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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宜寧] - 만사가 잘 다스려져 천하가 편안할 것이다
경상남도 중앙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 창녕군과 함안군, 서쪽으로 산청군과 합천군, 남쪽으로는 진주시, 북쪽은 합천군과 접해있으며 그 사이에 낙동강, 남강이 흐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 휘하의 의병이 의령과 창녕 일대에서 일본군과 항전했다
의령 문화관광 http://tour.uiryeong.go.kr/
곽재우생가 현고수(懸鼓樹) http://tour.uiryeong.go.kr/mov/view21.htm
수도사[修道寺 제7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11.htm
충익사[忠翼祠 제1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16.htm
의령 9경
제1경 충익사, 의령구름다리, 망우당 곽재우 생가
제2경 자굴산
제3경 봉황대, 일붕사
제4경 벽계관광지, 한우산, 찰비계곡, 의령예술촌
제5경 정암루(솥바위)
제6경 탑바위
제7경 수도사
제8경 백산 안희제 생가
제9경 호암 이병철 생가
곽재우생가(제1경)
생가 바로 앞에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사진)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302호로 지정된 수령 600년이 넘은 노거수가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493호인 ‘의령 세간리 현고수’가 있다. 현고수(懸鼓樹)는 수령 52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로 ‘북을 매던 나무’라는 뜻인데 임진왜란 때 붉은 비단의 갑옷을 입고 다녀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이 이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고 치면서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다고 한다. 2005년 복원되었다
곽재우생가 현고수(懸鼓樹) http://tour.uiryeong.go.kr/mov/view21.htm
의령고을 어디간들 곽재우 장군의 기개가 넘친 흔적 어디 이 뿐일까만 유독 이 현고수가 있는 유곡면 세간리는 곽재우 장군께서 태어나신 태생지요. 허언심과 더불어 구국의 대의를 위해 선비의 몸으로 분연히 일어나 각 고을의 의병을 모으고 조련시킨 곳이니 가히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발상지의 원조라 일컬어도 좋으리라.
백산 안희제선생가(제8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05.htm
선생님은 일찍이 후학 양성에 뜻을 두어 1907년 상남학교를 세웠으며 1908년에는 의신학교, 1909년에는 동래구명학교와 대구 교남학교를 설립하는 등 신학문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창 혈기 왕성하던 27세 때는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한 후 소련으로 망명하여 독립순보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후 서른 살 되던 해 조국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치하의 조선 독립을 위한 자본금 마련에 진력 하셨고 1926년에는 언론창달을 위해 시대일보를 인수하였는가 하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및 1943년 만주 대종교단 사건으로 구금되어 옥고를 치루다 출옥 4시간 만인 1943년 9월 2일 평생의 소원이던 조국독립을 지켜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운명하셨으니 조국광복을 위해 희생한 대한의 큰별 역사에 찬연하다.
벽계관광지[宜寧碧溪觀光地 제4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06.htm
보덕각[報德閣]
보덕각, 쌍절각, 기강나루 http://tour.uiryeong.go.kr/mov/view07.htm
쌍절각 보덕각 옆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절한 후지당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허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旌閭)이다.
봉황대[鳳凰臺], 일봉사(제3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08.htm
일봉사 http://tour.uiryeong.go.kr/mov/view17.htm
산 중턱에는 ‘봉황루’라고 부르는 팔작지붕 건물인 누정(樓亭)이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봉황대는 금강산 절경의 부분 축소판처럼 기암괴석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를 받아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일봉사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동양 최대의 석굴법당이 있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미불을 모신 대웅전, 아미타불를 비롯하여 3천여 불상을 모신 무량수전 모두 석굴법당이다.
봉황산에 자리잡은 일봉사는 서기 727년에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1984년 화재로 소실된 후,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석굴 안에 지었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동굴 법당 외에 바위틈에 자리잡은 나반존자와 병풍 바위 밑의 약사여래불, 삼천불의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지장전이 있으며 80여과의 일붕존자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수도사[修道寺 제7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11.htm
쌍절각
당초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지금의 봉수면 신현리에 세워졌던 것을 그 뒤 1943년 5월에 장군의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강가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의병의 충절을 느끼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마산 가는 방향으로 가면 송도마을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식당에서 잉어 및 메기찜도 맛볼 수 있어 가족과 함께 나들이 코스로 좋다.
왜가리 서식지 가례면 가례마을 뒷산 일대
떡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등 백년생 잡목림이 무성한 이 산에 언제부터인가 이른 봄이면 왜가리 떼가 몰려와서는 온통 산을 하얗게 뒤엎은 채 둥지를 틀고 여름 한 철을 지내다가 늦은 가을이 되면 낙동강 하구인 을숙도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의령관문
이 관문은 길이 45.17m, 높이 12.87m(차량통과 높이 5.4m)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붕은 전통 한옥지붕 형태로 서울 남대문(숭례문)과 같은 양식이다.
관문의 내부에는 정암진 승전도와 의병창의도, 세계기네스북에 등재된 의령큰줄 땡기기, 우리 민족의 전통 농경문화인 소싸움, ‘홍의장군’ 곽재우 및 17장령들의 호국 충정의 넋을 기리는 의병탑, 의령의 명산인 자굴산의 사계절, 가례 왜가리서식지 등 의령의 관광명소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관광의령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의령천의 맑은 물과 함께 잘 조성된 수변공원 위로 우뚝 솟은 구름다리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찌나 높은지 현기증이 날 정도이지만 사방을 둘러보면 주변의 자연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흡사 전망대에 올라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꿈의 구름다리는 충익사, 의령천, 남산 산림욕장을 연계한 새로운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의령 상정리 조씨고가[宜寧上井里曺氏古家]
상정리 조씨고가는 창녕 조씨의 종가이지만 누가 언제 지었는지 확실치 않다
솟을대문 전면으로 담장이 이루는 작은 마당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겹집으로 구성된 사랑채와 초가지붕의 디딜방앗간이 있는 사랑마당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시기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17세기부터 20세기 사이에 여러차례에 걸쳐 지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집의 건물들은 구조와 세부양식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가(5칸)집은 자식들이 결혼하면 거주하는 공간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라고 초가집을 지었다
의령 서동리 함안층 빗방울 자국(천연기념물 제196호)
의령 성황리 소나무
이 소나무는 마을 뒷산 산자락 경사면에 있는데, 1.7m 높이에서 줄기가 4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퍼져 웅장한 수관(樹冠)을 이루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소나무와 30m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소나무의 가지가 맞닿으면 통일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령예술촌(제4경)
봉황대와 일붕사에서 약 500m정도 벽계관광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숲 속에 쌓여있는 정겹고 투박한 느낌의 허름한 옛 학교건물이 의령예술촌이다.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모두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층에는 공예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솜씨사랑’을 비롯해 시화를 전시하고 있는 '시가 있는 풍경', 사진과 서예소품을 전시하고 있는 '추억사진', 민속품 등 선조들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는 '사랑방'이 있고, 2층에는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그림사랑'이 있다.
의령 큰줄댕기기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의령큰줄댕기기에 사용된 큰줄은 2005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제작돼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의령큰줄댕기기에는 군민과 향우, 관광객 등 5천여명이 참가해 동남쪽에 사는 동군(청룡군.암줄)과 서북쪽에 사는 물위의 서군(백호군.숫줄)으로 나눠 큰줄을 당겨 장관을 연출했다.
2005년 4월 의병제전 행사시 기네스북 발행회사인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사에 의해 천연소재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큰줄로 확인된 의령큰줄은 당시 길이 251m, 직경 2.2m, 무게 5만4천500㎏으로 측량됐다.
정암루(솔바위 제5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18.htm
이곳은 그 옛날 선인들이 나룻배를 타고 왕래했던 나루터지만 임진왜란 때는 나루에서 곽재우 장군이 왜장 혜경이 이끈 수만의 왜적을 잠복 끝에 몰살시킨 승전지로도 유명하니 지금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더욱이 정암루에 올라 강물을 내려다보면 풍류가 절로 피어나 그만 노래가락이 나올 법한데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모습 또한 마냥 여유롭다.
의령 땅을 굽어 흐르는 남강 인근에서 내로라하는 거부들이 줄줄이 났습니다. 대기업 창업주가 하나둘도 아니고 자그마치 넷입니다. 삼성그룹, LG그룹, GS그룹, 효성그룹의 창업주들이 이 부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게 다 의령 쪽 남강변의 강물에 둥실 떠 있는 솥바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의령의 솥바위에는 ‘주변 20리 부근에 부귀가 끊이질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군요. 남강변 솥모양의 바위에 부귀의 기운이 뭉쳐 있다는 것이지요. 솥바위를 풍수지리에서 별자리로 보는데, 희한한 것은 삼성(三星), 금성(金星·LG, GS그룹의 옛 이름), 효성(曉星) 등 이곳을 태로 둔 이들이 일으켜 세운 기업 이름에 죄다 별(星)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솥 모양의 바위 수면 아래 세 개의 발이 있다는데, 발이 가리키는 쪽에서 누대로 거부가 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대로 솥바위 반경 20리 안에 삼성, LG, GS, 효성그룹 등 대기업 창업주의 생가가 있다.
충익사[忠翼祠 제1경] http://tour.uiryeong.go.kr/mov/view16.htm
의령탑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위훈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2년 건립한 탑이다. 탑의 높이는 27m이며, 가운데 둥근 18개의 백색환은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을 뜻하고 양쪽 기둥의 팔자형은 횃불을 상징한다.
사당 망우당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및 수많은 무명의병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4월 22일 추모제향을 드리는 곳이다
탑바위[塔巖 제6경]
탑바위 전설 이곳은 남강 물줄기를 두고 의령군과 함안군이 마주하고 있다. 의령군에 남강변 벼랑에 있는 불양암은 자연의 돌탑으로 암탑과 숫탑이 나란히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건너편 함안에서 해마다 언청이가 한명씩 태어났는데 그 연유를 물으니 강건너 앞의 절벽에 있는 두 개의 돌탑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함안의 장정 수십명이 밧줄을 엮어 돌탑 하나를 쓰러뜨렸는데 그 순간 장정 수십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런 연유로 하나의 돌탑은 현재까지 남아있으며 함안군의 언청이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돌탑이 숫탑인지 암탑인지 모르나 이러한 전설을 담은채 남아있다. 탑바위 아래쪽에는 자그만한 암자인 불양암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암자 앞으로 남강물이 오늘도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호암이병철생가(湖巖生家 제9경)
호암 생가를 찾는 많은 방문객들이 반드시 발길을 멈추는 곳이 생가 안쪽의 바위다. 안채의 우측 뒷편에 자리해 집터의 병풍역할을 하는 바위에는 길운을 몰고온다는 상징들이 가득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바위 한 가운데 하단에 있는 밭 전(田)자 문양이다. 정사각형으로 정확하게 잘라진 바위가 마치 밭 전자 처럼 생겨 이 집터에 돈이 몰려든다는 곳이다. 부자의 기를 받겠다고 생가를 찾는 이들은 열이면 열, 밭 전자 문양을 손으로 문지르고 얼굴로 부비고 간다.
바위 좌측 상단부에는 거북이(자라) 한마리가 자리잡고 있다. 비스듬하게 바라보면 등껍질 사이로 영락없이 거북이가 목을 쭉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보무병 장수와 부귀영화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반대쪽인 바위 우측 상단에는 바위조각들이 층을 지어 쌓아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사람은 쌀가마니를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말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옛날 책을 층층히 쌓아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재물이 집안에 그득하다는 뜻으로 사람들은 해석한다.
반경 8㎞ 안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연암 구인회 LG 창업주, 만우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의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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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나루(의병 전적지) 기강나루는 일명 거름강이라고 하여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남강이 합류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 주력부대가 조선 땅 깊숙히 진격하면서 낙동강 수류를 이용하여 낙동강 하류에서부터 남강과 낙동강 상류의 주력부대에 후방병력 수송과 그 밖의 군수 물자를 보급하였는데 기강은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 지역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의령 구름다리(제1경)
의령수박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경남 함안ㆍ의령군과 창원시 등 3대 수박주산지들이 차별화한 브랜드 수박을 앞세워 올 여름 '수박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제12회 의령토요애수박축제 2011.04.30. 경남 의령군 농산물종합유통센터
의령 양상추 의령군에 따르면 경남 하동, 전남 광양과 함께 전국 3대 양상추 주산지인 의령군 120㏊의 면적에서 연간 5천여t의 양상추를 생산하는 7개 작목반, 124농가 농민들은 최근 자신들이 재배한 '토요애 양상추'가 상품성을 인정받으며 전국 최고 시세로 출하돼 소득증대로 이어지자 신바람을 내고 있다
자굴산(제2경)
자굴산에서 건너보이는 산은 한우산으로 한자로는 차가울“한”과 비“우”를 쓴다, 한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 해서 아래로 발달한 계곡은 찰비계곡으로 불리워진다. 또한 “가마소라”는 쏘가 계곡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피서철에는 물속에서 손발을 5분이상 담그기가 힘들 정도임
삼복에도 골짜기에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린다는 이름을 가진 찰비. 그 이름만으로도 벌써 시원함이 가슴에 와 닿으니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찌 궁금하여 견딜 수 있으리오.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에 명경 같이 맑은 물.
그 옛날 아름다운 신랑신부의 혼례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각시소와 농소 그리고 아소, 누구나 시인이라면 저절로 시구가 줄줄 터져 나올 것 같은 비경에 잠시 젖노라면 저만치 흐르는 흰구름이 걸음을 멈춰 서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더없이 정겹다.
한우산(제4경)
벽계 계곡에서 산굽이를 돌아 오르는 꼬부랑길. 이 길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역정을 그려 놓은 것 같아 영화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 장면 촬영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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