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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6:11
사람은 평생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나를 정의하는가' 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과거와 실패, 배경과 능력으로 사람을 규정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보다 그분 안에서 이루실 미래를 보고 부르십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인생은 자기평가보다 하나님의 호명이 더 큰 힘을 갖는 것입니다. 공주야! 기드온도 여느 사람들처럼 미디안의 압제 아래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It seems that people ask themselves "Who am I?" throughout their entire lives. However, the more important question may be, "Who defines me". The world defines people by their past, failure, background, and ability, but God calls us by looking not at our present, but at the future He will accomplish in His presence. Therefore, in a person’s life, God’s calling carries greater power than self-evaluation. Princess, Gideon, like all others, had to live in silence under the oppression of the Midian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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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틀 속에 들어가 소리 죽여 밀을 타작 하던 소심한 겁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주님은 그런 그를 찾으신다. 기드온은 어떻게 응답하는가?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 그를 ‘큰 용사’라고 불러준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준다. 그때 그는 포도즙을 짜는 곳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기존에 하듯이 넓은 장소에서 타작을 하면 발각 될 수 있어서 포도즙 짜는 돌 구덩이에서 타작한 것이다.
He could not be blamed as a timid coward who had gone into the winepress, kept silent, and threshed the wheat, but in such a situation, there was nothing he could do. The Lord seeks such a man. How does Gideon respond? The angel of the LORD finds Gideon and calls him “mighty.” It also conveys the welcome news that the LORD is with him. At that time, he was threshing wheat where grape juice was being pressed. As was done before, if they had harvested in a wide open space, they could have been discovered, so they harvested in a stone pit used for pressing grape ju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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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사람들의 탈취에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사람이고 적어도 평범한 사람이다. 큰 용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사실을 믿으면 그가 큰 용사, 강건한 용사가 된다는 뜻이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역사속에서 하신 일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의 시대에는 침묵하신다고 여겼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아서 미디안에 넘기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의심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A timid person who is constantly anxious about being taken by the Midianites, and at least an ordinary person. It means that because he is a great warrior, it is not that God was with him, but that if God is with him and he believes that fact, he becomes a great and strong warrior. Gideon knew what God had done throughout history, but he believed that He had remained silent in their own time. I think they handed it over to Midian because they did not love Israel. He does not doubt God’s power, but he does doubt His love for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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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므낫세 중에 지극히 약하고, 그 아버지 집에서 가장 약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리 없다며 부정한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만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는 겸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한 것이고 못 믿은 것이다. 상상력이 없고 패배의식도 가득하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맡김이 없는 자기한계 인식은 겸손이 아니다. 기드온은 표징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확인하는 표징이다. 자신처럼 자격 없는 자를 사사로 세우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표징을 구한다.
He also denies it, saying that among the men of Manasseh, he is extremely weak, and that he would not save Israel through himself, the weakest among his father’s household. He knows God, but he does not know him fully. So he was not humble, but fearful and untrustworthy. It has no imagination and is full of a sense of defeat. Self perception of one’s own limitations without trust in and entrustment to God is not humility. Gideon demands a sign. It is a sign that confirms God’s will to save. Seek a sign that makes it clear that He has appointed an unqualified person, just as He has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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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불신앙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역사와 단절된 사람이 다시 하나님 감각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지도자가 이럴진대 일반 백성들은 얼마나 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을까. 원하던 시험을 끝내고 나서야 “슬프도다.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하며 자신의 믿음 없음을 통탄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 것인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나는 다른 어떤 자격 여건보다 하나님의 동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On one hand, it is unbelief, but on the other hand, it shows how difficult it is for a person who has long been cut off from God’s work to regain a sense of God. If a leader could behave this way, how much harder must it have been for ordinary people to restore their relationship with God. Only after finishing the exam I wanted did it become "how sad. “I have seen the angel of the LORD,” he laments, lamenting his lack of faith. Is God’s calling about recognizing the present me, or about creating a me that does not yet exist? Do I value God’s presence more than any other qualification or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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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11-13)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신 하나님(14-16)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17-18)
기드온에게 표징을 주신 하나님(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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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1a)
아비에셀 사람(11b)
요아스에게 속한(11c)
오브라에 이르러(11d)
상수리나무 아래(11e)
앉으니라(11f)
마침 요아스의 아들(11g)
기드온이(11h)
미디안 사람에게(11i)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11j)
밀을 포도주 틀에서(11k)
타작하더니(11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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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12a)
기드온에게 나타나(12b)
이르되 큰 용사여(12c)
여호와께서(12d)
너와 함께 계시도다(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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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13a)
그에게 대답하되(13b)
나의 주여(13c)
여호와께서 우리와(13d)
함께 계시면(13e)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13f)
우리에게 미쳤나이까(13g)
또 우리 열조가(13h)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13i)
여호와께서 우리를(13j)
애굽에서(13k)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13l)
그 모든 이적이(13m)
어디 있나이까(13n0
이제 여호와께서(13o)
우리를 버리 사(13p)
미디안의 손에(13q)
붙이셨나이다(13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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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4a)
그를 돌아보아(14b)
가라사대 너는(14c)
이 네 힘을(14d)
의지하고 가서(14e)
이스라엘을(14f)
미디안의 손에서(14g)
구원하라(14h)
내가 너를(14i)
보낸 것이 아니냐(1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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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15a)
그에게 대답하되(15b)
주여 내가 무엇으로(15c)
이스라엘을 구원하리까(15d)
보소서 나의 집은(15e)
므낫세 중에(15f)
극히 약하고(15g)
나는 내 아비 집에서(15h)
제일 작은 자니이다(1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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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6a)
그에게 이르시되(16b)
내가 반드시(16c)
너와 함께 하리니(16d)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16e)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16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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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17a)
그에게 대답하되(17b)
내가 주께(17c)
은혜를 얻었으면(17d)
나와 말씀하신 이가(17e)
주 되시는 표징을(17f)
내게 보이소서(1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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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물을 가지고(18a)
다시 주께로 와서(18b)
그것을(18c)
주 앞에 드리기까지(18d)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18e)
원하나이다(18f)
그가 가로되(18g)
내가 너 돌아오기를(18h)
기다리리라(1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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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 가서(19a)
염소 새끼 하나를(19b)
준비하고(19c)
가루 한 에바로(19d)
무교전병을 만들고(19e)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19f)
국을 양푼에 담아서(19g)
상수리나무 아래(19h)
그에게로(19i)
가져다가 드리매(1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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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자가(20a)
그에게 이르되(20b)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20c)
이 반석 위에 두고(20d)
그 위에 국을 쏟으라(20e)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20f)
여호와의 사자가(20g)
손에 잡은(20h)
지팡이 끝을 내밀어(21i)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21j)
불이 반석에서 나와(21k)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21l)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21m)
보이지 아니한지라(21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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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22a)
그가(22b)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22c)
가로되 슬프도다(22d)
주 여호와여(22e)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22f)
대면하여 보았나이다(2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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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23a)
그에게 이르시되(23b)
너는 안심하라(23c)
두려워 말라(23d)
죽지 아니하리라(23e)
하시니라(2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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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이(24a)
여호와를 위하여(24b)
거기서 단을 쌓고(24c)
이름을(24d)
여호와 샬롬이라(24e)
하였더라(24f)
그것이 오늘까지(24g)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24h)
오브라에 있더라(2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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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탄원하라_Think about it and petition.
도전을 받아들이라_Accept the challenge.
감사로 응답하라_Reply with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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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고 주저했던 농부 기드온에게 증거를 주시고 용사로 만드신 주님께 내 생을 맡깁니다. 주님, 믿음이 안 보인다고 이제 그만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적다고 가나안 풍습을 좇아가지 말게 하시고, 때로는 치열한 전투 가운데 주의 용사로, 때로는 평범한 일상 가운데 주의 통치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I entrust my life to the Lord, who gave evidence to the farmer Gideon, who had complained and hesitated, and made him a mighty man. Lord, do not let us stop giving up now because our faith is not evident, and do not let us follow the customs of Canaan as there are few people who live by faith. At times, may we become warriors of the Lord amid fierce battles, and at other times, faithful people who obey Your rule in ordinary daily life.
2026.9.13.sun. 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의 부르심은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 것인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공주야!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는 호칭은 현실 묘사가 아니라 미래를 앞당겨 부르는 하나님의 언어다. 그는 아직 용사가 아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하나님의 동행을 의심하며, 자신의 집안과 서열을 근거로 “나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현재의 기드온이 아니라 함께하심을 통해 ‘되어갈 기드온’을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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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기드온의 의심을 단순한 불신앙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본문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습니까?”라는 질문은 상당히 정당하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배웠는데 현실에서는 미디안에게 수탈당하고 있으니, 전승된 신앙과 경험하는 현실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도 그의 질문을 꾸짖기보다 기다리고 표징까지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믿음은 두려움이 사라진 뒤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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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면서도 부르심 쪽으로 한 걸음 움직이는 순간 시작된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이라기보다 두려움을 이유로 영원히 포도주 틀에 머무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다”는 말이 자기확신의 종교적 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드온을 용사로 만드는 것은 그의 잠재력이나 긍정적 자기암시가 아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는 하나님의 동행이다. 결국 이 본문은 “나는 누구인가?”보다 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데 머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아직 되어보지 못한 나로 걸어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