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초기 기록물을 톺아보며 새 길을 찾다’
교단은 원기 109년 창립 4대를 시작하며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를 기치로 길을 찾고자 ‘혁신’과 ‘설계’의 과업을 진행해 왔다. 소태산 대종사님을 모시고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공부하며 창립의 역사를 이뤄 온 선진님들의 공부길인, 초기교단의 기록물 원문(原文)을 톺아보며 교조적(敎條的) 문자주의가 아니라, 그 행간에서 소태산 교조와 교단 창교정신, 그리고 일원교법의 본지(本旨)를 찾아보자. 『불법연구회창건사』 서문의 ‘정산종사 여섯가지 질문[육문六問]을 지남(指南)삼아 완독(完讀)하며 창립 4대 결복 교운의 새 길을 바르게 찾기를 염원한다.
조선총독부는 불교·기독교·신도 이외의 한국신종교들을 모두 유사종교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는데, 원기 21년(1936) 총부 구내에도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를 설치하여 2명의 순사가 상주 감시를 하였다. 체제의 유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엄혹한 현실에서 정산종사의 집필과 소태산 대종사의 감정으로 회보 37호(1937년)~49호(1938년)에 『불법연구회창건사』를 연재하여 교단 구성원들의 교육과 체제의 결속을 다지고, 대외적으로 교단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 선행학습으로 불법연구회 창건사와 대종사성비문을 정독한다.
불법연구회창건사(佛法硏究會創建史, 회보 37호)
머리말
고어古語에 말씀하기를 역사는 세상의 거울이라고 하나니, 이것은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모든 일의 흥망성쇠가 다 이 역사에 나타나는 까닭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자가 한갓 문자에 의지하여 지명地名이나 인명人名이나 경력의 연월일年月日만 잘 보는 것으로 능히 역사의 진면을 다 알지는 못한다. 반드시 그때의 대세와 그 주인공들의 심경心境과, 그 법도조직法度組織과, 그 실행경로實行經路를 잘 해득하여야만 능히 역사의 진면眞面을 볼 수 있고 내외內外를 다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한다면 공자문정孔子門庭의 역사를 볼 때에는 유교의 진면을 가히 알 것이오, 부처님 회상의 역사를 볼 때에는 불교의 진면을 가히 알 것이니 그런즉, 본회는 과연 어떠한 사명을 가졌으며, 시대는 과연 어떠한 시대이며, 대종사는 과연 어떠한 어른이며, 법은 과연 어떠한 법이며, 실행경로는 과연 어떻게 되었으며, 미래에는 과연 어떻게 결실될 것인가를 잘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원래 문학이 적고 따라서 세상 역사에 상식이 부족하니, 물론 그 문법 조직이 만족지 못할 줄은 잘 안다. 그러나 다행히 창립 초기로 비롯하여 실지적實地的 참견參見한 바가 있음으로 오직 그 견문見聞된 바를 기술記述하여 감히 대중에 보이는 바이니, 독자제위讀者諸位는 이[차此]를 양해諒解하시고 매양 그 실경만 잘 조감照鑑한다면 본회의 창립취지創立趣旨에 많은 이해理解가 있을 줄로 믿는 바이다.
제1편 1회 12년
제1장 대종사의 탄생
본회 대종사의 성姓은 박씨朴氏요 이름은 중빈重彬이시요 호號는 (소태산少太山이시니, 본회 시창 전前 25년(이조 고종 27년) 신묘辛卯 3월 27일에 조선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에서 탄생하시다.
대종사의 시조始祖는 신라 시조왕(명名 혁거세)이요, 중세에 그 본本을 얻기는 밀성대군(신라 경명왕 장자長子 명名 언침彦忱)이며 13세조 청제공 박심문(시호諡號충정忠貞)은 이조 세조시에 육신六臣과 더불어 상왕上王(단종대왕) 복위를 꾀하다가 순절되어 충사忠祠(영월 동악사 해남 등지)에 배향配享하였고 그 후에 경기도 양주군에 세거世居하다가 7세조(명억名憶 호號 구계九溪)에 이르러 비로소 영광에 이거 하였으며 부父는 성삼聖三, 모母는 유씨(명名 정천正天)이니 처음에는 동군同郡 군서면 마읍리에 거주하다가 대종사 탄생 전 7년(갑신甲申)에 백수면 길룡리에 이사하였다.
대종사의 부친 성삼공公은 어릴적 가난하여 비록 학문은 없었으나, 천성이 똑똑하여 평생에 대중의 존경함이 있었고, 모친 유씨는 천성이 어질고 후덕하여 인근 마을에서 항상 덕인德人이라는 칭호稱號를 받았으며, 형제는 4인이 있는 중 대종사께서 세째 아드님이 되시니라.
제2장 대종사의 어릴때[유시幼時]와 발원동기發願動機
시창 전前 25년(신묘辛卯)부터 시창 전前 15년(신축辛丑)까지
대종사 어릴 적부터 기상이 늠름하시고 성격이 활달하시며 사물을 대함에 주의하는 천성이 있으셔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함을[시청언동視聽言動] 항상 범연汎然이 아니하시며 노실 때에도 매양 손위 사람들의 자리[장자長者의 석席]를 좇아서 그 모든 언행에 묻기를 좋아하시고 무식한 보통 아이와 함께 어울리기를 싫어하시며 타인과 약속하여 한 번 하기로 말씀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실행하여 헛된 말을 짓지 아니하시니 이러므로 당시 아버지와 형과 모든 손윗사람의 많은 기대를 받아 왔었다.
(일화逸話)
1. 부친을 놀라게 하신 일
대종사 4세 되시던 해 어느 날에 부친과 같이 아침 진지를 잡수시더니 대종사께서 당신의 밥이 적다하여 부친의 상에 있는 밥을 취하여 오시니 부친께서 사랑한 생각으로 말씀하기를 「네가 어른의 밥을 가져가니 죄가 마땅히 맞아야 하리로다.」대종사 가라사대 「아버지가 만일 나를 때리기로 하면 나는 먼저 아버지를 놀라게 하리라.」하시었다. 부친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그저 웃으시며 보통 아이의 장난으로 알고 개의치 않고[심상한 생각으로] 다른 집안일을 살피던 중, 몇시 후에 몸이 좀 피곤하여 방[사랑舍廊]에서 잠간 낮잠을 주무시더니 대종사 마루에 노시다가 돌연이 큰 소리를 질러 말하되 ‘이 앞 노루목 길에 동학군 보라!’ 하시니 때는 갑오년 봄이라[갑오년甲午年 춘간春間] 사방에 폭민들이 동학을 이용하여 민간에 약탈이 심하고 또는 집안이 가난하지 아니함으로[빈한치 아니함으로] 그 난당亂黨이 온다온다 하는 예보가 있어서 항상 조심 중에 있던 바, 대종사께서 예전에[전일前日에] 부모와 가족[가권家眷]이 동
학군으로써 걱정하는 말씀을 들었던 관계로 이와 같이 헛 경보警報를 하신 것이라, 부친이 잠결에 이 소리를[급보急報] 듣고 크게 놀라서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곧 담을 넘어 뒤뜰 대나무속[후원죽림後園竹林]에 은신하였더니 오래 후에도 아무 시끄럽게 떠드는[喧譁,훤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라, 이때에 모친이 그 광경을 보시고 가만히 마을을 돌아보아 그 폭도들[난당亂黨]의 거취를 찾았으나 도무지 흔적이 없으므로 드디어 이상히 여기어 대종사에게 그 사실 여하를 물은즉, 대종사 서서히 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아침 때에 아버지와 약속한 일을 행하였다’ 하시는지라, 모친이 그 내용을 곧 부군에게 알리었으나 부친은 오히려 의심을 풀지 아니하고 부인夫人으로 하여금 재차 동네를 살핀 후, 다시 대종사에게 그 진가(참인가?)를 물으심에 대종사 또한 전과 같이 말씀하신지라 부친이 안심을 얻으시고 속으로 심히 경탄驚嘆한 바가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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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