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숲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이다.
숲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이 개울과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며,
바다에서 몸집을 불린 연어가 강을 타고 개울로 올라와 산란한 후
곰이나 독수리들에 의해 바다의 양분이 숲에 환원된다.
강은 숲과 바다를 연결하고 서로에게 양분을 전달해 주는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뱀필드에서 일을 시작한 첫 여름이었다. 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는 여름에는 학교 건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일찍 출근한 나는 쾌청한 날씨를 벗삼아
학교 뒷마당 잔디밭에 앉아 바다를 보며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학교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바다를 구경하기가 쉬웠다.
갑자기 잔잔하던 물 위로 분수처럼 물보라가 솟구쳤다.
검은 물체가 수면 위로 약간 솟아났다가 사라졌다.
잠시 후에 다시 등을 보인 검은 물체는 이번엔 거대한 꼬리를
물 위로 내보였다.
고래였다.
아침을 먹던 자리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광경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건물 안에서 식사 중이던 학생들에게 고래가
나타났다고 소리쳤다.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고래의 몸이 완전히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많은 물을 튀기며
물 속으로 사라졌다.
고래는 마치 구경꾼들을 기다렸던 것처럼 학생들이 나타나자마자 하나의
환상적인 쇼를 연출했다.
1990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시작되는 75km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을
하이킹하면서 거의 매일 고래를 보았지만, 모두 해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신비한 고래의 모습을 보거나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그리고 몸 전체를 물 위로 드러낸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고래는 포유류 중 몸집이 가장 거대한 동물이다. 몸길이가 10m 이상 되며,
몸무게도 20~30t 되는 거대한 동물이 바다 속에서 몸체를 일부 드러내고
분수를 만들며 숨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의 세계가 살아 있음을
실감케 해준다.
그 고래는 수염이 달린 수염고래이며, 등이 약간 굽어 있어
혹등고래(Humpback Whale)로 불린다. 이놈들은 새우나 청어와 같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데, 특히 청어를
잡아먹는 기술이 매우 독특하다.
이 고래는 청어떼를 발견하면 혼자 또는 여럿이 잠수해 청어떼 밑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면서 숨구멍으로 공기방울을 만들어 뿌린다.
솟아오르는 공기방울을 본 청어들은 적이 접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서로 밀집해 커다란 공 모양의 집단을 이룬다.
그렇게 먹이감을 한데 모은 고래는 물 속에서 입을 벌리고 물 위로 힘차게
솟구친다.
그러면 수많은 청어들이 자신의 입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간다.
내가 학교 뒷마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보았던 장면도 혹등고래가 아침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먹이를 잡아먹는 혹등고래는 등과 꼬리를 자주 물 위로
내밀며 활발한 모습을 보여준다.
밴쿠버섬 서해안에서 혹등고래보다 더 흔히 볼 수 있는 고래는 같은
수염고래의 일종인 그레이고래(Gray Whale)다.
런던 대영박물관의 박물학자 그레이(Gray)의 이름을 따 그레이고래로
불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고래의 피부는 원래 검은색이지만 피부 표면에
기생하는 조그만 별 모양의 따개비나 바다 이 같은 해양곤충들 때문에
멀리서 보면 피부가 회색으로 보인다.
그레이고래는 적도 부근의 멕시코에서 겨울을 보낸 다음 알래스카를
거쳐 베링해협까지 1만㎞에 달하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 때문에 매년 봄이면 밴쿠버섬 서해안에서 알래스카로 이동 중인
그레이고래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레이고래는 바다의 밑바닥을 훑어 그 밑에 사는 새우 같은 조그만
미생물들을 물 속에 뜨게 만든 다음 긴 수염으로 이들을 걸러 먹는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연안에 머무르면서 먹이를 구하는 이 같은
습성 때문에 그레이고래는 원주민들의 고래사냥과 백인들의 포경의
주대상이 되어 제일 먼저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활동성이 혹등고래에 비해 낮아 온순해 보이는 그레이고래가 하얀 따개비를
잔뜩 등에 붙이고 3~4분마다 숨구멍으로 공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이끼와 같은
착생식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원시림 속의 거대한 고목을 연상시킨다.
숲과 바다는 하나로 연결된 생태계
육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눈에 잘 보인다. 숲이 파괴되거나 하천이
오염되면 그 피해는 당장 우리 눈에 나타나며, 자연환경보호를 위한
경고가 되기도 하고 잘못된 환경관리에 대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양생태계나 물고기 같은 수산자원의 파괴나 고갈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는 무한자원의 보고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믿음이다.
최근 잡히는 고기의 어획량도 크게 줄어들고 있지만 잡히는 고기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있다.
어획기술과 장비가 발달해 옛날보다 더 빠르게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다의 양분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가 메말라 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양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산업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던 50~60년 전만 해도 해마다 북미대륙의
서해안의 숲에서 수백만 톤의 양분이 낙엽, 나뭇가지, 쓰러진 나무 등
유기물 형태로 개울에 유입된 후 강을 통해 북태평양으로 나갔다.
태평양으로 흘러든 나무들은 서서히 썩어가며 플랑크톤과 해양곤충들의
서식처를 만들어 이들에 의존하는 작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다.
이 때문에 북미대륙의 태평양 연안은 어느 바다보다 어족자원이 풍부한
바다가 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일곱 종류의 연어들이 자신이 태어난 개울을 찾아 떼를
지어 먼 바다에서 돌아왔다.
미대륙 서부 태평양 연안의 바다에선 풍성한 어족 자원 때문에 연어뿐만
아니라 청어, 정어리, 고래 어장이 생기기도 했다.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고목림숲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양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강이나 바다 위를 떠다니는 통나무들은
선박이 항해하는 데 장애가 되거나 위험하다고 여겨 1900년대 초부터 많은
노력을 들여 이들을 제거했다.
이와 동시에 1940년대 이후 원시림숲에서 산업적 벌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강으로 유입되는 통나무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산업벌채는 개울 주변까지 나무를 베고 새로 심어 나무들이 개울로
쓰러지는 일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숲과 바다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생긴 현상이다.
바다와 숲은 사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이다.
숲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이 개울과 강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며, 바다에서
몸집을 불린 연어가 강을 타고 개울로 올라와 산란한 후 곰이나 독수리들에
의해 바다의 양분이 숲에 환원된다.
강은 숲과 바다를 연결하고 서로에게 양분을 전달해 주는 핏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밴쿠버섬 서해안에는 물이 빠지면 지천으로 널린 성게와 불가사리,
가을이면 어김없이 떼를 지어 돌아오는 연어, 바닷물 위로 솟구치며
먹이를 잡는 고래들이 아직도 이곳의 자연경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원시고목림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이들을 계속 볼 수 있으려면 육지에 숲이 오랫 동안 잘 보존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양자원을 이용해 돈을 번 기업이 환경적 양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 돈의 일부를 숲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해양자원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하는 기업도 마땅히 숲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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