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래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죄악대로 우리를 처지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믿어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우리가 헛된 것을 좇아서 방황할 때도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셔서, 주여, 길이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사오니, 우리가 또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또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여 갈등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들, 선한 목자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구약 성경의 남아 있는 부분들을 우리가 이기적으로 보던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이제는 하나님이 소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애타하시고 또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속에 간사한 것이 숨어있나 보옵시고, 우리 영혼을 정직하게 하여 주옵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다시는 우리가 양식 아닌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는 우를 범치 않게 하여주시고, 참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에 우리 남은 삶을 헌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예, 이제는 우리가 에스라서 제2부. 에스라서의 뒷부분인데 7장부터 그 뒷부분까지를 이제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가 1부에는 제 1차 귀환의 관련된 것이고, 2부에는 제2차 귀환, 다시 말하면, 에스라가 인솔해 왔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주축이 되어가지고, 귀환해 와서 성전기공식을 했는데, 얼마 있다가 중단되었고, 중단되어서 15년 있는 중에 학개, 스가랴 같은 예언자가 나타나서, 책망하고 격려하고 하는 가운데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서 완공된 이야기. 거기까지는 우리가 6장에서 본 것이고요, 그 어간에 에스더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가 되었죠?
7장에 가면 ‘이 일 후’, 이 일 후라는 말이 1차 귀환으로부터 근 79년, 한 80년 가까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입니다. 1차 귀환은 536년에 이루어졌고요, 2차 귀환은 457년에서 458년 그 어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도 계산하면 거의 한 79년인가 80년 정도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 일 후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 이 아닥사스다라는 이름은 영어로 기록하는데, 전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아르타크세스크세스인데, 할아버지들이 음역을 할 때, 아르타크세르크세스라는 말이 할아버지들은 전혀 귀에 안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아닥사스다 이렇게 한 거야. 우리 한국 사람들만 아닥사스다 그러지, 아무도 아닥사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름들을 빨리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이름으로 고쳐야되는데, 그 참 힘듭니다. 한번 이렇게 입에 딱 고정이 되며, 아닥사스다 해놓은 이름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그러면 딴 사람인 줄 알고 헷갈리는 거야. 뭐 아무 것도 모를 때는 헷갈릴 것도 없죠.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르니까.
이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위에 있을 때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에스라가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문학이 있죠.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마치 제3자가 보는 안목으로 써나가는데, 3인칭 작가시점으로 그렇게 쓰는 거죠.
자, 여기 보세요. 이 에스라가 사실은 에스라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건데, 굉장히 거창하게 소개하죠? 자기 할아버지 16대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다. 이렇게 자기 소개를 굉장히 신경을 쓴 걸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기 소개를 거창하게 하느냐? 1차 귀환해 온 사람들은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죠. 맨땅에 와가지고, 황무지에 와가지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거기 성전 짓는데, 얼마나 어렵싸리 이렇게 다 짓고, 근데 늦게사 79년이나 지나서 뭐 하나 나타나가지고, ‘내가 왔다.’ 그래봐. ‘너 뭐야? 너 어서 굴러온 개똥이야? 이거. 흥.’ 이런 식으로 무시할 수가 있는 소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자기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는 거에요. 여러분, 어디 가서 자기에 대한 정보를 쓸 데는요, 정확하게 써야 되요. 자기 소개를 아주 정확하게, 딱부러지게 해야 할텐데, 어정쩡하게 해가지고 나중에 섭섭해하고 그러면 곤란하죠.
여기 등록할 때, 카드를 쓰시오 이렇게 하는데, 어떤 사람 보면 아주 성의 없이 써요. 부산에서. 해가지고 이름 덜렁 써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또 뭐 저기 인터넷으로 접수했는데, 또 쓰라한다고 틸틸하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으로는 단체도 10명이 와도 한사람 이름으로 등록을 해놓고, 어떤 사람들은 신청자 다르고, 입금자 다르고, 참가자가 다르고 해가지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요, 누가 왔었는지 실제로 알지 못해가지고 사람을 찾지 못해서 애를 먹는 거에요. 지난번에 한번 교통사고 난 적이 있었는데, 그래가지고 찾지 못하면 엉망이 되죠. 여러분, 어디가서 여인숙이나 여관방에 하룻밤 자도 숙박계를 정확하게 쓰고, 그 다음에 화재가 나가지고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 할때, 어떻게 수습할 거에요? 여기와서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성실히 듣는데, 종이 한 장 쓰라는데, 하룻밤도 아니고 나흘밤이나 자면서 그걸 갖다 쓰기를 싫어서 무성의하게 어떤 사람은 글자도 거지같이 써가지고,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해가지고, 꼭 지렁이가 술 먹고 기어간 것처럼 해가지고.
여러분, 일반 용어는 앞뒤 말을 이으면 말을 이어갈 수 있는데, 어줍잖게 라도 맞출 수 있는데, 고유명사는 전혀 안됩니다. 고유명사와 숫자는 정자로 쓰지 않으면 알아보지를 못해요. 자기만 알지, 딴 사람은 모르는 거라. 그래서 그런 자기 신상정보를 쓸 때는 글자를 흘려 써도 안되고, 정성을 다해서 또박또박 한자 한자 써야지, 그렇게. 제가 한번 달라고 해서 넘겨보거든요. 아주 정말 그 속이 상할 정도로 그렇게 무성의하게 쓴 사람들이 많아. 어디가서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 거 하나라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다는 거야. 그런 거 하나까지 어설프게 그렇게 그런 습관 가지고 있으면 안되요. 그리고 거기 뭐 글자를 흘려쓰지 마시고, 정자로 쓰세요. 그런 말까지 써놨는데도 불구하고. 자 여기 보세요. 우리가 여기와서 성경에 대한 지식 몇가지 얻어가면 뭘하겠다는 거에요? 그런 삶의 자세, 그런 삶의 어떤 자세, 범사에 크고 작은 일에 임하는 자세가 성실해야 되고, 그런 것이 더 중요한 거야. 여러분, 어디 가서 이력서를 쓰면 그리 쓰겠어요? 밥을 벌어 먹기 위해서 이력서를 쓸 때는 정성을 다해서 쓰고,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는 자세가 그렇게 무성의하게. 각성을 해야 되요.
한번은 집회 때마다 한번 이렇게 하고, 너무 속이 상해서 이따금 그런 얘길 했는데, 한번은 집회를 마치고 세월이 지났는데, 두어 주간 지났는데, 밀양에 있을 때 부부가 밀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어째서 왔습니까?’ 했더니, 그 집회 도중에 카드 쓴 것을 가지고 질책을 하시는데, 너무 충격을 받고 너무 마음에 찔려서 자기가 사무실에 가서 자기 카드를 돌려받아가지고, 새로 정성을 다해서 쓰고 드리고 왔어도 너무 마음이 양심이 괴로워서, 그렇게 무성의했던 걸갖다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앞으로 자기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겠다 그러면서 찾아온 분이 있어요. 자기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이미 다 돌아가셔서 참, 어디 지도도 받지 못하고 컸는데, 그 부부가 와서 저를 부모님처럼 평생을 그렇게 모시겠다 그리 찾아왔더라고. 지금 저 원주에 가서 살고 계시는데, 자기에게 기분이야 나쁠 지 몰라도 참,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따끔한 질책을 해준 것을 평생에 잊지 않겠다고. 그런 분도 있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작은 일에 그런 성실을 다하는 그런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이 에스라가 자기 소개를 할 때, 아주 완전히 자기 족보를 딱 챙겨서 이런 사람이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는 거에요. 그래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하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이력서를 쓰거나 등록서를 쓰거나 할 때, 자기에 대한 정보를 성의있게 쓰는 그런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6절에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자, 이 짧은 글 속에 굉장히 참 내용을 압축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는데,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다.’ 이런 말도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죠? 자기가 율법에 익숙한 학사다 이런 말을 하기 어려운데,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하나님이 또 자기를 도와주시고 있고, 그래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그 왕은 아닥사스다 왕을 말합니다. 당시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에스라가 무얼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할 만큼의 그런 권위와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인물이었어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페르시야 황제의 법률 담당 자문위원으로 계셨던 분인데, 그리 있으면 얼마나 뭐 만고강산이죠. 누가 그런 자리를 넘어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무풍지대같은. 그런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귀환공동체에, 다시 말하면 그 바벨론에서 1차 포로되어 와서 성전 공사하고 하는 그런 척박한 곳에 자기 동족, 민족이라고 해가지고 자기는 태어나기를 바벨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뭐 어떤 곳인지, 성경과 역사를 통해 알 뿐이지, 전혀 연고도 없는 곳에 이렇게 찾아온 거야. 자기 자신의 안일만을, 출세만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 군상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까?
‘다 받는 자더니 아닥사스다왕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7년 5월이라.’ 몇사람이 올라왔다는데, 한 1,800명 올라왔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만 4개월 걸린 거죠? 정월 초하루에 출발해서 오월 초하루에 도착했으니까, 만 4개월 걸려온 길이야. 그러니까 그 자기가 가졌던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리고 또 와서 무슨 자리가 보장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자기를 어떻게 맞아줄 지도 알지 못하는 곳에, 단지 그저 자기소개서 하나 써가지고, 자기가 가면 거기서 뭐, 어디 무슨 보금자리 하나 준비된 것도 아니고, 그런 곳에 단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자기가 느끼는 그 사명감을 따라서 이렇게 찾아온 거에요. 이런 대학자, 이런 정말 어른의 삶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교회에도 소개되고 해야 할텐데, 전혀 에스라가 소개가 안되었어. 히브리 민족이 지금까지도 최대의 민족의 대학사로, 랍비 중의 랍비, 최고 랍비를 랍반이라고 해. 히브리인들은 랍반 에스라 하는 이러한 위대한 인물이 전혀 교회에 소개가 안되고 있다는 거야.
‘올라왔으니,’ 10절에 보면, 에스라가 뭐하러 왔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딴 거 하러 온 거 아닙니다. 뭐 그저 한자리 하러 왔더라. 뭐 살길 찾으러 왔더라. 그런거 아니고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또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이번에 오신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 신학생들, 사역자님들은 딴 거 결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가르치기로 준행하면서, 행하지도 않고 가르치면 안되요. 준행하면서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이런 결심이 정말 결심이죠.
다른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1차 귀환에 오셨던 분들, 다시 말하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처음에 왔던 분들은 요즘 말로 하면, 이제 기초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예배당 껍데기 이런 하드웨어, 이런 걸 구축한 거야. 외적인 것. 예배당 건물 지은 것. 건물 지어놓으면 뭐하는 거에요. 그거 갖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건물 지었어도 거기다가 사람들 마음속에 진리,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심어놓지 않으면요, 예배당 지어놓는 것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 옛날에 솔로몬 성전도 다 태워 버렸잖아요. 그래서 예배당만 지어놓으면 목회 성공한 걸로 생각하면 안돼. 거기 사람만 갖다 끌어 채워놓으면 된 게 아닙니다. 예배당 짓고 사람만 꽉 차게 하면 목회 성공했다 그리 할지 몰라도, 재정이 올라갔다고 성공한 게 아니고, 그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바르게, 하나님 말씀을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제대로 가르쳐서, 그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해야, 비로소 할 일 한거야.
그래서 목회자가 없어도 목회자가 빠져버려도 그들 속에 심어진 말씀을 따라서 충분히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야만, 제대로 일한 거야. 목사 빠져 버리면 우왕좌왕하고 목자없는 양같이, 그건 목회한 게 아닙니다. 그건 아직도 아니야. 제대로 하려면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심어줘 가지고, 혼자 아무데 던져놔도. 예배당은 혼자 개척을 하고 예배당을 짓고, 또 다른 사역자가 될 만큼의 사람들을 길러야 그게 일한 것이지, 목회자가 없으면 성도들이 발발 떨고, 막 이래가지고는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가지고는 사역이라 할 수도 없어요. 그런 신자는 그야말로 육신에 속한 자, 젖먹이 밖에 안되는 거야. 목사 없으면 신앙생활 안된다 그러면 젖먹이 밖에 안되는 거야. 우리 교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목사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고, 얼마든지 그저 목사 없이도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아무든지 누구든지 예배 인도할 수 있고, 그게 만인제사장 아닙니까? 만인제사장. 정말 온 성도들이 목사와 같이 그걸 제가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 보면요, 거의 카톨릭 비슷하게 되어 버렸어. 그냥 카톨릭에는 성직자 없으면 교회가 아니죠? 그건 공소야 공소. 그건 기독교라 할 수 없어요 그래가지고는. 적어도 기독교가 제대로 될라면, 교회가 제대로 될라고 그러면, 목회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교회가 움직이게 할수 있는 그 정도로 사람을 키워야 돼. 물론 100% 다 한꺼번에 되긴 어렵지마는 방향은 그렇게 되어 있어야 돼. 목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 사람을 길러야 돼.
이스라엘 백성이 그게 안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이 있으면 하는 척하고, 사람이 없으면 흐지 부지 되버리고. 이래 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에스라는 하드웨어를 구축해 놓은 위에, 소프트웨어. 즉 사람들 마음 속에 은혜와 진리를 심으려고, 율법을 준행하며 이것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여러분, 딴 걸 결심할 일이 아니라, 어떤 자꾸 무슨 너절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성도들을 괴롭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쳐요. 그래서 그런 고기를 주는 것이나 생선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법으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거야. 이것이 히브리인들 지혜야.
그래서 저는 설교할 때에 평소에 교회 설교할 때에 다 해가지고 그저 성도들 찍소리 말고 순종이나 해라 이런 설교가 아니고, 같이 읽으면서 같이 마음으로 해석하면서, 일부러 질문도 툭툭 던지면서, 생각 없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으로도 응답하게 끊임없이 그저 질문 던지면서, 같이 설교도 같이 해요. 내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풀어서 이해해가는. 그러니까 저하고 같이 공부하고 나면요, 거의 다 성경을 알아버립니다. 알게 되는 거에요. 같이 이해되니까. 그 다음은 혼자 가서 읽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거기서 누구를 또 다름 사람을 가르치면 금방 성장하는 거죠. 여기 우리 목사님들도 그리 한번 해봐요. 집에 가서 덜컹 준비 없이 그리하면 안되고, 1년이나 2년이나 성실하게 준비해가지고 한번 창세기부터 계시록 풀코스 하나도 안빼놓고 설교해 보세요. 한번만 하고 나도요, 그야말로 우리 실력이 부쩍 향상되게 되고, 아 딴 거 할 필요가 없구나. 딴 거 할 여지가 없고, 딴 거 할 필요가 없고, 이 66권 말씀과 함께 역사를 가르치면 이게 필요하고 충분한 거야.
괜히 무슨 이런 저런 예화가지고. 예화같은 것 가지고 올 필요 없어요. 저는 1년을 설교하는 중에 예화 같은 것 뭐, 글쎄 한 10개하면 참 기적일 겁니다. 혹시 무슨 예화가 있어도 성경 안에 있는 걸 예화로 가져오지, 무슨 뭐 어디 가서, 하여튼 성도들이 짜증을 내요. 늘 듣던 그 진부한 얘기, 그 예화. 그래서 예수교가 아니고 아예 예화교다. 성경 말씀 온데 간데 없이 순 예화 이런 것만 가지고, 참 한심한 얘기죠. 그래서 성경 말씀을 주욱 하고는 그런 너절한 얘기 할 시간이 없어요. 뭐 이상한 학자들 이야기와 이론을 갖다가 펼쳐가지고 그리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창세기부터 주욱 밀고 나가면, 성도들이 함께 공감하고 하나가 됩니다.
자, 11절.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그리고 이제 오면서 왕이 내린 그 조서까지 다 가져와서, 증빙서류죠. 자기를 자기 신분과 자기가 어떤 사명을 띄고 왔는지 하는 그런 서류까지 다 내놓는 것죠.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다.’
12절입니다.‘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사람을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거죠. 누구든지 데려가도 좋다.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모사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파송을 한다.’ 페르시아 황제와 일곱 모사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아가지고 파송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요. ‘왕과 모사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그러니까 페르시아 황제와 그 일곱 모사가 성심으로 드린 은금, 이분들이 헌금까지 다 해가지고 보내는 거에요. ‘가져가고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 돈으로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전 단 위에 드리고,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선히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찌며,’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모금할 수 있는 그런 권한도 허락을 하고, 그 재정을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집행할 수 있는 권한 조차 부여된 거죠.
‘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가져가도 좋다.’ 백지수표 한 장도. 그저 페르시아 황제 왕의 내탕고에서 뭐 꼭 가져가야 되겠다 싶으면 뭐든지 가져가도 좋다. 이 정도로 페르시아 황제가 에스라를 신뢰했다는 거에요. 이런 인물은요, 제가 볼 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에 한 사람 나와요. 딱 한 사람. 옛날 요셉 같은, 요셉이 그 정도죠?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의자하나 밖에 없다. 했던 것처럼 완전히 이방 나라 황제에게 신임을 받는 이런 인물이 에스라에요. 그런데 이런 인물이 전혀 교회에 소개가 안되었어. 오늘 여기 자기 소개장 하나만 가지고도, 이 정도로 에스라의 인물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나 곧 나 아닥사스다왕이 강 서편 모든 고지기에게’ 고지기라는 말은 창고지기인데, 거기 창자 하나 더 넣으면 훨씬 수월할텐데, 애들이 목사님, 고지기가 뭐에요?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의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일백 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일백 밧까지, 기름도 일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유브라데강 서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에스라가 요구하거든 얼마이하의 금액은 다 신속히 집행을 하도록 하라. 이 정도 또 권한까지 주어진 거에요.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이 말은 만약에 그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았다가는 페르시아 왕과 왕실에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른다. 하는 것까지도 느끼고 있는 것 보면, 그 에스라 느헤미야 때에 페르시아 황제에게 에스라가 성경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벌써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마땅히 해야 될 것은 하지 않았다가는 페르시아 황제에게도 하나님의 화가 임할 수 있겠다 하는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에스라에게 이렇게까지 도와줬던 황제가 아닥사스다 왕이에요. 그 아닥사스다 왕 곁에 이제 이렇게 법률담당 자문위원은 에스라였고, 술맡은 관원장은 느헤미야였거든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어디가도 실력 있기 때문에, 그 다니엘도 실력 있으니까, 느부갓네살 왕을 지도하는 인물이 된 것이고, 요셉도 실력이 있으니까, 바로 왕의 정부를 총책임지는 그런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실력을 길러야 돼. 진짜 실력이 있으면요, 금방 드러납니다. 사람이. 여러분, 왜 나는 이렇게 굉장한 일에 쓰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알아주지 못하는가. 실력을 열심히 쌓아요. 그리고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진짜 일군은요, 항상 모자랍니다 늘. 가짜 일군은 늘 남아나고, 진짜 일군은요, 준비된 진짜 일군은 늘 모자라요. 젊은 날에 부단히 공부하고. 공부하다 죽는 것도 순교야. 그야말로 머리를 싸매고, 젊은 날에 그냥 한데 이런 저런데 한눈 팔지 말고, 쓸 데 없는데 시간낭비하지 말고, 제가 얘기했죠. 성경과 역사와 과학을 끊임없이 부단히 공부해야 되요. 어느 궤도에 오르게 되면요, 쓰임 받게 되요. 별로 실력은 없으면서, 자꾸 무슨 좋은 자료가 있나 기웃거리고 그러지 말고, 진짜 자기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요. 그래서 한 분야에, 자기가 한 분야를 사명이다 생각하고, 거기 일을 잡으면, 그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서 그 분야는 그 사람이 최고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자기 실력, 자기 일에 정통해야 되요. 자기 일에 잘 못하는 사람을 누가 기용하겠어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자기 맡은 일에 전심전력해서 어떤 경지에까지 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되요. 그 에스라 라던지, 다니엘 같은 분들이 그 정도의 신앙과 지조와 학문과 어떤 영성이 있으니까, 쓰임받는 거죠. 언제든지.
2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였노라.’ 그러니까 제사장들이라던지 이런 성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는다. 이런 말씀 때문에 오늘도 목사들에게 또 미국서도 목사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목사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항상 다 결국 남을 위해서 하고 있으니까, 그 자체가 삶이 다 세금인데, 또 다시 세금을 거둘 거 없다 그래서 목사는 세금이 없는 거에요. 여기서 벌써 그때, 2500년전에 에스라가 이를 가르쳤기 때문에 법을 정할 때, 제사장들은 자기 사생활이 없고, 사생활도 공생활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자체가 이미 다 삶이 세금으로 바쳐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세금 받지 않는게 옳다. 이런 걸 가르쳤기 때문에 이 아닥사스다 왕도 그런 조서를 내린 거에요.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인사권까지도 부여됩니다. 사법권이 다 부여되고, 인사권이 부여되고, 인사행정권이 부여된 거죠.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수도 있다.’ 그러니까 막강한 권한이 에스라에게 주어진거죠?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이 에스라가 이제 처음에는 자기를 3인칭으로 썼다가 어조가 바뀌면서 내가 이렇게 나오죠? 갑자기 1인칭 작가시점으로 지금 바뀌고 있는 거에요.
8장에는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주욱 명단들, 팀들 규모를 주욱 하고 있고요, 8장 15절에 보면,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유하면서 살펴보니까, 그 모집을 했는데 레위 자손들이 별로 안보여요. 그 레위인들을 좀더 챙기고, 거기 18절 보면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하면서 자주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사’ 그런 말이 계속 나오죠. 그 말이 에스라야, 에스라. 에스라라는 말은 에제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돕는다 하는 뜻인데, 에즈라 하는 자기 이름자체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 그런 그 이름을 갖고 있어가지고, 늘 자기는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시고 있다 이렇게 믿고 있고, 그 믿음대로 항상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입어서 이런 일도 이루어지고, 이런 일도 이루어지고, 왕의 목전에 은총을 입기도 하고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이 에스라를 제가 존경하다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사’ 그런 말이 에스라에게 배워가지고 아마 자주 그런 말을 쓰게 되요. 이분에게 제가 너무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에스라가 하는 걸 우리가 다 흉내도 내지 못하지만, 정말 그 일을 내가 해야 되겠다. 하나님 말씀을, 율법을 연구하며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제가 딴 거 하는 거 아니잖아요. 여기 아침부터 와봐도 우리가 맨날 그저 그렇게 찬양하고 무슨 기도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런데 시간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가서 교회에서 너무 사람들 피곤하게 하지 말고, 조용조용히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쳐봐요. 준행하며 연구하며 가르치고, 그래서 사람이 살면서 조용히 변하고, 그래서 경건한 그런 모습이 보여야 돼.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요, 전혀 경건한 모습이 아니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이런 식으로 비치니까, 품위가 떨어져 버리면서 교회가 권위까지 상실되는 거야. 품위를 잃어버리면 권위도 떨어진다는 거에요. 하여튼 기도도 조용한, 경건하고 조용하고 진중한 그런 모습을 보여야 될텐데, 그동안 너무 품위 없는 그런 모습으로 비추어져서 사람들이 우리를 길에 버리운 소금처럼, 맛을 잃은 소금처럼 온갖 사람들에게 짓밟고 다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모습으로 전락해버렸어.
21절.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페르시아 황제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참 솔직한 얘기죠. 앞을 봐요. 그 황제를 지도할 때, 황제에게다가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도와주시고,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가르쳐놓고, 저 근데 우리 호위병을 붙여 주십시오. 너희 하나님이 잘 지켜주신다면서 왜.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자기가 가르쳤던 대로 따로 무슨 호위병이나 보병이나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럽게 여겨져서 금식하고 기도하고 길에서 정말 생명과 소유물이 손실이 없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아하와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이렇게 했다는 거에요. 이거 얼마나 투명한지 사람이. 여기 앉아서도 속이 훤히 다 보여요. 투명인간, 크리스탈 인간처럼 훤히 보이죠?
그래서 가져오는 그 돈이 막강하거든요. 황제가 페르시아 황제가 그 거금을 황실에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까 싶어서 페르시아 황제가 드렸으면 아마 거금을 가져왔을 겁니다. 그 가져오다가 중간에서 누가 돈 냄새를 맡고 떼강도를 날아들면 큰 일 나잖아요. 그러니 그런 것을 놓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왔는데, 다행히 하나님께서 도우셔가지고, 그 먼길을 오는데, 4개월 만 4개월 걸린 길이면, 얼마나 먼 길이에요. 거기 별의 별 잡놈들이 다 냄새 맡고 끼어들텐데, 한번도 위협받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거에요. 여러분, 그 에스라의 신앙과 그 참 지조와 그런 의연한 결단과 모든 자기에게 있는 기득권을 다 포기할 수 있는 어떤 그런 인품과 온갖 걸 봐도,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런 에스라와 같은 인물, 느헤미야와 같은 인물이요, 흔치 않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교회에 전혀 소개가 안되었어.
31절. ‘정월 12일에 우리가 아하와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맨날 그러죠? 늘상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사.’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 애국가하고 너무 똑같죠. 세계의 애국가 중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런게 잘 없어요. 우리나라 애국가가 하나님 마음에 들어가지고, 참 못됐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줄 마음이 있는 거에요.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3일을 유하고 제 4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그러니까 페르시아에서 출고할 때 문서에 금이 얼마, 뭐 얼마, 주욱 장부를 해가지고 왔거든요. 그래서 인계할 때 정말 또 저울에 다 달아가지고 정확하게 이렇게 우리가 가져왔고, 이렇게 다 인계한다. 이런 것까지도 투명하게 깨끗하게 하는 거야. 그래서 이 에스라의 삶을 우리가 보면, 정말 참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교회에서도 이런 걸 가르쳐야 돼. 신학교에서도 이런 에스라서 같은 걸 잘 가르쳐가지고, 목회자들이 딴 짓하지 말고, 비본질적인 것에 자꾸 헛되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런 걸 해야 돼.
35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 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 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 그래서 아주 참 법률이나 행정이나 신앙이나 학술이나 이런 모든 면에서 그 에스라는 그야말로 흠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9장이 또 중요한 대목인데,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놀랍게도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대충 정리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뭔가 낌새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고 주춤 주춤하고 사람들이 그리하더니, 이게 뭘까 했는데, 누가 와서 한마디 하는 거에요.
들어보니까, 아이고 1차 귀환에서 돌아온 지 한 80년째 되는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이방 사람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어. 그런데 전부 방백들, 두령들, 제사장들까지, 하여튼 그 지도층들이 그런 일들에 앞장을 섰다는 거야. 이방여자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은 거야. 에스라가 이 일을 듣고, 속옷을 찢고 겉옷을 찢고, 머리털하고 자기 수염을 다 쥐어뜯으면서 아침부터 그리 울고 앉았는데 해가 질때까지, 한데 바람을 맞으면서 그때가 12월인데 눈비 막 내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예루살렘 산꼭대기, 해발 800m 정상에 그 추운데 눈비를 맞으면서 옷을 다 찢어, 머리털하고 수염을 쥐어뜯으면서 통한이 울고 앉아있는 거야. 에스라가. ‘우리가 옛적에 솔로몬이 바로 이런 짓하다가 타락해가지고 나라가 완전히 망해가지고 바벨론 포로 생활하고 왔으면 되었지, 또 어떻게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얼마나 통한히 여기는지.
그래서 4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그러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있었어.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합니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고 뭐 에스라가 얼마나 참,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기도는 여러분이 집에서 읽으면 되시고요.
10장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그래도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거죠. 에스라가 ‘야, 참 내 혼자 안일하게 페르시아에 있었으면, 어찌 될 뻔 했겠는가. 내가 그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 버리고 와서 보니까, 내가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다 맹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가지고 에스라가 너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그 추운데 얼어서 몸이 굳어가니까, 젊은 사람들이 막 주물러가지고, 몸을 풀어가지고 ‘일어나서 힘써 주장하시면, 우리가 돕겠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하는 놈들이 또 있어요.
10장 15절 보세요.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이런 짓을 해놓고도 또 그렇게 잘했다고, 에스라의 그 개혁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는 거야. 그 반대하는 편에 돕는 사람이 있고 말이야. 그렇지만 에스라가 그걸 그 누가 반대한다고 가만히 있겠어요? 그 성품을 보세요. 성품을.
16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정월 초하루에’ 한 3개월간 정밀조사해가지고 명단을 작성합니다. 이방여자를 취한 지도층 사람들 다 뺐어요.
18절 이하죠.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 이 사람은 죽었죠? 이미 뭐 죽었지만 역시 지난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이방여자를 취했다고 들었었죠? 그때부터 시작된 거에요. 여러분, 우리 지도자가 무얼 잘못하면요, 줄줄이 따라가는 거에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은 그래. 하나님은 그게 혼자 사는 게 좋지 못하니까, 하나님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뒤에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하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에요. 마귀가 가만히 안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전부 이렇게 되니까, 걷잡을 수 없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크게 문제 안삼고 넘어가는 거야, 하나님이야 그리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백성들이야 백성들. 백성들 그 밑의 아랫사람들이 할 때,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스룹바벨도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제사장이 그리하는데, 뭘 일반 방백들 뭐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걸 막을 수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아래에 주욱 나오는데,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할 때, 요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대제사장이라서 그런지 이름을 빼줍니다. 아는 사람은 알게, 애들은 모르게. 요사닥의 아들과 그러면서 넘어가는 거에요.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애들은 모르는 것이고, 나머지는 실명을 다 써버립니다 그대로. ‘그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를 인하여 수양 하나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하림 자손 중에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바스훌 자손 중에는’ 주욱 이름이 나오는데,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43절. ‘느보 자손 중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그래서 에스라가 와서 율법을 가르치기 전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것부터 먼저 척결할 것부터 척결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 다음이고, 자를 것을 자르고, 끊을 것을 끊고, 분리할 것을 분리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교육이 되는 것이지, 이래 가지고 교육이 안되거든요. 이래가지고는. 그래 이런 엄청난 일들이 에스라 때 있었다는 거에요. 역시 율법에 익숙한,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 오니까, 이런 변화, 이런 개혁이 일어나는 거죠. 그 요시야때도 율법을 읽으니까, 개혁이 일어나는 것이고, 마르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고, 성경을 읽으니까, 개혁이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 오늘 우리도 개혁을 다른 데서 찾으면 안되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읽으면요, 교회가 얼마나 잘못된 게 보이니까, 개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2002년도 10월달, 10월 마지막 주간 종교개혁 주일에, 2002년도, 2004년도 두 번 설교한 적이 있는데, 우리 한국 교회에 많은 교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제목을 그리 정하고 우리 한국 교회에 뭐가 얼마나 잘못되었느냐. 72가지로 제가 지적을 해놨습니다. 한두가지만 잘못 되도 치명적일텐데, 교회가 잘못된 걸, 72가지나 내가 지적을 해 놨습니다.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 얹어 놨으니까, 우리 목사님들, 전도사님들 가서 읽어보세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거야. 그런데 고쳐질 기미가 없어요. 왜 안고쳐지느냐. 목회자들이라던가, 성도들이라던가, 교회 지도자, 신학자들이 성경을 읽으면, 이게 잘못된 게 아 맞다. 잘못됐다. 노목사 말이 맞다 하면서, 개혁이 일어날텐데, 성경을 안읽거든요. 맨날 무슨 그래가지고 긍정의 힘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긍정이라고 계속 그러니까, 자긍하는 거에요. 교만하고 자긍하고, 잘했다고 전부다. 이래가지고는 회개가 안되요. 개혁도 안되고 회개도 안되요. 회복도 안되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살아 숨쉬는 성경 말씀을 읽어서 그 빛에 비추면 다 드러날 거 아니에요. 영적으로 종합 진찰이 나올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요, 뭐 굉장할 걸 해야 교회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안할 짓만 안해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안할 짓만 안해도. 너무 우리가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거에요. 엉뚱한 짓을.
제가 전에 있던 밀양의 무안교회에 있을 때에 10년 있다가 나왔는데, 시골교회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을 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사임을 하고 고별 설교를 할 때, 제가 이 교회에 와서 무얼 해가지고 교회 성장한 게 아니라, 해서는 안될 짓만 하나 하나 없애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더냐. 그런 얘기하고 왔어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요, 안할 짓만 안해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힘써 쓸데 없는 짓을 많이 하는 거에요. 힘쓰고 돈을 써가지고, 해서는 안될 짓을 많이 한다는 거에요.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에 너무 많이 들어왔어. 그래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해도 안통합니다. 안통하는데, 여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저와 함께 공부를 한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보면, 없앨 게 너무 많다는 거야. 싹 한번 대청소를 해야 돼. 쓸 데 없는 걸 없애버리고 너절한 걸. 그리고 좀 여러분, 파워 힘이란 것은요, 단순한 데서 나오는 거야. 너무 교회가 어지럽고 복잡해. 뭐가 되는지 뭐가 안되는지 아무도 몰라. 정신없이 그저.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래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죄악대로 우리를 처지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믿어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우리가 헛된 것을 좇아서 방황할 때도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셔서, 주여, 길이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사오니, 우리가 또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또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여 갈등하고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실한 증인들, 선한 목자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구약 성경의 남아 있는 부분들을 우리가 이기적으로 보던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이제는 하나님이 소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애타하시고 또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속에 간사한 것이 숨어있나 보옵시고, 우리 영혼을 정직하게 하여 주옵시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다시는 우리가 양식 아닌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는 우를 범치 않게 하여주시고, 참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에 우리 남은 삶을 헌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예, 이제는 우리가 에스라서 제2부. 에스라서의 뒷부분인데 7장부터 그 뒷부분까지를 이제 살펴보게 됩니다. 우리가 1부에는 제 1차 귀환의 관련된 것이고, 2부에는 제2차 귀환, 다시 말하면, 에스라가 인솔해 왔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주축이 되어가지고, 귀환해 와서 성전기공식을 했는데, 얼마 있다가 중단되었고, 중단되어서 15년 있는 중에 학개, 스가랴 같은 예언자가 나타나서, 책망하고 격려하고 하는 가운데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서 완공된 이야기. 거기까지는 우리가 6장에서 본 것이고요, 그 어간에 에스더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정리가 되었죠?
7장에 가면 ‘이 일 후’, 이 일 후라는 말이 1차 귀환으로부터 근 79년, 한 80년 가까이 세월이 한참 흐른 후입니다. 1차 귀환은 536년에 이루어졌고요, 2차 귀환은 457년에서 458년 그 어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도 계산하면 거의 한 79년인가 80년 정도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 일 후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 이 아닥사스다라는 이름은 영어로 기록하는데, 전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아르타크세스크세스인데, 할아버지들이 음역을 할 때, 아르타크세르크세스라는 말이 할아버지들은 전혀 귀에 안들리는 거에요. 그래서 아닥사스다 이렇게 한 거야. 우리 한국 사람들만 아닥사스다 그러지, 아무도 아닥사스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름들을 빨리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말하는 이름으로 고쳐야되는데, 그 참 힘듭니다. 한번 이렇게 입에 딱 고정이 되며, 아닥사스다 해놓은 이름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그러면 딴 사람인 줄 알고 헷갈리는 거야. 뭐 아무 것도 모를 때는 헷갈릴 것도 없죠. 이것도 저것도 다 모르니까.
이 아닥사스다 1세 롱기마누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위에 있을 때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에스라가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문학이 있죠. 자기 이야기를 쓰면서 마치 제3자가 보는 안목으로 써나가는데, 3인칭 작가시점으로 그렇게 쓰는 거죠.
자, 여기 보세요. 이 에스라가 사실은 에스라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건데, 굉장히 거창하게 소개하죠? 자기 할아버지 16대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다. 이렇게 자기 소개를 굉장히 신경을 쓴 걸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자기 소개를 거창하게 하느냐? 1차 귀환해 온 사람들은 상당히 고생을 많이 했죠. 맨땅에 와가지고, 황무지에 와가지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거기 성전 짓는데, 얼마나 어렵싸리 이렇게 다 짓고, 근데 늦게사 79년이나 지나서 뭐 하나 나타나가지고, ‘내가 왔다.’ 그래봐. ‘너 뭐야? 너 어서 굴러온 개똥이야? 이거. 흥.’ 이런 식으로 무시할 수가 있는 소지가 있는 거죠. 그래서 자기 신분을 정확하게 밝히는 거에요. 여러분, 어디 가서 자기에 대한 정보를 쓸 데는요, 정확하게 써야 되요. 자기 소개를 아주 정확하게, 딱부러지게 해야 할텐데, 어정쩡하게 해가지고 나중에 섭섭해하고 그러면 곤란하죠.
여기 등록할 때, 카드를 쓰시오 이렇게 하는데, 어떤 사람 보면 아주 성의 없이 써요. 부산에서. 해가지고 이름 덜렁 써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또 뭐 저기 인터넷으로 접수했는데, 또 쓰라한다고 틸틸하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으로는 단체도 10명이 와도 한사람 이름으로 등록을 해놓고, 어떤 사람들은 신청자 다르고, 입금자 다르고, 참가자가 다르고 해가지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요, 누가 왔었는지 실제로 알지 못해가지고 사람을 찾지 못해서 애를 먹는 거에요. 지난번에 한번 교통사고 난 적이 있었는데, 그래가지고 찾지 못하면 엉망이 되죠. 여러분, 어디가서 여인숙이나 여관방에 하룻밤 자도 숙박계를 정확하게 쓰고, 그 다음에 화재가 나가지고 사람이 어떻게 되었다 할때, 어떻게 수습할 거에요? 여기와서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성실히 듣는데, 종이 한 장 쓰라는데, 하룻밤도 아니고 나흘밤이나 자면서 그걸 갖다 쓰기를 싫어서 무성의하게 어떤 사람은 글자도 거지같이 써가지고,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해가지고, 꼭 지렁이가 술 먹고 기어간 것처럼 해가지고.
여러분, 일반 용어는 앞뒤 말을 이으면 말을 이어갈 수 있는데, 어줍잖게 라도 맞출 수 있는데, 고유명사는 전혀 안됩니다. 고유명사와 숫자는 정자로 쓰지 않으면 알아보지를 못해요. 자기만 알지, 딴 사람은 모르는 거라. 그래서 그런 자기 신상정보를 쓸 때는 글자를 흘려 써도 안되고, 정성을 다해서 또박또박 한자 한자 써야지, 그렇게. 제가 한번 달라고 해서 넘겨보거든요. 아주 정말 그 속이 상할 정도로 그렇게 무성의하게 쓴 사람들이 많아. 어디가서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 거 하나라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되다는 거야. 그런 거 하나까지 어설프게 그렇게 그런 습관 가지고 있으면 안되요. 그리고 거기 뭐 글자를 흘려쓰지 마시고, 정자로 쓰세요. 그런 말까지 써놨는데도 불구하고. 자 여기 보세요. 우리가 여기와서 성경에 대한 지식 몇가지 얻어가면 뭘하겠다는 거에요? 그런 삶의 자세, 그런 삶의 어떤 자세, 범사에 크고 작은 일에 임하는 자세가 성실해야 되고, 그런 것이 더 중요한 거야. 여러분, 어디 가서 이력서를 쓰면 그리 쓰겠어요? 밥을 벌어 먹기 위해서 이력서를 쓸 때는 정성을 다해서 쓰고, 하나님 말씀을 배운다는 자세가 그렇게 무성의하게. 각성을 해야 되요.
한번은 집회 때마다 한번 이렇게 하고, 너무 속이 상해서 이따금 그런 얘길 했는데, 한번은 집회를 마치고 세월이 지났는데, 두어 주간 지났는데, 밀양에 있을 때 부부가 밀양까지 찾아왔더라고요. ‘어째서 왔습니까?’ 했더니, 그 집회 도중에 카드 쓴 것을 가지고 질책을 하시는데, 너무 충격을 받고 너무 마음에 찔려서 자기가 사무실에 가서 자기 카드를 돌려받아가지고, 새로 정성을 다해서 쓰고 드리고 왔어도 너무 마음이 양심이 괴로워서, 그렇게 무성의했던 걸갖다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앞으로 자기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겠다 그러면서 찾아온 분이 있어요. 자기는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이미 다 돌아가셔서 참, 어디 지도도 받지 못하고 컸는데, 그 부부가 와서 저를 부모님처럼 평생을 그렇게 모시겠다 그리 찾아왔더라고. 지금 저 원주에 가서 살고 계시는데, 자기에게 기분이야 나쁠 지 몰라도 참,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따끔한 질책을 해준 것을 평생에 잊지 않겠다고. 그런 분도 있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작은 일에 그런 성실을 다하는 그런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이 에스라가 자기 소개를 할 때, 아주 완전히 자기 족보를 딱 챙겨서 이런 사람이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는 거에요. 그래야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하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이력서를 쓰거나 등록서를 쓰거나 할 때, 자기에 대한 정보를 성의있게 쓰는 그런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6절에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자, 이 짧은 글 속에 굉장히 참 내용을 압축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는데,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다.’ 이런 말도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렵죠? 자기가 율법에 익숙한 학사다 이런 말을 하기 어려운데,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하나님이 또 자기를 도와주시고 있고, 그래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더니.’ 그 왕은 아닥사스다 왕을 말합니다. 당시 세계 전체를 통치하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에스라가 무얼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할 만큼의 그런 권위와 신망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인물이었어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페르시야 황제의 법률 담당 자문위원으로 계셨던 분인데, 그리 있으면 얼마나 뭐 만고강산이죠. 누가 그런 자리를 넘어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무풍지대같은. 그런 기득권을 다 포기하고 귀환공동체에, 다시 말하면 그 바벨론에서 1차 포로되어 와서 성전 공사하고 하는 그런 척박한 곳에 자기 동족, 민족이라고 해가지고 자기는 태어나기를 바벨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뭐 어떤 곳인지, 성경과 역사를 통해 알 뿐이지, 전혀 연고도 없는 곳에 이렇게 찾아온 거야. 자기 자신의 안일만을, 출세만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 군상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까?
‘다 받는 자더니 아닥사스다왕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7년 5월이라.’ 몇사람이 올라왔다는데, 한 1,800명 올라왔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만 4개월 걸린 거죠? 정월 초하루에 출발해서 오월 초하루에 도착했으니까, 만 4개월 걸려온 길이야. 그러니까 그 자기가 가졌던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리고 또 와서 무슨 자리가 보장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자기를 어떻게 맞아줄 지도 알지 못하는 곳에, 단지 그저 자기소개서 하나 써가지고, 자기가 가면 거기서 뭐, 어디 무슨 보금자리 하나 준비된 것도 아니고, 그런 곳에 단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자기가 느끼는 그 사명감을 따라서 이렇게 찾아온 거에요. 이런 대학자, 이런 정말 어른의 삶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교회에도 소개되고 해야 할텐데, 전혀 에스라가 소개가 안되었어. 히브리 민족이 지금까지도 최대의 민족의 대학사로, 랍비 중의 랍비, 최고 랍비를 랍반이라고 해. 히브리인들은 랍반 에스라 하는 이러한 위대한 인물이 전혀 교회에 소개가 안되고 있다는 거야.
‘올라왔으니,’ 10절에 보면, 에스라가 뭐하러 왔느냐.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딴 거 하러 온 거 아닙니다. 뭐 그저 한자리 하러 왔더라. 뭐 살길 찾으러 왔더라. 그런거 아니고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또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이번에 오신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 신학생들, 사역자님들은 딴 거 결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고, 이걸 정리해서 가르치기로 준행하면서, 행하지도 않고 가르치면 안되요. 준행하면서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이런 결심이 정말 결심이죠.
다른 말로 하면 이렇습니다. 1차 귀환에 오셨던 분들, 다시 말하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처음에 왔던 분들은 요즘 말로 하면, 이제 기초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고,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예배당 껍데기 이런 하드웨어, 이런 걸 구축한 거야. 외적인 것. 예배당 건물 지은 것. 건물 지어놓으면 뭐하는 거에요. 그거 갖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건물 지었어도 거기다가 사람들 마음속에 진리,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심어놓지 않으면요, 예배당 지어놓는 것 아무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 옛날에 솔로몬 성전도 다 태워 버렸잖아요. 그래서 예배당만 지어놓으면 목회 성공한 걸로 생각하면 안돼. 거기 사람만 갖다 끌어 채워놓으면 된 게 아닙니다. 예배당 짓고 사람만 꽉 차게 하면 목회 성공했다 그리 할지 몰라도, 재정이 올라갔다고 성공한 게 아니고, 그들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바르게, 하나님 말씀을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제대로 가르쳐서, 그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해야, 비로소 할 일 한거야.
그래서 목회자가 없어도 목회자가 빠져버려도 그들 속에 심어진 말씀을 따라서 충분히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야만, 제대로 일한 거야. 목사 빠져 버리면 우왕좌왕하고 목자없는 양같이, 그건 목회한 게 아닙니다. 그건 아직도 아니야. 제대로 하려면요,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심어줘 가지고, 혼자 아무데 던져놔도. 예배당은 혼자 개척을 하고 예배당을 짓고, 또 다른 사역자가 될 만큼의 사람들을 길러야 그게 일한 것이지, 목회자가 없으면 성도들이 발발 떨고, 막 이래가지고는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가지고는 사역이라 할 수도 없어요. 그런 신자는 그야말로 육신에 속한 자, 젖먹이 밖에 안되는 거야. 목사 없으면 신앙생활 안된다 그러면 젖먹이 밖에 안되는 거야. 우리 교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목사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고, 얼마든지 그저 목사 없이도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아무든지 누구든지 예배 인도할 수 있고, 그게 만인제사장 아닙니까? 만인제사장. 정말 온 성도들이 목사와 같이 그걸 제가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 보면요, 거의 카톨릭 비슷하게 되어 버렸어. 그냥 카톨릭에는 성직자 없으면 교회가 아니죠? 그건 공소야 공소. 그건 기독교라 할 수 없어요 그래가지고는. 적어도 기독교가 제대로 될라면, 교회가 제대로 될라고 그러면, 목회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교회가 움직이게 할수 있는 그 정도로 사람을 키워야 돼. 물론 100% 다 한꺼번에 되긴 어렵지마는 방향은 그렇게 되어 있어야 돼. 목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 정도로 사람을 길러야 돼.
이스라엘 백성이 그게 안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이 있으면 하는 척하고, 사람이 없으면 흐지 부지 되버리고. 이래 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에스라는 하드웨어를 구축해 놓은 위에, 소프트웨어. 즉 사람들 마음 속에 은혜와 진리를 심으려고, 율법을 준행하며 이것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여러분, 딴 걸 결심할 일이 아니라, 어떤 자꾸 무슨 너절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성도들을 괴롭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쳐요. 그래서 그런 고기를 주는 것이나 생선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법으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거야. 이것이 히브리인들 지혜야.
그래서 저는 설교할 때에 평소에 교회 설교할 때에 다 해가지고 그저 성도들 찍소리 말고 순종이나 해라 이런 설교가 아니고, 같이 읽으면서 같이 마음으로 해석하면서, 일부러 질문도 툭툭 던지면서, 생각 없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으로도 응답하게 끊임없이 그저 질문 던지면서, 같이 설교도 같이 해요. 내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말씀을 풀어서 이해해가는. 그러니까 저하고 같이 공부하고 나면요, 거의 다 성경을 알아버립니다. 알게 되는 거에요. 같이 이해되니까. 그 다음은 혼자 가서 읽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거기서 누구를 또 다름 사람을 가르치면 금방 성장하는 거죠. 여기 우리 목사님들도 그리 한번 해봐요. 집에 가서 덜컹 준비 없이 그리하면 안되고, 1년이나 2년이나 성실하게 준비해가지고 한번 창세기부터 계시록 풀코스 하나도 안빼놓고 설교해 보세요. 한번만 하고 나도요, 그야말로 우리 실력이 부쩍 향상되게 되고, 아 딴 거 할 필요가 없구나. 딴 거 할 여지가 없고, 딴 거 할 필요가 없고, 이 66권 말씀과 함께 역사를 가르치면 이게 필요하고 충분한 거야.
괜히 무슨 이런 저런 예화가지고. 예화같은 것 가지고 올 필요 없어요. 저는 1년을 설교하는 중에 예화 같은 것 뭐, 글쎄 한 10개하면 참 기적일 겁니다. 혹시 무슨 예화가 있어도 성경 안에 있는 걸 예화로 가져오지, 무슨 뭐 어디 가서, 하여튼 성도들이 짜증을 내요. 늘 듣던 그 진부한 얘기, 그 예화. 그래서 예수교가 아니고 아예 예화교다. 성경 말씀 온데 간데 없이 순 예화 이런 것만 가지고, 참 한심한 얘기죠. 그래서 성경 말씀을 주욱 하고는 그런 너절한 얘기 할 시간이 없어요. 뭐 이상한 학자들 이야기와 이론을 갖다가 펼쳐가지고 그리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창세기부터 주욱 밀고 나가면, 성도들이 함께 공감하고 하나가 됩니다.
자, 11절.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의 학사인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그리고 이제 오면서 왕이 내린 그 조서까지 다 가져와서, 증빙서류죠. 자기를 자기 신분과 자기가 어떤 사명을 띄고 왔는지 하는 그런 서류까지 다 내놓는 것죠. ‘아닥사스다왕이 내린 조서 초본은 아래와 같다.’
12절입니다.‘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찌어다.’ 사람을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거죠. 누구든지 데려가도 좋다.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좇아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모사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파송을 한다.’ 페르시아 황제와 일곱 모사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인증을 받아가지고 파송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요. ‘왕과 모사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그러니까 페르시아 황제와 그 일곱 모사가 성심으로 드린 은금, 이분들이 헌금까지 다 해가지고 보내는 거에요. ‘가져가고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그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즐거이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그 돈으로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전 단 위에 드리고,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선히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좇아 쓸찌며,’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모금할 수 있는 그런 권한도 허락을 하고, 그 재정을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집행할 수 있는 권한 조차 부여된 거죠.
‘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가져가도 좋다.’ 백지수표 한 장도. 그저 페르시아 황제 왕의 내탕고에서 뭐 꼭 가져가야 되겠다 싶으면 뭐든지 가져가도 좋다. 이 정도로 페르시아 황제가 에스라를 신뢰했다는 거에요. 이런 인물은요, 제가 볼 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에 한 사람 나와요. 딱 한 사람. 옛날 요셉 같은, 요셉이 그 정도죠?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이 의자하나 밖에 없다. 했던 것처럼 완전히 이방 나라 황제에게 신임을 받는 이런 인물이 에스라에요. 그런데 이런 인물이 전혀 교회에 소개가 안되었어. 오늘 여기 자기 소개장 하나만 가지고도, 이 정도로 에스라의 인물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나 곧 나 아닥사스다왕이 강 서편 모든 고지기에게’ 고지기라는 말은 창고지기인데, 거기 창자 하나 더 넣으면 훨씬 수월할텐데, 애들이 목사님, 고지기가 뭐에요?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의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일백 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일백 밧까지, 기름도 일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수 없이 하라.’ 유브라데강 서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에스라가 요구하거든 얼마이하의 금액은 다 신속히 집행을 하도록 하라. 이 정도 또 권한까지 주어진 거에요.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이 말은 만약에 그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았다가는 페르시아 왕과 왕실에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른다. 하는 것까지도 느끼고 있는 것 보면, 그 에스라 느헤미야 때에 페르시아 황제에게 에스라가 성경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벌써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마땅히 해야 될 것은 하지 않았다가는 페르시아 황제에게도 하나님의 화가 임할 수 있겠다 하는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에스라에게 이렇게까지 도와줬던 황제가 아닥사스다 왕이에요. 그 아닥사스다 왕 곁에 이제 이렇게 법률담당 자문위원은 에스라였고, 술맡은 관원장은 느헤미야였거든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어디가도 실력 있기 때문에, 그 다니엘도 실력 있으니까, 느부갓네살 왕을 지도하는 인물이 된 것이고, 요셉도 실력이 있으니까, 바로 왕의 정부를 총책임지는 그런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실력을 길러야 돼. 진짜 실력이 있으면요, 금방 드러납니다. 사람이. 여러분, 왜 나는 이렇게 굉장한 일에 쓰임 받지 못하는가, 왜 나는 알아주지 못하는가. 실력을 열심히 쌓아요. 그리고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진짜 일군은요, 항상 모자랍니다 늘. 가짜 일군은 늘 남아나고, 진짜 일군은요, 준비된 진짜 일군은 늘 모자라요. 젊은 날에 부단히 공부하고. 공부하다 죽는 것도 순교야. 그야말로 머리를 싸매고, 젊은 날에 그냥 한데 이런 저런데 한눈 팔지 말고, 쓸 데 없는데 시간낭비하지 말고, 제가 얘기했죠. 성경과 역사와 과학을 끊임없이 부단히 공부해야 되요. 어느 궤도에 오르게 되면요, 쓰임 받게 되요. 별로 실력은 없으면서, 자꾸 무슨 좋은 자료가 있나 기웃거리고 그러지 말고, 진짜 자기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요. 그래서 한 분야에, 자기가 한 분야를 사명이다 생각하고, 거기 일을 잡으면, 그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서 그 분야는 그 사람이 최고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자기 실력, 자기 일에 정통해야 되요. 자기 일에 잘 못하는 사람을 누가 기용하겠어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자기 맡은 일에 전심전력해서 어떤 경지에까지 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되요. 그 에스라 라던지, 다니엘 같은 분들이 그 정도의 신앙과 지조와 학문과 어떤 영성이 있으니까, 쓰임받는 거죠. 언제든지.
2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였노라.’ 그러니까 제사장들이라던지 이런 성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는다. 이런 말씀 때문에 오늘도 목사들에게 또 미국서도 목사들에게는 세금을 받지 않습니다. 목사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항상 다 결국 남을 위해서 하고 있으니까, 그 자체가 삶이 다 세금인데, 또 다시 세금을 거둘 거 없다 그래서 목사는 세금이 없는 거에요. 여기서 벌써 그때, 2500년전에 에스라가 이를 가르쳤기 때문에 법을 정할 때, 제사장들은 자기 사생활이 없고, 사생활도 공생활이나 마찬가지니까, 그 자체가 이미 다 삶이 세금으로 바쳐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세금 받지 않는게 옳다. 이런 걸 가르쳤기 때문에 이 아닥사스다 왕도 그런 조서를 내린 거에요.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인사권까지도 부여됩니다. 사법권이 다 부여되고, 인사권이 부여되고, 인사행정권이 부여된 거죠.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수도 있다.’ 그러니까 막강한 권한이 에스라에게 주어진거죠?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이 에스라가 이제 처음에는 자기를 3인칭으로 썼다가 어조가 바뀌면서 내가 이렇게 나오죠? 갑자기 1인칭 작가시점으로 지금 바뀌고 있는 거에요.
8장에는 ‘아닥사스다 왕이 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주욱 명단들, 팀들 규모를 주욱 하고 있고요, 8장 15절에 보면,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일 동안’ 유하면서 살펴보니까, 그 모집을 했는데 레위 자손들이 별로 안보여요. 그 레위인들을 좀더 챙기고, 거기 18절 보면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저희가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하면서 자주 이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사’ 그런 말이 계속 나오죠. 그 말이 에스라야, 에스라. 에스라라는 말은 에제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돕는다 하는 뜻인데, 에즈라 하는 자기 이름자체가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 그런 그 이름을 갖고 있어가지고, 늘 자기는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시고 있다 이렇게 믿고 있고, 그 믿음대로 항상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입어서 이런 일도 이루어지고, 이런 일도 이루어지고, 왕의 목전에 은총을 입기도 하고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늘 갖고 있어요.
이 에스라를 제가 존경하다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사’ 그런 말이 에스라에게 배워가지고 아마 자주 그런 말을 쓰게 되요. 이분에게 제가 너무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에스라가 하는 걸 우리가 다 흉내도 내지 못하지만, 정말 그 일을 내가 해야 되겠다. 하나님 말씀을, 율법을 연구하며 준행하며 가르치기로 결심하는, 제가 딴 거 하는 거 아니잖아요. 여기 아침부터 와봐도 우리가 맨날 그저 그렇게 찬양하고 무슨 기도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그런데 시간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가서 교회에서 너무 사람들 피곤하게 하지 말고, 조용조용히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쳐봐요. 준행하며 연구하며 가르치고, 그래서 사람이 살면서 조용히 변하고, 그래서 경건한 그런 모습이 보여야 돼.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요, 전혀 경건한 모습이 아니고, 신비하고 이상하고 시끄럽고 무질서하고 이런 식으로 비치니까, 품위가 떨어져 버리면서 교회가 권위까지 상실되는 거야. 품위를 잃어버리면 권위도 떨어진다는 거에요. 하여튼 기도도 조용한, 경건하고 조용하고 진중한 그런 모습을 보여야 될텐데, 그동안 너무 품위 없는 그런 모습으로 비추어져서 사람들이 우리를 길에 버리운 소금처럼, 맛을 잃은 소금처럼 온갖 사람들에게 짓밟고 다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모습으로 전락해버렸어.
21절. ‘때에 내가 아하와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페르시아 황제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참 솔직한 얘기죠. 앞을 봐요. 그 황제를 지도할 때, 황제에게다가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도와주시고,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가르쳐놓고, 저 근데 우리 호위병을 붙여 주십시오. 너희 하나님이 잘 지켜주신다면서 왜. 그러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정말 자기가 가르쳤던 대로 따로 무슨 호위병이나 보병이나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럽게 여겨져서 금식하고 기도하고 길에서 정말 생명과 소유물이 손실이 없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아하와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이렇게 했다는 거에요. 이거 얼마나 투명한지 사람이. 여기 앉아서도 속이 훤히 다 보여요. 투명인간, 크리스탈 인간처럼 훤히 보이죠?
그래서 가져오는 그 돈이 막강하거든요. 황제가 페르시아 황제가 그 거금을 황실에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질까 싶어서 페르시아 황제가 드렸으면 아마 거금을 가져왔을 겁니다. 그 가져오다가 중간에서 누가 돈 냄새를 맡고 떼강도를 날아들면 큰 일 나잖아요. 그러니 그런 것을 놓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왔는데, 다행히 하나님께서 도우셔가지고, 그 먼길을 오는데, 4개월 만 4개월 걸린 길이면, 얼마나 먼 길이에요. 거기 별의 별 잡놈들이 다 냄새 맡고 끼어들텐데, 한번도 위협받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거에요. 여러분, 그 에스라의 신앙과 그 참 지조와 그런 의연한 결단과 모든 자기에게 있는 기득권을 다 포기할 수 있는 어떤 그런 인품과 온갖 걸 봐도, 신구약을 통틀어서 이런 에스라와 같은 인물, 느헤미야와 같은 인물이요, 흔치 않다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교회에 전혀 소개가 안되었어.
31절. ‘정월 12일에 우리가 아하와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맨날 그러죠? 늘상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사.’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 애국가하고 너무 똑같죠. 세계의 애국가 중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런게 잘 없어요. 우리나라 애국가가 하나님 마음에 들어가지고, 참 못됐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줄 마음이 있는 거에요.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기서 3일을 유하고 제 4일에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은과 금과 기명을 달아서 제사장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의 손에 붙이니,’ 그러니까 페르시아에서 출고할 때 문서에 금이 얼마, 뭐 얼마, 주욱 장부를 해가지고 왔거든요. 그래서 인계할 때 정말 또 저울에 다 달아가지고 정확하게 이렇게 우리가 가져왔고, 이렇게 다 인계한다. 이런 것까지도 투명하게 깨끗하게 하는 거야. 그래서 이 에스라의 삶을 우리가 보면, 정말 참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교회에서도 이런 걸 가르쳐야 돼. 신학교에서도 이런 에스라서 같은 걸 잘 가르쳐가지고, 목회자들이 딴 짓하지 말고, 비본질적인 것에 자꾸 헛되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런 걸 해야 돼.
35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수송아지가 열 둘이요, 또 수양이 아흔 여섯이요, 어린 양이 일흔 일곱이요, 또 속죄제의 수염소가 열 둘이니, 모두 여호와께 드린 번제물이라. 무리가 또 왕의 조서를 왕의 관원과 강 서편 총독들에게 부치매, 저희가 백성과 하나님의 전을 도왔느니라’ 그래서 아주 참 법률이나 행정이나 신앙이나 학술이나 이런 모든 면에서 그 에스라는 그야말로 흠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9장이 또 중요한 대목인데,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놀랍게도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대충 정리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뭔가 낌새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고 주춤 주춤하고 사람들이 그리하더니, 이게 뭘까 했는데, 누가 와서 한마디 하는 거에요.
들어보니까, 아이고 1차 귀환에서 돌아온 지 한 80년째 되는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이방 사람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어. 그런데 전부 방백들, 두령들, 제사장들까지, 하여튼 그 지도층들이 그런 일들에 앞장을 섰다는 거야. 이방여자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은 거야. 에스라가 이 일을 듣고, 속옷을 찢고 겉옷을 찢고, 머리털하고 자기 수염을 다 쥐어뜯으면서 아침부터 그리 울고 앉았는데 해가 질때까지, 한데 바람을 맞으면서 그때가 12월인데 눈비 막 내리고 비바람 몰아치는 예루살렘 산꼭대기, 해발 800m 정상에 그 추운데 눈비를 맞으면서 옷을 다 찢어, 머리털하고 수염을 쥐어뜯으면서 통한이 울고 앉아있는 거야. 에스라가. ‘우리가 옛적에 솔로몬이 바로 이런 짓하다가 타락해가지고 나라가 완전히 망해가지고 바벨론 포로 생활하고 왔으면 되었지, 또 어떻게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얼마나 통한히 여기는지.
그래서 4절.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그러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있었어.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합니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고 뭐 에스라가 얼마나 참,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 기도는 여러분이 집에서 읽으면 되시고요.
10장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그래도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런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거죠. 에스라가 ‘야, 참 내 혼자 안일하게 페르시아에 있었으면, 어찌 될 뻔 했겠는가. 내가 그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 버리고 와서 보니까, 내가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다 맹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가지고 에스라가 너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그 추운데 얼어서 몸이 굳어가니까, 젊은 사람들이 막 주물러가지고, 몸을 풀어가지고 ‘일어나서 힘써 주장하시면, 우리가 돕겠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하는 놈들이 또 있어요.
10장 15절 보세요.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이런 짓을 해놓고도 또 그렇게 잘했다고, 에스라의 그 개혁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나오는 거야. 그 반대하는 편에 돕는 사람이 있고 말이야. 그렇지만 에스라가 그걸 그 누가 반대한다고 가만히 있겠어요? 그 성품을 보세요. 성품을.
16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정월 초하루에’ 한 3개월간 정밀조사해가지고 명단을 작성합니다. 이방여자를 취한 지도층 사람들 다 뺐어요.
18절 이하죠.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 이 사람은 죽었죠? 이미 뭐 죽었지만 역시 지난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이방여자를 취했다고 들었었죠? 그때부터 시작된 거에요. 여러분, 우리 지도자가 무얼 잘못하면요, 줄줄이 따라가는 거에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은 그래. 하나님은 그게 혼자 사는 게 좋지 못하니까, 하나님 용서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뒤에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하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에요. 마귀가 가만히 안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너도 나도 전부 이렇게 되니까, 걷잡을 수 없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크게 문제 안삼고 넘어가는 거야, 하나님이야 그리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백성들이야 백성들. 백성들 그 밑의 아랫사람들이 할 때,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스룹바벨도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제사장이 그리하는데, 뭘 일반 방백들 뭐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걸 막을 수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된 겁니다.
그래서 그 아래에 주욱 나오는데,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할 때, 요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이렇게 해야 하는데, 대제사장이라서 그런지 이름을 빼줍니다. 아는 사람은 알게, 애들은 모르게. 요사닥의 아들과 그러면서 넘어가는 거에요.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애들은 모르는 것이고, 나머지는 실명을 다 써버립니다 그대로. ‘그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저희가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 아내를 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를 인하여 수양 하나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하림 자손 중에는 마아세야와 엘리야와 스마야와 여히엘과 웃시야요, 바스훌 자손 중에는’ 주욱 이름이 나오는데, ‘살룸과 아마랴와 요셉이요’ 43절. ‘느보 자손 중 여이엘과 맛디디야와 사밧과 스비내와 잇도와 요엘과 브나야더라.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취한 자라. 그 중에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그래서 에스라가 와서 율법을 가르치기 전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것부터 먼저 척결할 것부터 척결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 다음이고, 자를 것을 자르고, 끊을 것을 끊고, 분리할 것을 분리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교육이 되는 것이지, 이래 가지고 교육이 안되거든요. 이래가지고는. 그래 이런 엄청난 일들이 에스라 때 있었다는 거에요. 역시 율법에 익숙한,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 오니까, 이런 변화, 이런 개혁이 일어나는 거죠. 그 요시야때도 율법을 읽으니까, 개혁이 일어나는 것이고, 마르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고, 성경을 읽으니까, 개혁이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 오늘 우리도 개혁을 다른 데서 찾으면 안되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제대로 읽으면요, 교회가 얼마나 잘못된 게 보이니까, 개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내가 2002년도 10월달, 10월 마지막 주간 종교개혁 주일에, 2002년도, 2004년도 두 번 설교한 적이 있는데, 우리 한국 교회에 많은 교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제목을 그리 정하고 우리 한국 교회에 뭐가 얼마나 잘못되었느냐. 72가지로 제가 지적을 해놨습니다. 한두가지만 잘못 되도 치명적일텐데, 교회가 잘못된 걸, 72가지나 내가 지적을 해 놨습니다.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 얹어 놨으니까, 우리 목사님들, 전도사님들 가서 읽어보세요.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거야. 그런데 고쳐질 기미가 없어요. 왜 안고쳐지느냐. 목회자들이라던가, 성도들이라던가, 교회 지도자, 신학자들이 성경을 읽으면, 이게 잘못된 게 아 맞다. 잘못됐다. 노목사 말이 맞다 하면서, 개혁이 일어날텐데, 성경을 안읽거든요. 맨날 무슨 그래가지고 긍정의 힘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긍정이라고 계속 그러니까, 자긍하는 거에요. 교만하고 자긍하고, 잘했다고 전부다. 이래가지고는 회개가 안되요. 개혁도 안되고 회개도 안되요. 회복도 안되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살아 숨쉬는 성경 말씀을 읽어서 그 빛에 비추면 다 드러날 거 아니에요. 영적으로 종합 진찰이 나올거 아니에요. 지금 우리가요, 뭐 굉장할 걸 해야 교회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안할 짓만 안해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안할 짓만 안해도. 너무 우리가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거에요. 엉뚱한 짓을.
제가 전에 있던 밀양의 무안교회에 있을 때에 10년 있다가 나왔는데, 시골교회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을 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사임을 하고 고별 설교를 할 때, 제가 이 교회에 와서 무얼 해가지고 교회 성장한 게 아니라, 해서는 안될 짓만 하나 하나 없애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더냐. 그런 얘기하고 왔어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도요, 안할 짓만 안해도 교회가 성장합니다. 힘써 쓸데 없는 짓을 많이 하는 거에요. 힘쓰고 돈을 써가지고, 해서는 안될 짓을 많이 한다는 거에요.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에 너무 많이 들어왔어. 그래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해도 안통합니다. 안통하는데, 여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저와 함께 공부를 한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보면, 없앨 게 너무 많다는 거야. 싹 한번 대청소를 해야 돼. 쓸 데 없는 걸 없애버리고 너절한 걸. 그리고 좀 여러분, 파워 힘이란 것은요, 단순한 데서 나오는 거야. 너무 교회가 어지럽고 복잡해. 뭐가 되는지 뭐가 안되는지 아무도 몰라. 정신없이 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