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인물성격 창조의 법칙과 방법
인물성격의 창조는 소설의 중요한 예술적사명으로 된다. 따라서 소설의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물형상 창조의 여하에 의해 판가름이 난다. 인물형상의 성공 여부는 주로 두개 방면을 보는데 그 하나는 인물형상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가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의미(意蘊)가 풍부한가, 즉 전형성이 있는가 하는것이다.
아래에 3개 방면으로부터 인물성격 창조의 문제를 토론해 보고자 한다.
제1절 인물창조의 법칙―인물에게 생명을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천태만상이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인물과 조화(造花)같이 생명이 없는 《죽은 인물(死人)》이 있을뿐이다. 펄떡이는 생명체로서의 인물은 작품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독자들은 그 목소리를 들을수 있고 그 모습을 볼수 있으며 그 체온과 맥박, 숨소리를 느낄수 있다.
고리끼는 똘스또이의 인물은 손길을 뻗쳐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고 하였고 떼느는 발자크의 인물은 《살아있는 인물보다 더욱 멋있고 활력으로 넘치며 생동하게 살아 움직이고있다》고 하였다.8) 청나라사람이 기록한데 의하면 《홍루몽>>이 세상에 나온 후 항주의 한 처녀는 그 책에 뻐져들어 병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홍루몽》을 불태워버렸다. 그러자 그 처녀는 《왜 나의 보옥이를 태워 죽이느냐!》 하고 울고 불면서 발버둥이를 쳤다고 한다.9) 그리고 소주의 한 선비는 림대옥의 위패를 세우고 밤낮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10) 모두 피와 살이 있는 생동한 인물들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죽은 인물》은 그들도 손발을 움직여 일을 하고 싸우고 말을 하고 울고 웃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있지만 독자들을 소설을 읽고도 어렴풋한 느낌을 받고 그들의 이름마저도 잊어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다만 인물들의 그림자만이 얼른거릴 뿐이지 인간 자체는 볼수 없다.》11) 이러한 인물들은 령혼도 생명도 없어 의연히 《죽은 인물》로 남으며 독자들에게 그 어떤 감동도 줄수 없다.
소설의 인물은 문자와 언어라는 추상적인 기호로 창조한다. 문자 외에는 아무런 수단도 없다. 이렇게 창조된 허구적인 소설의 인물형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살아 움직여야(活)》 한다. 인물이 살지 못하면 그 어떤 예술적가치도 론할수 없다. 졸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동하는 인물을 일으켜 내세우는 것이다》12) 라고 하였고 발자크는《예술가의 사명은 그가 창조하는 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묘사를 현실로 변화시키는것이다》13) 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창조할것인가? 대체로 네가지가 있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원형이 있어야 하고 감수가 있어야 하며 성격이 있어야 하고 피와 살이 있어야 한다.
1. 원형― 인물생명의 원천
원형이란 곧바로 모델, 즉 실제 생활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말한다. 원형은 작가들이 인물형상을 창조할 때 의존하는 객관적인 근거로 되며 인물생명의 원천으로 된다. 생활속에 존재하는 진짜 인간은 모두 생명이 있는 산사람이다. 언어로 창조한 소설속의 인물도 진짜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숨결을 들을수 있는 산 인간이여야 한다. 여기서 《진(眞)》과 《활(活)》은 갈라놓을수 없는데 《진》은 《활》의 전제로 되고 《활》은 《진》의 표현으로 된다. 생활속의 진짜 인간(원형)을 바탕으로 예술적창조를 하는것은 살아 숨 쉬는 인물형상을 창조하는 유일한 도경이다. 이는 작가들의 무수한 창작경험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조수리(趙樹理)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탕으로 해서 살아 움직이는 이제갈(二諸葛)의 형상을 창조했고 파금은 형님을 원형으로 고각신(高覺新)의 형상을 창조했다. 똘스또이는 안나의 초상을 아름답게 묘사했는데 이는 뿌쉬낀의 딸이 갖고있는 빼여난 미모와 자태를 모방한것이다. 돈 끼호테의 형상은 400여년간 순전히 작가의 상상물로 인정되여 왔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의 일부 성격 특징은 작가 세르반테스의 처삼촌 지하드(吉哈達)를 본 따서 창작한것이라고 한다. 사실 돈 끼호테라는 이름도 지하드의 변음(變音)이였던것이다. 여기서 수많은 작가들이 창조한 수많은 인물들의 원형을 일일이 구명할수 없지만 그 모든 살아 움직이는 인물형상은 모두 생활속의 진짜 인간에 바탕을 두고있는것이다.
소설작가들은 생활적인 축적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각양각색의 인간을 잘 알아야 한다. 만약 머리속에 친구처럼 익숙한 몇십명, 지어는 몇백명의 인간을 알고있다면 바로 소설을 쓸수 있는 자본을 갖춘 셈이다.
원형을 채취하는 방법이 다름에 따라 인물을 창조하는 어렵고 쉬운(難易) 정도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원형을 위주로 해서 쓰면 비교적 쓰기 쉽다. 하지만 그 원형의 질이 높아야 한다. 많은 원형을 긁어모으고 종합해 쓰자면 비교적 높은 예술창조력을 요구한다. 갓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문학도들은 질이 높은 1~2개의 원형을 잡아야 하는데 이는 인물을 살려 쓸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다.
원형을 채취하는것과 상반되는 방법은 바로 주관적으로 억측하고 방구석에 앉아 인물을 꾸며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인물은 그 어떤 개념의 화신으로서 생명도, 피와 살도 없는 창백한 석상에 지나지 않는다. 고골리는 뛰여난 재능을 소유한 작가였지만 마음을 바로잡고 착한 일을 하는(改心向善) 리상적인 귀족의 형상을 창조할수 없었고 설사 창조했다 해도 그것은 조금도 생기가 없었다.14) 그 주요한 원인은 원형이 없이 작가의 종교적인 념원에 따라 꾸며냈기 때문이다.
2. 감수― 인물생명의 기초
진정한 예술적창조는 감수로부터 시작된다. 원형은 그 질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활력으로 넘치든지를 막론하고 스스로 작품속에 들어와 소설의 인물로 될수 없다. 생활속의 진짜 인간이 작가의 예술적상상속에 들어와 익숙한 인물이 되자면 복잡한 창작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의 기초가 바로 작가의 생활감수이다. 이러한 감수가 많은가 적은가, 깊은가 얕은가, 강렬한가 일반적인가 하는것은 인물창조와 깊이 련관되여 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인물,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하여 비단 눈과 귀와 같은 감각기관으로 감수해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반 심령으로 감수해야 한다. 비단 보고 듣고 만나서 이야기해 보아야 할뿐만 아니라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그 대상을 두고 울거나 웃어 보아야 하며 희열과 환락, 안타까움과 번뇌, 두려움과 놀라움, 비분과 동정…을 느껴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로신이 말한바와 같이 《창작은 정감을 요하며 어쨌든 얼마간 가슴을 불태워야 한다.》15) 똘스또이도 《반드시 모종의 감정을 체험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16) 만약 인생에 이러저러한 관심을 가지고 이러저러한 감정을 체험한다면 자연 작가의 마음속에 이러저러한 인물들이 살아남게 된다. 만약 보다 인생을 사랑하고 보다 깊은 감정을 체험한다면 작가의 마음속에 살아남은 인물들은 더욱 진실하고 생기로 넘치게 될것이다.
인물과 사건은 동일하지만 작가에 따라 감수가 다를수 있으며 심지어 완판 다를수가 있다. 말하자면 감수는 주관성을 띠고 있다. 감수란 객관에 대한 주관의 포옹이요, 현실적인 인생의 주관화이다. 여기서 산생된 인물형상은 객관현실의 반영으로 되는 동시에 작가의 심령의 창조로 되는바 주관과 객관의 결합체이다. 즉 진정이 넘치는 동시에 실감이 넘치며 이로써 생명력을 획득한다. 헤밍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작가들은 소설속에서 반드시 산 인물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산 인물은 《기교로 꾸며내는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며 그의 전신을 통해 우러나오는것이다.》17)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물은 작가의 뜨거운 감정과 깊은 체험에서 나오는것만큼 작가들이 심령으로 인생을 체험한 예술적결정체이다.
인생에 대한 작가들의 감수, 즉 생활감수는 대체로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첫째로는 몸소 겪어본것(所做和所受)이요, 둘째로는 관찰해본것(所見)이요, 세째로는 얻어 듣거나 읽어본것(所聞和所讀)이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는 직접적인 감수요, 셋째의 경우는 간접적인 감수에 속한다. 이 세가지 감수는 서로 교차되고 서로 보충함으로써 예술형상을 형성하고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창조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있다.
하지만 이 세가지 감수중에서도 몸소 겪어본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 자신이 직접 고생을 겪어본것과 남들이 고생하는것을 본것, 그리고 남들이 겪은 고생살이를 듣는것은 완판 다르다. 전투마당에서의 싸움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기에 헤겔은 《반드시 많은 행동을 해보야 하며 많은 경력을 갖고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구체적인 형상으로 생활속의 진정으로 심각한것들을 표현할수 있다>>18)고 하였다.
똘스또이의 경우, 그의 소설속의 인물들은 작가의 직접적인 경력―그의 모든 감수와 깊이 련관되여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고골리는 10년의 품을 들였건만 살아있는 귀족들속에 있는《좋은 사람》을 그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돌스또이는 수많은《훌륭한 귀족》들을 그려낼수 있었다. 그의 주인공 네흘료도브, 안드레이, 레윈이 바로 그러하다. 이는 똘스또이의 생활경력과감수와 갈라놓을수 없다. 300여명의 농노를 가지고있는 똘스또이 백작은 그의 후반생에서 귀족계급의 생활권에서 떠나 평민과 접촉하는 길을 걸었던것이다.
또한 감수가 깊어야만 억지 조작에서 벗어나 묘사의 핍진함을 기할수 있다.
작가들이 소설속의 인물―예술형상을 창조하자면 생활적인 감수에서 예술적인 감수의 단계로 승화해야 한다. 말하자면 작가들은 진실한 인물에 대한 감수를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자기가 창조한 인물을 감수해야 한다. 창조 자체는 감수이며 예술적인 상상속에서의 감수이다. 작가들은 자기가 허구해낸 인물을 두고 실생활속의 인물보다 더욱 더 명료하게 떠올리고 진실감을 느낀다. 진정한 작가는 몸과 마음으로 그 인물을 체험한다. 이러한 감수의 절실함, 그 강도는 인물구상의 성숙 여부를 가늠하는 주요한 표지로 된다. 곤챠로브는 소설을 쓸 때 마치 그 인물이 눈앞에 서있는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인물은 곤챠로브의 눈앞에서 마치 모델처럼 여러 가지 동작을 하고 여러 가지 자태를 보여주었다. 곤챠로브는 그 인물들의 속삭임마저도 들을수 있었다고 한다. 뚜르게네브는 자기의 주인공 바자로브의 일기를 썼는데 그것은 지금도 두터운 일기책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플로베르가 자기의 주인공 엠마가 비상을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쓸 때 련일 구토를 하던 나머지 의사를 찾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3. 성격― 인물생명의 표현
성격창조는 소설의 중심적인 과제이다. 레싱은《성격과 무관한 것들은 외면해도 무방하다. 작가로 놓고 볼 때 오직 성격만이 신성하다. 성격을 강화하고 성격을 선명하게 표현하는것― 이는 작가들이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포인트를 두어야 할 바이다.>>19)
진정한 성격은 아래와 같은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그것은 바로 개별성, 내재성과 전체성이다.
첫째, 성격의 개성.
앞에서 말한바 있지만 일부 소설에서 그린 인물들은 역시 이런저런 말을 하고 생각하고 움직이지만 생명이 없기때문에 독자들에게 산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왜 생명이 없다고 하는가? 바로 개성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움직이지만 그것들은 일반화되여 있고 성격적인 특점을 지니지 못하고있다.
둘째, 성격의 내재성.
성격은 생명, 령혼의 표현이라고 할 때 그것은 아주 내재적이며 장기적인 사회생활의 실천속에서 형성된 사상, 감정의 특수한 표현방식으로 된다.
생물의 특징은 두가지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심각하고 내재적이며 선천적이며 기본적이다. 다른 하나는 표면적이며 외부적이며 파생적이며 다른 특징과 서로 교차되여 있다. 인간의 성격적특징은 정신적인 범주에 속하지만 역시 심층과 표층의 구별, 기본적인것과 파생적인것간의 구별이 존재한다. 일부 소설가들은 인물성격의 심층적인 의미, 내재적인 본질― 인간의 여러가지 사상감정을 잘 파악하지 않고 성급함, 익살스러움, 과묵함과 같은 일부 표층적인 특징들만 부각하고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물론 성격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모두 외부적인 표현이다. 오직 인물의 내적인 생활과 결부할 때만이 강한 생명력을 지닐수 있다. 과묵함(寡言)을 두고 말해 보자. 천하에 과묵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혹자는 겸허하고 근신하고 혹자는 온당하고 침착하며 혹자는 음험하고 간사하다.
셋째, 성격의 총체성(整體性).
성격은 총체성을 갖고있으며 하나의 펄떡이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매 하나의 성격이 가지고있는 성격적인 요소는 하나이거나 둘이 아니다. 10가지, 20가지 지어는 그보다 더 많을 수가 있다. 헤겔은《매 하나의 인물은 하나의 총체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20) 라고 말한바 있다. 벨린스끼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은 역시 하나의 독특하며 스스로 일체를 이루는 세계이다》21) 라고 하였다. 성격에는 주도적인 역할을 놀고있는 성격적요소가 있다. 때로는 그중의 어느 한 요소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때로는 다른 한 요소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성격적요소는 성격의 총체에서 떠나 단독으로 존재할수는 없다. 성격은 영원히 하나의 총체이다. 자가들은 성격을 창조할 때 그 어떤 성격적요소를 단독으로 표현하여 인물을 《그 어떤 고립적인 성격특징의 우화적인 추상물(抽象品)》22)로 만들것이 아니라 그 총체성을 부각하는데 주의를 돌려야 하며 하나의 총체적인 인간을 창조해야 한다. 조설근의《홍루몽》에 나오는 왕희봉(王熙鳳)은 음험하고 지독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소설은 왕희봉의 그러한 주도적인 성격을 묘사함과 아울러 간사하고 넉살스러우며 탐욕스럽고 허위적이며 날렵하고 승벽이 강하며 꾀가 많고 수완이 좋은 그의 다양한 성격적요소들을 여러 측면에서 부각하고있다.
4. 피와 살― 인물생명의 세포
피와 살이 없는 인간이 없듯이 세부를 떠나서는 인물을 창조할수 없다. 세부는 소설형상의 최소 단위이다. 세부는 인물이라는 생명체의 세포요, 피와 살로 된다.
제2절 원형으로부터 전형으로
일부 소설의 인물은 현실속의 인간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있지만 별반 사회적의미가 없으며 그 어떤 사회생활의 본질을 유력하게 보여주지 못하고있다. 그들은 살아있는 형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사상성과 사회성이 부족하며 선명한 개성을 가지고있지만 전형성이 부족하다.전형은 비단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야 할뿐만 아니라 풍부한 사상성과 사회성을 지니고있어야 하며 생활의 그 어떤 본질과 법칙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전형이란 개별적인 인물형상으로 그 어떤 류형의 인간들에 대하여 예술적인 개괄을 하는데서 탄생되는데 거기에는 생활에 대한 작가의 리해, 사고, 탁견이 구현되여 있으며 정면 또는 반면으로 작가의 리상을 보여주고있다. 만약 살아 움직이는 인물을 만들어내는것이 성격창조의 초보적인 요구라고 한다면 전형을 부각하는것은 더욱 높은 요구하고 할수 있다.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은《료재지이》에서 펄떡이는 생명체로서의 인물을 많이 창조했다. 개중에는 뱀을 삼켜 먹는자, 칼로 구렁이를 다루는자,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놈, 말잔난을 부리는놈, 마술을 부리는놈, 아무튼 벼라 별 인간들이 다 나오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생동하게 살아 움직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창조한 영녕(嬰寧), 소취(小翠), 련성(連城), 두씨(竇氏), 엽생(燁生), 협녀(俠女), 상삼관(商三官), 석방평(席方平) 등 전형인물에 비하면 그 가치나 매력에 있어서 많이 손색이 간다.
새로운 기법, 새로운 령역이 출현했다고 해서 전형창조의 중요성을 홀시할수 없다. 모순(茅盾)이 말한바와 같이 《전형성격의 부각― 이는 영원히 예술창조의 중심문제로 된다.》
전형을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수 있으나 여기서는 원형으로부터 전형에 이르는 예술적인 법칙― 인물전형화의 예술적인 도경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론의해 보고자 한다.
1. 단순화―인간의 정신적본질을 움켜잡아야 한다.
생활속의 원형과 비해 볼 때 전형은 두가지 중요한 특점을 갖고있다. 하나는 보다 더 단순하고 다른 하나는 보다 풍부하다. 이른바 단순하다고 하는것은 원형의 그 어떤 본질적인 방면을 강조하고 기타 비본질적인것들을 베여내거나 약화시키는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어떤 복잡한 예술전형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단순화된것이다. 이른바 풍부하다고 하는것은 원형의 본질적인 방면이 보다 더 증가, 강화되여 원형을 훨씬 초월함으로써 보다 많고 보다 선명한 사회적의의, 보다 강렬하고 보다 집중되고 심오하게 사회의 그 어떤 본질이나 법칙성을 반영하고있음을 말한다. 고리끼는《예술가(허구를 하는 사람)가 창조한 인간은 하느님(혹은 자연)이나 력사 그리고 인간 자신이 창조한 사람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몇 배나 더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고리끼가 말하는 인간은 다름 아닌 예술전형인것이다.
전형과 원형의 구별 및 량자의 특점을 알았다면 자연 원형으로부터 인물전형에 이르는 방법― 인물전형화의 방법을 찾을수 있다. 첫째로 원형의 본질적인 방면을 찾아내야 하며 둘째로 여러 가지 예술수단을 리용하여 인물의 본질적인 특징을 강화해야 한다.
2. 합성―인물의 본질적인 특성을 강화한다.
작가들의 창작과정을 보면 여러 인간들을 관찰, 조사한 기초우에서 예술적상상을 펼쳐 많은 원형들을 합성(合成)하여 전형을 만든다. 로신은 그의 인물들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두루 관찰해 오다가 여기저기서 뜯어 모아 만든것》이라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서 긁어모아 한 인물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로신의 인물들을 보면 《흔히 입은 절강에서, 얼굴은 북경에서, 옷은 산서에서 가져온것이다.》23)
원예사들이 접목하는 방법으로 좋은 열매를 키워내듯이 작가들도 그와 류사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전형인물을 창조하는것이다.
합성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동향합성(同向合成이다. 늘 볼수 있는것은 성질이 같거나 비슷한 성격, 사적들을 결합함으로써 인물의 그 어떤 본질적인 방면을 동일방향으로 연장, 강화해 강렬한 예술적표현력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로신이 창조한 아Q의 정신승리법이나 발자크가 창조한 그랑데의 린색함이나 오사가 창조한 상자(祥子)의 순후함과 같은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이향합성(異向合成)이다. 여러 원형의 부동한 성격, 사적을 결합해 인물의 본질적인 특징을 동일한 방면으로가 아니라 부동한 방면으로 연장, 강화함으로써 형상의 다면성, 립체성을 강화한다. 이를테면 《수로전》의 리규나 무송, 다니엘 디포의 《로빈손 크로소》의 경우이다.
하지만 예술적으로 합성하는 성격이나 사적은 부동하고 이향적이지만 반드시 서로 통할수 있고 통일될수 있으며 한 인물의 몸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절대로 서로 통할수 없고 수화상극인 성격적 특징들을 억지로《합성》시키면 필연코 인물의 통일성을 무너뜨리고 형상의 진실성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수호전》의 송강의 경우아 그러하다.
하나의 전형은 여러개의 원형으로 합성해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의 원형은 여러 개의 예술형상으로 융합되여 부동한 전형의 원형으로 될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재능을 갖고있어야 한다. 즉 한 방면으로는 여러 개의 원형을 합성해 하나의 예술전형을 만들어 내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생활원형으로 여러 개의 인물형상을 윤색하는것이다.
3. 과장― 인물의 본질적특성을 강화한다.
예술합성은 인물의 본질적특징을 강화하는 기본적인 도경이다. 그러나 유일한 도경은 아니다. 이외에도 예술적과장이 있다. 즉 로신이 말하는 곽대(廓大)이다. 물건을 확대경으로 보면 더욱 똑똑히 볼수 있듯이 인물을 과장하면 《그 덕행을 더욱 사랑스럽게 보여줄수도 있고 그 악행을 더욱 가증스럽게 보여줄수도 있으며 그 괴상한 일을 더욱 소름이 끼치게 할수도 있다.》
소설에 따라 과장의 역할과 형식은 다르게 표현된다.
과장의 몇 개 차원:
1. 신기하고 기이한 환상식의 과장
례:《서유기》의 손오공이나 백골정의 경우
2. 변태적인 환상식 과장에 의한 만화식 인물 창조
례:《아Q정전》의 아Q,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테》, 그리고 흑색유 모어 계렬의 일부 가작
3. 두드러진 현실성 과장
례: 빅도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아성(阿城)의 《기왕(棋王)》,
그러나 과장해도 절도가 있어야 하고 수식을 해도 지나치게 불어서는 안된다.(夸而有節, 飾而不誣) 중국의 고전소설에 적수공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은 이야기는 많이 나고 모두 무송보다 더 무서운 호걸이지만 다만 무송만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준 예술전형으로 된다.
제4장 소설의 요소(2)― 플롯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쓰자면 먼저 좋은 주제를 설정함과 아울러 참신한 소재를 다루어야 한다.그런데 아무리 좋은 주제를 잡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관념일뿐 아직 예술은 아니다. 하나의 주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형상화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편의 소설이 될수 없다. 소설은 단순히 작가의 사상을 전달하거나 진리를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표현을 거쳐 중심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이제 소설의 핵심으로 되는 인물성격의 창조 다음으로 플롯을 중시하지 않을수 없다.
제1절 플롯의 개념
모든 잘 짜여진 글은 주제를 살리기 위해 여러가지 재료를 잘 선택하고 배렬하여 놓은것이라고 할수 있는데 인물, 사건, 배경 등 소설의 여러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통일성이 있게 배렬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도록 하는 일을 플롯(plot)이라 부른다.
플롯은 서정시나 수필을 비롯해 모든 예술작품에서 찾아볼수 있지만 소설이나 희곡처럼 이야기의 성격이 강한 문학장르에서 많이 론의되는 관계로 흔히 이야기(story)와 플롯이 혼돈되여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구별되여야 한다. 즉 스토리는 이야기 줄거리 그 자체이지만 플롯이란 그 이야기들이 최대한의 효과와 주제적인 흥미를 가져올수 있도록 그것들을 조직화하는 일보 전진한 정교화 작업이다. E. M. 포스터는 스토리와 플롯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간의 련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이라고 정의한바 있다. 플롯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관계를 강조한 서술이다.《왕이 죽고 얼마 안 가 왕비도 죽었다》는 내용은 하나의 이야기이다.《왕이 죽고 얼마 안 가 그 슬픔 때문에 왕비도 죽었다》는 내용은 하나의 플롯이다. 여기서 사건의 련속이 보존되고 있으나 그보다는 원인에 대한 감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서 시간의 련속이 보존되여 있으나 그보다도 원인에 대한 감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왕비가 죽었다. 아무도 왜 죽었는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침내 왕비의 죽음은 왕의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인것으로 밝혀졌다.》 이쯤 되면 신비를 안고있는 플롯이며 고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형식이다.24)
보다싶이 스토리는 시간의 련속대로 정돈해놓은 사건의 진술이요, 플롯이란 이야기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사건들을 적절히 재배치하고 재미있고 예술성을 띠도록 스토리를 변형시키는 일이다.
소설에 있어서 플롯이란 주제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소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편성하고 배치하는 설계도라고 할수 있다. 가령 한 사건을 목격한대로 들은대로 기록해 놓으면 그것은 이야기에 그칠뿐이요, 그 사건에서 인생의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사건을 효과적으로 편성하고 적절하게 배치해놓으면 그것은 소설이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는 다 소설이 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야기가 곧 소설인것은 아니다. 그런즉 소설은 플롯을 무시하고는 성립될수 없다.
소설의 기본 요소는 이야기로서, 소설은 그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구성화하지 않을수 없다. 소설을 가리켜 가장 정제된 형태의 이야기라고 말하는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야기줄거리(narrative)는 소설로 구성되기 이전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수 있으며 작가의 재능에 따라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도 플롯을 달리하여 다른 작품을 만들수 있는것이다.
제2절 플롯의 구조
중간, 끝을 가진다고 하였다. 이렇게 3단계로 짜여진것이 가장 기본적인 플롯의 구조이다. 오늘날 플롯의 구조를 4단계에서 6단계까지 다양하게 분류하여 설명하고있으나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계를 더욱 세분화한것에 불과하다.
레겟(H. W. Leggett)은 플롯을 ⓛ 발단 ② 제1행동단계 ③ 제2행동단계 ④ 발발 ⑤ 결말의 5단계로 나누었고 웨스턴(Harold West-ern)은 ① 의도 ② 의도의 장해 ③ 의도의 발전 ④ 위기 ⑤ 위기의 발전 ⑥ 대단원의 6단계로 나누었다.
해리스(Forste-Harris)는 플롯을 ① 발단 ② 전개 ③ 절정 ④ 해결의 4단계로 나누었다.
브룩스와 웨렌도《소설의 리해》에서 플롯을 ⓛ 발단 ② 분규 ③ 정점 ④ 대단원의 4단계로 나누었다.
여기서는 브룩스와 웨렌의 견해에 따라 플롯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① 발단(exposition)
발단은 소설의 서두부분이다. 작중인물을 소개하고 배경을 확정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부분이다. 발단은 자연스러워야 하며 흥미를 주어 독자들이 계속 읽어나가게 하여야 한다. 케니(W. Kenney)는《이야기의 처음은 필요한 해설에 덧붙여 불안의 요소가 존재하는 상황을 나타내주며 그것은 발단에 있어서 개방적일수도 있고 잠재적일수도 있다》고 하였다. 모파상의《목걸이》에서의 르와젤부인의 지나친 허영심, 오 헨리의《마지막 잎새》에서의 존시의 나약한 마음은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의 대표적인 례라 하겠다.전통적인 소설의 발단은 이처럼 해설에 곁들여 불안의 요소를 내포하고있다.
② 분규(complication)
발단을 이어받아 사건이 심화되고 복잡해지는 부분이다. 발단에서의 불안정이 갈등으로 바뀐다. 소설에는 주인공과 적대자가 있다. 주인공은 적대자로 인하여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적대자가 반드시 인물일 필요는 없다. 환경이나 보이지 않는 힘일수도 있다. 인물이나 환경과의 갈등을 외적갈등이라고 하고 량심과 유혹, 종교적인 의무감과 예술적인 동경의 상극, 사랑과 리기심, 정신과 육체의 대결 등 마음의 갈등을 내적갈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갈등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것인가 예측하기 어려울 때 독자들은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긴장감은 소설을 흥미있게 해주는 주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작가는 흔히 복선을 사용한다. 복선이란 뒤에 일어날 일을 미리 슬쩍 보여주는 기교이다.
요컨데 갈등에서 절정에 이르는 사이가 분규이다.
르와젤부인은 무도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나 친구에게서 빌린 목걸이를 잃고 고민한다. 존시는 떨어지는 잎사귀와 자기의 운명을 결부시켜 거의 삶을 포기하다싶이 한다.
③ 절정(climax)
분규에서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를 절정이라고 한다. 주인공의 행동과 운명이 바뀌는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모든 행동은 이 절정을 향해 전개된다. 그러므로 절정은 행동의 최고점이기도 하다. 절정이 서두에 오면 상승 커브를, 분규 다음에 오면 하강 커브를 그린다. 이 절정을 어디에 둘것인가에 따라 전개의 양상이 달라진다.
이 절정에서 급전을 동반한 반전이 행해진다. 급전이란 사태가 반대방향으로 변화함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의해 행해진다. 반전은 무지에서 지(知)의 상태로 이행함을 의미한다. 르와젤 부인은 잃어버린 목걸이를 변상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고생을 한다. 드디여 목걸이를 변상하게 되였을 때 그녀가 잃은 목걸이가 가짜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존시는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지지 않은것을 보고는 강렬한 삶의 의욕을 느낀다. 그러나 그 한 잎은 지난밤에 죽은 늙은 화가 베어먼이 마지막으로 그린 걸작임을 알게 된다.
이 절정에서 때로 파토스(pathos)도 일어난다. 파토스란 고통이나 파괴를 초래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최서해의《홍염》에서는 주인공 문서방이 중국인 지주를 찾아 집에 불을 놓고 그를 도끼로 쳐서 죽인다. 살인, 격렬한 고통, 상해(傷害) 같은 것이 파토스이다.
④ 대단원(denuement)
결말이라고도 한다. 사건이 해결되는 부분이다. 주동자의 운명과 성패가 분명하게 결정된다. 대단원은 절정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결말은 지금까지 얽히고설킨 사건을 마무리 지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리고 독자의 고조된 감정을 이완시켜 랭정을 찾게 해준다. 때로는 분명한 해결보다 여운을 남겨 놓기도 한다. 닫힌 결말보다 열려진 결말이 미적인 효과를 거두는데 더 좋을 때가 있다.
《목걸이》에서 르와젤부인의 반생의 고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잎새》에서 존시는 병과 싸워 기력을 회복하고 죽은 로화가의 따뜻한 마음씨를 가슴으로 느낀다.
제3절 플롯의 류형
플롯은 주제의 표출 양식이나 작중 인물의 형성화 필요성에 의하여 거기에 적합한 플롯 류형을 설정할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설의 플롯은 단순구성, 복합구성, 피카레스크(picaresque) 구성, 액자(額字)구성으로 나뉜다.
단순구성이란 진행이 단일하고 단순한 구성으로 사건들이 전후의 인과관계에 의하여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말한다. 사건의 전개과정이 매우 분명히 드러나는 대신 변화가 단조롭다는 한계를 지닌다.
복합구성은 둘 이상의 플롯을 병렬시키거나 사건의 진행이 단순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 시간의 역행 등으로 나타나는 구성을 말한다. 즉 이질적인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마찰, 분렬, 결합을 통하여 긴장의 국면을 조성하는 구성방법으로서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반영하는데 효과적이다.
피카레스크 구성은 꽉 짜여 있는 구성이 아니고 여러 개의 사건이 병렬해 있는 구성이다. 이 방법은 작품 전편을 일관하는 하나의 뚜렷한 방향이나 지향점을 갖지 않은채 각기 독립된 무수한 에피소드를 개별적으로 라렬하는 구성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각각 독립된 사건의 긴장과 해결에서 오는 단순한 리듬의 반복이 있을뿐 일정한 성격의 변화나 주제의 발전을 찾아볼수 없다.
액자구성은 이야기속의 이야기를 담는 이중적구성의 양식을 말한다. 핵심이 되는 이야기를 중심 플롯이라고 하고 중심 플롯에 현실감을 주기 위해 종속적인 플롯을 외각에 배치한다. 유령이야기 등에서 많이 사용되는 플롯 류형이다.
시카코학파의 일원인 크레인(R.S.Crane)은 플롯의 개념속에 행위, 성격, 사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플롯의 개념과 톰 존스의 플롯》이라는 론문에서 운명의 플롯, 성격의 플롯, 사상의 플롯의 세가지 류형을 제시했다. 그 후 노먼 프리그먼(Norman of Pliegman)은 크레인의 리론을 더욱 발전시켜 《플롯의 형태》라는 론문에서 주인공과 결부하여 주인공의 성격은 어떠한가, 주인공의 운명은 어떠한가, 주인공의 사고(思考) 내용은 어떠한가의 세가지 명제에 따라 작품의 플롯을 성격의 플롯, 운명의 플롯, 사고의 플롯으로 나누고 그것들을 다시 세분화하여 14개의 류형을 제시했다.
ⓛ 운명의 플롯(plot of fortune)
이 때 운명은 주인공의 명예, 지위, 리익, 사랑, 건강, 번영 등을 말하는 개념이다. 운명의 플롯은 작중인물을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등의 차원에서 서술한다.
가) 행동의 플롯(the action plot):
가장 대중적이고 관습적인 플롯 류형으로 여기서 으뜸가는 흥미는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것인가에 집중된다. 반면에 성격과 사고는 이야기줄거리를 진행시키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최소로 그려진다. 이 플롯은 <기본적 수수께끼>→ <해결>이라는 순환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서 거의 전부가 불안과 긴장감, 예상외의 결말의 재미에 집중된다. 모험소설, 탐정소설, 과학공상소설, 서부극, 무협소설, 그리고 스티븐슨(R. L. Stevenson)의 장편소설들, 미스터리소설들은 이런 플롯을 가지고있다.
나) 련민의 플롯(the pathetic plot):
자신의 잘못이 없는데도 불운을 겪어야 하는 공감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은 어딘가 의지가 약하고 사고(思考)는 순진하거나 결함이 있다. 고통의 플롯을 내포한다. 독자는 주인공의 불운에 대해 련민의 정을 갖게 된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으라》와 같은 작품들과 현진건의《운수좋은 날》, 최서해의 《박돌의 죽음》, 《홍염》과 같은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다) 비극적플롯(the tragic plot):
주인공이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을 바꿀수 있을만큼 세련되여 있고 그럴만한 능력이나 의지력도 가지고있지만 그가 불행을 겪게 될 때 그 불행의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다. 즉 자기 판단에서 어떤 중대한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잘못을 자신이 아닌 다른것에 미룰수 없게 된다. 비극적플롯은 련민의 플롯과 마찬가지로 불운의 위험으로부터 유발된것이기는 하지만 불운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만한 자신의 천성에 기인하는 과오여서 그 파멸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플롯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고전적비극의 플롯으로서 운명과 성격과 사고의 복잡한 관계가 개입되는데 주인공에 대한 우려와 련민을 통해서 정서적인 해방감 곧 카타르시스를 가져오는 플롯 류형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쉐익스피어의 《햄리트》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라) 징벌의 플롯(the punitive plot):
성격은 근본적으로 비공감적이나 의지력이나 지적인 세련이 칭찬받을수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성격을 지닌 인물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다가 종국에 가서 이 주인공이 전락해 버리거나 불행을 겪게 될 때 독자는 통쾌감을 맛보게 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트펠레스,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사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꼬리니코프 같은 인물은 그 좋은 례가 된다. 조선문학의 경우《춘향전》의 변학도와 같은 인물도 이에 해당한다.
마) 감상적 플롯(the sentimental plot):
수난의 플롯이기는 하지만 위협을 이겨내고 결국에 가서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공감적주인공을 포함하는 플롯이다. 헨리 필딩의 《톰 존스》가 이에 해당한다. 멜로드라마(오락 위주의 방송, 연화, 연극)도 이에 속한다.
바) 찬탄의 플롯(the admiration plot):
주인공의 고귀한 인품에 의해 향상하고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주인공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손실을 당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예나 명성의 면에서는 득을 본다. 독자들의 희망이 성취되는데 그가 예상을 능가하여 잘 해낸다는 점에서 존경과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특징을 지닌다. 마크 트웬의 《톰소 야의 모험》이나 김동인의 《붉은산》등이 이에 해당한다.
② 성격의 플롯(plot of character)
이는 주인공의 동기, 목표, 습관, 행위, 의지, 선악관, 고상함과 비천함, 공감과 거부반응 등을 추구하는 구성방법이다.
가) 성숙의 플롯(the maturing plot):
주인공의 성격의 변화가 향상되는 류형이다. 가장 흔한 것은 주인공이 목표를 잘못 설정하였거나 아직 완전히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기때문에 일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류형은 흔히 성년기에 들어서는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때문에 성숙의 플롯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교양소설에서 많이 취급한다. 콘레드의 《로드 짐》,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이 이 범주에 든다.
나) 개심(改心)의 플롯(the reform plot):
못을 저지르면서도 의지가 약하여 정도(正道)를 가지 못하는 인물이 나온다. N. 호돈의 《주홍 글씨》, 리범선의 《오발탄》 같은 작품이 이 범주에 속한다.
다) 시련의 플롯(the testing plot):
공감적이고 힘이 있고 과단성이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높은 목적과 수단을 량보하고 포기하도록 압력을 받게 되는 류형이다. 그는 의지를 꺾고 뢰물을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고집을 세우고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고 따라서 과연 그가 꺾일것인가 꺾이지 않을것인가 하는 문제가 플롯의 중심이 된다. 여기서 독자의 동정은 미묘하게 뒤얽힌다. 왜냐하면 만약 주인공이 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불운에 빠질것이고 만약 뜻을 굽히게 되면 현재 저항하고있는 유혹은 그를 물질적으로 향상시켜 주기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그가 항복을 하고 목숨을 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는 자존심과 아울러 독자에게서 받고있는 존경심까지 잃어버리게 될 우려가 있다. 그가 단 하나의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독자는 그에 대한 신임이 정당화되였다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 헤밍웨이의 《로인과 바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가 이에 해당한다.
라) 타락의 플롯(the degeneration plot):
한때는 정당하고 야심에 가득 찼던 주인공이 어떤 중대한 손실을 입어 환멸에 빠지게 될 때 일어나는 플롯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나빠지고있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순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목표와 야심을 표기해야 하느냐는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갈등에서 주인공은 대체로 후자를 택한다. 지드의 《배덕자》나 체호브의 소설들, 그리고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이에 해당한다.
③ 사상의 플롯(plot of thought):
이는 주인공의 정신, 태도, 리성, 감정, 믿음 등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구성방법이다.
가) 교육의 풀롯(the education plot):
주인공의 생각과 믿음과 태도를 통한 사고의 향상적변화를 보이는 플롯이다.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도스또옙스끼의 《죄와 벌》 등이 이 범주에 든다.
나) 계시의 플롯(the revelation plot):
자신이 처해있는 본질적상황에 대하여 주인공이 무지의 상태에 있는것을 말한다.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진실을 발견해야 한다. 똘스또이의 《부활》, 롤드 팔의 《개를 조심하라》가 이에 속한다.
다) 감정의 플롯(the affectve plot):
어떤 타인을 전과는 훨씬 더 진실 그대로 볼수 있게 되는 류형이다. 이 변화는 감정의 변화를 포함한다. 주인공의 태도나 관념에 있어서 희망적인 방향이든 체념적인 방향이든 일단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철학적인 종류의 플롯》이라고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스타인 백의 《가을》이 이에 해당한다.
라) 환멸의 플롯(the disillusionment plot)
교육의 플롯과는 반대로 공감적주인공이 자기 리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화려하게 출발은 하는데 어떤 손실과 위험과 시련을 겪은 후 신념을 모두 잃어버리는 플롯이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쓰비》,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 최인훈의 《광장》이 이에 해당한다.
제4절 플롯과 모티프
ⓛ 플롯과 모티프
현대소설에 이르면 사건의 진행이 시간적, 인과적 순서에 따르지 않고 대대적으로 조정되여 나타나게 되므로 소설을 죽 읽어 내려가기만 해서는 이야기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작가가 이야기 전개순서를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대하는듯한 느낌을 주게 되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줄거리 파악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연대기적 순서로 옮겨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로씨아 형식주의자들이 사건(event)과 구성(construction), 다시 말해서 파불라(fabula)와 슈제트(syuzhet)의 구별을 서사연구의 기초로 삼았던 점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가르쳐준다.
파불라는 사건들의 년대기적 순서의 련속을 가리키고 슈제트는 사건들이 실제로 작품속에 제시된 순서와 방식을 말한다. 독자들은 슈제트를 대하게 되는데 한 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슈제트만을 가지고 원인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파악해 파불라를 재구성하게 된다.
또한 형식주의자들은 사건의 진행을 지연, 차단시키기 위한 소설 특유의 방식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어찌 보면 작가는 줄거리를 가급적 지연시킬뿐 쉽게 들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예술적 자각이 깊은 작가의 작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2, 3페지로 요약할수 있는 내용을 알기 위해 두꺼운 소설책을 다 읽어야 한다. 이야기 줄거리만을 알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그 노력은 비경제적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소설가는 이야기 줄거리를 쉽게 들려주려 한다기보다 줄거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묘사나 곁두리 이야기를 첨가하여 전달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게 하고 어렵게 한다고 볼수 있다.
《하선생, 인사해요. 내 중학 동창인 윤희중이라는 친굽니다. 서울에 있는 큰 제약회사의 간사(幹事)님이시고 이쪽은 우리 모교에 와 계시는 음악선생님이시고, 하인숙씨라고 작년에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나오신 분이지.》 《아, 그러세요. 같은 학교에 계시는군요.》 나는 박과 그 여선생을 번갈아 가리키며 여선생에게 말했다. 《네.》 여선생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고 내 후배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고향이 무진이신가요?》 《아네요. 발령(發令)이 이곳으로 났기 땜에 저 혼자 와 있는 거예요.》 그 여자는 개성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윤각은 갸름했고 눈이 컸고 얼굴색은 노르끼했다. 전체로 보아서 병약(病弱)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좀 높은 콧날과 두꺼운 입술이 병약하다는 인상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상술한 서술에서 보면 작가는 하인숙이란 인물을 짧은 문장으로 압축하지 않고 긴 대화로써 소개하여 스토리의 전개 템포를 느리게 하고있다. 그리고 《그녀는 개성 있는 얼굴을 가졌다》는 직접적인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생김새를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고있음을 볼수 있는데 이는 흔히 말하듯이 사실감 내지 박진감을 나타낸다기보다 늘 보아오던 익숙하게 아는 녀인이 아니라 처음 보는듯한 낯선 녀인이 여기 있음을 독자가 인지하도록 하려는데 의도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장 낯익은 사실이나 사물을 낯설어 보이게, 흥미와 관심을 갖도록 제시하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런 방법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defamiliarzation)라 했다. 이처럼 세밀한 묘사가 자연히 이야기 줄거리의 전달을 지연시키고 내용파악을 어렵게 한다고 볼수 있는데 A. A. 멘디로우가 소설에서의 사건의 진행속도가 플롯의 방법론과 직결되고있음을 시사했듯이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어떤 형태로 서술하느냐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進駐)해 온 적군(敵軍)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流配)당해 버리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은 것이였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의 인용부분은 《무진》이란 곳에 대한 서술의 한 대목이다. 이를 ㉠㉡㉢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그중 ㉡의 부분은 《안개》에 대한 남다른 주인공의 의식을 담고 있어서 흔히 생각해 볼수 있는 안개현상을 낯설고 서먹한 새 모습의 형태로 드러나게 하고있다. 다시 말하면 《낯설게 하기》의 수법에 의해 안개, 더 나아가 안개가 무진장으로 많은 무진이라는 도시의 낯설음을 창조하고 있는것이다. 예술은 이처럼 낡고 관습적인 것을 새롭고 참신한것처럼, 평범한것을 신기한것처럼 표현하는 행위라고 형식주의자들은 믿는다.
한편 로씨야 형식주의의 대표적인 리론가인 B. 토마세프스키(Boris Tomashevsky)는 풀롯의 문제를 주제론과 련관시켜 론의한바 있다. 주제는 언제나 한 작품의 여러 부분들이 통일성을 이루어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도록 한다. 그런데 면밀히 따지면 작품의 각 부분들은 각각의 주제를 갖고 있다. 부분으로 하여금 각기 한 부분이라는 뚜렷한 단위를 형성케 하는것이 각 부분의 주제인것이다. 이러한 각 부분의 주제는 곧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소의 의미단위가 되는데 이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처럼 한 작품에서 찾아볼수 있는 최소의 의미 단위, 즉 한 문장의 내용을 형식주의자들은 모티프(motif)라고 불렀다. 《그는 려행을 떠났다》, 《고향에서 친구를 만났다》, 《꽃이 활짝 핀 봄이였다》 등은 모두 하나의 모티프들인데 이런 모티프들의 큰 부분의 주제 나아가서는 작품 전체의 주제를 이루는데 참여하는것이다.
그런데 이중에서 작품 주제를 형성하는데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모티프들도 플롯을 구성할 때에 들어가게 된다. 무진의 안개에 대한 묘사를 앞에서 인용한바 있는데 그중 ㉡의 부분은 생략해 버려도 전체 이야기를 파악하는데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어느 모티프는 생략해도 사건의 련관성이 파괴되거나 전체 이야기의 일관성이 손상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B. 토마세프스키는 이런 모티프를 자유 모티프(free motif)라 하고 주제 형성에 꼭 필요한 모티프를 한정 모티프(bound motif)라고 하였다.
작가가 자유 모티프를 첨가하는데는 특별한 리유가 있다. 이야기 줄거리만을 전달하려면 사건의 행위에 대한 서술, 즉 한정 모티프만이 필요할 것이다. 소설의 예술성은 전달내용과는 아무 관계가 없거나 간접적인 관계가 있을뿐인 자세한 묘사, 삽화, 의론, 서정토로, 즉 자유 모티프를 적절히 사용하는데서 달성될수 있는것이다. 사건의 진행속도가 느려지고 이야기줄거리가 현저히 애매해지는것도 자유 모티프의 사용과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십분 살려 예술성을 높이려는 작가의 의도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력량은 소설을 예술로 만드는 자유 모티프의 적절한 사용에서 나타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제5절 플롯과 소도구, 복선과 조응 그리고 삽화
소설은 모티프 또는 사건의 련속체라고 말할수 있지만 사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도구(小道具), 복선(伏線)과 조응(照應) 및 삽화(揷話)이다.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사건과 사건을 엮어내기도 하며 의미를 형성하기도 한다.
사건은 소설의 뿌리와 줄기라고 할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유심히 따져 보면 다시 많은 소도구로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다. 소도구는 사건에 비하면 아주 작은 단위여서 소설의 가지나 잎사귀에 해당된다고 말할수 있지만 한편 그것은 세포조직과 같은것이여서 사실 소설 전체가 수많은 소도구로 가득 차있다고 말할수 있을만큼 그것은 중요한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속의 사건은 언제나 단선(單線)이 아니다. 설령 그것이 솨시슬이나 목걸이처럼 어떤 련결고리를 가진 선형(線形)이라 하더라도 그 원래의 스토리 라인25)에다가 또 하나의 스토리 라인이 겹치기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스토리 라인이 철길처럼 평행선을 긋기도 하고 새끼줄처럼 꼬이기도 하고 매듭처럼 얽히기도 하면서 소설은 형성된다. 원래의 스토리 라인 외에 겹치거나 꼬이거나 평행을 이루는 다른 스토리 라인을 우리는 복선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한 삽화는 글자 그대로 중간에 끼워 넣는 이야기이니까 짧지만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다. 짤막한 이야기가 긴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여들면서 그것들은 부분과 전체를 통합하고 장차 큰 주제를 암시하고 또한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소도구와 복선과 삽화는 어쨌든 소설의 중심 사건으로는 되지 못하거니와 주요한 스토리 라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없이는 소설을 진척시킬수 없다. 그만큼 그것들의 보조역할은 중요하다. 소도구 없이 사건은 설명될수 없거니와 복선이 없는 스토리 라인은 무의미한 사건의 련속에 지나지 않는다. 소도구와 복선과 삽화는 모두 스토리 진행에 관계될뿐만 아니라 의미형성에도 관계된다.
소도구
(1) 소도구의 개념
소도구란 연극 따위의 무대에서 쓰이는 자잘한 물건들을 말하나 소설에서는 좀 다른 특징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소설에서 리용하는 소도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도구에 대한 설명이 곧 사건의 전개이다. 말하자면 소도구는 사건의 중심 소재가 된다. 례를 들면 단편 한국의 소설가 리병천26)의 《단도(短刀)의 집》은 주로 도둑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가지의 도난사건을 설명한다. 그 여러 가지 도난사건을 설명하자면 또 여러 개의 잃어버린 물건이 필요하다. 그것들이 바로 소도구이다.《단도의 집》의 경우 도난을 당한 황소, 닭, 가래떡이 바로 소도구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파상의 《목걸이>>에서의 목걸이, 리원길의 《백성의 마음》에서의 벼종자나 떡, 김영자의 《섭리》에서의 고양이가 바로 소도구로 되는 셈이다.
둘째로 소도구의 수량은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알맞게 조정되여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할수 있을만큼 다양하면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렬거하다 보면 자칫 지루해질 위험이 있다.
셋째로 소설속의 소도구들은 각각 별개의 사물인것 같지만 그러나 비슷한 이미지를 갖는것들이여야 한다. 황소와 닭과 가래떡은 각각 별개의 것이지만 크게는 농촌에서 가능한 이미지를 갖고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주 사소한것 같지만 농촌에서는 아주 중요한것들이다. 그것들을 잃어버렸을 때 는 충분히 사건이 될만한것들이다.
《단도의 집》은 궁국적으로 힘의 지배를 문제로 삼고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엉뚱하게 도둑이야기만을 계속하고있는데 그러한 가운데 어느덧 의미있는 있는 사건이 뒤바뀌는것을 알아야 한다. 황소를 잃어버린 사건이 생기자 또식이가 루명을 쓰게 되고 기성회비를 잃어버린 사건이 생기자 또식이가 루명을 쓰게 된다. 그것은 사태의 역전이다. 사태가 역전되면서 어떤 의미가 형성된다. 우리 집 황소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아버지의 힘에 의해 두갑이가 도둑이 되지만 두갑이 딸인 인숙이 기성회비를 잃었을 때는 인숙의 힘에 의해 내가 도둑이 된다. 그것은 누가 도둑이고 도둑이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도, 두갑이도, 그리고 인숙이도, 나도, 도둑은 누구나 다 될수 있다. 다만 그것은 힘이 있고 없음의 문제일뿐이다. 힘이 없으면 좀도둑도 큰 도둑이 될수 있지만 힘이 있으면 큰 도둑도 전혀 도둑이 아닐수 있다. 이 엄청난 세상이야기를 그 자잘한 소도구에 얽힌 이야기들로 해결해 나가고있는것이다.
(2) 소도구의 기능
첫째, 소도구는 경우에 따라 이야기의 중심 현장이 될수도 있다.
― 우한용 《객사에 누가 머무는가》
(3) 소도구는 주제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 조건상의 단편 《미제 고양이》
(3) 추상적인것도 소도구가 될수 있다.
― 한용환 《이 다음에 우리는 누구의 가슴에 따뜻한 별빛으로 남 을수 있으랴》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들판길을 거닐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서서는 하늘로 고개를 들었는데, 나는 거기서 아름다운 별빛을 본 것이었다. (중략) 나는 별빛을 올려다보고 선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요컨대 나는 더 이상 어머니의 행방을 수소문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가 내 가슴에 이렇게 살아 계시듯, 이 다음 우리는 또 누구의 가슴에 따뜻한 별빛으로 남을 수 있으랴.
복선 깔기
복선(伏線, 伏筆)이란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나중에 있을 인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미리 넌지시 비쳐두거나 암시함으로써 플롯의 전후가 호응되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단도의 집》은 도둑에 얽힌 이야기지만 이밖에도《칼》에 대한 이야기를 한 자락 더 깔고 있다. 이런 이야기 자락을 원래의 스토리 라인에 대해 복선이라고 한다.
(1) 복선은 주제를 암시한다.
(2) 복선은 여러 차례 끼여들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의미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중심 스토리 라인과 만날 때 상징적이다.
(3) 풀롯의 전후가 호응되게 함으로써 플롯의 하나의 통일체로 탄탄하게 매듭짓는다.
―돌스또이의《안나 까레니나》에서의 기차 사고
삽화
소도구와 복선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지만 중심 스토리 안에 끼워 넣는 이야기 형식으로 삽화(揷話)라는것이 있다. 말하자면 삽화란 소설이나 희곡 속에 끼워 넣는 본 줄거리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지칭한다. 삽화는 짧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 형태를 갖추고있다. 그리고 상징적이거나 우화적인 기능을 갖는다. 그 때문에 소도구가 일회성 소모품인데 비하여 삽화는 단 한번 등장하고도 항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작품 전체의 주제를 암시하거나 우화적인 상징성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삽화는 모든 소설에 다 소용되는것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히 사용된다.
첫째 삽화는 소설의 중심 이야기와는 이질적이면서도 결국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단도의 집》이 그러하다.
둘째 어떤 삽화는 간단한 일회성의 소도구 같지만 작중인물의 성격을 형성해 주기도 한다. 윤흥길의 《황혼의 집》이 그러하다.
셋째로 어떤 삽화는 짧지만 소설의 중심 스토리 라인을 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