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소에 피아노가 들어왔습니다.
이사가는 이웃이 기증해주셨지요.
헌데 이사업체 직원의 거친 다룸에 피아노 한 모퉁이가 손상되었답니다.
무지 속이 상하기는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한 달포쯤 지난 뒤 수리 & 조율을 맡길까 합니다.
거친 손길에 어쩌면 내상도 만만찮을 것 같아 안정이 필요할테니까요.
관숙쌤 말이 아니더라도 모든 존재에는 어떤 형태로든 생명은 깃듭니다.
그러니 피아노가 안정을 취하는 동안은
오며가며 다정한 말로 위로하고 다독여 줘야겠습니다.
사물이든 인간이든
상처를 입은 존재는 가장 먼저 배려와 연민과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2.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피아노를 쳤습니다만
(물론 숙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교양수준 정도지만)
지금은 피아노를 치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에서 손을 뗀지 무려 30여년이 넘네요.
결혼하면서 내버리고 온 피아노를
딸을 키우면서 다시 샀습니다만
딸은 엄마를 닮지 않아 피아노 보기를 돌같이 하는지라
그 피아노는 음악학원을 하는 친구에게 줘버렸지요.
극동도서관 시절, 스트레스를 감당치 못해
피아노를 다시 치고싶다고 했더니
영감탱이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맹렬한 반대를 합니다.
보나마나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 쓴 채 한 구석에 처박혀있을게 뻔하다나요.
물론 나도 그다지 사고 싶지는 않았답니다.
팔자에 없는 도서관장 노릇하느라
우아하고도 한가하게 건반이나 두드리고 있을만한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왠지 피아노가 거실에 놓여있다면
행복한 마음이 들 것 같다는 게 자꾸 밀물처럼 가득가득 밀려드는 거여요.
그러고보면 극동도서관 시절의 나는 그만큼 불행했다는 것일까요?
결국 아이들이 즈네 아버지를 설득했죠.
그리고 피아노를 사되 피아노를 치니 안 치니 일체 말하지 말자고요.
엄마에게는 피아노가 거실에 놓여있다는 것, 단지 그게 필요한 것 같다면서요.
그렇게 해서 영창 웨버를 아주 비싼 가격을 주고 샀습니다.
물론 지금 피아노는 거실 한 구석에 얌전하게 놓여있죠.
피아노를 산 후 얼마되지 않아
나는 오른편 반신이 마비되었고 시력을 잃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엄마의 상태와 소망을 정확하게 본 것 같습니다.
그저 거실에 놓여있을 뿐인 피아노는
가끔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기쁨과 회한, 그리고 기대와 소망을 생각하게 하니까요.
물론 숨겨둔 거금(?)의 비자금을 내놓고 끙끙 앓던 영감탱이는 물론 우리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내가 피아노를 치니 안 치니 하는 말을 지금까지도 일절 하지 않는답니다.
3.
작은음악회를 열 때마다 피아노가 없어 무지 아쉬웠더랬습니다.
어느 연주자들을 섭외해도 첫마디가 피아노는 있나요? 였으니까요.
해서 극동도서관 시절부터 피아노를 기증받기 위해 무지 노력했습니다만
디지털 피아노를 기증하겠다는 말만 들어올 뿐이었습니다.
디지털 피아노는 CD음을 싫어하는 것 만큼 나는 무지 싫어합니다.
해서 정중하게 사양했죠.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요.(^^)
이제 피아노가 생겼으니
가을 학술제 때는 보다 더 풍성한 작은음악회를 열 수 있겠지요?
나는 행복합니다.
첫댓글 관장님~ 저희 거실에도 얼마전에 피아노를 들였어요. 그래서 그런가... 공감이 많이 됩니다.
두어달 된 글이지만, 관장님 마음을 읽으니 제 가슴도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