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프랑스 문학은
장구하고 풍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842년에
루트비히 2세와 대머리왕 카를 2세간에 맺어진
스트라스부르 서약을 프랑스 문학의 기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세에는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와 같은 서사시들과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아서 왕에 얽힌 로맨스들로 유명하다.
16세기에는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
풍자시인이자 유머 작가인 라블레,
에세이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미셸 드 몽테뉴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후 100년 동안에는
피에르 코르네유와 라신의 비극, 몰리에르의 희극, 장 드 라 퐁텐의 교훈시들이 유명했다.
18세기의 프랑스 문단은
볼테르,
드니 디드로,
장 자크 루소가 풍미했으며,
이 가운데 특히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 Candide〉는 독보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들이 연이어 배출되었다.
소설가로는
오노레 드 발자크,
스탕달,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가 나왔고
시인으로는
샤를 보들레르,
스테판 말라르메,
아르튀르 랭보가 있었다.
특히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창조적 힘은
모든 문학 형식과 회화로까지 표현되었다.
20세기에는 소설과 소설창작기법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었다.
그것이 1950년대에 누보 로망(신소설)으로 발전하여
알랭 로브그리예, 나탈리 사로트, 미셸 뷔토르, 클로드 모리아크, 클로드 시몽,
사뮈엘 베케트 같은 누보 로망 작가들을 배출했다.
1970년대 이후로는
미셸 투르니에, 파트리크 모디아노가 대표적인 소설가로 등장했고
엘렌 식수, 아니 르클레르크, 잔 샹피옹, 마리 카르디날을 포함한
일단의 여성해방론 작가들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극문학에는
3개의 중요한 사조가 있다.
전통적인 극작은
주로 장 아누이, 클로델, 장 지로두, 앙리 드 몽테를랑과 카뮈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그들도 형식이나 내용에 실험을 가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장 콕토가 특히 명성을 날렸지만
페르낭도 아라발, 아르튀르 아다모프, 베케트, 장 주네, 외젠 이오네스코 등이
극작에 혁신을 가져왔다.
철학과 비평은
프랑스의 지적·문화적 생활에서 항상 중심 역할을 했다.
앙드레 브르통이
누구보다 앞장서 이끈 초현실주의 운동이
1920, 1930년대에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20세기 중엽에는
사르트르,
에티엔 질송,
가브리엘 마르셀,
카뮈를 주축으로 한 실존주의 운동이 세력을 떨쳤다.
예술작품, 특히 문학작품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전횡에 도전한 신비평은
롤랑 바르트에 의해 꽃을 피웠으나,
그의 업적은 언어·유전·성격분석·사회문화 등 여러 방면으로 분산된 흠이 있다( 프랑스 문학 ).
회화·조각·음악·건축·사진술 등의 예술활동이
국가의 지원하에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회화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다수의 종교화와 궁중 초상화를 제작해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17세기에는
농부를 주제로 삼았던 루이 르 냉,
우화와 고대의 신화를 주제로 했던 니콜라 푸생,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던 클로드 로랭의 활약으로
프랑스 미술이 독자적인 특성을 갖기 시작했다.
그후 100년 동안은 회화의 양식이 훨씬 더 광범위해져
프랑수아 부셰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다소 선정적인 작품들,
앙투안 바토의 〈광대들 Gilles〉과 같은
불가해한 정경의 그림들,
장 바티스트 샤르댕의 실내풍경화,
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광경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고전주의 작품 등이 나왔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회화도
이때까지는 대부분 프랑스 아카데미가 정한 규칙과 관례에 따랐다.
그러나 19세기에는
반동이 일어났으며,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에 나타난 이국풍,
귀스타브 쿠르베와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에 두드러진 사실주의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특히 인상주의 운동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등과
후기인상파 화가인
앙리 마티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폴 고갱,
조르주 쇠라 등을 배출했다.
조각에서는
단연 오귀스트 로댕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로댕은 인상파 화가들과 동시대인으로,
그의 조각품들에는 인상파의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동시대의 조각가 아리스티드 마욜은
보다 고전적인 양식의 조상(彫像)들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음악은
일찍이 루이 쿠프랭, 장 필리프 라모, 장 바티스트 륄리 등의 작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엑토르 베를리오즈,
카미유 생 상스,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폴란드 태생의 프레데리크 쇼팽 같은 작곡가들은
프랑스 음악에 큰 기여를 했다.
1960년대부터 전자음악과 음향학에 많은 실험이 행해지고 있으며,
작곡가 겸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파리에 있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음악·음향학 실험연구소(IRCAM) 소장으로서
음악의 혁신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의 낭만적인 발라드인 샹송의 전통은
쥘리에트 그레코,
에디트 피아프,
자크 브렐,
조르주 브라상 같은 뛰어난 가수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
프랑스는 최근 다른 서방 국가들에 비해
국제적인 명성이 높은 건축설계자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프랑스에 많은 작품을 남긴 르 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사람이었으며
퐁피두 센터, 루브르의 피라미드 등 주요 건축물들은
외국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것이다.
자크 다게르는 사진예술에 큰 공헌을 했다.
1950년대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베르 두아스노 같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에 의해서 사진술이 신문보도와 상업적 목적을 넘어선
차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1969년 아를에서 연례 사진 축제가 시작되었고,
1976년에는 국립사진박물관이 세워졌다.
프랑스의 문화에서 영화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20, 1930년대에 시적 사실주의로 유명해졌고,
1960년대에 누벨 바그를 통해 프랑수아 트뤼포와 같은 감독을 배출했다.
이러한 영화의 '지성화'(知性化)를 반영하여
새로운 평론지가 창간되고, 파리와 지방에서 여러 개의 영화전문학교가 설립되었으며,
파리에 시네마테크(Cinémathéque)와 같은 영화박물관이 세워졌다.
트뤼포 외에도 장 르누아르, 자크 타티, 장 뤼크 고다르, 에리크 로메르, 루이 말 등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