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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 한국역사와 학생운동의 의미
교육평론 원고
저자 : 안재오
1. 서론 : 과거의 대학생과 현재의 대학생 -
n포 세대의 대학생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대학생
요즘 대학생들의 사회적 위치가 예전과 같지 않다. 8~90년대 사회 변혁을 주도하던 기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아주 불쌍한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근대 교육이 실시된 이후 대학생 혹은 학생들은 항일운동과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혹은 통일 운동 등 각종 사회적인 운동의 중심을 형성했었다. 그들에게는 일제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민족 구원, 사회 구원의 역할이 부여되었었다.
한국의 근대 학생운동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10년대의 2.8독립선언과 3․1운동, 1920년대의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등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본에 유학을 간 조선의 대학생들은 3․1 운동에 앞서서 이미 1919년 2월 8일에 동경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2. 8 독립선언이 없었더라면 3.1 독립선언문도 없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이 땅의 학생들은 6.10 만세 사건과 광주 학생운동을 통하여 민족의 정기를 불태워 갔다.
그리고 해방이 된 후에는 4. 19 의거를 통해서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타도 했고 1979년 10월에는 부산 마산에서 시민들과 합세한 학생들이 부마항쟁을 통해서 철옹성같았던 박정희의 유신 독재 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 뒤에도 학생들을 노동운동, 통일운동 그리고 각종 사회 변혁운동의 선봉에 서서 이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학생운동의 역사적 위상에 비추어 요즘 학생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소위 금수저, 황금전두엽 운운하면서 자살한 서울대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의 노예가 되어 예전처럼 대학생들이 “민중 속으로(브 나르도 운동)”, “민중과 지식인”, 혹은 “행동하는 양심” 같은 사회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헌신하며 또 이를 통한
사회 변혁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80년대~ 90년대 노동 운동이 심할 때는 대학생들이 “위장취입” 이라고 가짜로 공장에 취업하여 노동자들을 의식화 시키기도 했었다. 학생들은 미제국주의 타도, 독점자본 타도, 독재 타도를 부르짖고 “즉자적 민중”과 “대자적 민중”을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노동계급의 동지”로 간주하고 노동계급을 각성시키려고 했다. 그들은 H. Marcuse 의 “이성과 혁명”을 읽고 Erich Fromm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건전한 사회”를 읽고 또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를 읽고 밤새 토론했었다. 이영희씨는 7~80년대 대학가의 정신적 지주었다. 그를 통해서 학생들은 공산화된 “중국”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 철학과 및 각종 서클에서는 마르크스를 M이라고 하고 레닌을 L 이라고 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을 읽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역해서 보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대자보를 붙이고 또 이를 베끼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하여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민중을 계몽시키고, 의식화시키고, 조직시키며 이를 통해서 사회의 변혁 즉, 항일운동, 독재타도, 민주화, 노동자 해방, 제국주의 반대 등을 시도했다.
2. 본론 : 대학생들의 침체 = 사회의 침체
과연 학생 운동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일까? 과거 민족자존을 위해 이정표를 제공했던 학생 운동, 민주화와 반독재의 기치를 높이 들어서 우리 백성들이 결코 ‘선량한 독재자’의 노예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던 학생 운동, 한국역사에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선명히 보여주었던 학생 운동, “노동자도 인간이다” 라는 노동의 외침을 대변한 학생 운동 등은 이제 더 이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요즘 청년들은 사회 변혁의 꿈을 꾸기는 커녕 우리 사회를 “헬 조선” 이라고 조롱하고 자신들을 “이생망” (이번 생애는 망했다)라고 학대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과 실망 속에서 살아간다. 열심히 일해도 전세방 하나 장만하지 못한다. 학자금 대출도 갚기가 어렵다고 한다.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미래의 고용주만 바라보고 쥐죽은 듯이 엎드려 스펙만 쌓고 알바만 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하물며 8~90년 식의 학생 운동은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일일까?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위한 조건으로서 필자의 한 옛날 제자가 2003년에 쓴 아래의 인용문을 보자.
필자는 지금부터 11~4년 전(2002~2005)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한국 교육현실 비판” 이란 주제로 중간고사 대체 리포트를 쓰게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홍익대학교(조치원 캠퍼스), 명지대학교, 가톨릭 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로서 강의를 했었다.
아래의 글에서 당시 홍익대 학생 강재규씨는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교 졸업시까지의 자신의 17년간의 교육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 나라의 교육 과정이 한 인격에게 어떻게 (비인간적으로) 작용하는 지를
도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학생은 자신의 성장과정 특히 교육과정을 “문제 구덩이 속에서 뒹굴면서 17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런 교육과정을 겪고 나면 승자든 패자든 모두 결국은 패자가 된다. 즉 학벌주의를 성공하여 좋은 대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재를 뽑고 키우는 목적은 그들 자신의 영달보다는 그들이 그만큼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잘 하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회사를 설립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든지 아니면 신기술이나 신소재, 신약품을 개발, 발명하든지 혹은 좋은 공직자가 되어서 전체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학벌주의 교육은 저(低)성과자에게는(공부 못하는 애들) 좌절과 울분을 생산시키고 고(高)성과자에게는(공부 잘하는 애들)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무능 혹은 집단이기주의 만을 산출시키는 폐단을 가져왔다. 소위 “금수저” 현상이나 “이생망” 혹은 “사축인간” 등이 결국 모두 잘못된 교육의 결과라는 것이다. 교육의 개혁과 더불어 미국의 창의력과 개척정신의 원천이 되는 청교도 정신이 가미되면 우리는 현실의 우울한 청년기를 지나 세계 최고, 최강의 복지와 국력을 소유할 것이다.
하지만 전 지금의 (교육) 제도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그 문제 구덩이 속에서 뒹굴면서 17년이란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내가 이런 저런 불만을 좋게 풀었다면 그 나마 후회가 덜하겠지만 전 좀 삐딱한 아이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지금은 이런 교육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한숨이 나옵니다.
지금은 그 17년이 나에게 끼친 부작용을 치유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모나고 성질 급한 한 아이가 어떻게 커왔는지 한번 지켜봐 주십시오.
전 부모님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사립 국민학교에 추첨을 했지만 떨어져서 집에서 가까운 공립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의 집안 사정은 어머니 아버지가 저한테 신경을 써 주실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 었지만 참 많이 두 분이 바쁘셨습니다. 저도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전 입학한 그 해에 학년 1등이 되었습니다. 난 놀기만 하고 다른 뭐 특별이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고 몰려 다니면서 장난치고. 사실 내 기억에 내가 일등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학년말에 주는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였습니다. 그래서 전 부모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머닌 그래서 뒷돈을 줘가며 떨어졌던 사립학교에 보냈습니다. 전 그저 친구들이랑 멀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세상에 나고 최고의 충격을 가져 다 준 곳 이였습니다. 애들이 매점에서 만원짜리로 과자를 사먹고(전 사실 만원짜리도 거의 본적이 없을 때였습니다) 개인 기사가 등하교를 시켜주고 또 학교에서 축구 차고 놀고 그러지 않고 애들이 영어 공부하고 악기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방과후 영어학원 학기 웅변은 기본이었습니다. (ㆍㆍㆍ)
그와 동시에 전 패배감을 맛봤습니다. 영어를 처음 접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벌써 회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알파벳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전 점차 기가 죽었습니다. 산수는 공부 안 해도 일등이지만 영어는 언제나 꼴등 이였습니다. 그래서 성적은 반에서 중위권 이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어머닌 당황해서 막 학원에 보냈습니다. 거기서부터가 화근이었습니다. 영어만 하는 학원에서 영어 꼴등으로 하는 애가 갔으니 또 꼴등이지 뭡니까? 그때 전 그냥 좀 놀고 하고 싶은데 끌려가서 매부터 맞았습니다. 알파벳도 모르는 애한테 단어를 하루에 50개 100개를 외워라. 이건 저한텐 넘지 못할 벽이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중학영어는 국민학교 보다 수준이 떨어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영어라면 지긋지긋 두들겨 맞는 과목으로 스스로 낙인 찍어버린 과목을 공부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ㆍㆍㆍ)
그리고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공부를 철야로 했습니다. 눈앞에 대학을 생각하니 이제 싫다고 손을 놓지를 못했습니다. 원래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치솟았습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영어 때문에 외우지 않았던 수학이 이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고사다 뭐 다해서 서술형 문제가 나오던 수학 시험은 다른 친구들한테는 큰 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게 어쩔 때는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반에서 3-4등하고 전교에서 30등 안에 드는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영어는 몰라서 그냥 왕창 다 외어 버렸습니다. 본문까지 모조리)
하지만 이것도 잠시 갑자기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본고사가 폐지되고 오로지 수능만 보게 된 것 이였습니다. 그것은 저를 좌절 시켰습니다. 겨우 쌓아서 이제 좀 뭔가 되려고 하는데 공든탑이 무너졌습니다. 평균이 30점이던 수학이 이제 80점이 평균이 되고 그것은 나의 주력 과목 내가 버틸 수 있었던 부분을 왕창 허물어뜨렸습니다. 그것은 또 다시 뒤꽁무니로 날 날려 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바둥거려 봤지만 그것은 현실 이였습니다. (ㆍㆍㆍ)
그냥 모든 걸 잃어 버린 느낌으로 수능을 보고 나서 전 그저 목표를 잃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현실은 재수까지 요구 했습니다. 재수 역시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또 이 여파는 대학에 와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공부는커녕 여자애들 그리고 술 담배 가릴 것 없이 그냥 무너졌습니다. 1학년 성적은 그래서 올F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갈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2003. 07.12 홍익대 학생 강재규)
80년대 대학가에는 이런 부적응 학생들이 있었는가 하면 똑똑한 학생들은 대개 학생 운동에 동참하는 수가 많았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들 중 상당수가 “반정부” 운동과 시위에 연루되어 졸업도 못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러다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세계화 신자유주의 물결이 대학가마저 강타하면서 사회의 발전과 정의를 부르짖던 학생운동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1993년 문민정권의 출범은 더 광범위한 대중적 이반과 탈정치화를 부추겼다. 이는 군부세력 집권의 종식과 문민정부 집권 초기의 개혁드라이브가 강력한 대중 이데올로기로 전화한 결과다. 여기에 더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신세대 논쟁, 소비문화의 확산, 신자유주의로의 편입과 대학의 시장논리 강화, 학부제 도입 등 변화된 현실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균열이 더해지면서 학생운동의 위기는 급속히 확산․ 가속화되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런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일제시대부터 특히 해방이후 1993년까지는 학벌주의의 폐해가 지금과 같이 극심했지만 동시에 엘리트 학생들이 민족과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많이 희생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숱한 입시의 엘리트들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희생한 시대이기도 했다.
3. 결론 : 공부 엘리트들의 사회 기여
그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문민정부,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학벌주의의 교육의 승리자들(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쥬 사상은 사라지고 우등생이나 열등생들이나, 명문대학이나 비(非)명문대학이나 모두가 각자의 생존, 즉 직업을 위해서 같이 달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 대신 금수저 - 흙수저 하는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대학은 그야말로 기득권층의 자기 유지를 위한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brand new 한 item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또 한국의 중소기업은 시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 운운하지만 한국에서 창의력이 있는 벤쳐기업들이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위의 긴 학생 리포트에서 나타난 바로 그 이유 비인간적인 학벌주의 교육과 끝없이 시행착오적인 교육 행정 때문이다.
학생 운동이 움직이는 대학가는 생명력이 움직이는 사회를 반영한다. 이제 대학생들 특히나 엘리트 대학생들은 기득권 유지 보다는 교육 개혁, 사회 개혁, 그리고 정치 개혁을 위하여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할 때이다. 엘리트들이, 특히 젊은 엘리트들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