모험에 대한 약속이죠(오디세이). 죽음의 두려움에 갖혀 평생을 보내는 우리 대부분이 그런 모습에 경외감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죠. 또한 두려움에 쩔은 그런 사람들이 만든 룰 따위가 벌써 그 경계를 넘어선 사람에 맞을리가 없으니 그는 늘 범인들에게 loose cannon이 될 수 밖에 없을테고요.
거기다 프로페셔날리즘이 가미되었더군요. 그게 가장 잘 반영된 순간은 그가 베컴으로 믿었던 그 시체폭탄을 해체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감정이 비등점을 넘어선 그 순간에서조차 다시 소년의 시체의 배를 갈라 폭탄을 제거하는 모습, 이거 프로 중의 프로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겠죠.
하지만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프로의식이 오바된 느낌입니다. 물론 이게 작품이 아니고 개인의 문제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건 모두가 보는 영화인데, 어떻게 한번도 그 전쟁의 원인에 대해 묻지 않고 다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자리에, 그것도 처와 애를 남겨두고 들어갈 수 있는지, 오직 그것 밖에 잘 할 수 있는게 없어서인지. 그러면 주인공은 프로라기 보다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도구가 되어버린(반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쌍한 길잃은 영혼이죠. 그 대목에서 감독의 의도 역시 우편향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더군요.
제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뭐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단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사운드는 죽이더군요.
이로써 이라크전 영화는 두개 보았습니다. 하나는 조지 클루니의 the men who stare at the goat인데, 히피반전영화라서 ..남은 건 그린존이군요... 나중에 보게 되면 또 제 의견을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잘 보았습니다.
[강대춘]
김선생은 이라크전쟁을 다른 전쟁과는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지요? 물론 다른 전쟁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특히 이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횡포에 기인한 일방적인 전쟁이기에 아무래도 미국의 의도된 잘못을 탓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겠지요? 미국의 우편향적인 치우침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지만..........나는 이 영화를 좀 다르게 봤습니다. 예전에 올리버 스톤의 플라툰 처럼 철저하게 리얼리즘적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라크전쟁이라는 특이한 환경은 치우고, 또 인간 폭탄이나 물건이나 수단으로 취급되다 시피하는 소년의 시체 같은 감정이입은 전부 배제하고......극한의 상황에 선 몇사람의 시점 시점의 상황에 인식만을 했습니다. 꼭히 말하자면 한사람(제레미 레너)이지요. 자기에게는 임무가 있고 싫건 좋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폭탄에게 다가가고........특히 이 사람은 범인의 경지를 넘어 오버하는 행동을 하기에(전문가이지만...) 주변의 범인들에게 큰 부담과 위험을 주고, 그런 상황 자체가 꼭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폭탄이 터지려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만드는............그런 상황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물론 그 스릴은 최고의 음향 편집으로 효과가 배가되기도 하고.......주인공은 전쟁의 정치적, 도의적 문제를 떠나 명령에 따라 극한 장소에 배치되고 자기 임무를 처리하고.......고향에 돌아와서도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김선생이 언급한 프로, 도구, 길 잃은 영혼, 감독 의도의 우편향....같은 것 보다는.....폭탄은 위험한 것이고 자기는 폭탄 제거의 전문가이니 누구든 폭탄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일종의 선이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봤습니다. 첫 부분에 폭탄을 제거하다가 같이 연결된 여러개의 폭탄을 발견하고 한꺼번에 잡아당기는 신은 차라리 미학에 가깝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나는 정치적인 문제를 싫어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하면 비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죠지 클루니의 시리아나 같은 것은 다르지만.........그린존은 수작이 아닙니다. 김선생이 보면 후회할 듯.......촬영과 편집 기술을 과시하려는 듯한 작품이지요. 본알티메이텀에 훨씬 못 미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