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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유효하다: 확장과 공감으로]
이훈의 발표(2020년 2월 1일, 철학아카데미에서)
2020년 2월 21일 토요일 철학아카데미에서 발표한 이 작은 글은, 지난 해 이훈의 <“이관용과 이종률” 六思工 발표문(2019), 16쪽>을 4쪽으로 새로 요약 정리하면서, 그동안 자료를 섭렵한 것을 몇 가지 첨가하였다.
올해 그가 강연하기 시작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본질이라는 개념이 「토 티 엔 에이나이(to ti ên einai, τὸ τί ἦν εἶναι)」라고 하는데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박홍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시아(1988)」(형이상학 강의 2: 박홍규전집 3, 민음사, 2004, pp. 11-77.)에서 생각해본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이 통일된 것[<tode ti(여기 이것)>]을 <ousia(존재, 실체)>라고 해. 통일된 전체인 이것을 범주론에서는 <prōtē ousia>라고 해. 제1존재(first being). 가장 으뜸된(kuriotata)의미에서의 존재란 뜻이야. 여기에서의 통일의 계기를 <eidos(형상)>, <toi ti ēn einai(본질)>라고 해. 그리고 유(類)개념을 <deutera ousia(제2존재)>라 불러. 그런데 형이상학편에서는 형상(eidos)이나 본질(toi ti ēn einai)을 제1존재라고 해. 따라서 왜 제1존재가 두 개 있느냐는 문제가 생겨. .. 어째서 한편에서는 전체인 개체를 <ousia>라 하고, 또 형상을 제1존재라고 하느냐? (1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개체를 또 <tode ti(여기 이것)>이라고 해, .. <atomon>은 라틴어로 <individuum>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도 쪼갤 수 없다는 뜻이야. ... 그리고 또 <hekaston(각각)>이란 표현도 있지. <ta kath’ hekasta>, 즉 개별자라는 말도 써. (12)”> 박선생은 강의에서 자연학과 더불어 형이상학을 읽고 범주론을 볼 것을 권했다.
혁명론에서 생산양식에다가 생활양식을 보탤 것이라는 설명은 흥미롭다. 벩송의 모두스비벤디(modus vivendi)를 번역할 때, 생물진화에서 생명이 물질과 타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타협안으로 번역했었다. 그런데 인간이 모인 사회에서 삶의 보존과 자기 조절을 위한 양식으로 생활양식이라고 할 것인데,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지칭하는 생산양식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삶의 양식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생산관계에서 자연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의 활용을 달리하는 데,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로 바꾸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의미를 확장하여 생존 양식(modus vivendi)라고 해도 다음 세상은 저세상이 아니라 여기 지구(토지) 위에서이며 생명체의 영원회귀는 토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줌의 흙, 한줌의 재. 플라톤이 말하듯이 철학하다는 죽는다는 것을 배운다고 했다. 영원이 아니라 이질 반복을 받아들이며 “자연에 따라서” 즉 “숙명에 따라서” 살다 간다.
다른 한편, 프랑스 철학과 독일철학의 차이를 일반적으로 실재론과 관념론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라틴철학과 앵글로색슨 철학의 차이를 보면 전자에서는 인간문제를 문화론으로 보는데 비해, 후자에서는 문명론으로 보는 것 같다. 후자에서 인간의 삶의 편리, 편안 그리고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이는 다른 생명체에 비해 높다는 것과 다른 토양의 삶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 같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또는 지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지구를 피폐하게 하면서까지 인간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 아닌가? 생태의 문제는 이겨낸다는 과학적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지위가 보장되는 것이라기보다 생명체들간의 조화와 화해를 통해서 인간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후자의 견해에서 생산양식에 생활양식을 보태야 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생활양식은 삶의 양식으로 바꾸어보면 지구와 더불어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생명체로서 개체가 자기의 성찰과 완성을 다시 사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53MKD)
*목차**
발표문에 제명(題名)이 없었고, 항목들은 아래와 같다. 그는 설명을 많이 했다. 그의 특유의 논리적 연결과 깊이와 넓이는 현장에서 들을 때 느낄 수 있다.
1. ‘혁명’이라는 문제
1) 맑스
2) 헤겔
3) 山水(산수) 이종률 1902-1989.
2. 이관용
1) 인간론
2)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3) 변증법적 유물론 개조.
3. 활성 유물론
1) 창발론(Emergentism): “헤겔”, “유물론 비평” - 1929
2) Karl Mannheim 1893-1947 <Ideologie une Utopie, 1929>
<イデオロギー論> 社會科學硏究會譯[編], 同文關, 1931.7, 369p. [책4권 발췌번역]
3) 동일론
알뛰세
4) 이관용과 山水(산수)
※ 이관용(1941-1933)과 벤야민(1892-1940)
# 내용에 관하여 (내가 자의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1. ‘혁명’이라는 문제
[[ 혁명이 증발하였던 것은 소련 붕괴(1991) 이후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회민주주의로 지향하면서 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빈부격차 소수자문제 등으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사유재산의 문제이다. / = 루소는 불평등은 분업과 소유문제로 보았다.
맑스는 경철 수고 1844와 공산당 선언문(1848)에서 혁명의 문제에서 인성의 문제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소멸로 가기전에 불가피하게 사회주의를 인정하였다.
헤겔은 소유문제에서 ‘사유제 폐지’와 ‘유지’ 사이에 이율배반을 보았다. 소유문제는 공동체 발달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고, 정신현상학에 비추어 보면 객관정신의 발달과 더불어 절대정신의 발달(공동체 문화)이 도래해야 한다고 보았다. 객관정신의 인륜공동체의 건설에는 안티고네를 참조할 수 있다.
산수 이종율은 1928년에서 1935년 사이의 우리나라 공산주의 운동에서 ML주의의 부작용을 보았다. 인성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인종이 아닌 민족, 신민이 아닌 인간에 대해 성찰하면서 정(正)인간론을 제시하면서, 민인(民人)으로서 정인간은 자의식을 체득하고 이해하여 자율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민인혁명론’을 내세우면서 이관용을 재해석하여, 방법론으로 자연변증법에 대응하는 “활성 유물론”을 제안한다. 이론으로 위의 인성론에 사적 유뮬론을 덧붙였으며, 결국에는 실천으로서 민인혁명을 제시하였다.
산수는 세계혁명의 시대에 민족 건양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
2. 이관용 (1891/4-1933)
[[ 이관용의 간략한 생애의 소개를 먼저 하였다. 그는 1921년 스위스 쮜리히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1923년 연희전문에서 1926년까지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27년에서 신간회 창설에서부터 사회운동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아깝게도 1933년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관용은 스위스 박사학위 “Das Wollen, als Gtundtatscache des Bewußtsein(1921)”, 즉 “意識의 基本事實인 意志”에서, 智情意란 의식에서 동작의 세 가지 방면이며, 의지는 생활상태의 근거이다. 주체적 生은 動라을 의식하는 것이라 한다.
그는 귀국하여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1922년 10월 부터 “사회의 병적 현상”을 <동아일보>에 전13회 연재하였다. “칼 막쓰는 그 공산당선언문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제도를 비난하고 ... 현존 사회방법을 변경해야만 하는 민족의 내발적 요구가 사회주의다.” [“내발적 요구”라는 개념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현대 일본의 개화〉(現代日本の開化, 1911년)것이라 한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에서 강의하다가, 아마도 종교학교와 뜻이 맞지 않아서 나와서, 당시의 좌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려는 생각으로 신간회에 가담하였다. 당시 신간회 기관지격인 <현대평론>에 글을 쓴 것으로 추정한다. 그 글에서 유교의 망상과 외래 개념의 오류를 넘어서 새로운 공동체의 활성 또는 분출(창발)을 표현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관용은 1929년에는 <조선일보>에 “헤겔과 그의 철학” (13회)와 “유물론 비평의 근거”(3회)를 연재하였다, 전자에서 자연이 아우프헤벤(지양)하여서 순수 정신으로 발전하다고 하고, 절대정신에 이르는 것도 아우프헤반에 의해서라 한다. = 여기서 아우프헤벤의 설명이 들뢰즈의 탈영토화와 유사함을 느꼈다. 자연(본성)의 자기에 의한 자기 출현(une émergence, 창발)은 앞의 연관을 다른 연관으로 발전(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후자에서 유물론들의 성격들을 설명하였는데, 당시의 뷔흐너(Eduard Buchner, 1860-1917)의 생화학적 견해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쓰다가, 광주학생운동과 연관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있으면서 중단되었을 것이다.
출옥 이후에, 흥미로운 점은 1932년 <중앙일보>에 <스피노사와 그의 思想>(7회) 연재하였다. = 이 해는 스피노자 탄생 300주년이다. 벩송도 네델란드에 기념 학회에 프랑스 철학회 대표로서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글에서 스피노자가 현대 운동의 무기를 제공해 줄것이고, 또한 그를 변증법적 유물론의 선구자라고 했다.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同一論的 一元論으로 보았다.
그리고 1933년 7월에 창립 철학연구회는, 그해 <철학> 1호 발간하였고, 아마도 다음해에 투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글을 볼 수 없다. 그런데 1934년의 김두헌(金斗憲, 1903-1981)에 따르면 “그가 유물사관에 관심을 가졌고, 그 근저에는 심리학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하였다.]]
3. 활성 유물론
[[ 이관용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에 관심으로부터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통합에로 가는 관점을 찾은 것으로 논자는 설명한다.
논자는 창발론(Emergentism)에서 찾은 것으로 본다. 이 창발론은 생기론과 유사하며 라이프니츠의 살아있는 힘(vis viva, “living force,”)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유물활성론’이라는 개념은 산수의 1978년 회고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논자의 추측이이라면서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e Utopie, 1929>가 나왔으며, 일본에서 <イデオロギー論> 社會科學硏究會譯[編], 同文關, 1931.7, 369p. [책4권 발췌번역] 이 있는데, 이관용은 원문을 읽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남철(南哲)이라는 필명으로 <批判>지에 “입장의 문제와 이데올로기” 1, 2가 1932. 5, 6에, 그리고 “이데올로기론”을 1932. 12월에는 내용은 삭제되었으나 논문제목이 실렸다.
논자는 참조로서 사적 유물론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프랑스에서 알뛰세(Althusser, 1918-1990)가 헤겔대신 스피노자를 읽었으나 스피노자에서는 변증법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 = 스피노자는 정반합이라는 구조가 아니라 권능의 발현(emergence)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 물질의 동일론에 대한 해결로서 역사의 법칙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논자는 새의 진화를 설명하였다. 그러고 나서 유물론(과학적)적 재구성(물질-로고스)와 주체적 실천의 과정(정신-아페이론)의 측면을 상호작용으로서 창발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이제 산수는 이관용을 수용하여 민인혁명론을 모색한다. 먼저 방법론으로 유물변증법 대신에 활성유물론을 재해석한다. 그리고 사적 유물론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에다가 생활양식을 보탠다. 논자는 맑스의 도이취이데올로기의 생활양식일 수 있다고 한다. 산수가 변유(활성론), 사유(생산양식)가 과학적 유물론이라는 측면을 이어가기 위해서, 생산관계의 변혁으로 문화적 실천을 보태어서 “생활양식”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생활양식은 문화론인 셈이다. = 들뢰즈 측면에서 보면 문화론은 차이의 변증법이 아니라, 차이의 세분화 창안(창발)에 속한다. 이 점을 주목하면 자유와 평등의 문제거리를 자아의 완성(이중열정의 실현)이라는 인간 본성의 문제거리로 나아간다. 결국 소크라테스 이래로 욕망의 실현으로 영혼의 자기완성으로보면 문화론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사적유물론의 생산양식이론은 철과 전기(전선)의 시대라면, 생활양식과 실행론은 규소와 빛의 흐름(눈)의 시대가 아닐까 한다.
※ 논자는 이관용(1891-1933)과 벤야민(1892-1940), 만하임(1893-1947)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맑스의 사적 유물론을 만하임은 상부이데올로기 만큼이나 이데올로기 일 수 있다고 하고. 벤야민 기술시대의 생활상에서 달리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며, 이관용의 활성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하여 생상양식에 생활양식을 보탰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5:27, 53MKC)
***스탈린의 대숙청은 1937년과1938년에 있었다.
부하린(Nikolai lvanovich Bukhalin, 1888-1938) 소련의 혁명가, 정치가. 그는 소련 공산당 내에서 탁월한 이론가, 저술가. 한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경제 정책에 반대하다가 예조프 시치나 때, 반혁명 분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1937년-1938년 스탈린의 대숙청이 있었다.
일본공산당 창립 멤버였던 사노 마나부(佐野學)가 1933년 감옥에서 전향성명을 발표했다. 사노는 일본 공산당이 스탈린의 소비에트 국제공산당을 맹종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쳐서 탈스탈린으로 나간 카프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루카치 죄르지(Lukács György, 1885-1971) 현대를 대표하는 헝가리의 문예 사상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사상가이다. 자아비판하고 스탈린 치하에서 살아남다.
**새의 날개(심장과 폐)와 부리(이 없는 먹이 구함)
*유자명(柳子明, 류자명, 1894-1985)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 남과 북에서 유일하게 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다. 본명 유흥식(柳興湜), 본관은 문화, 호는 우근(友槿)이다. 저서로 회고록 《나의 회억》(1984)이 있으며, 전기로는 《행동하는 지식인 류자명 평전》(원제 《불멸의 지사 류자명 평전》)(류연산 지음, 충주시 예성문화연구회, 2004년)이 발간되었다. 오랫동안 류자명 선생을 기록했던 중국의 한 여기자는 '훈장을 단 원예학자'라는 책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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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프랑스 혁명에서 인민의 자유를 너머 멀리서 바라보면서 인간의 정신이 신의 인격에 이를 것으로 만든 또 하나의 토마스 주의자로 철학을 하였다. 그는 프러시아 통일의 영광을 만들기 위하여 루터파 교리에 맞추어 신의 절대성을 강조한 근대판 교부 철학자이다.
1775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스위스 바드라가츠) 독일의 철학자이다. -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로 불리기도 한다(발터 슐쯔). = 자연철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헤겔보다 다섯 살 어리지만 23년을 더 살았으나, 그는 당대 젊은이들의 헤겔의 영향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한다. - 신칸트학파의 등장은 국가주의의 새로운 성직자역할을 하게 되면서 헤겔의 지위를 강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유태인 출신으로 독일인이다. 인간의 자의식이 자유의 절대성을 확립하기보다, 사회라는 공시태가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역사적으로 자유를 점점 더 실현한다고 보았다. 이 공시태를 노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생산양식이라고 한다. 이 양식의 최종은 공산주의 양식이다. 인간 본성자체가 이런 변화와 발전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루소 다음으로 낙관적이다.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자연주의 전통에 선)인간론이다. 경제학 철학 초고(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1933년 출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57),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59)
1859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폴란: Ludwik Łazarz Zamenhof, 에스페란토: Ludoviko Lazaro Zamenhof(o)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1859-1917) 에스페란토를 창제한 폴란드의 안과 의사이다.
1860 뷔흐너(Eduard Buchner, 1860-1917) 독일 화학자, 생화학자. 1907 노벨 화학상 수상.
1867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게이오 3년(1867년)-다이쇼 5년(1916년)) 일본의 소설가, 평론가, 수필가, 영문학자. 본명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이다. 평론집 〈현대 일본의 개화〉(現代日本の開化, 1911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등의 작품이 있고, 모리 오가이와 더불어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로 꼽힌다. /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강상중(姜尙中, 1950) 저/김수희 역, AK(에이케이 커뮤니케이션즈), 2016년 07월 10일 // 일본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망하고 메이지의 성행을 주목하라; 에도시대가 가고 도쿄시대에 주목하라.
1894 이관용(李灌鎔, 1891/4-1933)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부위원장으로 김규식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의 한국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한국사회당 대표로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도 참여했으며 구미위원부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1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은 이관용(李灌溶, 李瓘鎔, 李鑵鎔, 李冠鎔, 李灌龍) 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1892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 유대계 독일인. 맑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맑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1893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 헝가리 태생의 사회학자. , 1930년에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1933년 나치 정권 수립과 함께 그의 사상 경향 때문에 독일에서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e 1929)
1902 산수 이종률(1902(5?)-1989)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
1903 김두헌(金斗憲, 일본식 이름: 鶴山憲, 1903-1981)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윤리학자이며 교육인. 호는 예동(汭東). 1945년 경성대[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주임교수.
1918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1923 서도원(徐道源, 1923-1975) 경남 창녕,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인혁당 사건 희생자. 2007년 1월 23일 32년 만에 무죄 선고.
1924 도예종(都禮鍾, 1924-1975) 대구, 교육자, 정치인, 기업인이다. 상주고교 교사, 대구대학 경제학과 강사,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경북간사장 삼화토건 회장, 2차 인혁당 사건, 사형(향년 50세)
1934 하상연(河相演. 1934-2000) 경남 하동, 부산대 정치학과, ‘민족문화협회’ 업무주관,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결성,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도예종과 청년모임을 같이함, 『자주 통일』의 편집장. 동생: 하일민
1937 이수병(李銖秉, 1937-1975) 경남 의령, 1953 부산사범학교 입학, 1956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입학 민족청년동맹(민민청) 합류, 1971 경락연구회. 2차 인혁당 사건, 사형.
1940 하일민(河一民, 1940-) 경북대학교대학원 철학 박사, 부산대 철학과 대학교수,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1941 윤노빈(尹老彬, 1941-) 강원도 원주 신림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독일 프랑크프르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 부산대 교수, 김지하와 함께 장일순 아래서 헤겔 현상학을 읽다. '신생철학 1974'. 1982년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 참조: 나의 스승 윤노빈에 대한 기억-이병길님 홈피에서
1953 이훈(李薰, 1953-) 부산, 경남고, 서울대, 전 경남대 교수, 문화/기술철학 전공.
(7:41, 53MKE)
***참고로 지난해 미발표 논문의 목차이다.
“이관용과 이종률” 六思工(육사공) 발표문(2019)
- 이훈(1953-): 서울대 철학과, 경남대 철학과 교수 엮임.
1. ‘혁명’이라는 문제
1) ML 주의
2) Hegel
3) 山水 이종률
2. 사회적 공간
1) 場(field)
(1) chora 장
-> chora 장은 apeiron 공간
(2) topos 장
-> topos 장은 logos의 공간
※topos를 다루는 정치기술 topica(변증술), rhetoric(수사학)
2) 사회영역
(1) 생활 영역
(2) 정치 영역
①,
②,
③ c.s.의 정치(합의제) vs 숭고(脫 c.s.)의 정치(혁명) [common sense]
3) 이미지들; 사진과 목소리
<사진1> (1919년 8월 초: 미국행 사진): 이관용, 조소앙, 황기환, 여운홍, 김규식
/ 여운홍 <삼천리> 10 (1930. 11)
“巴里강화회의 갓다가”
“友邦巨頭 會見記 – 中國外交部長 王正廷君”
金奎植博士, 李O鎔博士, 趙鍾殷(號 素聲) ※素昻 趙鏞殷, 李O鎔=李灌鎔(당시 감옥)
<사진2> 1907 丁未 의병; 매켄지(영국 기자) 촬영
/ 丁未7적의 1; 학부대신 이재곤[이재완(이정응의 양자, 고종의 사촌)의 동생, 일제시대 자작]
/ 황기환과 매켄지(당시 하원의원); 1920년 대영제국 한국친우회 조직.
이관용과 황기환; 김규식 이후 외교활동 황 중심, 이(박사학위중) 보조
1919.8 이후 파리, 1921.7(강화회의 종류)이후 미국
/ 이관용의 증언; <동아일보> 1923.5.22.
<사진3> 1920년 7월 코민테른 2차 대회 ‘민족, 식민지 분과’; 레닌, 박진순.
/ 山水와 이관용 대담
1, 1978년 원고.
2, 1982 저술 <자료집 2> 다
4) 담론들 [ ]
(1) 사진1 -> 한국과 미국 관계; 1919와 2019
<한겨레> 특파원 칼럼 2019-02-14
(2) 사진2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과 이병헌, 고종의 태극기
(3) 사진3 -> 윌슨 or 레닌의 민족 자결주의
(4) 메타담론; 3.1 운동이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혁명이란 무엇인가?
3. 이관용 1891-1933
1) 민족적 생활양의 문제
2) 신간회
(1)
(2)
(3) 통일전선의 사상
① 안재홍; 민족주의 + 사회주의
② 이관용; 민족주의 = 사회주의
3) 유물론적 재해석
(1) 물질과 의식
① 1929 “헤겔과 그의 철학”, “유물론 지평의 근거” <조선일보>
헤겔의 aufheben 강조, ..... 현대의 창발론(Emergentism)
② 유물론의 바탕위에서 유심론 강조
(2) 이데올로기와 과학
① 남철(=山水) “입장의 문제와 이데올로기” <비판>(1932.5, 6)
; 카를 만하임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e 1929)
이관용의 초고를 산수가 정리한 듯
이관용은 “스피노사” 논문 발표.
② 남철(=山水)
③ 1932. 11. “스피노사와 그의 사상” <중앙일보>
“스피노사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선구자이다.”
{{이관용(李灌鎔, 1894-1933)이 활동이 끝난다}} - {{}}: 내가 첨가한 것이다.
4. 산수 1902(5?)-1989
1) 일제 시대
(1) 실천
1940-45 가평; 목부(木夫, 숯구이) 공동체.
(2) 민족주의 문제
①, ②, ③
④ 산별노조 운동; 겉보기에 ML주의, 그래도 민족주의 좌파.
(3) 전환; 감옥에서의 사색
①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혁명론
② 계급혁명이 아니라 민족혁명
(4) 생활양식, 에 대한 새로운 관심
① ... 협동조합운동
② .. 목탄제조 노동자협동조합 운영
2) 해방 이후
(1) 해방정국
① 좌, 민주주의 민족전선: 박헌영 김원봉
우, 비상국민회의: 이승만 김구
② 山水 민족건양회 결성
③ 인간론 정비
1946 <인기학 소론>
1949 <정전개 캄파>
(2) 4.19 정국; 통일운동
민인 혁명론 정비; <민족혁명론>, <자료집> 1, 2.
5. 인간론
1) <人紀學 素論>
2) 人性
3) 人能
4) 人紀 : 人性 + 人能
5) 1949 <혁명 正展開 캄파>
6) 인간론 확장: 사회, 역사 속의 인간 이해
6. 민족론
1) 개념의 혼란
2) 개념 정비
3) 인간론과 민족론
4)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7. 민족혁명
1) 미시정치
(1) 생활과 정치
① 생활공동체 만들기: 소수집단 문제, 이주민 문제, 미투운동...
※ 권력보다 더 근원적인 감각, 욕망의 영역에서 공동체적 삶을 살기: 들뢰즈
기억과 이미지의 공간에서 생활을 건져내기 : 벤야민
② 산수(山水)의 생활대중 운동
(2) 문화운동: 인능 실현의 기초 활동
(3) 협동조합운동: 인능 실현의 중심활동
cf. 레스타키스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2017)
2) 거시 정치
(1) 민주주의와 권력
(2) 산수(山水)의 정당론
(3) 직접민주주의 : 정당의 소멸
3) 민족당 = 史責党
(3) 제2과정 : 위기의 탈출
① 생활의 구출: 노동과 생활의 통합 -> 사회화 인능의 조건
cf. 판 파레이스 <21세기 기본 소득>(2018)
cf 이원재 “기본소득이라는 화두”, <한겨레> 2019-01-30
② 기본소득제
cf. <노동의 미래> 아벤트, 2018; “부는 사회적인 것이다.
8. 인간혁명
1) 인간혁명
(1) 제3과정
cf. 맑스 <정치경제학요강 2> [고정자본과 사회의 생산력 발전]
2) 세계혁명
(1) 인간사 방향의 세계화
(2) 인류생활관리 세계 단일기구 구성
3) 통일문제
(1) 1946 당시 민족건양회 통일방안
(2) 1960 년대의 입장
(3) 현재 상황에서 재해석
[1] 민족혁명 = 민족생성은 두 가지 과제를 갖는다.
하나는 국제협력(평화정착), 남북교류: 통일을 위한 기반 조성
또 하나는 남한에서의 생활공동체 건설(민족혁명) {{[장일순, 윤구병]}}
[2]
-> 생활공동체의 모범을 만들어냄으로써 남북의 통합공동체를 견인...
(4) 새로운 의미
[1] 남북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두 개의 국가
[2] 생활공동체 건설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의 제1항에 해당한다.
*** *** ***
1875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은 조선과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의 개화파, 언론인,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통령,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다
1876 김구(金九 1876(고종13)-1949). 독립운동가, 정치가, 『도왜실기』,『백범일지』
1881 김규식(金奎植, 1881-1950) 대한제국의 종교가, 교육자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 학자, 시인, 사회운동가, 교육자.
1885 안희제(安熙濟, 1885-1943) 백산(白山) 본관은 탐진(耽津). 호는 백산(白山), 경남 의령출신. 대종교에 1931년 입교하고, 1942년 11월 일제가 윤세복 등 대종교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검거한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체포, 석방 후 고문으로 곧바로 사망.
1887 조소앙(趙素昻, 1887-1958) 본명은 조용은(趙鏞殷), 자는 경중(敬仲). 경기도 파주(坡州) 출신,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교육자.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따라서 '소앙 조용은'으로도 부른다.
1899 최익환(崔益煥, 1889-1959), 충청남도 홍성 출신. 1904년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일진회(一進會)에 가입하였다. 1905년 서울의 광무일어학교(光武日語學校)에서 2년간 수학. 일제강점기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신간회 간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894 이관용(李灌鎔, 1894-1933)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부위원장으로 김규식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의 한국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한국사회당 대표로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도 참여했으며 구미위원부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1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은 이관용(李灌溶, 李瓘鎔, 李鑵鎔, 李冠鎔, 李灌龍) 등의 이름을 사용했다.
1897 박진순(朴鎭淳, 1897-1938?)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당 대표, 극동인민대표대회 한국대표단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1920년 7월 레닌그라드(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코민테른 제2차 대회가 열리자 박진순(朴鎭淳)과 함께 한인사회당 대표로 참석했다. / 1921년 말 모스크바에 도착, 1922년 1월 21일부터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대회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1923∼1928년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하고 모스크바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스탈린 숙청에 휘말려 1937년 12월 테러단체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1938년 3월 19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1956년 7월 소련 최고회의 결정으로 복권되었다.
1898 김원봉(金元鳳, 1898-1958)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조선공산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약산(若山),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 의열단을 조직하여 의백에 취임, 단원은 김원봉, 양건호, 곽재, 김옥, 윤세위, 윤치형, 이성우, 강세우, 한봉인, 신철휴, 배동선, 서상락, 권준 등 13명이었다 / 노덕술에 고문당한 이야기.
1900 박헌영(朴憲永, 1900-1956), 아호는 이정(而丁, 而靜), 충청남도 예산, 조선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노동운동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가이다.
1902 산수 이종률(1902(5?)-1989)
*이원재 LAB2050대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기본소득제 주장. 랩2050(대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 학력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경영대학원 석사, 경력, 한겨레경제연구소장, 2012 안캠프 정책기획팀장, 2015.01 희망제작소 소장, 2016.08 여시재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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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현재로는 폴란드보다 더 동쪽에 있는 쾨니히스베르그 출신의 프러시아 공화국의 철학자이다. 인간의 표상적 인식의 조건을 규정하고, 도덕적 이성의 신에게 종속을 요청하고, 미적으로 신의 작업의 숭고함에 경건하게 기도하는 듯이 긍정한 프로테스탄트 철학을 구성하였다.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프랑스 혁명에서 인민의 자유를 너머 멀리서 바라보면서 인간의 정신이 신의 인격에 이를 것으로 만든 또 하나의 토마스 주의자로 철학을 하였다. 그는 프러시아 통일의 영광을 만들기 위하여 루터파 교리에 맞추어 신의 절대성을 강조한 근대판 교부 철학자이다.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유태인 출신으로 독일인이다. 인간의 자의식이 자유의 절대성을 확립하기 보다, 사회라는 공시태가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역사적으로 자유를 점점 더 실현한다고 보았다. 이 공시태를 노동과 생산을 중심으로 생산양식이라고 한다. 이 양식의 최종은 공산주의 양식이다. 인간 본성자체가 이런 변화와 발전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루소 다음으로 낙관적이다.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자연주의 전통에 선)인간론이다.
1856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1913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의 28대 대통령.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정치학에서 박사. 1902년부터 1910년까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총장을 역임.
1869 프레더릭 매켄지(Frederick Arthur McKenzie, 1869-1931) 한국에서의 활동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 언론인, 저술가. 1907년, 조선 통감부에 의한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명령에 항의하여 대한제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약상을 취재해,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1919년에 조선의 경기도 수원군에서 발생한, 일본 제국 군대에 의해 일어난 제암리 학살 사건의 진상을 폭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 하원이 아니다]
1870 레닌(Vladimir Il'ich Ulyanov, dit Lenin, 1870-1924) 러시아의 혁명가, 정치가.
1892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 유대계 독일인. 맑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맑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1893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1947) 헝가리 태생의 사회학자. , 1930년에는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1933년 나치 정권 수립과 함께 그의 사상 경향 때문에 독일에서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e 1929)
1925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작가.
1933 아비네리(Shlomo Avineri, שלמה אבינרי), 1933-) 폴란드 출생, 이스라엘 정치학자이며 역사학자. 예루살렘대학 정치학과 교수, 2012년 이래 이스라엘 과학문학 아카데미 회원. 칼 마르크스의 사회사상과 정치사상(The Social and Political Thought of Karl Marx (1968) Hegel's Theory of the Modern State (1972) Moses Hess: Prophet of Communism and Zionism (1985) [헤스(Moses Hess 1812-1875) 독일사회주의 철학자, 맑스와 엥겔스의 친구. 오스트리아의 헤르쯜(Theodor Herzl)의 시오니즘과 대립되는 사회즈의 시오니즘을 주창했다.
1951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1951-) 벨기에의 정치 철학자, 경제학자이다. 기본소득 주창자로 유명하다. 홍기빈 역. 《21세기 기본소득》. 흐름출판. 2018년
라이언 아벤트(Ryan Avent, s.d.) 〈이코노미스트〉수석 편집자이자 경제 칼럼니스트로 2007년부터 글로벌 경제를 전문으로 담당해 왔다. “노동의 미래 디지털 혁명 시대, 일자리와 부의 미래에 대한 분석서”
존 레스타키스(John Restakis, s.d.) 『협동조합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2017, 착한책가게.
* *
王正廷(1882年9月7日-1961年5月21日), 原名正庭,字儒堂,号子白,浙江奉化人。中华民国政治家、外交官、体育活动家,基督教人士,欧美同学会、中华全国体育协进会的创始人之一。湖南省宪法起草人之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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