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변호사 [프로필] 韓山여주현
1915년 8월 28일 전북 김제군 금산면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 졸업 뒤 전주의 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1939년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해 2년만인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귀국 이후 가인 김병로 선생과 함께 서울 안국동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광복 뒤인 1945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됐다. 1946년 5월 조선공산당이 당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담당했다. 같은 해 말 검사직에 회의를 느낀 그는 사임하고 뚝섬에서 농사를 지었다. 당시 대법원장이던 김병로의 부름으로 법조계에 복귀해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 대법원 판사, 대법관 직무대리, 광주고법원장, 서울고법원장을 지냈다. 1965년 3월 16일 간암 투병 끝에 서울 사직동 자택에서 만 50세를 일기로 숨졌다. 저서로는 시집 '무명', 수필집 '무상을 넘어서', '창세기초' 등이 있다
첫댓글 "故박찬일변호사"
(現)大統領 비서실장을 지내신 분의 장인(丈人)입니다,
"다음카페" 박찬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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