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를 아는가?
한국에 주석중이신 청화淸華큰스님을 찾아뵈었을 때였습니다.
인사를 올리고 나니 하시는 말씀이 자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아는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새삼 무슨 말씀이신가 ‘일체유심조’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말은 불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말인데 왜 물어보시는가?
잠시 머뭇거렸더니 그러면 일체유심조를 확신하는가? 또 멈칫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그 깨달음의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
화엄경이라 합니다.
그 화엄경의 요지가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우리 인간뿐 아니라 우주만유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을 관찰하니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느니라’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바로 법성, 마음, 불성을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음이다 법성이다 불성이다 하는 용어는
모두 한 뜻으로 우리 존재의 근본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말로는 본체本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는 마음으로 되었다. 모든 존재는 다 불성이 있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부처님을 믿고 받들며 그 가르침에 따른다는 제자들,
우리 불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알고 있는가? 또한 얼만큼 믿고 있는가?
제 스스로를 돌이켜 보면서 다시금 자신의 점검을 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 뜻대로 마음대로 오고가고 먹고 말하고 살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어지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번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우리는 현상세계 물질세계에만 너무 의존합니다.
그러나 바다의 표면은 파도이고 물거품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현상세계 물질세계 우리의 인생은 꿈처럼 허깨비처럼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겉마음의 현상입니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을 쓰면서 마음대로 안된다고 속상해하고
한탄하며 원망까지 하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하는 것은 겉에 뜬 마음입니다.
융 심리학에서도 잠재해있는 무의식이 인생의 앞길을 좌우한다 하였습니다.
나아가 개인무의식보다 공동무의식이 더 큰 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깊은 마음에서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라 하여도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우리는 공업중생共業衆生이기 때문입니다.
“보리달마 존자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와서 이심전심의 불법을 전합니다.
이로부터 중국의 초조로 불리는 달마대사는 ‘성범聖凡이 동일진성同一眞性’이라고
부처님법을 요약했습니다.
누구나 동일한 참된 성품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참된 성품으로 살고 있는지 거짓 나가 아니고
참된 나로 지내는지, 참된 성품 참된 나의 발견과 그에 따른 삶이라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쓰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지,
우리는 겨우 감각적인 느낌과 추리하며 상상하고 헤아려 판단하는 겉에
뜬 물거품 같은 마음으로 원하면서 소원대로 성취가 되지 않는다 할 것인가?
결정코 변함이 없는 정해진 마음, 결정신심決定信心,
어떤 경우에도 물러섬이 없는 불퇴전의 마음, 본래마음, 근본마음,
청정무구의 순수한 마음, 부처님마음이라면 일체를 이룰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이제는 대답할 것입니다. 물어보시는 말씀이 끝나기 전에
‘예, 일체유심조를 압니다. 100% 확신합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이 말은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슬프고 짜증나는 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편안해 지는 법이다.
그러나 이 법구(法句)에는 논리적 결함도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 마음이 저 뜰앞의 소나무를 만든 것은 아니잖는가.
하늘의 흰구름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었다"는 표현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분명히 우리들 마음이 이 세상의 객관대상을 만들어 낸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마음에 달려 있다.
유식(唯識)에서는 일수사견이라는 비유를 든다.
같은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데에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은 물을 보면,
누구나 마신다든지, 발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옥의 중생들은 물을 피고름으로 본단다.
물고기는 그냥 사는 집일 따름이다.
즉 물이라는 객관적 형태를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천차만별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낙엽 지는 호숫가에서 첫사랑을 속삭였던
이는 물만 보면 다정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솟구친다.
즉 물에 대한 객관적이고 교과서적인 해석은 존재할 수 없다.
물은 결국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미움에 시달리는 이가 있다면,
옛 기억을 떠올려 보자.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고통의 시간들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모두 부질없는 번뇌망상이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지금의 현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따름이다.
문제는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 하는 상념의 차이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마찬가지이다.
신문 사회면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은 저주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면으로 보면, 여전히 세상은 따스하다.
문제는 어느 쪽에 액센트를 두는가 하는 점이다.
시끄럽고 말 많은 세상을 보면서,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게 하려면 불교가 바로 서야 한다.
그래서 세상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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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 맞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마음의 염력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우리들이 세상보다 높게 서려면 그 모두에게서 존경받는 위치에 서 있어야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_()_
낯익은 말인데 좀 새롭지요...
_()_ _()_ _()_
관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 담엔 빼먹지 말아주세요 흑흑흑...
수담님. 여기 휴지... 울지마시고...
좋은글 올려주시는 것만 읽어도 공부가 되겠네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좋은글 나눠주셔서...
마음에 와 닿아야 좋은 글인데....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요 감사합니다 _()_
반갑습니다.
수담님은 마음의 도가 깊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좋게봐주시니 몸들바를 모르겠네요... 수련잘 되시죠?
사람은 속사람 과 겉사람이 있지요 속사람은 마음을 가르키고 겉사람은 육체을 가르키는데 그마음자리을 찿기위하여 참선을 하고 명상을 하지요 그 마음 자리을 찿아 해탈 윤회의 굴레을 벗어 불생 불멸 영원한 생명의완성을 위해서 용맹 정진 하는 것입니다 무아의 경지에서 마음을 알수가 있고 깨달음을 얻게됩니다
주역으로 풀면 머리는 건삼련 하늘 마음은 땅 곤삼절 하늘과 땅이 만나지 못하여 천지 비쾌라 그래서 사람은 윤회의굴레을 끈고 해탈을 하여야만 불생불멸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슴니다 마음자리 을 완성 하면 천지 비쾌가 바뀌어 지천태쾌로 완성하면 해탈 할수있습니다
수없이 만은 선지식 고승께서 그마음자리 일체유심조 찿기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참선 수행을 하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