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신록은 꽃보다도 아름답다. 산과 들은 온통 새로 피어나는 이제 150일이 된 우리 손주 포동포동한 손 같이 귀여운 새 잎들로 긴긴 겨울 동안의 추위에 떨던 앙상한 모습이 새 옷으로 단장을 하는 꾸밈의 계절이다. 오래전부터 신문에 나온 기사를 스크랩을 해놓고 한번 가려고 벼르던 끝에 4월20일 정기산행을 추읍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10시30분에 양평을 지나서 다음역인 원덕역에 도착하니 몇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덕역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들판 가운데 외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 집도 없고 유동인구가 없으니 가게는 말할 것도 없는 곳이다. 어떻게 이런 시골에 역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이용하는 사람이 하루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나라경제를 걱정해보았다. 10시30분 정시에 도착한 나를 마지막으로 5명이 출발을 하여 역에서 나와 뚝방 길로 가지를 않고 왼 편으로 들판을 가로질러 가니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있고 유기농재배라는 군에서 인정한 표지판을 세워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걸으면서 나 혼자, 참으로 유기농을 하는 것일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해보았다. 비닐하우스가 있는 들판을 지나니 제법 큰 강이 나온다. 바로 흑천이라는 강이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까지 긴 가뭄이 들어서 소양강댐도 수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이 강에는 수량이 넉넉하게 흘러서 보는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시멘트 다리를 지나니 두레마을이 나타난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띄엄띄엄 보이는 전원주택 몇 채가 있는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마을입구에 서있는 등산 안내도를 보니 세 코스가 있는데 우리가 가는 길은 제1코스로 모든 코스가 1시간30분 걸린다고 적혀 있고, 막상 산으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가 제대로 없어서 처음 오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사람도 귀하여 물을 곳도 없어서 멈칫거리고 있으니 마침 동네 아주머니가 지나가기에 멀리서 아주머니를 불러서 물러보니 우리가 가는 길로 가면 된다면서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오히려 부담을 주었다. 동네에 들어서니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두 갈래 길이 나타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산 쪽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마을을 지나서 넓은 길이 끝나고 산으로 접어드는 곳에 무덤이 하나 외롭게 마을을 지키듯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옆에는 계곡물을 관리하는 사방공사를 하여 산속에 콩크리트로 벽을 쌓은 것이 어딘지 어색함을 느끼게 하였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정총무가 별로 쓸데도 없이 가지고 온 2kg이 되는 텐트는 낙엽을 긁어서 묻어두고 산기슭을 따라 난 유일한 작은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였다. 제1코스는 북서 능선으로 오르는 코스로 대체로 길이 완만하고 푹신한 흙길이라서 걷기가 편하고 좋았다. 1시간 쯤 올라가니 산속에 제법 잘 정돈되고 잔디가 많은 무덤이 하나 있다. 비석에 집사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아서는 살아서 믿음 생활을 잘 하신 분의 무덤인 것 같았다. 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바람의 숲‘이라고 쓴 이정표가 서있고 의자와 누울 수 있는 휘어진 기구가 몇 개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군에서 제법 신경을 썼구나 하는 짐작이 되었다.
이정표에는
바람은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습니다.
바람은 항상 존재하고 공기의 움직임을 크게 나타내어서 바람이라고 합니다.
더운 여름날 우리의 얼굴과 몸을 시원하게 하는 곳입니다. 라고 쓴 글귀가 힘든 산행 길에 새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만남의 숲’이 나온다. 그 이정표에 적힌 글은 숲의 효능에 대한 것이다.
숲의 효능.
가끔씩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우리는 이럴 때 숲을 찾아 갑니다.
우리가 숲을 해치지 않는다면 숲은 언제나 맑고 푸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숲에서 마시는 공기는 산소가 풍부하고 ’피톤치드‘라는 천연식물향이 있어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라고 적혀있다.
숲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선물을 준다. 심지어 생명을 살리는 역할도 하는 것이 숲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힘들여 산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도 건강하여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의 숲에 도착하였을 즈음 윤일성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금 원덕역에 내려서 오는 중이라는 것이다. 정총무가 안내를 해주고 김재경 선생님은 만남의 숲에서 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며 쉬기로 하고, 우리는 정상을 향하여 몇 미터를 더 가니 꼭대기에 정자가 비오는 산길을 외롭게 지키고 있고, 고개를 넘어선 능선에는 바로 ‘책읽는 숲’이 있다. 약 30~40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넓은 평상과 군데군데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여름에 책을 읽으면서 그늘에서 쉬기에 최적이라고 할만큼 잘 꾸며져 있다. 거기서부터는 급경사길이다. 올려다보니 걱정이 된다. 비는 조금씩 계속 내리고, 길이 미끄러워서 더 힘들 것 같았다. 남은 거리는 1km지만 시간은 얼마가 걸릴지 알 수가 없다. 4명이 천천히 지그자그로 올라가는데 과연 염려했던 것처럼 순전히 흙길에다가 비가 오니 미끄럽고 물렁한 급경사의 산길을 걷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들었다. 몇 배로 힘이 더 드는 것 같았다. 옆에는 줄을 묶어서 잡을 수 있게 해놓았지만 군데군데 줄이 없는 곳도 있고, 있어도 기둥이 흔들려서 잡으니 뿌리가 뽑힐 정도로 부실하였고 중간중간에는 줄이 가늘어서 잡아도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5년 전에 완전한 빙판이 진 태백산을 올라갈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빙판과 흙 길이라는 차이 밖에 없는 것이다. 힘들게 정상에 도착하였다. 급경사의 1km를 꼭 한 시간 걸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머물면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역시 정상에 올라온 기분이 들었고 또 하나를 해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남한강 줄기와 강을 끼고 자리 잡은 건물과 시설들, 수많은 군상들의 모습이 가소롭게 보였다.
산 중턱에 핀 벚꽃
건너편 높이 솟은 산위에 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설이 보이는 곳이 바로 용문산이다. 하여튼 전망은 너무나 좋고, 가슴이 탁 트이면서 온 몸이 힐링이 되는 순간이다. 정상 부근에는 아직까지 진달래꽃 색깔이 짙게 그대로다. 583m의 정상이지만 산이라는 배경은 그냥 예사롭게 생각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쉬면서 땀도 식히고 맑은 공기도 마음껏 마시며 멋진 전망을 즐기면서 인증샷을 하고 1시에 하산하기 시작하여 만남의 숲에 도착하였으나 기다리기로 한 김재경과 윤일성 샘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바람의 숲을 지나서 어느 무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시30분에 무덤 앞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밀성박씨 무덤이 두 기가 있는데 아마 형제인 것 같았다. 무덤 앞에서 노는 것이 미안하다며 임이 술 한 잔을 부어서 상석에 놓아주고 4시까지 예술놀이를 하였다. 다시 하산하는 길에는 여유가 생겨서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벚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간간이 보이고 특히 무덤가에 핀 제비꽃의 보랏빛이 인상적이었다. 장끼는 까투리를 호리느라고 연신 울어댄다. 솔향기는 비바람에 묻혀서 멀리 가버리고 우중이라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읍산은 쓸쓸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하산할 때에는 날씨가 개고 맑아서 기분이 더욱 상쾌하여 다리는 뻐근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원덕역에 오니 5시다. 올라가는데 2시간30분, 하산 길에 1시간30분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역에서 김재경 선생님은 걸어서 집으로 바로 가고 우리는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전철을 바로 타고 6시30분경에 상봉역에 내려 역 앞의 길 건너편에 있는 중국집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값은 3,500원이다. 그렇게 값싼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없다. 맛은 오히려 값비싼 어떤 것보다 좋았다. 저녁을 먹고 각자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추읍산 산행은 생각보다는 산세도 험하고 비가오니 길이 미끄러워서 예상보다는 너무 힘이 들었다. 하지만 보람은 그와 비례하여 크게 느낄 수가 있었다.
2015. 4. 20. 정기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