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사고와 장애인사망, 그 후 20년
공계진 사단법인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리프트가 추락하여 탑승했던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대한매일의 박강문 논설위원은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거나 신통찮은 사회는 미개한 사회이다, 원시시대에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집단의 보호로 생존했음은 발굴된 유골로 증명되고 있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회라면 원시사회와 비교해서 낫다고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논설을 쓰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인 2009년 5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휠체어리프트는 정당한 편의시설이 아닌 차별이므로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권고하여 비로소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그 덕에 장애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오이도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그것 뿐. 오이도역 사고 20년이 지나고 있지만 오이도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 이외에 장애인 차별, 장애인인권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9년 오이도역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 공원 앞쪽에는 보성아파트, 신한아파트, 화성아파트, 냉정초등학교, 바오로성당 등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이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속엔 장애인이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원에 가는 길을 계단식으로만 만들어 적어도 오이도역에서 죽은 휠체어(전동차포함) 장애인들은 공원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이도역 근방에 신한토털아파트(약칭 신한아파트)가 있다. 비장애인 걸음으로 오이도역에서 7~8분 거리의 아파트이지만 이 역시 오이도역에서 죽은 휠체어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한아파트 후문(또는 쪽문)은 계단으로만 되어 있어서 휠체어장애인들의 경우 돌아서 정문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신한아파트 정문에도 휠체어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없어서 비탈진 자동차용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탈진 자동차용 도로는 자동차들이 수시로 다니는 큰도로와 바로 맞닿기 때문에 이용하다가 사고사를 당할 수 있는 곳이다.
오이도역에서 한 정류장 더 가면 정왕역이 있다. 그곳의 유료주차장과 역을 연결하는 장애인이동통로를 장애물로 막아놓고 있었다. 이곳의 경우 오이도역에서 죽은 휠체어 장애인이 문제제기하여 통로의 장애물을 치우긴 했지만 여기서도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유는 시흥시 주민자치센터의 담당공무원이 처음엔 ‘시 소관이 아니니 장애인인 당신이 해결하세요’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오이도역에서 휠체어장애인이 리프트 사고로 죽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오이도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는 것 빼놓고는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시흥시는 이런 상황에 대해 ‘나몰라’라 하며 인권침해를 부추기고 있다. 소위 정왕역, 신한아파트 등의 문제는 민간영역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관여할 수 없다고 발뺌을 한다. 그리고 시흥시 관할 영역에 대해서는 예산 문제를 들먹이며 역시 장애인차별, 인권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앞의 논설을 다시 인용하고자 한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없거나 신통찮은 사회는 미개한 사회이다, 원시시대에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집단의 보호로 생존했음은 발굴된 유골로 증명되고 있다, 장애인이란 이유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회라면 원시사회와 비교해서 낫다고 할 수 없다’
시흥시가 미개한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전문가인 임병택 시흥시장은 원시시대의 족장보다 못한 시장, 인권조례마저 제정하지 못하는 시흥시의회는 원시시대 부족회의보다 못한 곳이 되고 있다. 시흥시를 계속 원시시대, 미개사회로 놔둘 것인가?. 참으로 부끄럽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