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식물의 개화와 성장
진달래는 낮이 길 때, 국화는 낮이 짧을 때 꽃을 피워요
식물의 개화와 성장
오가희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4.30. 03:00 조선일보
그래픽=유재일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이 띠고 있는 연한 초록빛을 신록(新綠)이라고 합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5월은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곳곳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기에 ‘신록의 계절’이라고 하죠. 겨울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식물들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성장하는 걸까요?
식물의 광합성과 개화, 성장에 필요한 ‘빛’
식물은 살아가는 데 빛과 물, 공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엽록소가 빛을 이용해 식물이 흡수한 물과 이산화탄소를 탄소화합물(포도당)로 만들기 때문이에요. 탄소화합물은 식물의 에너지원이랍니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도 만들어져요. 빛을 이용해 탄소화합물을 합성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광합성(光合成)이라고 부릅니다.
광합성은 해가 떠 있는 낮에만 이뤄져요. 밤에는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호흡만 하며 낮에 만들어둔 포도당을 쓴답니다. 식물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만들려면 빛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식물이 빛을 이용해 영양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낸 과학자들은 다른 궁금증이 생겼어요. 식물이 어떻게 번식하고 성장하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식물의 번식과 성장은 인류의 식량 생산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해요. 과학자들이 이를 오래 연구한 결과 식물의 성장에는 햇빛이 있는 낮의 길이와 햇빛 세기가 중요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습니다.
FT 유전자, 개화 단백질 만들어내
모든 생물은 번식을 통해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을 갖고 있어요. 식물 역시 자손을 퍼뜨리고 싶어합니다. 이를 위해서 식물은 맨 먼저 꽃을 피워요. 식물은 저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데, 과학자들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궁금했어요.
1900년대 초반 미국 농무부 소속 연구원들은 식물 중 ‘담배’로 실험을 했어요. 덮개를 씌워 담배가 빛을 받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절했죠. 이를 통해 담배가 햇빛을 받는 시간이 짧아지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후 여러 실험들을 거쳐 식물마다 개화(開花)하는 낮의 길이가 다르다는 걸을 알게 됐습니다. 낮이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개나리, 진달래)과 짧아질 때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코스모스, 국화)을 찾아냈어요. 일정 시간 이상만 햇빛을 받을 수 있으면 꽃을 피우는 중일식물(민들레, 토마토)도 발견했죠.
햇볕이 내리쬐는 낮 시간에 영향을 받아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아낸 과학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식물에 있는 어떤 물질이 개화와 관련이 있는지 찾기 시작해요. 그러다 1995년 식물에서 개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유전자인 ‘FT 유전자’를 발견했어요. FT 유전자가 개화를 돕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후 2007년에 이 개화 단백질이 줄기 끝으로 이동해 꽃망울이 생기고 꽃이 피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식물은 오후에 빛을 세게 받을수록 잘 큰다
과학자들은 이 FT 유전자가 개화뿐 아니라 식물 성장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난 2월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식물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는 FT 유전자가 아니라는 것이었죠.
연구팀은 돌연변이 애기장대를 관찰해, 식물 성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찾아냈어요. 식물은 보통 성장이 느리면 그만큼 꽃도 늦게 피워요. 그런데 이 애기장대는 성장이 느렸지만 꽃은 일반적인 애기장대와 비슷한 시기에 피웠어요. 돌연변이 애기장대는 다른 유전자는 멀쩡한데 성장 관련 유전자만 망가졌다는 뜻이었어요.
연구팀은 일반 애기장대와 비교해 돌연변이 애기장대에서 문제가 생긴 유전자를 찾아냈어요. ‘MIPS1′이라는 유전자였죠. 이 유전자는 식물 성장에 필수적인 물질인 ‘미오이노시톨’ 생성을 돕는 효소와 관련돼 있어요.
연구팀은 MIPS1 유전자로 다양한 실험을 했습니다. 우선 MIPS1 유전자가 망가져 미오이노시톨을 만들지 못하는 애기장대에 따로 미오이노시톨을 주입하자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정상적인 MIPS1 유전자는 하루에 16시간 빛을 받으면 활발하게 활동을 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특히 오후에 이 유전자가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도 알아냈죠.
MIPS1 유전자가 오후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유는 광합성과 관련이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어요. 식물은 빛이 없는 밤 동안 광합성을 하지 않고 쉬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바로 광합성을 시작해요. 식물은 오전에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은 밤에 사용하기 위해 녹말 형태로 바꿔 저장해 둡니다. 오후에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은 식물 곳곳으로 보내져요. 그렇게 오후에 식물 곳곳으로 포도당이 충분히 공급되면, MIPS1 유전자는 이 포도당들을 이용해 활동을 합니다.
식물이 오후에 햇빛을 세게 받아 포도당이 많이 만들어지면, MIPS1 유전자가 더 활발히 활동해 식물이 잘 자라게 됩니다. 실제로 오전에 약한 빛을 주고 오후에 센 빛을 받은 애기장대는 잘 자랐지만, 반대 경우에서는 그러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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