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소금창고의 오 헨리 작 함형식 이자순 각색 연출의 크리스마스 선물
공연명 크리스마스 선물
공연단체 극단 소금창고
작가 오 헨리
각색 연출 함형식 이자순
공연기간 2014년 12월 4일~28일
공연장소 압구정동 바라아트홀
관람일시 12월 27일 오후 7시
압구정동 바라아트홀에서 극단 소금창고의 오 헨리 작. 함형식·이자순 각색·연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오 헨리의 <경관과 찬송가><20년 후><5달러의 행복>을 차례로 공연한다.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 1862년 10월 11일 – 1910년 6월 5일)는 미국의 작가로, 오 헨리(O. Henry, 1862년 10월 11일 – 1910년 6월 5일)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전이 있는 짧은 소설을 주로 썼다. 또한 모파상의 영향을 받아 풍자·애수에 찬 화술로 평범한 미국인의 생활을 그렸다.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1862년 10월 11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스보로에서 알게몬 시드니 포터와 메리 제인 버지니아 스와인 포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살 무렵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가족은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18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의 조수로 들어가 1881년 약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1882년 포터는 제임스 홀을 따라 텍사스로 이주하여 그의 아들 리차드 홀의 목장에서 일하였다. 그 곳에서 포터는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의 음악을 배웠다. 1884년 오스틴으로 이사하였다. 거기서 포터는 제도사, 은행원, 기자 등의 직업을 전전했으며 습작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포터는 오스틴에서 극단에 들어가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였다. 1887년 17세였던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하였다. 1887년 리차드 홀이 지주협의회의 의장이 되자 그의 권유로 텍사스 제네럴 랜드 오피스의 제도사로 근무하였다. 1888년 아들이 태어났으나 태어나자 마자 사망하였다. 1889년 딸 마가렛 워즈 포터가 태어났다. 리차드 홀이 1890년 낙선하자 포터는 은행원, 기자등으로 일하였으며 첫 작품 <구르는 돌(The Rolling Stones>)을 발표하였으나 1500부가 팔리는데 그쳤다.
포터 가족은 1895년 휴스턴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우체국의 고정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스틴에서 재직하였던 은행에서 포터가 재직 중 계산 실수를 범했다는 이유로 고소하여 구금되었다. 포터는 장인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불구속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장인의 집에 의탁하였다. 첫 재판은 1896년 7월 7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포터는 처음에는 뉴올리언스로 이후 온두라스로 도피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바나나 공화국을 빗댄 <양배추와 왕>을 썼다.
포터는 1897년 아내 아솔이 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전갈을 받고 오스틴으로 돌아왔다. 아솔은 1897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포터는 체포되어 1898년 2월 횡령죄로 5년의 징역을 언도받고 5월 25일 오하이오 교도소에 수번 30664번으로 수감되었다. 포터는 약사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복역 중에 야간 약국 담당으로 일하였다. 복역 중에 포터는 여러 필명으로 단편 소설을 출간하였다.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발표한<휘파람 부는 딕의 크리스마스 스타킹>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그의 이름 역시 오 헨리로 널리 알려졌다.
1901년 출감한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로 이사한 장인을 찾아가 11살이 된 딸 마가렛을 만났다. 장인은 마가렛에게 포터가 사업때문에 멀리 여행갔다고 말하여 두고 있었다.
1902년 <뉴욕 월드 썬데이 매거진>이 그의 글을 수록하길 하자 포터는 뉴욕으로 이사하였다. 포터는 이 잡지에 381편의 단편의 실었다. 1907년 포터는 사라 린드시 콜맨과 재혼하였다.
1908년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1909년에 사라가 떠나간 뒤 더욱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10년 6월 5일 사망하였다. 사망 후 뉴욕 시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쉬빌에 묻혔다. 1927년 그의 딸 마가렛 역시 사망하여 아버지의 옆에 묻혔다.
오 헨리의 작품은 반전 있는 결말로 유명하여 "오 헨리 식 결말"이란 이름이 붙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현자(賢者)의 선물(The Gift of the Magi)> <붉은 추장의 몸값(The Ransom of Red Chief)> <도시의 패배(The Defeat of the City)> <경찰관과 찬송가(The Cop and the Anthem)> <소생한 개심(改心)(A Retrieved Reformation)> <20년 후(After Twenty Years)>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
무대는 동화나라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 만들었다. 각종 광고판으로 건물형태를 조성하고, 무너진 벽돌건물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라든가, 자유의 여신상 광고물이 뉴욕을 은연중 나타내고, 닭들의 의인화로 남녀노소 누구나 연극을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
<경관과 찬송가>에서는 노숙자 머피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따뜻한 교도소에서 겨울을 보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먹고 돈 없다고 하니 식당주인은 경찰을 부르기는커녕 식당 밖으로 내쫓아버린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고, 경찰에게 자신의 짓이라 해도 경찰은 믿어주지 않는다. 이번에는 길가는 신사의 우산을 빼앗아 자신의 우산이라 우겨도, 그 신사는 자기도 우연히 주운 우산이라며 주고 도망치듯 가버린다. 머피는 우산을 신사를 향해 집어던진다. 뜻을 이루지 못한 노숙자 머피는 어느 교회 앞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문득 잘못을 뉘우치고 떳떳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맹세한다. 그때 경찰관이 나타나 엉덩이에 우산이 꽂힌 채 다가와 네 놈 짓이라며 머피를 잡아가버린다.
<20년 후>에서는 뉴욕의 밤거리를 순찰하던 경찰이 어느 건물 앞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춘다. 남자는 20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서부로 가면서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서로 연락이 끊기더라도 이곳에서 20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경찰이 다녀간 후,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키 큰 사나이가 있었고 남자는 그를 친구로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는 그 사람이 친구가 아님을 발견하고 놀란다. 키 큰 사나이는 그에게 친구의 편지를 전해 주는데, 편지에는 아까 다녀간 경찰이 바로 친구였으며, 지명 수배를 받는 범죄자가 된 친구를 차마 체포할 수 없어 다른 경찰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수갑을 찬 손으로 읽는 편지의 내용은 “보브, 나는 약속한 시간에 그 장소에 갔었네. 자네가 성냥을 켜서 담배에 불을 붙일 때 나는 자네가 시카고에서 지명수배가 된 사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하지만 아무래도 내 손으로 자네를 체포할 수는 없더군. 그래서 한바퀴 순찰을 돌고 와서 다른 형사에게 내 대신 부탁을 한 것이라네. 지미로부터”
<5달러의 행복>에서는 이혼법정에 선 부부가 5달러로 다시 합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가한 시골법정이라는 설정에서부터 닭이 의인화되어 등장하고,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가 하면, 다시 합쳐지는 부부의 반전 장면이 관객의 공감과 함께 갈채를 받는다.
이혜연, 정현기, 이동환, 김찬미, 손인수, 정철현, 최민하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연이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대디자인 이상수, 조명디자인 정혁준, 암향 이미영, 안무 라키아, 진행 박준영 김동철 등 스텝 모두의 열정이 합하여 극단 소금창고의 오 헨리 작, 함형식 이자순 각색 연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연말에 어울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봐도 좋을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12월 27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