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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13) : 장자여! 부활의 능력을 믿으라!”
+ 본 문 : 마가복음 16장 1절 - 8절 (신약성경 84쪽)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지난 주일에 여러분에게 “장자여! 눈물의 능력을 가지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눈물의 능력을 가지며 / 살아가리라! / 아멘!”
지금 우리는 예수 부활의 영광과,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하는 부활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장자여! 부활의 능력을 믿으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를 따라서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 살아가리라! / 아멘!”
어떤 부부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인이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장례식을 하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데, 남편은 굳이 부인의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하여 장례식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부인의 장례식을 예루살렘에서 하게 되면,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자기 부인이 죽기를 원했으면, 다시 부활할까봐서 예루살렘에서 장사를 할 수 없었을까요?
물론 웃자고 하는 죠크이니까, 괜히 옆에 있는 남편 째려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남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편 되신 분들, 그런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아내를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새벽예배를 시작하면서도, 그리고 이렇게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를 시작하면서도,
모든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사도신경으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부활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늘 신앙 고백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는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 받으려면 반드시 피 흘림의 대가가 치러져야 하는데, 그 대가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희생양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자신의 사랑을 십자가로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자기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로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요일 4:9)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향한,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로마서 5:8)
이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 부활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무덤 속에 가두었으나, 사망권세가 예수님을,
붙잡아 놓을 수도 없었고, 가두어 둘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예수님을 결코 붙잡아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에, 죽음이 붙잡아 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생명의 신앙입니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명사 신앙이 아니라, 동사신앙입니다.
그 어떤 좌절과 절망 상태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살아나고, 치유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축복입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라는 곳에 갑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장사 지낸 동굴 무덤입니다. 성묘라고도 하고 정원무덤이라고도 합니다.
1893년 영국의 고든 장군에 의해 발굴된 그 무덤의 출입문에, 이런 감동적인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 예수 그는 여기 있지 않다. 예수 그는 risen 부활하셨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무덤에 묻혀 계시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독재자들은 죽어서도 그들의 시신을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어 모셔놓고, 추모하게 합니다.
러시아에 레닌의 미라가 있고, 중국에 모택동의 미라가 있고, 베트남에 가면 호치민의 미라가 있고,
당연히 저 이북에 가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라가 있어, 수많은 인파들이 구경하거나 추모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부활하셨기에 비어 있고, 부활하셨기에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찬양합니다. 찬송가 160장 후렴 부분입니다.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견고한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합니다. 절망적인 죽음도 몰아내는 놀라운 능력으로,
예수 부활을 믿는 우리를 도와줍니다. 그 어떤 시련이나 좌절도 이기게 합니다. 승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두움과 절망과 죽음을 몰아내는 능력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는,
저와 여러분 모두 그 어떤 좌절과 절망 상태에서도 일어나고, 살아나고,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그 어떤 장애물도, 거뜬히 제거해주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 악한 사탄마귀의 공격 앞에서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노진희 작가가 쓴 이런 의미 있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복싱선수들이 펀치가 세서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맷집으로 이긴다.”
이 말은 유명한 류승완 영화감독이, 영화감독 지망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든지 고난과 실패와 좌절이 있습니다. 때로는 피투성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 버티게 하고, 이기게 만들어 주는 맷집을 키워주는 훌륭한 스승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로 고난과 실패와 좌절을 견디게 하고, 버티게 하고, 그래서 마침내,
승리하게 하는 버팀목은 예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부활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견고한 신앙으로 잘 버티면, 최상의 결과가 따라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믿기에, 그 어떤 시련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잘 견뎌냅니다.
그 어떤 고난과 실패와 좌절에도 끝까지 버티고 견딥니다. 그래서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맷집으로 이깁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best - 최고를 주시려고, 잠시 test - 시험하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십자가와 예수 부활의 능력이라는 맷집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모두 견고한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희망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는 곳마다 “흰 옷 입은 천사” 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6장 2절과 5절 말씀을 연결해서 보면, 부활의 아침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일찍이 해 돋는 부활의 아침에 -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이것은 부활의 승리와 희망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해 돋는 아침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절망에서 부활이라는 새 희망을,
우리에게 주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새 아침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모든 것이 회복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산 희망” 이라는 역동적인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도 베드로는,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힘차게 재기한 사람답게, 산 희망을 갖고 살아가자고 외쳤습니다.(벧전 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우리가 찬양해야 할 우리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시므로, 우리가 모든 죄 사함 받았고,
예수님께서 모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살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두운 절망상태에서도, 우리 모두 희망의 무지개를 그리며 살아갑시다.
지금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무덤 문을 가로막고 있었던 큰 바위덩어리와도 같은 질병, 시험 등등,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문제들과 내 인생의 방해물을 밀어제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생활과 사업현장이 아무리 치열해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시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세 가지의 성공하는 좌우명이 있는 것을 봅니다.
“첫째,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 반드시 끝까지 해낸다. 셋째,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처럼 많이 넘어져본 사람이 빨리 일어나는 법도 압니다. 그 방법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흘리는 눈물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사망권게 이기신 예수 부활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예수 십자가의 절대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의 능력도 있습니다.
예수 부활의 능력도 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믿기에 능력은 기적이 됩니다. 축복이 됩니다.
고난과 절망과 죽음의 고비에서 반드시 건져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새 희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의 역동성입니다. 이것이 눈물의 역동성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역동성입니다.
특별히 부활이라는 말은 ‘일어난다. 살아난다. 재기한다. 더 나아가서 올라간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가게 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일어나게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게 합니다. 그 어떤 내리막길 인생에서도 다시 뛰어올라 높은 곳에 올라서게 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모두 힘찬 새 희망의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그래서 저를 따라 선포하며 크게 외치시기를 원합니다.
“나는 십자가의 능력을 믿습니다. / 나는 눈물의 능력을 믿습니다.”
“나는 부활의 능력을 믿습니다. / 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