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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말하기] 박연선
1. 회의실 안 (낮) 진지한 음악이 먼저 깔리고. 열두명 젊은 직원과 회의중인 강민수 (남, 49세) 꼿꼿한 자세로 서류를 훑는다. 확신에 찬 어조로 발표하는 직원 (남, 30대 중반) 발표직원 : ...현재 공장부지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인건비와 상승빕니다. 단기적으로 볼 때 수송비가 인건비를 앞서지만, 3년 이상을 내다보면 인건비 상승률이 수 송비를 앞 설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두 수치를 비교 검토한 결과 저희 팀은, 인 건 상승비가 소송비를 추월하는 시점을 최소 2005년 상반기로 추정했습니다. 직원, 강민수의 표정을 살핀다. 그러나 강민수의 얼굴로는 의견의 동조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강민수, 슬쩍 눈을 들어 발표직원을 보면, 발표직원, 피하듯 서류로 시선을 떨군 다. 발표직원 : (아주 잠깐 더듬는다) 어.. 인건비 상승비율표는 3페이지를 참고 하시면 됩니다. 후라락 자료 넘기는 소리. 강민수 자료를 눈으로 읽는데 노크 소리와 잠시후, 비서실장 (30 대 남)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는 강민수. 비서실장 : (흥분해서) 축하드립니다! 강민수 : (동요 없이 쳐다본다) 비서실장 : 방금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임명 되셨습니다. 일제히 터지는 환호성. 진지하던 음악도 비트 빠른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고. 몇 명은 서류를 공중으로 날리기도 하고. 몇 명은 박수를 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축하합니다"소리들. 모드들 자기 일처럼 혹은 오바 해서 축하하는데.. 발표직원 : (흥분해서) 축하합니다. 강민수 : (변함없는 얼굴로) 그래.. 자. 계속하지! 그 말에 신나던 음악 뚝 끊기고. 뜨악한 직원들. 직원들. 직원들.. 비서실장도 눈치를 보며 나가고, 반쯤 일어나 있던 직원들, 엉거주춤 앉는다. 발표직원, 어디까지 했나, 내팽겨쳤던 서류들을 황급히 끌어모아 손으로 행간을 더듬다가 쳐다보면, 강민수, 여전히 감정 없는 얼굴로 서류를 보다가 직원을 쳐다본다. 빨리 하라는 얼굴로. 2. 승진 몽타쥬. 2-1 사장실 책상에 놓여지는 명패 '대표이사 강민수' 누군가의 손이 명패에 붙은 비닐을 쫙 뜯어낸다. 명패에 박힌 금박 글씨, 더욱 빛난다. (강민수) : 내 나이 마흔 아홉. 드디어 원하던 자리에 올랐다. 경쾌한 음악 시작되고. 2-2 안방 안 (새벽) 사르륵. 실크 넥타이 올라가는 소리. 넥타이 핀 잠그고, 와이셔츠 핀 잠근다.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아내 채옥이 잡아주는 양복 윗도리에 팔을 끼우는 강민수. (강민수) : 20년을 목표로 하던 자리다. 감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2-3 차 달리고 있다 (인서트) 2-4 차 안 (아침) 최기사(남, 40대 중반)가 룸미러로 흘깃 강민수를 쳐다본다. 빈틈없는 자세로 앉아있는 강민 수. 액정TV에선 주식 뉴스가 흘러나온다. (강민수) : 25년 회사생활, 위기도 있었다. 부하직원의 실수를 대신해 사표를 쓴적도 있었고 IMF땐 당시 사장을 대신해서 채무자를 상대하다가 입원한 적도 있었다. - 횡단보도.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춘다. - 차 안. 강민수의 시선이 잠깐 창 밖을 향한다. 맞은 편, 5층짜리 상가. 직업 소개소. 기원.. 허름한 간판들 사이에 함께 붙어있는 '윤태현 정신 상담소'라는 간판 이 얼핏 보인다. 강민수의 시선 다시 앞을 향하면, 차 출발한다. 2-5 회사 건물 앞 검은색 중형차가 미끄러지듯 햇빛을 받으며 들어오면, 기다렸다가 다가와 문을 열어주는 경 비. 강민수 내린다. (강민수) : 그 때 내가 바라 본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정상! 강민수, 날씨를 가늠하는 것처럼 하늘을 흘깃 바라보고 회사 안으로 들어간다. 회사로비 일제히 일어서서 줄 맞춘 듯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청원 경찰들. 안내요원들 예닐곱명. 일별도 없이 로비를 가로지르는 강민수. 경쾌하게 울리는 구두소리. (강민수) : (걸으면서) 일을 위해 나를 희생했다는 말은 아니다. 경비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땡'하는 엘리베이터 도착소리와 함께 곧바로 문이 열린 다. (강민수) : 나는 일을 즐겼고, 말하자면 일은 내 취미였다. 안으로 사라지는 강민수. 2-6 비서실 비서실 안쪽이 사장실이다. 강민수 들어오자 일제히 일어나는 비서실 직원들. (강민수) :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었고, 성공도 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장실로 들어가는 강민수. 2-7 사장실 안 (아침) 윗도리를 벗어 걸고 자리에 앉는다. 아침 침실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멈춤도, 미적거림도 없었던 강민수. '대표이사' 명패를 보면서.. (강민수) : 그런데 이 허무함은 뭐지? 강민수의 팽팽하던 얼굴, 무너지며 한숨을 쉰다. 3. 회의실 안 (낮) 1씬의 직원들과 다시 회의중인 강민수. 강민수, 보고서에 열심히 메모중이다. 발표직원 : 정확한 액수를 그쪽에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우리 예상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선택사항이 많다는 것이 현재까진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 다. 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겐 불리할 것이란 판단입니다. 공사시작은 3월부 터 가능합니다. 이상입니다. 발표직원, 자리에 앉는다. 보고서를 보던 직원들, 일제히 강민수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강민수, 여전히 메모중이다. 메모가 너무 길다. 발표직원 : (조심스럽게) 사장님! 그제서야 고개를 드는 강민수. 강민수, 메모하고 있는 걸 한 번 내려다보고는 보고서를 뒤집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민수 : (자리에서 일어나) 5분만 쉴까? 강민수 나가면 발표직원, 뭘 그렇게 메모했나 보고서를 뒤집어 본다. ㅇ마다 까맣게 색칠이 되어있다. 벙찐 발표직원. 4. 화장실 안 (저녁) 사장 전용 화장실이라 호화롭다.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을 마주보면서 (강민수) : (다짐하듯) 도대체 뭐하는 거냐? 강민수, 정신차려! 지금은 늘어질 때가 아니야. 여긴 시작에 불과해. 손에 물기를 묻혀 얼굴을 감싼다. (강민수) : 그래! 난 강민수다! 강민수라구! 그러나 손을 떼고나면 허물어진 강민수의 얼굴이 거울에 나타난다. (강민수) : (한숨처럼) 근데 강민수가 누구지? 5-1 차 달리고 있다. (밤, 인서트) 5-2 차 안 (밤) 강민수가 조금은 지친 자세로 뒷자리에 앉아있다. 액정티비에선 뉴스가 흘러나온다. 강민수 : ...그것 좀 끄지? 최기사 : 예? 강민수 : 머리가 아파서... 최기사 : 예.. 최기사 TV를 끄고는 이상하다는 듯 룸미러로 강민수를 본다. 강민수 : (조용히) 최기사! 최기사 : 예. (강민수) : 자넨 행복한가? 최기사 : (불러놓고 말이 없자 슬쩍 돌아본다) 강민수 : 저 앞에 차 좀 세워주게. 강민수의 차가 정차한다. '윤태현 심리 상담소' 조금은 촌스러운 간판이 반짝인다. 6. 윤태현 사무실 안 (밤) 조금은 초라한 사무실. 간호사(20대 중반, 여)와 함께 짬뽕을 먹는 윤태현(40대 후반, 남) 윤태현이 단무지를 집자 간호사 : (은근하게) 선생니임? 윤태현 : 어?.. 윤태현의 짬뽕 그릇 안에 반 먹다남은 단무지가 세 개나 들어있다. 윤태현 객쩍게 웃으며 단무지를 내려놓는데 문이 열리고, 강민수, 손잡이를 잡고 잠시 상황을 본다. 간호사, 다 먹지도 않은 윤태현의 짬뽕 그릇을 빼앗듯 치우며 간호사 : 들어오세요. 윤태현 : ...자, 이리루. 손짓을 하다가 젓가락을 얼른 간호사에게 준다. 7. 상담실 안 (밤) 윤태현, 책상에서 메모할 것을 찾으며 윤태현 : 앉으세요. 윤태현 돌아보면, 눕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있는 강민수. 윤태현 : 편히 앉으세요. 강민수 : 괜찮습니다. 윤태현 : 아뇨. 제가 불편해서.. 강민수 : 아, 예. 강민수, 마지못해 의자에 눕는다. 그러나 그가 온몸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두 손을 배꼽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줄이는 윤태현, 옆 의자에 앉는다. 윤태현 : 예, 됐습니다. 말씀하세요. 강민수 : ... 윤태현 : 말씀하세요. 뭐든지.. 강민수 : ... 윤태현 : 선생님? 강민수 : (몸을 반쯤 일으키며)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드릴까요? 윤태현 : 예? 그러니까.. 왜 여기를 찾아 왔는가 하는.. 갑자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기신 거 아닙니까? 강민수 : 예..(누우며)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어졌습니다. 출근하는 게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윤태현 : 예전엔 즐거우셨습니까? 강민수 : (단호히) 예. 윤태현, 잠깐 이상한 놈이군. 하는 얼굴. 강민수 천장을 응시한다. 윤태현 : 계속하세요. 강민수 : 문득문득 한숨이 나는데요. 거울을 보면 특히 더합니다. 언제 이렇게 늙어버렸지 싶어 서... 아까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사무실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강민수) : 이런, 도대체 뭘 하는 거야? 강민수. 네 한마디가 주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지. 윤태현 : (말이 없자) 선생님? 강민수, 자리에서 일어난다. 윤태현 : 왜 그러십니까? 강민수 : 됐습니다. 윤태현 : 뭐가요? 된거 하나도 없는데요? 잘하구 계십니다. 그렇게 계속... 강민수 : 많이 좋아 졌습니다. (나간다) 윤태현, 어정쩡한 얼굴로 쳐다본다. 8. 윤태현 사무실 안 (밤) 강민수, 카드 전표에 사인을 하고 나가려다가 강민수 : (돌아보며 심각하게) 제가 여기 왔었다는 건 비밀로 해 주십시오. 걱정 말라는 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는 윤태현과 간호사. 강민수 나가면. 윤태현 : 저 사람 알아? 간호사, 고개를 젓는다. 9. 건물 앞 (밖/밤) 차에 기댄채 하품을 하던 최기사, 얼른 차렷 자세를 잡는다. 강민수, 예의 무표정을 얼굴로 나오고 있다. 최기사 : 너무 오래 계셔서 올라가 볼까 하던 참입니다. 강민수 : ... 최기사 : (차문을 열어주며) 저.. 변비엔 호두가 좋답니다. 강민수 : ? 최기사 : 우리 둘째 형님이 어려서부터 변비가 심했는데, 딱 세 달 호두기름 바르고.. 강민수, 차에 오른다. 10. 강민수의 집 안 (밤) 아내 채옥, 아들 무열, 딸 은재가 TV를 보고 있다. 귤을 까먹으면서. 요란한 오락프로그램이다. 은재 : 엄마, 내친구 혜진이 있잖아. 혜진이 엄마 임신했대. 채옥 : 엄마가 몇 살인데? 은재 : 몰라. 그치만 너무 이상해. 채옥 : 뭐가? 은재 : 아잉, 그냥 너무 이상하잖아. 채옥 : 그게 뭐 어때서... 은재 : 으.. 징그러워. 채옥 : 니가 더 징그럽다. 은재 : 뭐가? 무열 : (일어서며) 아빠 오셨어요? 돌아보면 강민수가 서있다. 은재 : 아빠 다녀오셨어요? 채옥 : 저녁은요? 강민수 : 먹었어. 무열과 은재, 안으로 들어가고 채옥, 귤 접시를 들고 식당쪽으로 간다. 텅 빈 거실. 혼자 서있는 강민수. 때마침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TV. 외롭다. 발치에 뒹구는 TV리모콘을 집어드는 강민수. 11-1 강민수의 집 인서트. 11-2 강민수의 집 거실 안 (낮) TV에선 자연 다큐 '세렝게키 초원'을 재방송하고 있다. (방송장면은 '누우'가 악어에게 뒷발을 물려 3시간 정도 사투 끝에 살아나는 장면이다. 내래이터의 '마지막 순간이다'등의 멘트. '살고자 하는 욕망은 무엇보다 강하다'는 멘트와 함 께 '누'가 살아나면) 갑자기 화면 밖에서 들리는 '흐흐흑' 흐느끼는 소리. 강민수, 울고 있다. 일요일 아침의 풍경이다. (강민수) : 살았다! 다행이다! 그때 들리는 아내와의 목소리... (채옥) : 아니긴 뭘? 설교 내내 그쪽만 보던데. (은재) : 안 봤어. 강민수, 벌떡 일어난다. 어쩌지? 거울을 본다. (강민수) : 이런 하필!.. 눈이 빨갛다! 눈병이라고 하면 믿을까? (채옥) : 엄마한텐 말해도 돼. 누구야? 체크무늬? (강민수) : 코는 또 왜 이렇게 빨개진 거야? 문 따는 소리와 함께.. 강민수, 안방으로 들어가면 아슬아슬하게 등장하는 채옥, 은재. 그리고 2층에서 내려오는 무 열. 채옥 : 가디건 입은 애? 은재 : (그만 하라고) 엄마! 은재와 채옥은 교회에 갔다오는 중이다. 손에 성경책을 들었다. 채옥 : 아빠는? 무열 : 아까까지 TV보셨는데.. (채옥) : (놀라서) 여보! 안방에서 나오는 강민수,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강민수 : (근엄하게) 회사에 좀... 강민수, 무사히 빠져나가는가 싶은데, 채옥 : 여보! 강민수 : (돌아보지도 않고) 급한 일이라 다녀와서 얘기하지. 채옥 : 리모콘은 놓고 가세요. 강민수의 손에 들린 TV리모콘. 12. 윤태현 상담실 안 (낮) 급하게 불려나온 윤태현은 추리링 차림이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얘기중인 강민수를 쳐다본다. 강민수 : 통제가 안됩니다. 내 몸인데 내 맘대로 안돼요.. 자율신경이 마비된 겁니까? 늙으면 여성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데 그겁니까? 윤태현 : 선생님이 급한 건 알겠는데 오늘은 일요일이구요. 우리 상담실은... 강민수 : (듣지 않는다) 내가 울다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저 좀 도와 주십시오. 여기 누울 까요? 강민수, 알아서 의자에 눕는다. 윤태현 : (작게 한숨을 쉬고는) 눈물을 흘린게 그렇게 충격입니까? 강민수 : 처랑 애들한테 들킬뻔 했다니까요?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납니다. 윤태현 : 마지막으로 남들 앞에서 울어 본 게 언제입니까? 강민수 : (생각한다) ...열두 살 때, 어머니 돌아 가셨을 때 한 번... 윤태현 : (조금 놀라서) 그동안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습니까? 강민수 : (단호히) 예! 윤태현 :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시는군요. 강민수 : ... 윤태현 : 가족이랑 속의 얘기를 어느정도 하시는 편입니까? 강민수 : 예? 윤태현 : 외롭다, 슬프다, 섭섭하다, 이런 얘기 말입니다. 강민수 : (의아하다)선생님을 그런 얘길 가족한테 하십니까? 윤태현 : 그럼요. 강민수 : (일어나 앉으며) 예를 들면 어떤 걸? 윤태현 : 예를 들면.. 아! 나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넣는게 좋은데 제 아들은 참치 넣는 걸 좋 아 하거든요. (말하다 보니 흥분했다) 근데 집사람은 번번히 참치를 넣는 겁니다. 다 섯 번 중 네 번은 참치찌개에요. 그럼 안되지. 가장은 난데.. 돈을 누가 버는데. 참다 참다 오늘 아침에 얘기했습니다. 자꾸 이러면 나 돈 안 번다. 강민수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강민수 : 그랬더니 가족의 반응이 어떻든가요? 윤태현 : 쪼잔하다고 그럽디다. 쪼잔하긴 뭐가 쪼잔해. 누군 속도 없는 줄 알아? 먹는 거 갖고 진짜... (하다가) 저 선생님. 상담은 제가 받는게 아닌데.. 19. 복도 - 계단 (밖/낮) 문을 닫고 나오는 강민수. 복도를 빠져 나온다. (인서트) 의자에 앉은 채로 빙글 돌아 정면을 보며 윤태현 : 선생님의 우울증은 오랫동안 감정을 압박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목표 달성 을 위해 감정표현을 억누를 수 있었지만, 달성해야 할 목표를 상실한 지금, 오랫동안 눌러온 감정들이 갑자기 솟구치는 거죠. 계단을 내려오는 강민수. 역시 생각한다. (인서트)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윤태현 : 이대로 두면 증세는 더욱 심각해 질 겁니다. 우울증은 초기엔 어려운 병이 아니지만 심해지면 손 쓸 방법이 없어집니다. 잠깐 멈춰서는 강민수. (인서트) 윤태현,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윤태현 : (자신있게) 선생님의 경우 방법은 한가집니다. 감정을 표현하십시오. 물론 첨에는 힘 들 겁니다. 감정 표현에도 학습이 필요한데 선생님은 그게 안 돼 있거든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하셔야 됩니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온 강민수. (인서트) 윤태현 : 제 처방은 간단합니다. 가족 모두에게 (똑바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마치 관객에게 하 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다가 삐끗하는 강민수. 겨우 중심을 잡는다. (강민수) : 쌩 돌팔이. 강민수 : (획 돌아서 건물쪽을 보며)차라리 약을 달란 말야, 약을. 돈은 얼마든 줄테니까. 강민수, 다시 돌아서는데, 바로 뒤에 있던 경찰과 눈이 마주친다. 모르는 척 갈길을 가는 강 민수. 14. 술집 앞 (밖/밤) 부하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강민수. 최기사가 부리나케 내려 문을 열고 강민수를 태운다. 15 - 1 차 달리고 있다 (인서트) 15-2 차 안 (밤) 술에 취한 강민수. 최기사 룸미러로 강민수를 본다. 늘 단정하던 그가 아니다. 흐트러졌다. 최기사 : (룸미러를 보며) 괜찮으십니까? 강민수 : 응... 강민수 창문을 내린다. 바람이 시원하다. 최기사 : 사장님 취하신 거 처음 보는 같습니다. 강민수 : ... 취한 눈에 흔들리는 도시의 야경을 보면서 문득. 강민수 : 자네도 아들 하나, 딸 하나라고 그랬나? 최기사 : 예 사장님. 강민수 : 애들한테 감정 표현을 하나? 최기사 : 예? 강민수 : 그러니까... 그... ㅅ... 'ㅅ' 발음을 할려니까 입에 쥐가 날 것 같다. 강민수 : (간신히) 사랑한다는 말은 해봤나? 큰 일을 해낸 강민수. 최기사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숨을 몰아 쉬는데 최기사 :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한테요? 가끔하죠. 딸한테는 거의 매일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하고 나왔는 걸요. (강민수) : 이사람 보기보다 대담하잖아. 최기사 : 요즘은 딸 키우는 재미로 삽니다. 참 애교가 말도 못해요. (생각만 해도 흐믓하다) 출근 할 때마다 뽀뽀를 해주는데요, 내 귀를 탁 잡고, 양쪽 볼에 이마에, 입술에.. 상상하는 강민수. (인서트) 딸 은재가 강민수의 귀를 잡고 볼에, 이마에 뽀뽀를 한다음, 입술을 쭉 내밀고 다가온다. - 차 안 허걱! 강민수. 놀라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피하듯 몸을 뒤로 젖힌다. 최기사 : 왜요? 사장님도 늦동이 보시게요? 늦동이라고라?? 16. 거실 안 (밤) 은재가 엄마를 조르고 있다. 엄마, 현관쪽으로 가면 쫒아 가면서. 은재 : 엄마! 채옥 : 한 번 안된다고 했으면 안되는 줄 알아. 은재 : 내 친구들은 다 간단말야. 강민수가 들어온다. 채옥 : 술 드셨어요? 깅민수 : 응. 들어가려다가 잔뜩 부어있는 은재를 본다. 강민수 : 왜? 채옥 : (일르는 것처럼) 혼 좀 내줘요. 무슨 콘서트라나.. 간다고 어제부터 졸라대는데.. 은재 : (아빠는 무섭다. 꼬리를 내린다) 안가면 되잖아. 은재, 시무룩해서 방으로 가려는데 강민수 : 보내주지 그래. 은재, 채옥, 둘 다 놀란다. 채옥 : 안돼요. 밤 열 한시에 끝난다는데.. 잠실에서 여기가 어디라구. 은재 : (기회다) 버스 있어요. 여기까지 한 번에 오는 거. 채옥 : 밤 늦게 무슨 버스야? 안 돼. 강민수 : 괜찮아. 버스도 타보고 해야지. 채옥 : 여보? 은재 : 아빠가 허락했으니까 됐지? 아빠 최고야! 아빠 사랑해요. 은재, 엄마에게 혀를 쏙 내밀며 좋아하다가 강민수의 한마디를 듣고 그대로 얼어 버린다. 강민수 : (안방으로 들어가며) 나도 우리 딸 사랑한다. 안방문 닫히는 소리. 충격의 한 호흡이 지나고. 채옥 : (눈을 꿈뻑이며) 방금 니 아빠가 뭐라 그랬니? 은재 : 엄마도 잘 못 들었어? 하하 동시에 잘 못 듣다니... 17. 안방 안 (밤) 문에 기대서 주먹을 불끈 쥐는 강민수. (강민수) : 해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별 것도 아니잖아.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자! 다 음은 누구냐? 전형적인 가족 사진 속. 아들, 무열에게로 줌인. 18. 무열 방 안 (밤) 고등학교 수험생의 방. 무열, 책상앞에 멍하니 앉아있다. 뭔가 고민이 있다. 노크소리와 함께 강민수가 들어온다. 강민수 : 공부하니? 무열 : (조금은 뜻밖이다) 예. 강민수 : (침대에 걸터 앉는다) 힘들지? 무열 : (책을 보는 척) 그냥 뭐.. (강민수) : (아들등을 바라본다) 자, 어디서부터 공략할까? 공부를 도와준다? 괜찮은 방법이지. 그랬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이성문제 쪽으로 접근해볼까? 무열 : 아버지! 강민수 : (부드럽게) 음? 왜? 무열 :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강민수 : 아니 뭐.. 무열, 쳐다보면, 눈치를 못채다가 겨우 강민수 : ..신경 쓰이지? ..공부해라. (강민수) : (나가면서) 역시 아들놈은 만만치 않군. (최기사) : 아들은 누구네 집이건 마찬가집니다. 19. 차 안 (아침) 출근길이다. 최기사 : 뻣뻣해갖고서는.. 중학교만 들어가도 친구가 최고죠. 엄마하고는 가끔 여자 친구 얘기 도 하고 그런다고 하더만. 강민수 : (몸을 앞쪽으로 숙인 채 열심히 듣고 있다)... 최기사 : 저부텀도 그런걸요. 어머니한테는 이것저것 쓸데없는 말도 하게되고.. 농담도 하고.. 아버지한테는 안부 묻고 나면 할 얘기가 없어요. 오이디푸스래나 장티푸스래나 그러게 진짜 있는 모양입니다. (강민수) : 오이디푸스라.. 최기사 : 예전 같으면 목욕탕 가서, 홀딱 벗고 등밀어 주면서 아버지랑 아들이랑 친목도모를 했다지만, 요즘은 누가 대중탕 갑니까? 집집마다 목욕탕 있구.. 강민수, 곰곰이 생각한다. 20. 목욕탕 탈의실 안 (낮) 대중탕이 처음인 무열, 어색하고 못마땅하다. 여기저기 시선을 두다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고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강민수, 라커에 옷을 넣으며 (강민수) : 자, 우린 이제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기전에 남자대 남자. 인간대 인간으로 마주 서보자.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저 진실 된 감정의 세계로. (열쇠를 뽑아들며 휙 돌아선다) 강민수 : 가자! 무열, 단호하게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왜 저러나' 한숨만 난다. 21. 목욕탕 안(낮) 무열이 강민수의 등을 밀고 있다. 무열은 여전히 뚱한 표정이다. 강민수 : 주위 얘기 들어보면, 아들 딸 문제로 고민하는 집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무열 : ... 강민수 : 네 엄마가 워낙 잘 하고 있고, 니들도 크게 엇나가지 않고.. 그러다 보니 내가 신경을 덜 쓰는 건 사실이지만, 아버지도 부몬데 자식 일에 무관심하겠냐? 무열 : (무뚝뚝하게) 시험 성적말고 저에 대해 알고 있는 거 뭐가 있는데요? 강민수 : ... 무열 : 제가 언제부터 교회 안 다니는지 아세요? 강민수 : ... 무열 : 내 키가 얼만진 아세요? (강민수) : (발끈해서) 그런 너는 내키가 얼만지 아냐? 무열 : 아빠보고 무관심하다고 뭐라 그런 적 없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세요. 강민수 : 교대할까? 강민수, 때 수건을 받아 무열의 등을 밀기 시작한다. 강민수 : (뜬금없이) 2.9킬로, 63센티미터. 무열 : 뭐가요? 강민수 : 너 처음 태어날 때 그랬다. 2.9킬로 63센티. 손가락 발가락 세 봤더니 열 개씩 다 있 었고 얼굴도 누굴 닮았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눈 코 입.. 다 제대로였다. 자기 애 가 어디 이상할까.. 엄마만 불안한 건 아니다. 니 엄마가 불안해 할 때마다 뭐라 그러 긴 했어도 신생아실에서 널 처음보는 순간까지 나도 불안했다. 무열 : (조금은 감동 받는다) 강민수, 스스로 취했다. 진지한 얼굴로. 강민수 : (탄력 받았다) 만약에 네 키가 다른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작다거나 심하게 크다면 난 네 키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거다. 아버지란 사람들은.. 평소엔 아무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 같지만, 정작 문제가 생기면 가장 필요하고 가장 기댈 수 있고.. (강민수) : (씨익 웃는다) 역시 벗고 있으니까 대화의 깊이가 다르군. 무열, 표정이 흔들린다. 감동 때문일까? 강민수 : (지긋이 허공을 보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아버진 아들의 영원한 서포터란 거다. 엄마처럼 표현하고 말하진 못하지만. 아들에 대해서 마음깊이 늘 응원하고 걱정하고 또.. (강민수) : 사랑한다. 무열 : (참다못해) 그만해요! 22. 거실 안 (낮) 엄마가 무열의 등에 약을 발라준다. 무열의 등 한가운데가 새빨갛게 부어 올랐다. 은재,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구경하고 있다. 무열 : 작정을 하고 한자리만 빡빡 문지르는데.. 그 자릴 아주 파더라구. 피났지? 채옥 : (강민수를 변명해 주는 것처럼) 피는 안났어. 그만해. 채옥, 어깨까지 말아올린 윗도리를 약이 묻지 않도록 내려준다. 23. 안방 안 (낮) 문에 기대서 거실의 반응을 엿듣는 강민수. (무열) : 암튼 이상해. 아빠가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첨봤어. 아까도 어유.. (은재) : 왜? (무열) : 아빠는 아들의 서포터즈랜다. (은재) : 진짜.. (무열) : 감동의 물결이었어. 익사할 뻔했다 내가. 그 물결에.. 강민수,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강민수) : (가족사진을 보며)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군. 24. 레스토랑 안 (밤) 생음악이 연주되는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는 채옥. 전망 좋은 창가자리. 강민수가 아내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점프) 창가자리.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가고나서. 아내 : (좋아서) 당신 뭔가 착각한 거 아녜요? 강민수 : 뭘? 아내 : 결혼 기념일은 10월 3일이구, 내 생일은 5월달예요. 착각했대두 이미 왔으니까 저녁은 저녁은 사줘야 돼요? 강민수 : 얼마든지. 아내 : 언니한테 자랑해야지. 강민수 : ? 아내 : 당신 무뚝뚝하다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형부는 안그렇잖아요. 기념일 꼭꼭 챙기고. 언니랑 놀러 가는 거 좋아하고. 얼마나 자랑했는데. 강민수 : 그럼 이것도 자랑해. 강민수가 채옥앞에 보석 케이스를 내 놓는다. 채옥의 눈이 똥그래진다. 강민수, 창 밖 풍경을 보는 척하며 아내를 곁눈질한다. 채옥, 상자를 열면 반지다. 채옥 : (너무 놀라서 좋은 줄도 모른다) 뭐예요.. 이게? 강민수 : 맞나 끼워봐. 채옥,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강민수를 쳐다본다. 조금 커지는 부드러운 현악기 소리. 채옥 : 당신.. 왜 그래요? 강민수 : (테이블 위의 아내손에 손을 얹으며) 생각해 봤는데 이제까지 당신한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더라구. 나같이 재미없는 사람이랑 사는 거 힘들지? 고마워. 채옥 : 당신.. 강민수 : 그리구.. 채옥 : ..암이에요? 강민수 : 뭐? 채옥 : 당신 암이죠. 몇기래요? 죽는대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운다)나 어떡해? 마침 두 손 가득 음식을 갖고 오던 웨이터. 그냥 갈 수도 없고 모른척 할 수도 업고 눈치만 보는데, 강민수 : (당황한다) 왜 이래. 이봐! 무열엄마! 주위 손님들 힐끔거린다. 25. 거실 안 (밤) 활짝 웃으며 엄마를 반기던 은재와 무열, 울며 들어오는 엄마를 본다. 은재 : 엄마? 뒤이어 들어오는 강민수, 조금은 화났다. 은재와 무열, 눈치를 보는데.. 채옥 : (울면서) 여보, 나 당신 아내잖아요. 나랑 애들도 알 건 알아야죠. 강민수 : 알긴 뭘? 아니라고 했잖아. 채옥 : 아니면 뭐예요. 요즘 당신 이상했어요. 매일 저녁 일찍 들어와서 애들 눈치보고, 안그러 던 사람이 밥도 같이 먹을라 그러고. 목욕탕 간다 그러고. 당신이 언제 나한테 선물 준 적 있어요? 이십 년 넘도록 한번이나. 사실대로 말 해줘요. 나 안 놀랄게요. 은재 : 아빠? 강민수 : 나랑 내일 병원에 가봐. 그럼 됐지? 채옥 : (조금은 진정됐다) 정말 아녜요? 강민수,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채옥 : (자기도 모르게) 당신 바람 폈어요? 강민수 : (어이없어 돌아본다) 채옥 : 그건 암보다 더 나빠요. 강민수 : 이봐, 내가 뭘..(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애들한테 잘해주고..무슨 날도 아닌데 선물사면.. 내가.. 나는 그럼 안되는 사람인가? 채옥 : (수세에 몰린다) 그게 아니라, 안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니까.. 당신답지도 않구. 강민수 : 나다운 게 뭔데? ...감정 없는 거? 힘든거, 외로운 거, 서운한 거..좋은 거.. 그런거 아 무 것도 없는 사람처럼..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까? 나도 그렇게 살려고 그랬는데.. 그렇게 사는 게 당신이나 애들한테 더 편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요즘에. 채옥 : 여보! 은재는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고 외면한 채 아빠의 말을 듣는 무열은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된다. 강민수 : (말하다보니 슬프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의사가 가족한테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하라는데.. 당신도 사랑하고 무열이, 은재 사랑해. 그 말하기가.. 진짜 어렵군. 강민수, 처져서 안으로 들어가면, 남은 사람들 말이 없다. 무열, '에라 모르겠다' 자기 머리를 흐트러트리며 2층으로 올라간다. F.O 26. 골프장 (낮) 드라이브 샷. 날아가는 골프공. 윤총재(50대 초반, 남)의 팔로우 샷을 보면서 주위의 4.50대 남자 두 명 박수를 친다. 강민수, 기계적으로 따라 친다. (점프)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강민수를 비롯한 네 사람. 강민수는 조금 처져 걸어간다. 윤총재 : 담보만 확실하면 투자 받는 거가 뭐가 어려워. 우리가 한두 해 봐온 사이도 아니구. 우리 기획투자팀에서 분석한다고 하지만, 그거야 뭐, 형식적인 절차구.. (어떻게 칠 것인가를 살피느라 쭈그리고 앉으며) 어디보자.. 윤총재, 골프채를 들어 각도를 재는데 강민수, 일행이 멈춰선 걸 모르고 앞으로 나간다. 강민수, 공을 발로 툭 건드리고서야 돌아본다. 윤총재와 사람들의 벙찐 시선. 27. 상담실 안 (밤) 강민수, 눕는 의자에 걸터앉아 윤태현을 바라보고, 윤태현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강민수는 거의 사정조다. 강민수 : 왜 시키는대로 했는데 나아지는 게 없는 겁니까? 윤태현 : (자료 보며) 글쎄요..정신분야라는 게 물질 과학 분야하곤 달라서.. 강민수 : 그 얘긴 아까도 했잖아요. (혼잣말) 차라리 대학병원에 가는 건데.. 자료를 펄럭이던 윤태현 윤태현 : 아! 강민수 : ? 윤태현 : 아버님이 계시는군요? 강민수 : ... 윤태현 : 여기 20문답법에 의하면 아버님에 대한 대답이 네 개나 됩니다. '나는 은퇴하면 고향 에 가서 살 것이다'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영향을 보여주는 답변이죠. 아버지 영향 을 많이 받으셨네요. 강민수 : 그런데요? 윤태현 : 제 처방은 하납니다.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십시오. 강민수 : ? 윤태현 : 아버지도 가족입니다. 강민수 : (설마).. 윤태현 : (확고한 시선으로 마주본다).. 강민수 :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난다) 우리 아버지한테.. 그러니까.. 그.. 사.. 랑. (강무용) : 듣기 싫어! 28. 경로당 안 (낮) 한쪽에는 고스톱 치는 패가 있고, 대략 예닐곱명의 노인들이 놀라 소리난 쪽을 본다. 장기를 두고 있는 70대 중반의 두 노인. 무뚝뚝하고 고집 쎄 보이는 노인이 강민수의 아버 지, 강무용이다. 소리친 노인이다. 상대적으로 다정다감해 보이는 노인이 강무용의 친구, 회택씨다. 회택씨 : 그게 뭐 비밀이라구. 말 좀 해봐. 강무용 : (장기판만 쳐다본다).. 회택 : 왜 싫다고 그랬냐? 강무용 : (장기알을 옮긴다) 회택 : 딸린 애도 없겄다, 그만하면 인물도 얌전허겄다. 니 사정도 다 알겄다. (장기알을 옮기 고) 그 쪽에선 맘이 있어 했는디.. 강무용 : ... 회택 : 왜 싫다고 그랬어? 강무용 : ... 회택 : 죽은 마누라가 재혼은 절대 안된다고 꿈속에서 그러대? 강무용 : 으이그 참.. (일어나며) 종알 종알 종알.. 정신 사나와서 당최.. 니눔 턱주가리에 수염 나는 게 용타. 회택 : (강무용의 등에 대고) 어디가?.. 저놈은 말하다 죽은 귀신이 씌였나? 29. 무용씨 방 안 (낮) 전형적인 시골 노인의 방. 옷 몇가지가 벽에 걸려있고, 죽은 마누라의 영정사진이 걸려있고, 그 옆에 액자가 걸려있고, 달력이 하나.. 특이한 거라곤 앉은뱅이 책상에 돋보기와 어린이들 이 읽는 전래동화집 같은 이야기책이 놓여있다는 것뿐. 아랫목엔 담요가 깔려있다. 강민수가 동생 윤수(남, 40세) 와 앉아있다. 강윤수 : 어디 좋다 싫다 말씀하시는 사람인가? 우리 아버지가.. 그러냐, 한마디지. 동네 노인들 이 더 난리였지. 우리 마을서 사장 나왔다구.. 강민수, 대답 없이 이야기책을 들춰보면, 강윤수 : 치매 걸릴까봐 읽으신댜.. 잠 안 올때두 읽구. 새벽에두 읽구.. 강민수 : 혈압은 어떠시냐? 윤수 : 장 그렇지 뭐. 기침소리 먼저 들리고 무용씨가 들어온다. 일어나는 강민수. 강민수 : 저 왔어요. 무용 : ..어쩐일루? 강민수 : 그냥요. 무용 : 에미하고 애들은 무고하고? 강민수 : 예. 윤수 : (훈잣말처럼) 이 아줌만 어딜 가면 올 줄을 몰라. 윤수가 일어나 나가면, 강무용과 강민수, 말없는 두 사람만 남는다. 강무용, 슬그머니 이야기책을 책상 밑으로 내려놓는다. 침묵. (강민수) : (흘깃 쳐다보며) 아버지 사랑합니다. 강민수와 무용의 시선이 마침 엉킨다. 둘이 똑같이 피한다. (강민수) : 차라리 무장공비 앞에서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게 낫지. 무용 : 허는 일은 잘되고. 강민수 : 예. 또다시 침묵. 무용씨, 슬슬 발바닥을 문지르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는데. 강민수, 옆에 밀어놨던 쇼핑백을 당긴다. 강민수 : 이거.. 무용 : 뭐냐? 강민수 : 핸드폰요. 장민수가 충전기, 밧데리등을 꺼낸다. 무용 : 이런 건 쓸데없이... 강민수 : 필요할 때 있잖아요. 무용 : 농사짓는 늙은이가 이런게 뭐 필요있어? 강민수 : 전화가 오면 여기 통화라고 쓴 거 있죠. 그 거 눌르고 받으면 되구요. 무용 : 어디 어떤 거? 강민수 : 여기요, 통화. 무용 : 뵈기나 해야지.. 강민수 : 그냥 초록색 눌르면 돼요. 전화 걸때도 번호 누르고 초록색 누르면 되거든요. 무용 : 원, 복잡해서.. 강민수 : 쉬워요. 몇 번 해보면.. 무용 : (핸드폰을 책상에 치워 놓으면서) 몰르겄다. 원... (강민수) : (작게 한숨쉰다) 통할 리가 없지. 30. 집 앞 길 (밖, 저녁) 해 저무는 고향 들판을 바라보는 강민수. 남의 집 굴뚝에서 연기가 솟고. 모처럼 느긋한 심정이 된다. 좀 떨어진 곳, 윤수가 조카 승열(남, 9세)이 뚝에다가 쥐불을 놓고 있다. 승열의 손을 잡아 불 놓는 것을 알려주는 윤수. 승열에게 불막대기로 장난을 치 면, 깜짝 놀랐다가 아빠를 주먹으로 때리는 승열. 낄낄 웃으며 도망가는 윤수. 다정해 보이 는 부자의 모습이다. 강민수,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강민수) : 아들은 크면서 아버지와 거리를 둔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라면...내게도 아버지와의 다정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31. 방 안 (저녁/회상) 백열 알전구 밑. 앉은뱅이 장롱위에 이불이 개켜져 있고. 어린 강민수(10세 전후)가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다. 무용씨 그 뒤에서 새끼를 꼬고 있다. 아직 애기인 윤수는 아랫목에 잠들어 있다. 아기의 쌕쌕대는 숨소리. 새끼 꼬는 소리. 연필 사각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침묵이... (강민수) : 공부만 했을 리가 없다. 뭔가 아버지와 아들간의 대화가.. 무용씨, 새끼 꼬는 걸 멈추고. 말을 하려는 듯 큼.. 목을 푼다. (강민수) : 그렇지! 무용 : ...그만 자자. 어린 강민수 : 예. (강민수) : 이런... 그래. 혼났던 기억을 되살려 보자. 32. 마루 (밖, 낮 /회상) 70년대 시골집. 마루에 앉아 뭔가를 보다가 빈지게를 진 무용씨가 들어오면 후다닥 등뒤로 숨기는 어린 강민수. 무용씨 : 뭐냐 그게? 강민수 : 아무것도 아녜요. 무용씨 : 뭔디..? 무용씨, 억지로 종이를 빼앗아 보면 수학여행 고지서다. 무용씨 : 수학여행 가냐? 강민수 : ... 무용씨 : 왜 숨겼냐? 강민수 : ..별로 가고싶지 않아서... 무용씨 : 아버지 돈 없을까봐..? 강민수는 고개를 떨구고 무용씨는 선 채로 먼 산을 바라본다. 33. 집 앞 (밖/저녁) 강민수, 과거를 회상하고는 (강민수) : 재미없는 위인 전기 같군... 그때 큰소리 들린다. 외양간 앞에서 아버지와 동생 윤수가 다툰다. 윤수 : (화를내며) 아버지두 참.. 구정물 주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무용 : (변명하듯) 소가 구정물을 먹지 그럼 뭘 먹는다니.. 윤수, 무용의 손에서 바가지를 뺏으며 윤수 : 이 소는 구정물 안 먹어요. 지난번에도 얼어 터진 것 간신히 덜어냈구만.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세요. 윤수가 신경질적으로 구정물을 쏟아낸다. 속상한 무용씨, 그 모습을 지켜본다. (강민수) : 외롭고 허전할 때 감정의 빈틈을 노린다는 건 치사한 일이다. 무용씨, 돌아서는 뒷모습이 쓸쓸하다. (강민수) : 확실히 치사한 방법이다. 무용씨, 강민수를 스쳐 지나가면 무용씨를 따라가는 강민수. 속마음과는 달리 슬며시 웃는 다. 34. 무용씨 방안 (밤) 쓸쓸하고 분한 무용. 강민수가 들어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깨를 핀다. 강민수,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까 눈치를 보다가.. 강민수 : 뭘 소밥 같은 걸 주고 그러세요. 무용 : ... 강민수 : 어려우시잖아요. 연세도 있구. 무용 : (불쑥) 그럼 늙었다구 방안에만 있을까? 강민수 : (억울해서)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윤수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무용씨, 슬쩍 돌아앉는다. 윤수 : (미안해서) 지난번에도 내가 주지 말라고 그랬는데.. 무용 : ... 윤수 : 아버지도 늙었나봐. 몇 번 얘기해도 까먹구.. 무용 : ... 윤수 : 아버지 화나셨어요? (강민수) : (분석적으로) 강윤수! 이 또 다른 아들은 아버지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 흥미롭군. 딱 까놓구 잘못했다고 빌 수도 없구. 윤수 : 제가 잘못했어요. 강민수, 헉! 놀란다. 윤수 : 아버지 그만 푸세요. 제가 한두번 그러는 것도 아니구, 뭐 그런걸로 화를 내세요 예? (강민수) : 그러나 아버지가 누군가? 이런 간단한 사과에 풀어질 리가.. 무용 : 나쁜 놈. 너두 늙어봐라 이눔아. 노여운가 안 노여운가? 강민수, 놀라 아버지 얼굴을 쳐다본다. 윤수 : (실실 웃으며) 그건 나중에 나 늙은 다음에 알아볼 테니까...저녁 드세요. 무용 : (일어나 나가며) 망할눔. 나이나 어려야 회초리를 쓰든지 하지... (강민수) : (아버지와 윤수를 보며) 이건 뭐지? 윤수와 나, 같은 아들인데도 아버지와의 거리는 왜 이렇게 다른가? 윤수, 헤헤거리며 따라 가다가 벙쪄서 올려다 보고있는 강민수를 쳐다본다. 윤수 : 형! 뭐해요. 저녁 드세요. 강민수 : 어.. 강민수, 일어난다. 35. 마을회관 안 (아침) 들어오던 회택씨와 노인 두명, 혼자 오두카니 앉아있는 무용씨를 발견한다. 회택 : 웬일이냐? 아침부터. 무용 : 심심해서.. 회택 : 큰아들 온 것 같던디? 무용 : 왔지. 노인들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노인 두 명은 장기판을 마주보고. 회택씨는 담요를 펴고 화투짝을 맞추는데, 무용씨, 회택씨 옆에 앉아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사람들 눈치를 본다. 회택 : (흘깃보며) 왜? 헐말 있어? 무용 : 아녀. 회택 : 참, 그 얘기 들었어? 어제 느리실에서 오토바이 사고났댜. 무용 : 누구? 회택 : 고등학생들이라든디, 용갱이 손자도 꼈다고 그러대. 노인1 : 큰일이구먼. 많이 다쳤댜? 회택 : (화투를 늘어놓으며) 글쎄.. 잘은 물러. 무용 : 그게 오토바이가 문제여... 용갱이 그사람 참... 손자가 그 하나지? 전화 해봐야겄네. 이때다 싶은 무용씨,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보란듯이. 노인들, 뜻밖의 물건에 놀란다. 회택 : 그게 뭐여? 무용 :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큰아들이.. 노인1 : 이디 좀 봐. 이게 그거 아녀? 들고 다니는 전화기. 무용 : (건네주며) 별 거 아녀.. 노인들, 핸드폰을 보며 감탄한다. 회택씨 뭔가 눌러 삑소리가 나자 무용 : 이 사람이... (핸드폰 뺏으며) 암거나 눌르면 고장나. 36. 안방 안 (아침) 강민수가 벽에 걸린 액자를 보고 있다. 스냅사진을 여러장 겹쳐서 액자에 건 것이다. 그 안에 어린시절의 민수, 윤수. 젊은 시절의 무용씨, 죽은 어머니 사진도 들어있다. 민수, 윤수, 무용씨 셋이 찍은 사진! 아버지는 어린 윤수를 안고있고, 민수는 아버지와 좀 떨어져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윤수) : 아이고 춥다. 뭐해요? 민수 : 아버지 어디 가셨냐? 윤수 : 글쎄..(담요에 손을 넣으며 민수가 보던 사진을 본다) 형 저때 아버지랑 싸웠어요? 민수 : 왜? 윤수 : 사진 찍는데 좀 붙어서 찍지. 꼭 싸운 것처럼.. 민수 : ... 윤수 : 허긴 아버지가 형을 좀 어려워허는 거 같어. 어릴때도 그랬나? 민수 : 나를? 윤수 : 형은 몰랐어요? 나한테는 화두내구 삐지기두 허구.. 그러는디. 형한텐 안그러잖아요. 나는 같이 살아서 그런가? 이때, 제수씨가 홍시를 들고 들어온다. 윤수 : 감이 어디서 났댜? 제수 : 아버님이.. 문구네서 얻어 오셨나봐요. 윤수 : (하나를 집어 형에게 주며) 형, 감 아직도 좋아해요? 감을 먹으면서 액자속 사진을 보는 강민수. 30여년전 강무용과 민수는 손을 잡고 있는 건 아니지만, 몸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기울어져 있다. 37. 마당 밖 (낮) 윤수가 가방을 트렁크에 싣는다. 옷을 차려입은 무용씨가 나온다. 윤수처가 따라 나오며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준다. 무용 : 뭐허러 자꾸 가자구 그러는지 물르겄네 참.. 무용씨, 차에 탄다. (점프) 멀리서 본 무용씨의 마당. 차가 출발한다. 38. 시골길 달리는 차. 39. 거실 안 (밤) 무용이 들어오고 뒤이어 짐 가방을 든 강민수가 들어온다. 은재와 무열, 채옥이 무용씨를 맞이한다. 은재 : 안녕하세요. 무열은 꾸벅 인사만 하고. 채옥 : 오시느라고 고생 안 하셨어요? 무용 : 오냐. 피곤한 얼굴의 무용. 신발을 벗다가 비틀하면, 무열이 할아버지를 잡아준다. 채옥 : (놀라서) 아버님! 무용 : 괜찮다. 강민수 : (무열에게) 할아버지 방으로 모셔라. 이불 깔아 드리고. 40. 손님방 안 (밤) 이불위에 앉은 무용, 찬물을 달게 마신다. 그 모습을 무열이 본다. 무용 : (빈그릇을 주며) 어이구 시원하다. 무열 : 멀미 하셨어요? 무용 : 토할까봐 아주 간신히 왔다. 무용씨 자리에 눕는다. 무열, 할아버지의 쇠잔한 모습을 쳐다본다. 쓸쓸한 생각이 든다. 41. 거실 안 (밤) 빈 그릇을 든 무열이 손님방에서 나온다. 마침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강민수. 강민수 : 할아버진? 무열 : 주무세요. (가려다가) 할아버지 멀미하는 거 모르셨어요? 강민수 : 멀미 하셨대? 그런 소리 안 하셨는데... 무열 : (화난 목소리로) 좀 물어보죠. 무열, 주방으로 가버린다. 42. 손님방 안 (밤) 불이 꺼진 방안. 그러나 창문으로 들어온 불빛들로 제법 환하다. 입을 벌린 채 잠든 무용씨. 몹시 고단한 모습이다. 강민수, 조용히 들어와 아버지 옆에 앉는다.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강민수) : 아들한테 '나 멀미난다' 이 말 하기가 그렇게 힘드셨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려운 아들입니까? 아버지 왜 이렇게 늙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초라해지셨어요. 강민수, 아버지 손을 잡으며 무의식중에 강민수 : 아버지! 꿈틀 하면서 깨는 무용씨. 무용 : (눈도 못뜬 채 비몽사몽간에) 왜? 왜? 무슨 일이냐? 화들짝 놀라 손을 놓는 강민수. 강민수 : (당황해서) 아뇨. 방이 따뜻한가... 강민수, 요 밑에 손을 넣는 척. 무용 : 이이.. (다시 눈을 감으며) 너무 불때지 말어. 너무 더우면 맥웂어. 강민수 : 예. 주무세요. 아버지가 다시 잠들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강민수) : 잠귀는 되게 밝어요. 43. 극장 안 (낮) '불효자는 웁니다'의 하이라이트 장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노인 관객들. (윤태현) : 감정의 폭발. 먼저 눈물샘을 자극해서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십시오. 무용씨와 강민수, 나란히 앉아있다. 무용씨는 무서운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다. 민수도 만만찮게 눈을 부릅뜨고 있다. 감정을 자극하는 배우들의 대사소리.. 여기저기 콧물 훌쩍이는 소리와 대조적으로 둘은 무표정하다. 강민수 : 화장실 좀.. 44. 화장실 안 (낮) 심호흡을 하는 강민수. (강민수) : 왜 이렇게 슬픈거야. 45. 극장 안 (낮) 무용씨, 눈을 박박 문지른다. 무용씨 : 주책없이.. 아들 앞에서 울 뻔했네. 46. 한국 민속촌 매표소 (밖 /낮) 강민수가 표를 산다. 표를 들고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무용씨를 본다. (윤태현) : 너무 빨리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갖고 생각해 봅시다. 먼저 같이있는 시간을 늘려서 친근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47. 한국 민속촌 (밖/낮) 무용씨, 민속촌의 이것저것을 살펴보다가 쳐다보면 좀 떨어진 곳에서 핸드폰 받는 강민수. (점프) 다른장소 뭔가를 만져보는 무용씨. 가까이 다가오며 강민수 강민수 : 이건 우리 어렸을 때.. 그때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강민수 : (구석으로 가면서) 여보세요. 어.. 김실장.. 무용씨, 강민수를 쳐다본다. 강민수 : ...알았어... 음. 그래.(핸드폰을 끊고 다가오며) 저쪽으로 가보실래요? 무용 : 그만가자! 강민수 : 왜요? 무용 : 다리도 아프고... 강민수 : 그럼 어디서 좀 쉬세요. 네시에 줄타기 공연 한다는데.. 무용 : 그런거 맨날 텔레비서 보는데 뭐.(가면서) 너두 바쁠텐디 일 보구.. 무용, 앞장 서 나간다.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강민수. 48. 한정식 집 안 (저녁 - 다른 날) 끊임없이 셋팅되는 엄청많은 반찬들. 무용씨가 입을 딱 벌린다. 한복입은 종업원들이 사라지자 무용씨 : (작은 소리로) 이게 다 뭐라니? 강민수 : 시장하시죠. 드세요. 무용 : 너무 많으니께 원... 이런 건 얼마나 한다니? 강민수 : 10만원 좀 안돼요. 무용 : (놀란다) 아이구 십만원.. 둘이 밥먹는디? 강민수 : 한사람당요. 무용씨 : (놀라 목소리가 커진다) 20만원! 옆 테이블의 사람들 돌아보지만 의식하지 못한다. 무용 : 그럼 이게 이십만원 돈이란 말이냐? 지금 나간다고 허면 안될테지.. 민수 : 아버지!.. 무용 : 난 그냥 김치 지진거허고 밥 먹는게 최곤디.. 이런 거는 당최...어휴.. 먹어도 먹는 거 같 지 않겄다. 무용씨, 반찬 수를 세어보는데... 또다른 반찬을 갖고 온 종업원. 무용씨를 보고 미소 지으면, 강민수, 조금은 창피하다. 49. 백화점 안 (밤) 화려한 백화점. 그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무용씨가 신사복 매장, 거울앞에 엉거주춤 서있다. 남자 점원이 바바리 코트 하나를 무용씨 몸에 대 보이며 점원 : 이건 어떠세요. 색깔도 점잖고 안감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어서.. 한겨울부터 봄까지 입을 수 있거든요. 무용 : (겸손하게) 글쎄. 시골노인이라 뭘 알아야지.. 민수 : (직접 고른 걸 들고 온다) 이거 입어 보세요. 무용 : (점원에게) 옷도 많은데.. 또 사준다고 자꾸 그래싸서.. 무용씨, 점원이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본다. 점원 : 잘 어울리시네요. 사이즈도 꼭 맞고. 무용씨도 입은 모습이 싫진 않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러나 소매 끝에 붙은 가격표. 동그라미를 세보면 거의 백만원 돈이다. 속으로 기겁을 하는 무용씨. 등뒤에선 강민수가 지갑을 꺼내고 있다. 강민수 : (카드를 꺼낸다)그럼 이걸루.. 무용 : (벗는다) 아녀..아녀.. 길기만 허구 거추장스러워서.. 점원 : 왜요? 잘 어울리시는데.. 무용 : (점원에게) 입어만 보구 그냥 가서 미안허네.. 점원 : 아닙니다. 길어서 마음에 안 드시면 반코트도 있거든요. 무용 : 아녀. 그게 아니라 집이 옷이 많어요. (민수에게) 얼른 가자. 무용, 먼저 나가면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가는 강민수. 무용씨를 따라 잡으며 민수 : (걸어가며) 왜 그러세요? 무용 : 백화점이란데가 비싸다고 말은 들었지만.. 민수 : 돈 때문에 그러셨어요? 무용 : 돈지랄이지 그게 뭐냐? 민수 : 그정돈 벌어요. 무용 : 암만 많이 벌어두 그런게 아녀. 집이 가봐, 옷이 없어서.. 장롱에 한가득이다. 민수 : (조금은 화났다) 없어서 사드린대요? 무용, 민수를 슬쩍 쳐다본다. 묵묵히 걸어 에스컬레이터 앞에 도착한 무용과 민수, 자연스럽게 타는 강민수에 비해 무용씨, 긴장해서 간신히 발을 뻗는데 휘청한다. 무용씨의 손을 얼떨결에 잡는 강민수. 강민수도 무용씨도 뜻밖의 스킨쉽에 놀라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강민수, 손의 감촉을 느낀다. 50. 산 길 (밖/저녁-과거) 어두컴컴해지는 산길. 인적없는 길을 어린 강민수(12)가 걸어온다. 날은 어두워져 오고 길옆에는 무덤도 있다. 나무 그림자도 무섭고 새소리도 무섭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민수. (강민수) : 그날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왜 늦었는지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잔뜩 긴장해서 걷는데.. 앞에서 불이 빛난다. 무용씨가 손전등을 들고 서있다. 어린 강민수, 아버지에게 화난 게 있는 듯, 멈춰서서 외면하면 무용씨, 말없이 서있다. 어린 강민수, 쭈삣쭈삣 다시 걷기 시작하면, 그 뒤에서 따라걷는 무용씨. 손전등으로 민수의 발쪽을 비춰준다. 발을 헛디디는 강민수. 아버지가 손을 잡아준다.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부자. 어둠 속, 손전등 불빛이 출렁이며 멀어진다. (강민수) : 다만, 아버지 손을 잡자마자 너무 안심이 돼서 이제까지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서, 오히려 걸음이 제대로 걸어지지 않았다는 것만 뚜렷하다. 51. 에스컬레이터 안 (밤) 무용씨의 손을 바라보는 강민수. 내려야 할 곳이 가까워지자, 무용씨 잔뜩 긴장한다. 아버지의 손을 잡아줘야 되는데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강민수. 겨울 돌아서 손을 내밀려 하는데 무용씨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젊은남자 :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팔을 잡아 내려준다. 무용 : 고마워요. 52. 차 안 (밤) 운전석의 강민수. 조수석의 무용씨. 둘 다 말이 없다. 53. 안방 (밤) 말없이 옷을 벗어 건네는 강민수. 채옥이 옷을 받는다. 채옥 : (조심스럽게) 무슨 일 있었어요? 민수 : 왜? 채옥 : (웃으면서) 아버님이랑 단둘이 보낸다고 처자식까지 떼놓고 가고서는.. 민수 : 내가.. 참 못됐어. 채옥 : 뭐가요? 민수 : (자기 손을 내려다본다) 아버지랑 같이 있는게 불편해.. 어색하구. 채옥 : (옷을 장롱에 건다) 아버지랑 아들이 다 그렇죠. 민수 : 아니.. 내가 아버지를 안 좋아 하나봐. 채옥 : (웃는다) 민수 : ... 채옥 : 당신 좋은 일 생기면 시골부터 내려가는 거 알아요? 민수 : ? 채옥 : 과장 부장 됐을때도 그랬고, 집사고 정리 하나도 안됐는데도 아버님부터 모셔오고. 민수 : 그거야 아버지한테 알려드리는 게.. 채옥 : 처음 차 샀을때는요? 초보가 세시간 넘게 운전하고 몸살 났었잖아요. 그런 사람이 아버님을 안 좋아해요? 채옥,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강민수, 뭔가를 생각한다. 54. 거실 안 (밤) 어둡다. 무용씨가 더듬더듬 집으며 나오는데, 자기집이 아니라서 쉽지가 않다. 불이 켜지고 무열 : 할아버지. 뭐 찾으세요? 무용 : 물이 어딨나? 당최.. (점프) 전체적으로 어둡고, 식탁에만 조명이 있어 아늑한 기분이다. 티백 녹차 찻잔을 무용씨 앞에 놔주고 맞은편에 앉는 무열. 무용 : 이제껏 공부했냐? 무열 : 아뇨. 무용 : 뭐 허느라 잠을 못자? 무열 : ... 무용 : 공부가 힘드냐? 무열 : ... 제 친구중에요. 가수가 꿈인 애가 있거든요. 근데 노랠 되게 못해요. 진짜 못하거든 요. 나보다도 못해요. 얼굴도 별로 안생겼구, 춤도 그냥 그런데..남들은 다 안된다고 그 러는데 저는 죽어도 가수가 되겠대요. 답답한 애죠. 무용 : ... 무열 : 근데요. 전 걔가 부러워요. 무용 : 워째? 무열 : 걘 어쨌든 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전 하고 싶은 게 하나두 없거든요..(분위기를 바꾸고자 가볍게) 너무 완벽해서 그런가? 무열과 무용, 슬며시 웃는다. 무열 : 아빠는 어려서 꿈이 뭐였대요? 무용 : 글쎄다. 그런 얘기를 해봤간 어디. 무열 : 어려서도 무뚝뚝했어요? 무용 : ...(회상한다) 니 아빠 키울때는 큰소리 한 번 안 해봤다. 매는 말할 것도 없고. 공부 해라 마라 그런 소린 해본 적이 없으니께. 지가 알아서 허구. 무열 : ... 무용 : 그런디 딱 한 번... 집을 나간적이 있었다. 니 아빠가. 무열 : 왜요? 무용 : 그때가 이 할애비 재혼말이 있었을땐디.. 한 번도 죽은 엄마 얘길 안허길래.. 난 다 잊었거니 했는디... 그게 아녔던 거여. 속으로는... 내앞이서 말은 못허구.. 니 아버지가 아홉 살때 엄마 잃구, 철이 들어서...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한숨쉰다)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안타깝지. 무열 : 그래서 재혼 안하셨어요? 무용 : (웃기만) 무열 : 후회 안하세요? 무용 : 왜? 가끔 허지. 무열 : 어떻게 잘 해보지 그러셨어요. 무용 : 나는 배운것도 없구 똑똑치 못해서.. 겁이나서 그랬어. 애들 잘 못 될까봐. 무열 : 더 잘 될 수도 있잖아요. 무용 : 그렇지.. 그렇지만 어떻게 산들 후회가 없겄냐? 무열, 할아버지의 늙은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열 : 차 더 드실래요? 무용 : 아니다. 자야지. 너두 그만 자라. 무용,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열이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면 거실 소파위로 솟아오르는 머리. 강민수다. 55. 서재 안 (밤) 강민수가 책상앞에 앉아있다. 스탠드 불빛 이외에 어둡다. 56. 손님방 안 (밤) 무용씨가 자고 있다. 늙고 여윈모습이다. 57. 서재 (밤) 편지를 쓰는 강민수. 구겨버린 종이들이 책상위에 몇 개. 얼핏 보이는 글. '저는 이미 기억도 못하는 일 때문에 아버지가 재혼을 못하셨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저도 겁이 났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힘들게 사셔서 저까지 힘들게 하면 어머니처럼 돌아 가실까봐, 그때 그렇게 겁이 나서...' 58. 손님방 안 (새벽) 무용씨가 이불을 개고 있다. 내복 차림으로.. 이때 밖에서 들리는 전화벨 소리. 벽시계를 보면 5시..전화가 오기엔 이른 시간이다. 59. 거실 안 (새벽) 옷을 입으며 나가는 강민수. 서두르는 기색이 있다. 채옥이 배웅한다. 채옥 : 무슨 일예요? 민수 : 별일 아냐. 채옥 : 별일이 아닌데 이 새벽에.. 나가는 두 사람. 손님방이 조금 열려있다. 무용씨가 문을 반쯤 열고 바라본다. 걱정스럽다. 60. 회사 복도 안 (아침) 바쁘게 걸어오는 강민수. 비서실장이 조금은 가쁘게 따라오고 있다. 민수 : (걸으면서) 이유가 뭡니까? 비서 : 홍콩측 담보가 불확실하답니다. 민수 : 필요한 자료 목록 확인하고 은행 대출이 안됐을 경우, 가능한 다른 방안을 찾아보세요. (회의실 문을 연다) 비서 : 예. 회의실에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일어난다. 61. 거실 안 (아침) 무용씨가 가방을 들고 현관을 나선다. 채옥이 따라가며 채옥 : 왜 자꾸 가신다고 그러세요..? 무용 : 가야지. 오래 있으면 뭐혀. 귀찮기만 허지. 채옥 : 가시더래도 아범 들어오면 얼굴 보고 그러고 가세요. 이렇게 가시면.. 무용 : 아니다. 잔뜩 바쁜거 같은데.. 채옥이 차마 잡지는 못하고 무용씨를 따라 나간다. 62. 강민수 몽타쥬 - 회의중인 - 전화통화 하는 - 브리핑 받는 - 공항. 김실장과 홍콩으로 가는 강민수. 걸으면서도 뭔가 지시를 하고 보고를 듣는다. 의욕적이다. - 비행기 출발. - 중요 계약 성사 시키는 강민수. 악수한다. - 비행기 도착. 63. 공항 주차장 (밖/저녁) 최기사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다. 민수, 차에 오른다. 비서실장이 가방을 들고 다른 쪽으로 차에 오른다. 출발하는 차. 64. 차 안 (저녁) 핸드폰 통화중인 민수. 그옆에 김실장은 조금 피곤한 모양이다. 고개를 돌리고 보이지 않게 하품을 한다. 민수 : 예. 지금 오는 길입니다. ...예 덕분에... 토요일 저녁 뭐하십니까? 필드 한 번 나가시죠. 제가 공 건드린 게 그렇게 서운하셨습니까? (웃는다) 예. 알겠습니다. 핸드폰을 끄고는 강민수 : (기사에게) 소리 좀 키우지. 액정 tv에서 뉴스가 나온다. (소리) : 이번에 구속된 윤태현씨는 무허가 심리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화면에 윤태현이 얼굴을 가린 채 구속되는 장면이 보인다. 65. 시골 무용씨 방 안 (저녁) 책을 펼쳐 놓고 읽는 무용씨.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책을 덥고, 돋보기를 벗어 책 위에 올려놓고 어두워지는 창을 바라본다. 흐뭇한 얼굴이다. F.O 66. 강민수의 안방 안 (새벽) 희미한 어둠 속. 아침이 되기 전이다. 침대위 강민수와 아내가 잠들어 있다. 고요를 뚫고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등뒤에서 아내가 전화를 받는다. 아내 : 여보세요...(잠결이던 목소리가 긴장을 띤다) 서방님! 강민수, 그 소리에 눈을 뜨지만 불길한 예감에 미동도 못한다. 그 얼굴 길게... 67. 시골집 거실 안 (낮) 영전사진, 강무용이다. 앞씬에서 골프를 치던 윤총재가 향을 사르고 절을 한다. 상제인 민수, 윤수, 맞절을 한다. 잘 차려입은 조문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상복을 입은 무열이 그들을 안내해 온다. 68. 대문 밖 (저녁) 누군가 초상을 알리는 등을 걸고 길게 늘어선 조화들. 00대표, 00동창회, 00클럽, 00군수등.. 강민수의 지위를 알 수 있는 조화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악수를 나누는 윤총재와 강민수. 강민수, 피곤하지만 빈틈없는 모습이다. 윤총재 차에 오르자, 중형차 출발한다. 대문 밖에서 바라보는 길. 좁은 시골길에 고급 중형차들이 줄지어 빠져나간다. 69. 거실 안 (밤) 밤 11시가 넘은 시간. 조문객도 뜸하다. 피곤한 무열, 벽에 기대 눈을 감고있고.. 민수 혼자 빈청을 지키고 있다. 들어오는 윤수. 윤수 : 형 좀 쉬어요. 바람도 쐬구.. 민수,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난다. 70. 마당 밖 (밤) 마당엔 밤샘꾼들이 피워놓은 불이 환하다. 화투를 치는 패들. 술을 먹는 패들. 서너 패 정도 된다. 강민수, 뻣뻣한 목을 푸는데 술을 마시는 노인들 자리에서 회택씨가 강민수를 부른다. 회택 : 맏상주. 일루와, 한잔 혀. 민수 : 아닙니다. 회택 : 상주가 술 한잔 허는 건 흉도 아녀. 동생이랑 번갈아서 잠도 자두고. 강민수가 노인들 자리에 끼어 소주잔을 받는다. 회택 : 뇌졸중이라며. 민수 : 예. 회택 : 혈압이 높다고 허더니.... 임종을 못헌 것이..... 민수 : ... 노인1 : 너무 슬퍼헐 것 웂어. 사람 힘으로 되는 거간. 그게. 회택 : 그럼.. 너무 갑작스러워서 슬프기야 허겄지만, 무용이 그사람이 젊어서 마누라 잃고 고생은 했어도 말년복은 있었으니께... 노인1 : 그럼. 자식들이 여간 효성스러웠남. 강민수, 술을 마시고 노인1에게 술을 따라준다. 노인들, 여기 저기서 추임새가 나온다. '그럼' '그렇지'... 조용히 듣고 있는 강민수. 회택 : 그려. 자네나 자네 동생이나 아부지한테 그만큼 혔으면 된거여. 이번이 서울 갔다 와서 도 얼마나 자랑을 해쌌는지... 30만원짜리 밥을 사줬다며? 반찬이 서른 다섯가지가 넘고 산해진미 말로는 들어 봤어도 진짜 보기는 처음이더라구.. 그렇게 맛있는 건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다네. 내 들을때는 부애가 나서 그게 무슨 돈지랄이냐고 그랬지만.. 어찌나 부럽던지... 노인1 : 그려. 자네 아버님이 원은 없을겨. 그러니께 너무 슬퍼헐 것 없어. 그러나 강민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회택 : 어허. 이사람 슬퍼헐거 없다니께... 참 이사람 몸 상하겄네. 강민수, 무릎을 꿇고 오열한다. 노인들 어쩔줄 몰라한다. 강민수의 울음은 통곡으로 변해 가고 사람들이 돌아본다. 안에서 윤수와 제수씨와 채옥이 내다본다. 무열,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는다. 71. 무덤 앞 (밖/낮) 새로 생긴 무덤 앞. 아버지 물건을 태우는 강민수. 그 뒤에선 윤수와 무열이 떼를 밟고 있 다. 신발을 태우고. 옷가지를 태우고. (강민수) : 아버지를 잃었다.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었으니, 마흔 아홉에 고아가 됐다. 49년을 살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아버지를 잃은지 5일. 어쩌자구 벌써 아버지가 그리운 걸까.. 아버지가 보던 동화책들. 회한에 차서 보다가 (강민수) : '아버지 사랑합니다'..... 살아 계실 때 이 한마디를 나는 끝끝내 하지 못했다. 이야기 책을 불속에 던지는 강민수. (강민수) : 그리고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됐다. 이야기 책 속에서 종이 몇 장이 펄럭이며 불길 속에 사그라진다. 그러나 돌아선 강민수는 그걸 보지 못한다. 불길 속의 종이로 줌인 해 들어가면. 72. 무용씨의 방 안 (저녁) 67씬의 바로 전 단계다. 무용씨가 돋보기를 끼고 이야기 책 속에 있는 편지를 꺼낸다. 꾸겨졌던 흔적이 있는 종이들. 다시 한번 맨손으로 판판하게 가다듬는데, 손바닥 밑에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란 글씨가 보인다. 무용씨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조심스럽게 책을 덮고, 안경을 벗어 책 위에 올려놓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녁 햇살이 무척이나 밝다. W.O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