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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정치와 경제, 역사, 지리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492권이라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조선 최고의 사상가이자 학자다. 다산은 마흔 살부터 18년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좌절하기는커녕 학문에 더욱 정진해 500권에 가까운 저술을 남겼다. 다산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독서를 권장하고 학문에 정진하라는 당부로 가득하다.
다산이 당쟁의 희생양으로 유배를 당하면서 다산의 가문은 이른바 ‘폐족’이 된다. 폐족은 다시 복권되기까지 과거를 보아 벼슬에 나아가는 길이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두 아들은 공부에 대한 희망을 접고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 다산의 걱정과 두 아들에 대한 충고가 시작된다. 박성희 교수의 책 <현명한 아버지가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에는 아들에게 보내는 다산의 편지가 자세히 수록돼 있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이제 너는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과거공부로 인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글을 알면서도 과거 때문에 오는 제약을 벗어나는 것과 진사가 되고 급제한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나은 일인가는 말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지식이 넓어 막힘없는 선비가 되는 일을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다산은 공부를 하고 배움에 뜻을 두는 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라고 보았다. 학문이 벼슬을 하고 출세를 하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만, 공부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데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산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잔소리를 하듯 독서와 학문에 힘쓸 것을 요구했지만, 이따금 칭찬과 격려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들 중에 학연(큰 아들)의 재주와 기억력은 내가 젊었을 때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듯 하나 열 살 때 지은 네 글을 나는 스무 살에도 짓지 못했을 것 같고 이 근래에 지은 글은 지금의 나로서도 미치지 못할 것이 더러 있으니 그것은 네가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길을 택했고 견문이 조잡하지 않기 때문 아니겠느냐. 그런데 너는 본래 네 동생에 비해 재주가 조금 낫고 어렸을 때 독서한 것도 동생에 비해 대강 갖추어졌으니 이제라도 용맹스럽게 뜻을 세워 분연히 향학열을 돋운다면 서른이 넘기 전에 응당 대학자로 이름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아들들에게 학문에 정진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을 것을 다그칠 수 있었던 것은 다산 스스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산이 몸이 망가질 정도로 학문에 정진하는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무 소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사색과 저술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서 방바닥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세 번씩이나 복숭아 뼈 근처의 살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다산은 이렇게 온몸으로 자식들에게 공부의 모범을 보였고 이에 감동한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뜻에 따라 평생 학문의 길로 들어선다.
아버지 다산의 모범을 보며 자라 학문의 길에 들어선 두 아들 역시 당대의 큰 문인으로 성장했다. 훗날 두 아들은 다산의 저술에 직접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다산의 저술을 정리하고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버지 다산의 빛에 가려 후대에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두 아들은 당대의 시인이자 문필가로 널리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는 국회의원만 12선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총리 시절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열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였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독서를 했고 잠들기 전에도 업무와 무관한 책을 보면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다. 그의 독서습관은 아버지인 ‘류고’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 류고 자신이 바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류고는 아들에게도 독서를 격려하고자 자주 책을 사줬다. 하지만, 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 보단 자신이 솔선수범해 아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들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저녁 식사를 끝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토론이 오갔다고 한다.
유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독서습관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학교 교사였는데, 집안의 방 모두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키신저는 매주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고 한다. 키신저의 화려한 외교활동엔 19세기 유럽의 외교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어릴 적부터 봐온 아버지의 책 읽는 모습이 그를 학문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끌었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관으로 성장하는데 바탕이 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밑거름이 되었다.
주말 아침이면 난 서재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신문을 본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신문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야말로 내겐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기사를 뒤지다가 마음에 드는 칼럼을 보면 좋은 친구라도 만난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른 휴일 아침, 또 다른 행복의 원천은 아이들이다. 신문을 다 볼 때쯤이면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아이들이 번갈아 방으로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는가 하면 막내 딸 아이는 신문 보는 아빠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한다. 이런 모습에 난 뿌듯함과 충만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서재는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혼자만 앉을 수 있는 편안한 소파가 하나 있는데, 내가 주로 책을 읽을 때 이용하는 소파다. 파묻혀 책을 읽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다. 주중에는 거의 시간이 없으니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이 소파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이들도 이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가끔 저녁에 일찍 들어와 서재로 들어가면 큰 아들이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굳이 내가 시킨 적도 없는데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최근엔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도 비록 그림책이긴 하지만, 내 소파에 앉아 가끔씩 독서를 한다. 역시 아빠가 실천으로 보여줘야 아이들이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아빠는 아들의 인지기능을 키워주는 중요한 원천이다. 아들은 아빠로부터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눈과 풍부한 지식, 도전정신 등을 배운다.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들은 아빠와의 교류를 통해 인지기능이 빠르게 발달한다. 이런 인지기능 발달은 아빠와 아들이 함께하는 독서를 통해 날개를 달 수 있다.
그럼 아들이 책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좋은 독서 습관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딱딱한 책으로 끌어오기는 쉽지가 않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아들이 좋은 독서 습관을 갖기는 만무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생각을 ‘책을 읽어야 한다.’에서 ‘책을 읽고 싶다.’로 바꾸는 것이다.
아들이 독서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선 어릴 적부터 책을 접하게 해야 한다. 저절로 아들이 책과 친해지는 상황은 여간해선 생기지 않는다. 아들은 특히 호기심이 왕성하다.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걸을 무렵부터 아들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접하는 것 모두가 새로운 것들이라 아들은 흥미를 느끼면서 주변의 일에 더 관심이 많아진다. 이럴 때 아들이 손만 뻗치면 책에 닿을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방바닥이든 소파 위든 상관없다. 아이와 함께 책방을 꾸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장은 아이가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높이를 맞추고 책이 잘 보이도록 꽃아 놓는다. 처음부터 책방 안에서 굳이 책만 볼 필요는 없다. 아들과 책을 쌓으면서 놀아도 좋고, 아들이 흥미를 보이면 책을 읽어주면 된다. 점점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아빠가 없을 때도 아들 혼자 방안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으려는 경향이 있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기 쉽다. 때문에 아빠가 양서의 기준을 정해주고 역사, 과학 ,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도록 지도해 줘야 한다.
나는 주말이면 바쁜 일이 없는 한 아들 둘과 함께 집 근처 서점을 찾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은 아직도 책을 읽기 보단 책장 뒤에 숨어 술래잡기를 하는 재미로 서점에 간다. 하지만 때때로 책을 보고 있는 내 곁에 다가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살짝 훔쳐보기도 한다. 난 이때를 놓치지 않고 아빠가 보는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짧게 얘기한다. 둘째 아들 녀석은 이내 다시 술래잡기를 하러 가지만,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망울을 보면 조금씩 책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들은 특이하게도 ‘배려’, ‘용서’,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자기계발서를 좋아한다. 어린이들에게 맞게 우화를 곁들인 책의 교훈적인 내용이 마음에 드나보다. 그러나 생각거리를 던져 줘 사고력을 높이는 데 이런 책은 한계가 있다. 더욱이 편식이 나쁜 것처럼 특정 분야의 책만 골라보는 것도 별로 좋지 않다. 때문에 난 서점에 가면 큰 아들에게 먼저 원하는 책을 고르게 한 뒤 아빠가 추천하는 도서를 한 권 더 얹어준다. 물론 둘 다 읽어야 다음에도 책을 사준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런 식으로 아들의 독서 영역을 조금씩 넓혀 주니 별 저항 없이 책에 대한 편식이 많이 줄었다.
주말 등을 이용해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해보자.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할 시간이 없다면 독서 일기를 쓰게 할 수도 있다. 독서 일기에 쓴 독후감을 바탕으로 아빠가 피드백을 주면 다양한 생각을 유도할 수 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큰 아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 칼럼이나 사설을 골라준다. 그리고 일종의 생각정리 노트를 작성하게 한다. 칼럼의 내용을 요약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고 생각을 덧붙이도록 유도한다. 처음에는 생각하는 습관이 잘 들지 않아 좀 어색해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이젠 별로 힘들이지 않고서도 자신의 의견을 적어온다. 조금씩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게 눈에 띤다. 아들이 관심을 갖는 내용이 있으면 관련 분야의 책을 찾아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조금씩 생각하는 재미, 지식을 습득하는 재미가 붙어가면서 시큰둥하던 아들 녀석의 태도도 이제 많이 누그러졌다. 오히려 초등학교 1학년인 남동생에게 같은 방식으로 피드백을 준다. 동화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적어오게 한 뒤 마치 아빠처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가끔씩 세 아이가 모여 지들끼리 퀴즈 대회도 연다. 아이들은 정말 신기하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재미가 느껴지면 그대로 따라한다. 때문에 작은 실천이라도 아빠가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아이들은 큰 변화와 발전을 경험할 수 있다.
말하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책 읽어주기다. 미국소아과학회는 생후 6개월 이상의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지능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이들의 뇌는 막 발달하는 단계에 있어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한다. 뇌는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신경세포간의 연결이 새로 생기거나 더 단단해지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아이들의 경우 이런 신경세포간의 연결이 더욱 잘 일어난다. 부모가 읽어주는 단어 하나, 구절 하나를 들을 때마다 수천 개의 뇌세포가 반응하면서 신경세포간의 연결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더 단단해진다. 이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공부를 잘 하기 위한 인지기능의 핵심이다. 책을 많이 읽어줄수록 언어 기억과 이를 통한 인지기능이 발달해 머리가 좋아진다.
아빠와 엄마의 목소리는 톤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빠는 엄마에 비해 아무래도 아이들과의 접촉시간이 짧다. 아이들 입장에선 항상 곁에서 들을 수 있는 엄마 목소리 보다는 아빠 목소리가 훨씬 신선할 수 있다. 더욱이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아빠가 지친 몸을 이끌고도 일부러 시간을 내 책을 읽어준다는 사실 자체가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때문에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더욱 집중력이 높아져 엄마가 읽어줄 때보다 두 배 이상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아빠 입장에서도 책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좋은 계기가 된다. 일에 치이고 갖가지 회식에 시달리는 3-40대 아빠들은 사실 아들과 놀아줄 시간이 별로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쩌다 장난감을 사 주거나 놀이공원에 한번 데려가는 게 전부다. 이러다 보니 아들과 교감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아들과 교감을 나누는 데 책 읽어주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물론 서너 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가 적기다. 아들은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기도 한다. 수많은 세계적인 인물들을 배출한 유대인들의 양육 방식 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잠들기 전 책 읽어주기다. 일명 ‘베드타임 스토리’는 책 읽는 습관으로 이어져 아들의 지능발달을 돕고, 아들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빠가 어릴 적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면 아빠의 목소리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된다. 아들은 곧 동화 이상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아빠의 나지막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의성을 기르는 힘이 된다. 또,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래서 동화책을 읽어주면 아들은 아빠를 더 따르게 된다. 아빠가 하루 20분 정도 꾸준히 책을 읽어주면 아들은 점차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되고, 아빠를 편하게 느낀다. 아들의 학습 기초를 탄탄히 해줄 뿐만 아니라 평생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아빠의 ‘베드타임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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