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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왕 앞에 나타난 죽은 사무엘
사무엘상 28장 1-19절 / 1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3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13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14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16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블레셋 족속이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다윗이 사울의 박해를 피하여 자신이 거느리는 군사 600명을 거느리고 국경선을 넘어 마옥의 아들인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 망명하여 있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과 그 일행을 환영하고 가드의 성 안에 있는 집들을 내주면서 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자신이 왕궁에서 왕과 함께 살 수가 없으므로 지방 성읍 하나를 자신에게 줄 것을 청하므로 아기스는 이를 좋게 여겨 유다의 최남단에 있는 성읍 시글락을 다윗의 소유로 내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시글락은 유다 왕실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다윗이 블레셋 족속의 땅에 거주한지 1년 4개월 정도 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블레셋 족속의 땅에 거하고 있을 때 블레셋 족속이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에게 이 전쟁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다윗은 흔쾌히 그런 응하였습니다. 그러자 아기스는 다윗을 크게 신임하여 자기 곁에 두고 자신을 호위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사무엘이 죽어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된 지(삼상 25:1)가 꽤나 오래되었던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은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즉, 선지자가 없는 시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 사무엘이 죽은 지가 꽤 오래되자 그들의 마음속에는 선지자 사무엘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은“우리에게 이제는 선지자가 없다”라고 탄식하면서 선지자 사무엘의 죽고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죽고 없으므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없는 때와 맞물려서 블레셋의 침공이 있었습니다. 이는 선지자 사무엘의 죽음과 블레셋의 이스라엘 침공이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에 의해서 있게 된 것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있을 때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선지자 사무엘이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선지자가 없는 시대를 맞아 하나님이 그에게서 떠나 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행해지는 여호와의 전쟁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사울왕은 또한 한창 세력이 커지며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다윗을 시기하여 박해하는 상황에서 있었으므로 블레셋의 침공에 맞서 이스라엘을 구할 용사도 없었으므로 사울왕과 그가 통치하는 이스라엘이 겪는 암담함의 어두움은 더욱 심하고 커 보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블레셋 침공에 사울이 보인 처사는 그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나라가 쳐들어온다는 전령의 보고를 받고는 그는 이 전쟁이 무엇 때문에, 그리고 무엇으로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며 전혀 생각하는 바도 없었습니다. 그는 블레셋의 침공이 단지 이스라엘 주변 국가가 영역 확장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만 알 뿐이지, 사실은 이 전쟁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으로 하나님을 떠난 사울왕과 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공격하여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추호의 생각도 갖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이 죽고 없는 사울왕 때에, 그리고 사울왕의 곁에 다윗도 없는 때에 블레셋 나라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사울은 말입니다. 자신의 왕좌를 지킬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지킬 것으로 자신과 이스라엘로부터 떠나 있는 하나님을 찾아 자신도 이스라엘도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에서 여호와의 전쟁을 치러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할 방법으로 모색한 것이 자신의 손으로 없애 정리하였던 신접한 무녀를 찾아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어 자신이 어찌하면 좋을 것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찾은 것으로 여깁니다. 해서 사울왕은 엔돌 지방에서 무녀로 활동하고 있는 신접한 여인을 자신 앞으로 불러들이고, 그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무녀에게 불러내달라고 하는 죽은 사무엘을 보는지를 채근합니다.
사울왕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서 보인 처신은, 곧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게 하는 그의 행동은 그가 원하는 대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게 하는데 엔돌의 신접한 여인인 무녀가 주술을 외우며 갖고 춤추는 온갖 행동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무엘의 영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는 관심은 무녀가 사무엘의 영을 과연 불러낼 수 있는가? 라고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본문 그 어디에서도 무녀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냈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무녀는 말이죠. 단지 사울왕이 그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만을, 그래서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을 말해 달라고 할 때 처음에 땅속에서 올라오는 영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사울이 거듭 무녀에게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누구의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물을 때 나이 든 남자인 노인의 모습인데 선지자의 겉옷을 입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울은 그가 사무엘의 영인지를 알아차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무녀를 통하여 사무엘을 불러내고자 할 때 무녀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무녀는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내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무녀가 죽은 사무엘의 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의 영을 불려내서가 아니구요. 사울이 그러한 짓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죽은 사무엘을 그 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을 통해서 그에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은 사무엘을 통해서 그를 크게 꾸짖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사무엘을 무녀가 불러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울 앞에 사무엘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사울이 무녀를 통해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그 앞에 죽은 사무엘을 나타나 그로 하여금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서 죽은 사무엘이 사울왕 앞에 마치 산 자처럼 다시 나타난 겁니다. 이런 사무엘은 나타난 이후로 언제까지 계속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전하게 하신 말씀을 전달한 후에는 그는 다시 죽은 자로 돌아가 사울왕 앞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일도 하십니다. 구약에서 사렙다 과부의 죽은 아들도 그렇구요(왕상 17:17-24). 선지자 에스겔 때에는 전투에서 죽은 군대의 수많은 군사를 뼈에 살이 붙고 피가 돌며 생기가 돌게 하기도 하셨습니다(겔 37장). 신약에서 나사로를 비롯하여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구요(눅 11:1-44),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는 죽은 자의 무덤이 열리고 많은 사람이 무덤에서 일어나게도 하셨습니다(마 27:52).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졸아 이층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한 청년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행 20:7-12).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죽은 사무엘을 사울왕 앞에 나타내기도 하셨습니다. 이 경우는 죽은 사무엘을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무엘을 사울왕 앞에 나타내시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왕이 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녀가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냈는지, 죽은 사무엘의 영이 과연 사울왕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하여 설왕설래하며 그 시시비비를 논합니다. 대체적으로 (1) 죽은 자는 그의 영이 천국이나 지옥에 가 있기 때문에 그 영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으므로 무녀가 불러낸 영은 죽은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귀신의 영이라고 봅니다. 또한 하나님은 신접한자나 악귀들을 용납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그러한 하나님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실 리가 만무하다고 봅니다.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 사단의 세계에서 신접한자를 이용하여 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것은 실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인 귀신을 마치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는 일을 한 것처럼 가장하여 위장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귀신의 장난이라고 봅니다. (2)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주장도 있는데 무녀가 자기가 보고 있는 선지자의 겉옷을 입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설명하고, 사울은 그가 죽은 사무엘임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을 통해서 무녀가 보고, 그래서 사울왕 앞에 나타난 것은 사울왕이 사무엘인 것을 알아차렸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은 사무엘이라고 단정하면서 이것은 하나님이 신접한 여인인 무녀에게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도록 특별히 한번 허락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 번 있게 하신 특별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것은 무녀에 의해서 있는 귀신의 장난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이번의 경우에만 특별히 허락해서 무녀를 통해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 모두 아닙니다. 죽은 사무엘을 불러낸 자는 사악한 마귀요 귀신이 아니며, 신접한 여인인 무녀도 아닙니다. 사울왕이 신접한 여인인 무녀를 통해서 불러내고자 한 죽은 사무엘을 사울 왕 앞에 나타내신 분은 사울왕이 찾아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울왕이 무녀를 통해서 불러내고자 한 죽은 사무엘을 무녀가 아닌 하나님이 불러내신 것은 왜인지요. 하나님이 이처럼 죽은 사무엘을 정작 죽은 사무엘을 사울왕 앞에 나타내셔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사울왕에게 죽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죽은 사무엘이 사울왕 앞에 나타나서 그가 사울왕에게 무슨 말을 하여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을 사울왕이 듣게 하였는가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죽은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전한 말은 무녀가 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무녀가 전해줄 수 있는 거짓된 예언을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울왕에게서, 즉 일찍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시켜 버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기르는 가축을 모두 죽여 없애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울을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블레셋 족속의 손에 붙일 것이니 사울이 내일이면 그의 아들들과 함께 죽어 죽은 사무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무녀를 통해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 마치 그의 영험한 효력으로 자신과 이스라엘을 지킬 수 있는 듯이 생각하는 그의 어리석음을 사울에게 죽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미 그를 떠나셨으며, 그에 대한 것으로 결코 그가 살지 못하고 죽음으로 망하게 될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에게서 무당, 무녀들을 추방함으로써 이스라엘 땅에서 이들이 발을 붙이고 활동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28:3). 하지만 이것은 단지 형식상일 뿐이요, 정작 국가적 위가를 맞이할 때 그가 의지하고자 한 것은 무당, 무녀요 신접한 자를 통해서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처신이 결코 그와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무당, 무녀요 죽은 선지자를 불러내어 그로 하여금 방패막을 삼고자 하는 따위의 무속적인 미신은 결코 자신과 나라를 구원하는데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이방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본성에 자리하고 있는 죄의 힘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그를 그의 아들들과 함께 죽게 될 것을 알려 줌으로써 이스라엘에게서 생명의 주는 무속적인 미신에게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주가 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울왕이 행했던 이러한 처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서 실은 하나님이 떠났으므로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자의 특징을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무런 생명 없는 죄인 것을 잘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특징을 보고 알았으므로, 우리가 만일 사울왕이 행했던 것처럼 그렇게 산다고 하면 그것은 악한 죄인 것인지를 알고서 그러한 행동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 우리가 가져나가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지 사무엘을 통해서 하셨던 말씀에서 하나님이 진정 좋아하시는 것은 많은 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 그분을 따름에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생명의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언제나 살도록 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