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 김순호
가면을 앞세우고 표정을 갈아 끼워요 고객님 만족도 조사 무겁게 깔린 하루 한 끼의 오늘 앞에선 웃음이 최선책이죠
가짜로 살다 보면 진짜도 가짜 같아 눈웃음 속에는 씁쓸함도 피고 지죠 실적을 향해 달리는 무리의 무리수들
뾰족한 갑의 말도, 을을을 받아주고 반색은 여기까지 웃거나 삼키고 난 모래알 굵게 씹히는 하루치 감정의 바닥
● 당선소감 / 김순호
“좌절·절망의 반복 작업…영혼의 피와 땀 바칠 터”
12월도 중순이 지나고 이쯤이면 모든 게 다 끝났겠구나 싶었습니다. 초조함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꿈과 현실은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오래전 경주문예대학을 수료하고 동리목월문학관에서 시 강의를 듣던 중 접한, 시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맞춤한 시어들을 찾고 골라서 시조 3장에 가지런히 앉히는 작업은 수없는 좌절과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걸려 온 전화에 당선작이 뭔지도 물어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종재기만 한 가슴이 뛰는 것도 잠시, 기쁨보다 두려움과 책임감이 온몸을 짓눌렀습니다. 지금부터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지 겁부터 났습니다. 하지만 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출발선에서 기꺼이 앞으로 달려가려고 합니다. 비유와 상징의 압축미를 정형의 틀에 담아 생명을 불어넣는 따뜻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여기에 기꺼이 제 영혼의 피와 땀을 바치고 싶습니다. 많이 부족한 작품에 큰 영광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두분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제게 꿈같은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신 농민신문사에도 마음 담아 감사드립니다. 외롭고 힘든 시조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을 해주신 소중한 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리고 말수는 적어도 끝까지 해보라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등댓불 삼부자, 우리 가족들 감사하고 앞으로 더 믿고 사랑하면서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순호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경주문예대학·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수료 ● 심사평 : 서숙희, 이송희 시조시인
감정노동의 실체, 감각적 비유로 보편적 공감 이끌어 현대시조의 본질은 현대성이 기법적으로 구현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현실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의미화하느냐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언어의 운용과 의미의 형상화·구조화에 달려 있다. 형식을 앞세워 내용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통해 형식을 빚어내는 작업이 시조를 현대적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중요한 요청이다. 이번 응모작들 가운데는 시조의 형식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고정되고 상투적인 어조와 표현에 머문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시조가 ‘지금 여기’의 언어로 새롭게 발화하기 위해서는 언어 구사와 의미의 형상화에 대한 쇄신이 요구된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늘 웃음을 요구받는 노동의 현장을 배경으로, 감정을 감춘 채 하루를 버텨내는 화자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서비스 노동과 성과 중심 사회의 압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웃음이 생존 전략이자 강요된 의무가 되는 현실을 핍진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일상적인 노동 언어를 시적 이미지로 전환해 감정노동의 실체를 선명하게 포착한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감각적 비유와 절제된 감정의 전개를 통해 보편적 공감의 자리로 확장하는 힘은 함께 응모한 ‘구두, 나가다’ ‘탁상달력의 좌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종심에서 함께 논의된 ‘눈사람 DNA’ ‘플라스틱 빨대는 싱싱하다’ ‘접속사의 운행 기법’ 역시 주제를 형상화하는 감각과 표현의 탁월함이 돋보였으나, 다소 익숙한 비유와 상징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언어의 밀도와 여백에 대한 고민이 더욱 요청된다. 등단의 기쁨을 안은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아쉽게 이번 문턱을 넘지 못한 분들께도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 앞으로의 창작 여정에서 반갑게 만나기를 기대한다. --------------------------------------
[2026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개펄 여자' / 김경덕
파도 소리 기울여 미세기를 읽지요
한창때엔 난바다의 깊이까지 가늠했지요
해감내 찌든 가슴에 펄을 펼친 지 오래
망둥이가 뛰어오르고 바지락이 숨 쉬어요
뱀장어 따개비 저어새를 수태해요
꽃게가 하도 깨물어 못쓰게 된 젖꽃판
차라리 메마르지 넘쳐흐르지 않을 거면
배를 밀던 사내들은 죄 어디로 내뺐나
갓바다 물비늘 조으는목, 한참 맑습니다
● 당선소감 / 김경덕
"골방에서, 오늘도, 나는, 쓴다.“
밥은 집에서 먹어야 맛있고 술은 밖에서 마셔야 맛있다. 시는 뒤통수 톡톡 두들기며 연필로 써야 잘 써진다. 방바닥에 흐지부지 눌어붙어 쓱쓱 배 문지르며, 쓰다가 지우고 썼다가 고치는 오만가지 재미가 시다. 그래서 뒷맛이 남는 게다. 볼펜은 영판 아니라고 본다. 속도가 너무 빨라 질린다. 흐릿하지만 연필처럼 부루퉁한 여유로움이 나는 좋다. 연필이 없으면 만년필도 그런대로 쓸 만하다. 하얀 종이에 실실 스며드는 잉크맛이 먹을 만하다. "꿈으로 가득 찬 설레는 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라디오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사랑도 연필맛? 소금처럼, 시처럼, 맵고, 짤까?? 시금치보다, 시보다, 상큼하고, 맛있을까?? 무작정 썼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쓴 것 같다. 어떤 '주의'나 '주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 자신, '줏대 없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겠다. 간신히 한 편 퇴고해놓고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불평한 적도 있다. 극도의 자기모순이며 소모적인 행위에 지레 겁먹고 낙담하여 자책이나 자학에 빠지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자학보다 자책이 훨씬 나았다. 한 발짝 다가서면 서너 발짝씩 달아나버리는 시. 한 가닥, 간절히 붙들고 내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숱했던 질문들처럼 회의와 절망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리라. 종착지가 어디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런 해답도 적혀 있지 않을 이정표(?)만을 찾아 헤매지나 않을지…… 그러나 미칠 만큼 좋아졌다. 그러니 계속 써야겠다. 누군가 말했다. 천천히 가는 것보다 멈추는 게 이제 더 두렵다고. 미욱한 작품을 끌어올려주신 심사위원님, 매일신문사, 저를 아는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김경덕 : -1963년 경북 예천 출생. 대구 거주.
● 심사평 : 이달균 시조시인
인구 소멸 지역의 한 상징으로 개펄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
이번 심사에 임하면서 먼저 "우리 시대에 시조의 존재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작품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정형의 틀 속에서 시심의 확장을 위한 본원적 의지를 잘 표현한 작품을 찾는 일이 현대시조의 오늘과 내일을 담보하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시가 난해하고 산문화되는 이때 형식 미학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응모한 400여 편의 작품은 대체로 그런 기준 위에서 내면 의식을 치열히 투영하고 있었다. 심사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네 편이었다. 이지영의 '블랙홀'은 저마다 손전화를 보면서 식사하는 한 가족의 풍경을, 박하영의 '아크릴 수세미는 얼룩을 응시하잖아'는 삶의 얼룩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현대인의 세태를 그려낸다. 두 작품은 공이 우리 시대의 우울한 풍경화에 주목하였는데 아쉬운 점은 현실에 치중한 나머지 또 다른 한 축인 서정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에 비해 유귀덕의 '비와 세레나데'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면서 감각적으로 구와 구, 장과 장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비를 동반한 환경 묘사에는 성공하였으나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김경덕의 '개펄 여자'는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서정성을 잘 조화시킨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시인은 개펄을 지방 인구 소멸 지역의 한 상징으로 바라본다. "꽃게가 하도 깨물어 못쓰게 된 젖꽃판"은 분주한 생명 활동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뱀장어 따개비 저어새를 수태'하는 개펄은 살아나지만, 정작 이곳을 의지해 삶을 꾸려가는 사람은 점점 사라진다. 이렇듯 대비되는 두 상황에 돋보기를 들이대어 공존을 생각하게 한 능력은 공감의 폭을 넓혀주기에 충분하다.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이런 시각은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미덕이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시인에겐 축하를 보내고, 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가열한 정진을 빈다. ---------------------------------------------------------------------- [2026 경남신문 신춘문예,시조]
부부 리모델링 / 허은주
노후된 풍경들이 해 넘어 기울 동안 금이 간 석양 끝이 조금씩 갈라지고 틈새로 메우지 못한 말들이 흩어진다
햇살이 조심스레 당신을 훑을수록 침묵의 그림자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굳어져 긁어낸 자리 마디마디 아리다
나란히 걷던 줄눈 지평선은 어긋나도 드릴로 뚫린 산은 부드럽게 스러지며 우리가 지어질 자리 꽃대가 솟고 있다
● 당선소감 / 허은주
독자와 소통하고 아픔 어루만질 것
감기에 걸릴 때면 슬픈 바이러스에 중독이 된 것처럼 글을 쓰곤 했습니다. 아프다는 생색을 온 열감으로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어릴 적 엄마의 손길이 이마에 닿으면 차갑고 싱그러운 위안처럼 제가 가진 세계가 보호받는 느낌이었어요. 저에게 글은 투정이고 용기 있는 고백이며 상처를 멋지게 다듬는 의사이자 엄마의 손길, 그 따뜻함인 것 같습니다. 회색빛 하늘이 무거운 날 버스 안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필 이때? 탄식으로 내쉬는 기쁨을 틀어막기 바쁜 중에도 “저 신춘문예 됐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죠. 주책없이 눈물은 왜 나는지 뿌옇게 보이는 풍경들까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어요. 더욱이 올해는 기대를 안 했던지라 이 놀라움조차 비현실 같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사실 시조를 쓰면서 많이 흔들렸습니다. 제가 생각한 시조의 방향이 맞는 건지 늘 불안해하며 글을 써온 저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황금빛 이정표 하나를 굳세게 박아 준 결실이었습니다. 앞으론 글자 하나하나에 깊이와 무게를 책임지는 길을 걸으며 독자와 소통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조시인이 되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소명 또한 시조와 함께 서로를 밝히는 친구처럼 성장하려 합니다. 저에게 첫 시조의 길을 열어주신 김성숙 선생님과 시조의 아름다움을 큰 그림으로 보여주신 신웅순 교수님, 젊은 감각의 현대 시조를 심어주신 고완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금강 시조 문우들과 조용히 조력자가 되어준 남편 상호, 사랑하는 소하, 준의, 기도하고 계실 엄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경남신문에 감사드리며 문을 열어주신 미지의 세계로 두려움 없이 발을 떼려 합니다. △1968년생 △대전 거주 △한국화 화가
● 심사평 : 김연동, 옥영숙 시조시인
시조가 가진 시간·공간성 돋보여
문학 활동의 출발점이자 작가로서 인정받는 한 해 첫 등용문이 신춘문예다. 참신한 작가를 만날 기대감으로 심사에 임했다. 지켜보는 응모자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강한 설렘도 있었다. 시조는 밀려오는 신문학의 거센 기류에도 불구하고 자기 언어와 전통을 지키려는 문학적인 실천이 있었다. 시조는 단순한 3장 형식이 아니라 모국어의 질서와 음악성을 존중하는 자존의 우리 문학이다. 더불어 시조는 더하거나 모자람 없는 함축과 긴장감을 지닌 가락을 생명으로 한다. 예년에 비해 응모가 많았던 총 344편의 시조를 숙독하였다. 올해 시조 부문 응모작은 대체로 정형률에 대한 이해가 깊은 노련한 작품과 행간의 불균형, 음수율이 느슨하고 의욕만 앞서는 설익은 작품으로 나눠졌다. 투고한 많은 작품들 중에서 ‘채비’와 ‘부부 리모델링’으로 압축되었다. 두 작품을 놓고 숙의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부부 리모델링’을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신인의 패기로 소재와 주제를 부리는 능력을 먼저 살폈다. 그런 측면에서 당선작 ‘부부 리모델링’은 종장이 돋보이는 반전이 있거나 긴장감은 다소 아쉬웠지만, 시조가 가진 시간성과 공간성을 잘 보여주었다. 노후화 현상으로 증축하거나 개축하는 것이 건축물에만 해당되겠는가. 줄눈처럼 간격과 높이를 고려하며 줄 맞춰 살던 부부도 낡은 벽지나 오래된 창문처럼 헐거워지면 그 틈새를 바르거나 채워가야 한다. 하수구처럼 막혔다고 소통하지 않는 침묵의 자리에 햇살이 비추고 소통하니 꽃대가 솟는다. 감정이 과장되지 않게 여운을 남겨둔 채 형식미와 균형미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동봉한 작품 ‘기억의 빨랫줄’과 ‘캣 타워’에서도 오랜 습작의 튼튼함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조를 오래 쓸 것 같은 믿음이 간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하며 치열하게 정진하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
[2026 경상일보 신춘문예,시조]
바닥신호등 / 이영미
고개 숙인 자존심을 세워주고 싶었어요 섬이 된 스몸비족 헤엄쳐 나오는 길 바닥에 푸른빛 등대 무자맥질 도와요
불통과 무관심에 푹 빠진 회색 도시 저 아래 해저에는 삼각파도 들끓는지 몸에 밴 심해의 습성 느닷없이 나타나요
꽉 들어찬 별들로 하늘은 이미 만원 차도와 인도 사이 공제선에 빛을 심어 지상에 더 머물라고 수호신을 내보냈죠
멀리서도 알아보고 바퀴마저 숨 고르는 목숨줄 길잡이로 끌어주고 싶었어요 뭍으로 진입한 섬들 그제서야 안심하는,
● 당선소감 / 이영미
메모해두던 습관, 한수가 되고 작품이 되다
금방 다가올 것 같아도 어느새 달아나고 잠시 얼굴 내밀어 소곤대다 밀어내는, 제게 시조란 물음표 같은 밀당의 연구대상이었습니다. 단아하고 멋스러운 그 성품 안에는 놀랍게도 당차면서도 범접하지 못할 위엄까지 갖추고 있어 여러 해 동안 저는 주위만 도는 히키코모리가 되곤 했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측은했는지 황송하게도 그 높은 문이 이렇게 활짝 열려 시조를 향한 저의 종천지모는 계속 이어져도 될 것 같습니다.
잠들기 전 한 구절 떠오르면 기록하고 걷다가도 문득 돌부리에서 캐낸 사유들이 부서질까 멈춰 서서 메모해 두던 습관이 한 수가 되고 작품으로 완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초심을 발판 삼아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글쓰기에 정진하겠습니다. 글의 맛을 버무릴 줄 아는 감각도 잊지 말아야겠지요. 더불어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의 의미 따라 빛과 지표가 되는 시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제게 이토록 영광스러운 길로 이끌어주신 경상일보 신춘문예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제 시조를 맑은 눈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엎드려 절 올립니다. 나태하지 않도록 더 달금질해 나가겠습니다. 힘 실어준 가족들과 특히 방방곡곡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애쓴 남편의 간절한 서원도 여기에 추가합니다.
약력 -충남 연기 출생 -2022년 지용신인문학상 -2024년 백수문학신인상
● 심사평 : 이종문
손바닥만한 시조 한편에 내장된 거대한 풍경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열 분의 서른여섯 편이었다. 어렵게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인 만큼 대부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군계일학의 돌올한 수작은 선뜻 눈에 띄지 않았다.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살구꽃은 피었건만’, ‘AI시대-포노사피엔스의 여름’, ‘바닥 신호등’ 등 3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당선작인 ‘바닥 신호등’은 소재에 대한 꼼꼼한 성찰과 남다른 비유, 입체적 구성이 돋보이는 가작이다. 스몸비족을 느닷없이 ‘섬’에다 비유하는 순간, ‘헤엄’, ‘푸른 빛 등대’, ‘무자맥질’, ‘해저’, ‘삼각파도’, ‘심해’ 등 바다 관련 시어들이 연쇄적으로 등장하면서, 바닥 신호등이 설치된 대도시의 횡단보도 일대가 난데없이 온통 바다 이미지로 출렁거린다. 손바닥만 한 시조 한 편 속에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별’과 ‘하늘’과 ‘뭍’까지 포괄하는 거대 풍경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에도 방점을 찍었다. 당선을 뜨겁게 축하드리며, 앞으로 우리 시조단에 지각변동을 크게 일으킬 주역으로 당당하게 성장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아쉽게도 좋은 기회를 놓치신 분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가락과 현실 인식과 표현의 삼박자를 제대로 갖춘 빼어난 작품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 주셨으면 한다.
약력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등단 -시집 <아버지가 서 계시네>, <내 마음 좀 알아 도고> 등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현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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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윈드 댐퍼 / 최광복
바람을 읽어내야 꼿꼿이 설 수 있다
수백 톤 무게 추를 허공에 매달고서
희미한 박동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찢어질 듯 팽팽한 장력을 거스르며
밀려드는 욕망을 가까스로 잠재워도
마음은 순간을 흔들며 균열을 일으킨다
태풍도 지진도 한 눈금씩 받아적듯
파동을 되새기며 다시 서는 몸의 경계
아득한 떨림을 안고 낮과 밤에 귀를 댄다
*윈드 댐퍼-초고층 건물의 중심을 잡는 장치
● 당선소감 / 최광복
"이제 시조 안에서 '세상의 말' 한 눈금씩"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늘 고민해 왔었습니다. 어떤 날은 도무지 각이 나오지 않는 꼭짓점에서 갈등하기도 했고 때로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제자리걸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의 댐퍼가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심지가 굳지 못해 늘 경계에 끌려다니고, 가녀린 실바람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아닌지… 밀려드는 욕망을 잠재울 때도 마음은 늘 순간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타협하고 안주하는 스스로를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제 시조 안에서 세상의 말을 한 눈금씩 받아적고 제 안의 울림에도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 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열어 주신 길을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의 말 못 할 아픔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기꺼이 연대하여 작은 목소리들이 외면받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구부렁길의 선한 걸음이 되고 싶습니다. 시절가조(時節歌調)라 말씀하시며 시대정신을 담아내셨던 시조인들을 본받고 싶습니다. 앞서 잘 닦아놓으신 그 길에 부끄럽지 않도록 저만의 뿌리, 역시 잘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서툴고 어눌한 제자를 따뜻한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정경화 지도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경주불교학생회 47대, 경주문예대학 38기, 초림, 들풀시조,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참, 지월스님, 지만스님도 기뻐해 주실 것 같습니다.
▷1970년 ▷경북 경주시 출생
● 심사평 : 문순자, 홍성운 시조시인, 이재창 평론가
물리적 언어들의 결합이 더해준 깊이
우리 심사위원 3명은 형식, 주제와 소재, 형상화와 시어 사용 등을 기준으로 접수된 500여 편의 작품을 3등분하고 각각 10편을 골라냈다. 이어 골라진 30여 편을 윤독하며 2편씩 추려냈다.
'코바늘뜨기 테라피', '와이파이존', '봄, 숲은 용접 중이다', 'AS를 부르면 AI가 나온다', '투명한 벽-키오스크', '윈드 댐퍼'가 이에 해당한다. 이 6편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숙독과 논의 끝에 '투명한 벽-키오스크'와 '윈드 댐퍼'로 압축했다.
'투명한 벽-키오스크'는 호흡이 길고 기술 진보의 속도에 못 따라가는 세대의 아픔을 절절히 표현했지만, 설명적인 부분이 더러 있고, '무심타'와 같은 시어나 기시감을 주는 시구가 거슬렸다.
결국 '윈드 댐퍼'를 일치된 의견으로 선정했다. '윈드 댐퍼'의 언어들은 다소 공학적이고 금속성이라 차갑고 딱딱하다. 하지만 "바람을 읽어내야 꼿꼿이 설 수 있다"에서 그 주체를 초고층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치환했을 때, 물리적 언어들의 결합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고 의미망을 확장했다. '윈드 댐퍼'가 건물의 흔들림을 줄여주듯이 우리도 흔들리는 누군가의 "희미한 박동 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면, "낮과 밤에 귀를 댄다"면 이 작품은 따뜻하다.
최광복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시조 '윈드 댐퍼'로 우뚝 설 것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