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법을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변호사나 법무사 등 법률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법률 정보가 계속해서 공개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법률 용어와 재판 절차를 스스로 터득해 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대단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이다. 단순히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준비나 법률 지식도 없이 무작정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절차를 잘 몰라서 불필요하게 재판을 오래 끌게 되거나, 이길 수 있는 소송도 패소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적절한 법률적 대응을 하지 못해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판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다.
'억지소송'에 대응하지 않다가 패소 판결 받기도
〈사례 1〉
중소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A씨는 졸지에 생돈 2,000만 원을 물어주게 생겼다. 거래처 중 한 곳인 B회사 쪽에서 소송을 걸어왔는데,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소장의 요지는 "A씨가 제공한 물건에 하자가 생겨서 B회사가 손해를 입었으므로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B회사의 주장은 억지였다. 이를 잘 알고 있는 A씨는 법원에서 잘 알아서 판단해 주겠거니 생각하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달 후 법원은 B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뒤늦게 법률사무소를 찾은 A씨는 자신을 원망했다. 민사소송법에는 소장을 받은 피고가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변론 없이 바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되어 있다. A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변론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씨는 부랴부랴 변호사를 선임하여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진작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만일 A씨가 법원에 답변서 한 장만 제대로 써냈더라면? 결과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무신경 때문에 교도소에 간 C씨
〈사례 2〉
홈쇼핑을 운영하는 C씨는 사업 자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않아서 채권자들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1심 법원은 C씨가 애초부터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고, 능력이 되면서도 고의로 돈을 갚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항소심에서 C씨가 피해자와 합의를 해서 선처를 받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항소장을 내고 한 달 후 법원은 C씨에게 항소기각 결정문을 보내왔다. C씨가 법원의 소송 통지를 받고도 항소이유서를 제때 써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씨는 재판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교도소로 가게 되었다.
문제는 A씨, C씨의 경우처럼 법정에서 충분히 다퉈볼 만한 사안인데도 '잘 되겠지'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다가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데 있다.
형사사건에서 약식명령을 받은 다음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전과자가 되는 사람, 상소·이의신청 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되는 사람, 법원의 보정 명령을 받고 방치했다가 소송이 각하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당사자는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양쪽이 치열하게 싸우는 법정에서 "법을 잘 몰랐다"는 말은 통하기 힘들다.
3년 만에 의료소송 일부 승소 ··· 몸도 마음도 지쳐
이와는 달리 D씨와 같이 재판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들도 더러 있다.
〈사례 3〉
D씨는 감격적인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소송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D씨는 E병원의 오진으로 병세가 악화되었고 후유증까지 생겼다. D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후 E병원 쪽에 항의했다.
그러나 병원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D씨는 소송을 걸었다. 이때부터 D씨는 혼자서 자신의 진료기록을 검토하고 의학서적과 법률서적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했다.
대법원까지 간 후에야 D씨는 비로소 일부 승소 판결을 얻을 수 있었다. D씨는 병원의 책임을 밝혀냈지만, 한편으로 기쁨 못지않게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재판을 끝낸 D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송사 3년 동안 직장과 가정생활에 끼친 지장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판결로 받게 된 손해배상 금액도 D씨가 받은 상처와 그동안의 노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재판부는 병원 측의 책임을 일부만 인정했다.
D씨의 입증이 부족했다고 본 것이다. 이쯤 되면 재판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가끔 언론에서는 나 홀로 소송에서 어렵사리 승소한 당사자를 인간 승리로 추켜세우지만, 그 승리의 이면에는 몸과 마음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D씨가 의료분쟁에 해박한 변호사나 법무사의 도움을 얻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병원 측의 책임을 입증하는 데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고 마음의 부담도 덜했을 것이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재판인지 잘 판단하고 준비하라
그렇다면 나 홀로 소송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치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재판인지 아닌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혼자서도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 재판에 투자할 시간적인 여유가 되는지도 충분히 검토를 해야 한다.
판단이 섰다면 자신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재판과 관련한 기본 법률지식을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대법원 홈페이지나 법률 사이트를 뒤져보면 이 정도 사항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재판은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법원에서 요청한 사항은 반드시 기간을 지켜서 이행해야 한다. 법원에서 보낸 서류에 적힌 유의사항을 꼼꼼히 읽어보고, 의심이 가는 점은 법원에 전화를 걸어서 꼭 확인해야 한다. 법정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재판에 빠지면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2,000만 원 이하의 소액 재판은 법정에서 판사들이 법을 잘 모르는 당사자들에게 입증 방법에 관해 간접적으로 조언을 해주거나 힌트를 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증인신청, 문서제출, 사실조회 등을 권유한다면 잘 새겨들어야 유리하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증인을 내세우거나 추가 입증 자료를 내기는커녕 기존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사람은 재판 결과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전문가를 찾아라
이런 노력을 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전문가를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한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소송은 과감하게 법률사무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료소송, 건축소송, 토지소송 등 전문분야, 입증이 어려운 손해배상 사건, 수억 원대의 소송 등은 변호사를 찾는 편이 낫다. 또한 형사사건으로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법률자문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 홀로 등기도 마찬가지다. 말소등기, 표시변경 등기 등 간단한 등기는 등기소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작성한 후 세금과 수수료를 납부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반인이 하기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드는 까다로운 등기도 적지 않다.
〈사례 4〉
F씨는 선친의 땅을 상속받기 위해 등기소를 찾았다. F씨는 준비해야 할 서류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토지와 건축물 대장, 협의분할 계약서, 상속인들의 인감증명, 주민등록 초본, 상속 소명 자료 등 첨부 서류를 준비하고 등록세와 수입증지 등 각종 세금과 수수료를 납부해야 했다. 상속인들의 지분을 파악하고 등기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도 F씨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끝에 서류를 접수했지만 다음날 F씨는 등기소로부터 서류를 보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상속인 중 일부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추가 서류가 필요하고, 상속관계를 밝히는 소명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F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법무사에게 맡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하루 이틀 정도 투자할 시간이 충분하고 발품을 들일 자신이 있다면 나 홀로 등기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휴가를 내면서까지 관공서와 금융기관, 등기소를 오갈 바에는 차라리 수수료를 주고서라도 법무사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법무사 사무실에 가면 등기 하나 하는데 수백만 원이 든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채권 매입비용, 세금, 등기 수수료까지 포함된 금액까지 모두 법무사 수수료로 착각하는 데서 나오는 불만이다. 법률 전문가와 법률 소비자의 틈이 아직 크다는 방증이다.
나 홀로 소송이 증가하는 이면에는 법률 전문가들을 향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법원을 찾은 민원인 상당수는 법률 서비스의 비용이 너무 비싸고 불친절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는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맡겼더니 "내 재판 결과보다는 돈에만 관심이 있더라"며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의뢰인 중에는 변호사나 법무사가 자신을 위해 제출한 서류를 법원에 와서 다시 복사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변호사(법무사)를 믿을 수가 없고, 재판 진행 상황을 잘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한다. 이쯤 되면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우리나라의 민형사소송 건수는 600만여 건에 달한다. 이 중 민사사건이 약 400만 건(66%)을 차지한다. 등기사건도 1,000만 건이 넘는다. 어림잡아도 1년에 수백만 명 이상이 법원을 찾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과 책임을 법률 소비자의 몫으로만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법률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게 대두된다.
2015년 7월 말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는 2만 명에 육박한다. 이중 휴업중이거나 개업을 하지 않은 3,000여 명을 제외하더라도 1만 6,400여 명의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2015년 8월 현재 전국의 법무사는 6,491명이다.
변호사와 법무사의 숫자를 합치면 2만 5천 명이니 법률 전문가 1명당 2천 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법률 전문가들 입장에서 본다면 예전에 비해 수입이 많이 줄었겠지만, 인구 대비 법원 사건수를 감안할 때 결코 법률시장이 좁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호사, 법무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고객 유치를 위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 홀로 소송이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송사를 법률 전문가에게 맡기는 문화가 이상적이라고 판단한다. 또한 법률 전문가들도 지금보다 문턱을 낮추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법률 소비자들인 국민들이 법률 절차를 잘 몰라 자신의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되고, 복잡한 소송을 혼자 해결하겠다고 생업을 포기한 채 송사에 매달리는 것도 결코 권장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는 유능하고 믿음직한 변호사, 법무사에게 맡겼더니 싼 값에 편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홀로 소송을 하겠다면 단단히 각오하고 제대로 준비해서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유능하고 저렴한 법률 전문가를 활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 홀로 소송, 알고 덤벼야 한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