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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6일 금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겠냐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4,1-5
형제 여러분, 1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4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5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단식을 하여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루카 5,34) 문제는 지금 우리가 신랑과 함께 있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자주 단식을 하였던 것은 마지막 날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은 심판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며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미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메시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내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도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6,5)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미 구원의 때가 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단식할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도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장 참조). 사도행전에서도 사람들은 단식합니다(13장 참조).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라는 종말론적 긴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다르다고, 단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고,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아직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지금도 신랑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요한만큼이나 열심히 그날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생활 양식!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인류 역사 안에서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확산되어 보편화될 때 겪는 저항이나 혼란이 만만치 않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가치 회복의 과정이었지만, 노예 제도의 폐지나 흑인들의 인권 회복, 어린이나 청소년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여성들의 위치나 신분이 신장되는 과정 등에서 넘어야 할 산이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를 큰 고민과 혼란으로 밀어 넣는 새로운 가치들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AI 등 최첨단 매체의 대중화와 일반화로 인해 겪는 가치관의 혼돈 등입니다.
십 년, 이십 년 전만 해도 남녀 수도회는 한 수도자가 스마트폰을 개인으로 소지하는 문제로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이 아주 탁월한 사목과 친교, 기도와 복음 선포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과몰입이나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서 새로운 가치나 문화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지녀야할 능력이 있으니, 복음이란 프리즘에 비춰 균형잡힌 해석을 하려는 노력입니다.
인류 역사 안에서 수많은 가치와 문화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이 거듭되었는데, 그중 가장 특별하고 엄청나며 고귀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란 인물의 등장일 것입니다.
가장 감미롭고 부드러운 풍미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며, 우리 모두를 구원과 영생으로 인도하실 분, 이른바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자마자 우리 인간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고수해오던 가치나 생활 양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리셨습니다.
왕은 더 이상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섬기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맨날 구박받고 얻어맞던 노예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손가락질 당하던 이방인이나 세리나 죄인들도 벗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치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한가지 강력한 요청을 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가치이신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새로운 생활 양식, 즉 복음적인 삶입니다.
소수만 아는 단식의 목적: 빼앗긴 신랑을 되찾아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은 단식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과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자주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한다고 불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해주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단식은 신랑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신랑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입니다. 누가 신랑을 십자가에 달까요? 우리 자신입니다. 더는 신랑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신랑을 자아에게 빼앗긴 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 때는 결국 신부의 거울이 되어야 할 신랑을 빼앗긴 때입니다.
단식을 하는 사람들은 왜 단식할까요? 그들에게 어떤 목표가 되는 신랑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고긴스’의 인생 이야기는 극도의 정신적 강인함과 신체적 훈련의 토대 위에 세워진 놀라운 변화의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내력 운동 선수, 동기 부여 연설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의 여정은 심각한 도전과 좌절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강렬한 신체 운동, 엄격한 다이어트, 단식이라는 그의 유명한 아침 일과를 채택하게 된 그의 삶의 주요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데이비드 고긴스는 1975년 2월 17일 뉴욕 버팔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학대적이고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역경으로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 트루니스 고긴스는 가족을 신체적으로 학대하여 격동적이고 충격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데이비드와 그의 어머니는 결국 학대하는 가정에서 벗어났지만, 그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긴스는 어린 시절 인종 차별, 괴롭힘, 빈곤에 직면했고, 그 결과 학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심각한 우울증과 자존감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고긴스는 20대 초반에 종종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묘사합니다. 혈액질환과 관련된 의학적 이유로 공군을 제대한 후, 그는 깊은 우울감을 느꼈고 해충 구제업자로 일했습니다. 당시 고긴스는 심하게 과체중이었고, 체중이 거의 300파운드였으며, 움직이지 않고 건강에 해로운 생활 방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범함과 자기 의심의 악순환에 갇힌 것처럼 느꼈고, 이는 신체적, 정신적 쇠퇴로 이어졌습니다. 그에겐 닮아가야 할 삶의 모델이 없었습니다. 고긴스가 해군 특수부대의 TV 광고를 본 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300파운드인 고긴스는 SEAL 훈련에 필요한 체력 요건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고, 자격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100파운드 이상을 감량해야 하는 시간이 겨우 3개월뿐이었습니다.
이 촉박한 마감일과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자 하는 열망은 그의 사고방식에 급진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고긴스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훈련하는 매우 엄격한 아침 일과를 개발했습니다. 강렬한 신체운동, 엄격한 식단과 단식, 극도의 규율과 자기 책임으로 결국 필요한 체중을 감량하고 BUD/S(기본 수중 폭파/SEAL) 훈련에 성공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SEAL 훈련 중에 극심한 신체적 어려움에 직면했고, 부상으로 인해 세 번이나 ‘지옥 주간’(강렬한 신체적 정신적 훈련 기간)을 견뎌내고 해군 특수부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줄 수 없다』(Can't Hurt Me)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들, 듣고 싶은 말만 해 주는 하고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반면에 흔치 않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는 그 ‘느낌’을 아주 싫어합니다.
‘자 이제 뛰러 가자.’ 그런 걸 아주 싫어합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고난 끝에는, 소수만 아는 세계가 있어요. 매우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는 스스로를 찾게 되거든요.”
데이비드 고긴스가 평범함을 거부하고 찾으려고 했던 자기 자신, 이것이 우리에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기 위해서는 처절한 고난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해방되시면 어떨까요? 나의 모습이 내가 기대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일 때는 그분과 함께 즐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는 삶이 새 포도주에 새 부대가 되는 길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랑을 빼앗겼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간 것 자체가 신랑의 뜻을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때 단식을 하였습니다. 이틀을 꼬박 굶었습니다. 그러자 신랑이 다시 오셨습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다 주신 분이 오시니 더는 단식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 바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때 밥알 하나하나에 감사하며 먹었습니다. 무언가 불만이 많았는데 매일 먹는 밥알 하나하나가 감사해서 많이씩 퍼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식하면 겸손해집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이틀만 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데 내가 뭐 대단하다고 주님께 불만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식하면 자아의 힘이 죽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잡았던 힘이 풀립니다. 이때 신랑이 풀려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셨듯이, 나를 통해 신랑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단식은 단식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갇힌 그리스도를 해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본당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역이 있습니다. 알렌 멕키니 구역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구역장을 중심으로 구역모임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구역장이 이사 갔고, 성당에서 멀리 있다 보니 구역 모임이 없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심 봉사 구역에서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비가 안 오면 메마르고 메마르면 더욱 비가 안 내리듯이 구역모임이 안 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새로이 구역장이 선임 되었고 구역장과 함께 반 미사를 시작 했습니다.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반 미사에 아이들과 어른 20명이 넘게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농부는 가진 걸 팔아서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미사를 하면서 숨어있는 보석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렇게 몇 번 더 반 미사를 다니면 예전처럼 구역모임이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구역을 이끌어가는 구역장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27기 사목회가 시작되었고, 첫 번째 행사는 ‘본당의 날’입니다. 주관 부서는 ‘친교분과’입니다. 26기에서는 ‘친교분과’가 공석이었다고 합니다. 새롭게 선임된 친교분과 형제님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의욕이 넘치는 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어떻게 하면 즐거운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분입니다. 첫 번째는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형제님들을 중심으로 고기를 구워 나누어 주자고 하였습니다. ‘고기 굽기 경연대회’입니다. 교우 분들은 맛을 보고 스티커를 경연자의 이름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본당의 숨어 있는 요리사가 능력을 보여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지난번 성령 찬양의 밤에 능력을 보여주었던 찬양 팀이 시작과 마무리에 멋진 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길거리 노래방도 개설해서 노래도 부르고, 선물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 번째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입니다. 구역별로 ‘족구대회’를 하기로 했고, 개인별로 ‘피클 볼’ 게임을 하기로 했고, 게임 장소를 만들어서 모든 게임을 마친 분에게는 경품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시상식과 경품추첨을 통해서 본당의 날 행사를 마치겠다고 합니다.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친교분과가 있어서 든든합니다.
지난 2월 13일에 부임했으니, 어느덧 6개월이 지났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전임 신부님 두 분이 모두 저와 동창신부님입니다. 동창 신부님들이 있었기에 예전에 몇 번 방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동창 신부님의 초대로 교우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동창 신부님들이 12년간 사목하던 곳이어서 낯설지가 않습니다. 작년에 부임한 보좌신부님은 제가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쳤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보좌신부님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한국에서 오지 않고 5년 동안 뉴욕에 있으면서 미국생활을 경험했습니다. 미국에 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을 이미 다 거쳤습니다. 쇼셜넘버를 5년 전에 받았습니다. 미국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중에 하나인 운전면허증도 5년 전에 받았습니다. 미국 은행에서 발해해준 신용카드도 받았습니다. 2년 전에는 신문사에 있으면서 그린카드도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외적인 면에서는 준비된 본당신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적인 준비는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약하고, 부족했던 제자들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도망치고,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셨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예수님께 의탁하며 지내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가치의 문제입니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먼저 생각한다면 지금 생산된 포도주와 부대도 낡은 포도주와 부대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한다면 2000년 전의 포도주와 부대도 언제나 새 포도주와 새 부대입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저마다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즈가리아(Zachary)
활동년도 : +6세기BC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지역 :
같은 이름 :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카르야
히브리말로 "야훼 기억하시다." 라는 뜻인 즈가리아는 느헤미아서 12,4에 의하면 제사장 잇도의 아들로서 바빌론에서 귀국하는 유다인들에 섞여서 귀국하였을 것이다.
즈가리아의 연대는 기원전 520-518년 이며 그 자신도 제사장이며 예언자였다고 추측한다.
또 즈가리아는 하깨와 동시대의 예언자이었지만 하깨만큼 성전을 짓는데 열을 내지 않았고 사상적으로는 앞서 있었다.
즈가리아의 이상은 신정(神政)정치이고 목표는 하느님 야훼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를 건설하고 이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될 것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가리야서는 자카리아(Zacharias, 또는 즈가리야)라는 한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이야기를 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Jeremias)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혔다(마태 27,9-10). 그런데 이 표현은 즈가리야서 11장 12-13절에 나온다. 이로써 즈가리야서 전반부와 11장을 중심으로 한 후반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즉 이사야(Isaias)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가리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예언자 자카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즈가리야서 제1부(1-8장)에 의하면 예언자 자카리아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기야의 아들”(1,1. 7)로 전해진다.
그는 예언자 하깨(Haggai)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다.
하깨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 데 헌신했다면(하깨 1,14), 자카리아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 5-11) 등으로 미루어 자카리아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우표로 보는 성인전,최익철신부-
성 리베라토(Liberat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로로(Loro)
활동연도 : +1258년?
같은이름 : 리베라또, 리베라뚜스, 리베라투스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시대의 관상가로 귀족 집안의 아들로서 베옷을 입고프란치스코 회원들처럼 사람들에게 모범을 주었다.
시빌리아 산 속에 있는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했으며 라우로(Lauro)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다.
이분을 공경하기 위해서 이분의 고향이름을 로로 피체노 (Loro Piceno)라고 명명했다
868년, 비오 9세가 그의 공경을 허락하였으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현재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브룬포르떼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였지만, 은수자로서 관상생활만 하였다.
성 프란치스꼬의 잔꽃송이 46장과 47장-그리스도의 모친께서 병중에 있는 한 거룩한 형제에게 약 세통을 가져다 주신 이야기-에 성모님의 환시를 본 무명의 수도자가 리베라토임이 틀림없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