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경 : 사 40:27-31절
제 목 :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일 시 : 2016. 8. 14.
사40:27-31/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도 말하고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당연함은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며 사귀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은 오직 사람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교제하려는 목적으로 사람을 지으셨지만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 타락한 사람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이처럼 하나님과 단절시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찾고 싶은 마음도,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람의 고유기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노아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그 중에 또 한 사람은 다니엘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12제자들과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 즉 자신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으시면 그 때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사람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대화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그분의 음성을 듣고 대화가 시작되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알려 주시고, 더 깊은 관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시작되고 그분과 교제가 깊어지면 세상 것들이 별로 재미도 없어지고 거기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들은 가짜이고,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가짜라는 말은 그것은 잠시 잠깐 동안만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가 잠시 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셨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신 귀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진짜부모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히 나를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지켜 주시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고민하고 슬퍼하고 아파할 때 그분들은 나를 도와주시지 못했습니다. 물론 살아 계실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나를 사랑하셨던 정말 좋은 부모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나의 진짜 부모님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부모님이 진짜 나의 부모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육신의 부모는 진짜부모가 아닙니다.
세상의 관계들이 다 그렇습니다. 혈과 육으로 맺어진 모든 관계는 다 그렇습니다. 잠시 동안은 나를 도와줄 수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실 수가 있지만 때가 되면 모든 관계는 끝이 납니다. 그러니 영원하지 않는 것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댈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어 주신 것은 가족과 가정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며, 혈육의 관계를 통해서 영의 부모와 영의 형제들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육신의 부모 형제들도 주님에게 하듯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된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 같은 하나님과 어머니 같은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큰 형님같은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참된 부모님이시며 형제입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영원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도와주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나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전교회 성도들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형제들이야 말로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형제들은 천국에까지 같이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형제들은 천국에까지 같이 가게 됩니다. 거기 가서도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2:28-30/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12제자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한 상에서 먹고 마시고, 12지파를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처럼 비전교회 성도들도 천국에 가서도 저와 함께 한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다스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이 왜 자신의 제자로 12명을 선택했을까요? 12명이 가장 이상적인 교제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많아도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서 깊이 있게 교제할 수는 없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많은 고객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친구관계는 12명 미만입니다. 더 이상은 친밀한 관계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12명을 제자로 불러서 훈련시켰습니다. 그리고 12명의 제자들 중에서도 핵심 멤버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렇게 세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대화를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성령님과 친구나 형님같은 예수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실 것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나 사람들과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형제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도 육신의 형제들은 언젠가는 이별해야할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아 붓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영원하지 않는 관계를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지 마십시요.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권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마귀와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교회와 멀어지고 목사와 교제권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과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일입니다. 시72:27/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음녀는 타락한 천사 즉 마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루시엘 천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시64:4/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했으며, 시72: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셨던 것들이 멀어지게 됩니다.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도 말을 하고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이것도 불만 저것도 불만 그래서 모든 것에 대하여 불평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나 이스라엘은 같은 인물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래 이름은 야곱입니다. 원래는 야곱(속이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음)이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는 이스라엘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날 밤에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했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 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야곱은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보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복을 약속할 때까지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굴복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붙들게 되어 있습니다. 차선의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는 사람은 절박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말 절박해 보세요. 하나님만을 찾게 되고, 열 일을 제쳐 두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살기로 작정하면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야곱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몹시 불만이 많았습니다. 뭐라고 불평합니까? 내 길은 하나님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다고 불평합니다. 즉 자신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고, 힘든 일들도 많은데 하나님은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사정을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 안계십니까? 하나님,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십니까? 하나님, 왜 내 기도는 외면하십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인생이 피곤합니다. 너무 지쳤습니다. 지금 폭염이 계속되니까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헉헉 거리면서 피곤해 하시는 분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혹이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호소하는 분이 계십니까?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불평 불만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너는 왜 나를 모르느냐? 너는 왜 나의 말을 제대로 안 듣느냐? 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서 28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불평 불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야곱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너무나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피곤함과 지친 인생은 하나님을 오해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 교회를 조금 다니다가 떠나신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와서 설교시간에 나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어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사는 것이 힘들고 피곤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육체가 지치고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야곱과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피곤하고 지친 인생은 하나님을 오해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피곤하지 않으시고 곤비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명철이 한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모자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능력이나 힘이나 지혜나 명철이 부족하거나 모자란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9절을 보시면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특징은 주시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받으시고 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행17:24-25/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것을 갈취해 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나 악한 자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주시기를 좋아하되 특별히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해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면 피곤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로해서 피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약 야곱처럼 하나님, 저는 요즘 너무 피곤해요. 인생이 너무 힘들어요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다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 즉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날마다 새 힘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곤함을 주시고 질병을 주시고 우리의 넘치는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려가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하면서도 피곤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앙망이란 카바라고 하는데 함께 꼬아서 묶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대망하다, 기대하다, 쳐다보다 라는 뜻입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을 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나와 하나님이 마치 새끼처럼 함께 꼬아서 묶이게 됩니다.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 옮겨 오게 됩니다. 그 순간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애3:25-26/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디림이 좋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곧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표현은 구약적인 표현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현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신약적인 방법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했고,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하나님은 더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며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안에 계시는 분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밖에 계신 하나님을 믿었다면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기만 하면 그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한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셔 드리는 순간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사시며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피곤함은 사라지고, 질병은 고침받고, 완전한 자유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순간 나를 둘러 쌓고 있는 수많은 적들과 방해의 세력들이 일제히 무너지고 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안에서 왕노릇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옛 언약 시대인 구약시대에는 언젠가 나에게 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렸다면, 새 언약의 시대인 지금은 나에게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아 계신 승리하신 예수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새 힘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새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온전케 하십니다.
사실, 피곤함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저보다 더 피곤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자신의 가정이나 자신의 문제만을 고민하고 걱정해야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도하기 위해서 앉아 있으려면 피곤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기도를 못하게 하려는 방해로 인하여 피곤하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피곤의 정체를 몰라서 피곤하면 좀 쉬어야지, 좀 자고 일어나서 기도해야지 하면서 피곤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서 어떤 일이 있으면 그 배후세력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왜 피곤하고 힘들지? 누가 피곤하게 하지? 그것이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아니면 부모님인가?
이렇게 질문하고 답을 찾으면 결코 피곤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도 나 자신도 부모님도 아니리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마귀가 나를 기도하지 못하게 하려고 피곤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합니다. 피곤해서 몹시 힘든 상황에서도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피곤을 향하여 떠나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며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새 힘이 공급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믿음으로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놀랍게도 피곤은 사라지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새 힘이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 힘있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저는 기도할 때 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직장생활이나, 공부할 때나, 가사일을 할 때나, 사업을 할 때 등등 어느 경우에든지 여러분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을 때, 저와 같이 해 보시면 여러분의 컨디션이 놀랍게 달라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러면 피곤은 사라지고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첫댓글 ♠ 홀로 앉으십시오
1. 사40:27-31절을 읽고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 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과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2. 눈에 보이는 세상이 가짜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4. 인생이 힘들다는 불평은 왜 생깁니까? 무엇 때문에...?
5.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6. 구약시대는 앙망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어떤 표현이 적절합니까?
앙망한다는 신약적인 표현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히12:2)
다시한번 읽으니 더 은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1.만드신 목적:우리와교제하며사귀기위해서이며, 죄의결과:자기자신이 하나님이되어 살아가기때문에하나님과의관계를단절시킵니다
2.잠시잠깐 동안만 있는것입니다
3.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것 곧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한다는것입니다
4.하나님에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곧 내길은 하나님께숨겨졌으며 내송사는 하나님의 눈에서 벗어났다고 불평하며 자신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고 힘든일들도 많은데 하나님은 그것을 들어주시지않고 내자신의사정을 몰라준다고오해하고 있다
5.피곤한자에게 능력을주시며 무능한자에게 힘을 주시는 본성이 사랑이시며 모든것을 나누어주시는 사랑의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바른관계를 맺으려면
하나님을 앙망해야합니다 곧 하나님을 쳐다보고 믿음으로 참을성있게 기다리는것입니다
6.영접하는자 곧 예수님을 내마음에 모셔드리는것. 내안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을 믿는것입니다 나와 함께 사시며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분이십니다
1.사람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그러나 죄의 결과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림.
2. 잠시 잠깐 동안만 있는 것이라는 뜻. 보이는 것은 모두가 잠시 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
3.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것.
4.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임.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오해한 부분 때문에.
5.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것. 곧 하나님을 쳐다보고, 그리고 참을 성 있게 기다리는 것.
6. 내 안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셔 드리는 것.
1.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며 사귀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2. 잠시 잠깐 동안만 있는 것이라는 뜻이며 보이는 것은 모두가 잠시 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3.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4. 자신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고, 힘든 일들도 많은데 하나님은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5.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며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는 분이시다.
6. 나와 함께 계시며, 내 안에 계시는 분인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드리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