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저녁 9시~10시까지 양정서당의 심경반이 2주간 방학을 했다.
함께 공부하는 김상달선생님께서 양재선생님과 점심을 하지고 제안하여 평소 뵙기
어려운 양재선생님을 모시고 점심을 함께 한 후 선생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곳을 찾아
차를 몰았다.
역시나 선생님께서는 사진으로만 많이 본 군자정 연꽃의 절정을 보시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다. 우리는 군자정을 한바퀴 돌면서 주돈이의 애련설을 낭송했다.
서당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은 김상달선생께서는 연꽃 이야기가 너무나 신기하다고
또 기뻐하시고........
오늘 일정을 잘 잡은 나로선 때양 볕아래서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연꽃 구경온 부인네 서너명이 연꽃관람을 마치고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아이고 한복이 예쁘네요, 수박 한 쪽 자시고 가이소"하는 다정한 인삿말을 건낸다.
아직도 살아있는 시골인심에 깊이 감사드리고 또한번 세인의 관심을 끄는
한복의 위력을 실감했다. 모시저고리와 삼베치마는 입은사람도 시원하거니와 보는
사람도 시원함을 느끼게하는 매력이 있다.
여름하늘의 한가한 흰구름은 방학의 여유로움을 닮았다.
영연 : 물위에 바람부니 멀리서 향기 실려오고, 깨끗하게 자란 포기 다른 꽃과 다르네
생각컨데 주렴계가 그 때 사랑얻은 것은, 푸른 잎과 붉은 꽃 때문만은 아니겠지
춘우: 꽃지는 봄날에도 날씨 아직 차가우니, 나그네의 마음은 절로 놀라네
외로운 꾀꼬리는 긴긴날을 울어대고, 가랑비는 높은 성을 적시고 있네
이곳의 연꽃은 홍련이다. 우리가 가장 흔히 뽈 수 있는 연꽃이다. 꽃대가 곧고 길어 꽃이 수면에서 높이 솟아 있으며 꽃가운데 벌집같은 연밥이 았다. 수련과로 7~8월에 꽃이 핀다. 관상용으로 많이 쓰이며 잎과 뿌리는 식용, 씨는 약용으로 쓰인다. 키가 1~1.5m로 비교적 큰 편이다. 그 밖에 백련, 가시연, 어리연, 수련 등의 종류가 있다.
청도 팔경중의 명승지이며, 전국명승지 백, 곳 중의 한곳인 이 곳은 소성이씨 입향조 모헌공 휘 육선생께서 백형 쌍매당 휘 윤 , 중형 망헌공 휘 주, 동생 수찬공 휘 여 형제들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선생 문하에서 효제충신의 실천도학을 익혔으며, 안기도 찰방에 재임 중 연산혼조의 무오, 갑자사회에 부친께서 부관참시 되는 등 집안이 한 때 풍비박산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서 두 형의 유배지 거제도와 진도 문후차 왕래하던 중 산수수려하고 생리가 넉넉한 유곡리에 성균관 대제학을 지낸 흥해인 최연선생의 아들 최자순의 딸과 혼레하여 이곳에 전거하며 신라지라 이름 지었다.
선생이 이곳에 연을 심은 것은 비록 몸은 주류에서 쫒겨나 은둔하게 되었으나 연꽃처럼 청정한 군자의 삶을 살고 싶었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연지 호상에 4간 겹집으로 방이 2칸 마루가 10칸인 특이한 구조의 군자정을 1531년 지어 선비를 만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부터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주돈이의 애련설 "연화지군자"에서 군자정이라 이름하고 정자에 드나드는 문의 현판은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의 싯구에서 일감문이라 하였다.
유호연지에 물을 채우기 위해 영남대로 따라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온 것인데, 당시에는 물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고개를 넘어 흐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지라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여 영남대로를 오가는 과객들이 오가며 소문이 나 영남물고개로 유명하게 되었다.
선생은 이 정자에서 향냐 유림들과 도학을 토론하후학들에게 강학수교하여 인, 의, 예를 바탕으로 유퉁진작을 펼쳤으며 1919년370인의 향내 유림이 주축이 되어 군자정강학계를 창계하여 매년 음력 8월18일에 모여 경전을 강송하고 시를 지어 읊기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선생을 추모하여 오고 있다.
또한 이곳은 "반보기 풍습"의 유래지로 고성 이씨 며느리와 딸네들이 음력 8월16일 군자정에 모여 강학계 행사 준비와 정의를 돈독히 하는 모임이었는데 이러한 미풍양속이 군민들에게 구전으로 전해내려 남녀노소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미풍이 군민들에게 까지 미치게 되었고, 지금은 시대의 변천으로 과거의 아름다운 민간풍속으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청도군에서는 도비 10억, 군비 10억을 지원하여 2010년 도에 이름난 이곳을 개발 정비하여 군민들의 정서함양과 사라져가는 풍습을 계승하고 관광지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 하고 있다.
양재 이갑규선생님은 이곳 시회에 여러번 참여하신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정자로 들어가는 일감문
양재 이갑규 선생님과 부산대학 명에교수이신 김상달선생님
군자정 중에 떡 쌓음이 많아 시례를 강마하여 유생을 양성했네
어진 이 놀던 곳에 글하기 어렵고 미더운 벗만나 정회를 토로하네
노송은 산허리 휘감아 푸르게 변하고 연꽃은 피어 물위에 붉어오네
내 고향 이름 난 곳 화벌이 번창하고 대대로 후손은 좋은 소식 전하리라. 유장 하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