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하게 흐린 느낌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 대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은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를 끄는 김첨지가 오랜만에 만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시내 중심부에 가려는 앞집 부인을 전차 정류장까지 모셔 드린 것을 시작으로 손님이 줄을 이었다.
부인을 내려드린 후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싶어 정류장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는 하차하는 사람들에게 줄곧 애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던 중, 양복을 입은 차림새로 보아 교원인 듯 여겨지는 남자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었다.
첫 번째에 삼십 전, 두 번째에 오십 전을 벌었다. 아침 일찍부터 이만한 수입을 올린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경우였다. 지난 열흘 동안 그야말로 운이 아주 나빠서 돈이라고는 구경도 못했던 김첨지는 십 전짜리 동전이 세 개, 또는 다섯 개 ‘찰깍’ 소리를 내며 손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이 팔십 전은 그에게 정말 유용한 돈이었다. 컬컬한 목에 모주母酒 한 잔을 넘길 수도 있지만,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서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린 지는 벌써 한 달 이상 되었다. 쌀밥은커녕 조밥도 거의 먹지 못하고 살아온 형편이었으므로 약을 복용한 적도 전혀 없다. 김첨지는 ‘병이란 놈은 약을 먹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의사에게 환자를 보인 적이 없으니 그는 아내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누웠던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아내의 증세가 심한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병이 지금처럼 심해진 것은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 날 김첨지가 오랜만에 돈을 벌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묶음을 사다 주었다. 김첨지에 따르면, ‘오라질년’은 좁쌀을 허겁지겁 냄비에 부어서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아오르지 않아 조밥이 채 익지도 않았는데, 그 ‘오라질년’이 (숟가락도 쓰지 않고) 손으로 조밥을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입에 집어넣었다. 마치 누구에게 빼앗길까 겁을 낸 듯이 그렇게 부랴부랴 삼켜대더니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쑤신다, 배가 아프다!”
라고 호소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지랄병’ 앓는 상태가 되었다.
그때 김첨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에이, ‘오라질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서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로 뜨지 못해!”
하고 환자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부릅뜬 눈은 조금 바로 잡혔지만 문득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