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f(침묵)의 의미(意味)
“야곱은 히브루 글자 alef 라고 썼다. ‘침묵’이란 뜻이다.
그는 무심코 손가락을 움직여, 신성한 글자 밑에 줄을 그었다.
야곱은 줄을 긋고 뚜 그어 검은 빵판을 히브루 글자 그림판으로 만들어갔다.
그의 영혼의 사다리가 그려졌다.“
위 글은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는 ‘침묵’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듯 세상은 소란스럽다. 사전에서 ‘침묵’의 뜻을 찾으니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음’ 으로 일러준다. 그냥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의 입이란 말하라고 있는 것인데 별 이유 없이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하면 누가 수긍할 것인가! 이렇기에 ‘침묵’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시 빵장수 야곱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음악을 이루는 것은 음 사이의 침묵이니까요. 호랑이를 가두는 것은 쇠창살 사이의 공간이고요.” 그렇다. 침묵이 필요한 것은 침묵 자체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사이’인 것이다. 글과 글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문맥과 문맥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 등, 결국 이 ‘사이’를 위하여 우리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시간 속에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침묵은 사이로 연결되며, 긴 침묵 뒤의 울림은 침묵의 시간만큼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침묵이 점점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세상의 속도에 스스로를 맞추려하니 침묵이 사라지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빛처럼 변화해 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야 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게 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이럴때 침묵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의 속도에 스스로를 맞추기 보다는 나의 속도에 세상의 시간을 맞추면 어떨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어쩌면 침묵이 더욱 강력한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학교라는 곳은 다양한 삶의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고, 배우는 현장이다. 스스로의 색을 지닌 다양한 선생님과 학생들이 만나 다양한 색을 이야기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곳, 세상의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방법과 시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 학교여야 하고 이러한 것이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펼쳐져야 한다.
음악을 이루는 것은 리듬과 멜로디와 화성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들을 이용하여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 음이라는 것을 통한 생각을 위함이다. 서로의 생각을 음악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음악이 소리로만 이루어져 있기에 음악에서 침묵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음사이의 침묵이 완성이라면 온전히 침묵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이면 어떨까? 20세기 전위예술 분야의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작곡가, 음악이론가, 작가, 철학자, 예술가로 미국의 현대음악의 대가인 존 케이지(John Cage. 1912.9.5.-1992.8.12.)가 1952년 작곡한 <4분 33초>는 온전히 침묵으로만 이루어진 곡이다. 음악을 소리로만 이야기 할 때 그는 4분 33초 동안 전혀 연주가 이루어지지 않는 침묵으로만 구성된 작품을 발표하였다.
세상의 소리가 소음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플 때 그는 소리라는 소재로 하는 예술 행위를 침묵으로 항변한 것이다. 피아노 연주자가 무대에 등장하여 4분 33초 동안 피아노 건반을 바라보기만 할 뿐 건반을 연주하지는 않는다. “이게 무슨 음악이야!” 라고 객석에서 고함이 나올 것 같은데 객석은 오히려 언제, 어떤, 연주를 하는가에 집중한다. 그러고는 연주가 끝난 뒤 피아니스트가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한다.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이 음악을 완성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 천둥과 같은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 나온다. 음악이 울리는 소리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삶을 완성하는 순간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항변하는 순간보다 어찌보면 침묵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즉 소리를 내는 것과 내는 소리를 멈추는 ‘사이’가 균형을 갖출 때 완성된 삶이 아닐까! 지금은 이러한 침묵의 시간에 우리는 더욱 많은 시간의 추를 놓아야 할 것이다. 특히, 특성화고등학교의 특성상 인문계고등학교 보다 일찍 사회로 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침묵의 무게와 침묵하는 방법에 방점을 두고 더욱 힘주어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외침과 침묵 사이의 힘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음악을 이루는 것은 음 사이의 침묵이다!, 삶을 이루는 것 또한 행함과 멈춤 사이의 침묵이다.!”
첫댓글 저도 그동안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산것같아요
이제는 침묵을 배워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여기에는 해마가 있네요.
색이 아주 선명합니다.
돌에 색을 입힌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