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의 공부법 : 한국인 최초 바티칸 변호사의 공부 철학
저 : 한동일
출판사 : EBS BOOKS
발행 : 2020년 08월 10일
30년 공부 끝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 변호사가 된
한동일의 특별한 공부법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로마로 유학 가서 10년, 도합 30년 넘게 공부한 한동일 변호사.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동양인 첫 바티칸 변호사이자 대학교수이며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인 한동일 변호사. 그는 공부에 이골이 난 사람이다. 평범한 사제의 길을 걷다 로마로 유학 가서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란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었다.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는 길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라틴어를 비롯해 여러 유럽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고,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마친 후 합격률 5퍼센트 안팎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한동일 변호사의 공부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유럽 사람들도 쓰지 않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법학을 공부했다는 점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법리 해석의 난관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변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진다. 게다가 그는 30여 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다.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대학원에서 10년, 2001년 로마로 유학 가서 다시 10년을 공부했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그에게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 [한동일의 공부법]에서 저자는 이렇듯 화려한 이력과 어학 실력으로 치환되는 공
부가 아닌 ‘목적을 정화하는 공부’를 제안한다. 자기 주변을 에워싼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의 목적을 정화하면 본질과 핵심을 깨닫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개인적 소망의 실현이나 성취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뿐 아니라 성숙한 인간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는 공부가 단순히 머리로 하는 노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 수련의 과정과 같다고 말하며, 지금 방황하는 10대 청소년들,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20대 대학생들, 한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공부 철학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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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글을 시작하며_ 숨 쉬는 동안 나는 공부한다
1장 터널의 끝은 있다
2장 밑바닥을 흔드는 공부
3장 부모를 떠나십시오
4장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
5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의식하라
6장 몸을 가두고 그냥 하는 힘
7장 늑대가 울어도 먹이를 주지 마라
8장 메마른 땅을 적시는 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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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우리에겐 저마다의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남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아픔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저 자신에게도 들춰내고 싶지 않은 문제, 피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게 해달라고 자주 기도하지만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직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이런 아픔과 더 자주 부딪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응시와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아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것이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어떨 때 상처받고 무엇으로 극복하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될지 마음속 아지랑이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진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타인이 그려놓은 내 모습에 좌절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내 집 앞 담장에 그들이 그려놓은 것들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p.42)
학교 안팎에서 많은 학생이 제게 “교수님, 변호사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어떻게 해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어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공부는 100퍼센트 준비한 가운데 20퍼센트를 발휘해서 좋은 성적을 받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거라 대답합니다. 100퍼센트 완벽하게 준비하면 어떤 부분에서 20퍼센트를 골라 문제를 내도 좋은 결과가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60퍼센트 정도만 공부하고는 100퍼센트의 실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생각의 오류입니다. 어쩌다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기는 힘들고, 그런 패턴으로 공부하면 결국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공부가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부의 양이 땅을 흠뻑 적시고도 남아 흘러내리는 빗물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p.125)
기억의 정화는 몸을 가둔 채로 공부하면서도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정신이 가장 자유로울 때는 역설적으로 몸을 가두었을 때인 듯합니다. 전쟁 중에 포로로 감옥에 갇혀서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비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애벌레 시절과 번데기 시절에 몸을 가두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부뿐 아니라 무언가 사람의 정신세계가 한 단계 성장하고 고양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대인들은 인간 존재를 영적으로 정화하고, 불멸과 영생에 도달하기 위한 의식으로 동틀 녘, 정오, 일몰, 이렇게 하루 세 번 몸을 씻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틈이 날 때마다 부정적인 기억을 자주 씻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명상이나 기도는 그런 면에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의식입니다.
(p.187)
공부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고만 하지, 가르치는 사람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공부를 못 하는 원인과 책임이 전적으로 학생에게 있다고 탓하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결국 학생 스스로 해야 하므로 그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이 문제인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공부에 관해 이야기할 때 공부법과 교수법을 동시에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p.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