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8회 인문산행/동봉의 달이 서계의 물을 비치네

[심산]

제8회 한국산서회와 함께 하는 인문산행

동봉의 달이 서계의 물을 비치네

수락산 서계고택과 매월정을 찾아서

글/심산(한국산서회)

사진/서영우(한국산서회)

먼저 지난 초가을 한반도의 남부를 강타한 제25호 태풍 콩레이의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죄와 위로의 말씀부터 올리는 것이 순서일 듯싶다. 콩레이가 한반도에 상륙한 날이 2018년 10월 6일(토)이었는데, 하필이면 한국산서회의 제8회 인문산행이 예정된 날이었다. 이미 한 달 전에 공지한 행사인지라 섣불리 취소도 못한 채 집결장소인 장암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 아무리 참가 예약을 했다지만 이런 날씨에 산에 오를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당일 아침에 문자로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은 서너 명에 불과했을 뿐 실제의 참가자들이 무려 25명을 웃돌았던 것이다. 각종 우천대비 복장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든 참가자들은 저마다 남녘의 태풍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오늘의 답사 산행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의 산행은 대성공이었다. 오후에 접어들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어 범람하는 수락산 계곡과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깨끗하게 개인 하늘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장봉을 가득 품은 서계고택의 사랑채

남들보다 수락산을 조금 더 안다는 이유로 오늘의 강사로 나선 내가 일행의 발걸음을 제일 먼저 멈추게 한 곳은 엉뚱하게도 음식점인 밤나무집 앞이다. 수락산을 그린 지도들은 많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지도만도 열댓 개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그 지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이 ‘밤나무집에서 자체 제작’한 수락산 지도다. 장암역 쪽에서 바라본 수락산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형태로 잘 표현되어 있다. 지도를 짚으며 오늘의 산행코스를 대략 설명한다. 우리는 오늘 석천동 계곡을 따라 오르다 깔딱고개의 옆구리를 치고 올라가 매월정에 이른 다음 벽운동 계곡으로 내려올 것이다.

서계고택의 대문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참가자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제일 먼저 드넓은 마당과 수령 500년을 바라보는 은행나무가 시야를 압도하는 것이다. 그 멋진 은행나무를 마주보고 있는 사랑채 마루에서는 벌써부터 서계의 12대 종부(宗婦)님과 의정부시 소속의 문화해설사 정효윤 님의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종부님은 고맙게도 사랑채의 모든 문을 개방하고 참가자들에게 어서 올라오시라 친절하게 권한다. 등산화를 벗고 사랑채로 올라가 ‘누산(樓山)’이라는 편액이 걸린 누각의 넓은 창밖을 내어다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주 보이는 선인봉의 늠름한 자태가 그야말로 액자에 꽉 찬 형태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인수봉과 더불어 현대 한국 암벽등반의 양대 메카로 불리는 선인봉이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현재 우리가 선인봉·만장봉·자운봉이라 나누어 부르는 바위군(群)을 예전에는 그냥 뭉뚱그려 만장봉이라 불렀다. 그것이 세분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 암벽등반이 유행하면서부터다. 운무에 휩싸인 채 빗줄기 사이로 언뜻 언뜻 그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는 만장봉(과거의 통칭)을 보니 저 바위에 선인봉(현재의 이름)이라는 이름도 제법 잘 어울리는구나 싶다. 서계는 저 영험한 바위 전체를 사랑채 누각의 방안에 앉아서 만끽하기 위하여 이 고택을 굳이 서향(西向)으로 지었던 것이다.

정효윤 문화해설사님에 이어 12대 종부님께서 마이크를 잡는다. 과연 기품 있는 종가의 대를 이어온 맏며느리답게 선조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자부심 넘치는 해설이 좌중을 휘어잡는다. 서계 박세당(西溪 朴世堂, 1629~1703)이 이곳 수락산 서쪽 자락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지은 것은 1668년의 일이다. 효종이 졸하고 현종이 즉위하던 해(1660년), 남들보다 다소 늦은 32세의 나이로 조정에 나아갔던 그는 불과 8년 만에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해버린다. 당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던 당쟁의 소용돌이에 넌덜머리를 냈던 까닭이다. 현재의 이 집은 그의 5대손이 1800년대 초반에 다시 증축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최근(약 10여년 전)에 다시 남아있던 일부가 불에 타서, 현재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건물은 이 사랑채뿐이다.

인조반정의 공신 박정과 그의 아들 박세당의 초상

서계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글들은 모두 [서계집]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나 같은 후학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현재 사랑채의 기둥에 걸려있는 12개의 주련들은 실은 6개의 대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전문들을 모두 [서계집] 안에 실려 있는 [석천록](시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기 다른 4편의 시에서 따온 12행의 시구들은 그야말로 절창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우뚝 선 봉우리는 집을 둘러싼 그림이요, 졸졸 흐르는 샘물은 상에 퍼지는 거문고라( 擁戶畵圖千嶂立 繞床琴筑一泉鳴)’라는 대목이다. 종부님은 조심스럽게 “본래 서계 선생의 글씨인데 후대에 그것을 모사(模寫)하여 걸어놓은 것이 아닌가한다”라는 견해를 개진하였다.

서계고택의 사랑채와 담장을 맞대고 있는 것이 ‘서계박선생영진각’인데, 서계와 그의 부친인 하석 박정(1596-1632)의 진영(眞影)을 모셔놓은 집이다. 역시 종부님의 특별한 배려로 이 두분의 초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한분의 초상은 청년의 모습이고 다른 한분의 초상은 노인의 모습인데, 청년이 아버지 박정이고 노인이 아들 박세당이다. 박정은 인조반정(1623년)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3등공신에 녹훈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불과 28세의 청년이었다. 이 초상은 당시에 그린 것이며, 현재 우리가 돌아보고 있는 수락산의 서쪽 계곡 일대는 당시에 받은 사패지(賜牌地)였다. 박세당의 초상은 그의 노년기에 조세걸(1636-1705)이 그린 것이다. 조세걸은 숙종의 어진을 그렸을 만큼 당대에 첫 손가락으로 꼽히던 최고의 화가였다.

이제 영진각을 떠나 서계를 포함한 반남박씨 일가의 가족묘역을 돌아보기 위하여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오른다. 수락산의 안부사거리 부근에서 구불구불 내려오던 용맥(龍脈)이 서서히 잦아드는 나지막한 능선이다. 서계는 이 능선을 사랑하여 동강(東岡)이라 이름 지었고, 자신의 아내를 묻은 다음에는 낙구(樂丘)라 불렀다. 안락한 언덕이라는 뜻이다. 묘역의 아래쪽부터 위쪽으로 찬찬히 들여다본다. 제일 아래쪽은 ‘청주목사 박필모’의 묘다. 서계의 첫째 아들이 박태유인데, 박필모는 박태유의 아들이므로, 서계의 손자가 된다. 그 위의 묘는 ‘처사 박세후’의 것이다. 박세후(1627-1650)는 벼슬을 할 겨를도 없이 23세의 어린 나이에 졸하였다. 박정은 4남1녀를 두었는데, 박세당이 막내인 넷째아들이고, 박세후가 바로 손위의 형인 셋째아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세후와 합장되어 있는 그의 아내 ‘파평윤씨’다.

소론(少論)의 역사에서 1629년은 특기할만한 해였다. 소론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이론가와 정치가 세 사람이 공교롭게도 그해에 동갑내기로 태어난다. 바로 서계 박세당과 약천 남구만(1629-1711) 그리고 명재 윤증(1629-1714)이다. 나는 이들을 ‘동갑내기 소론 삼총사’라고 부른다. 이들은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老論)에 가장 집요하고도 강력하게 맞섰던 인물들이다. 학문적으로 정치적으로 거의 ‘한 몸’과도 같았던 이들은 심지어 혼맥(婚脈)으로도 서로 얽혀있다. 박세당의 형인 박세후는 윤증의 누이인 ‘파평윤씨’와 결혼했고, 박세당 자신은 남구만의 누이인 ‘의령남씨’와 결혼했던 것이다. 결국 반남박씨와 파평윤씨와 의령남씨는 ‘소론’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단일대오를 형성했던 ‘운명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세후의 묘 위에 있는 것이 잠시 후 우리가 돌아볼 노강서원의 주인 박태보의 묘이다. 박태보의 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가장 좋다. 인수봉과 선인봉이 좌우로 도열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형국이니 자못 황홀할 지경이다. 박세당의 묘는 여기에서 더 올라가야 한다. 이른바 동강의 용맥을 조금 더 타고 오르니 이윽고 거대한 묘소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좌우에 첫째부인과 둘째부인을 거느리고 세 사람이 함께 누운 삼인합장묘인데, 거대한 봉분의 아래쪽에 사각형의 낮은 돌담을 두른 것이 매우 이채롭다.

석천동의 바위글씨와 서계의 동봉 선양사업

서계고택을 휘감고 도는 석천동 계곡에는 멋진 바위글씨들이 여럿 새겨져 있다. 서계가 후학들과 더불어 학문을 논하던 궤산정(簣山亭)은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현재에는 여섯 개의 기둥들이 들어섰던 바위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석천동(石泉洞), 서계유거(西溪幽居), 취승대(聚勝臺)라고 새겨진 바위글씨들은 바로 이 궤산정터에 바투 붙어있다. 어젯밤부터 퍼부어댄 빗줄기 덕분에 계곡물이 엄청나게 불어 ‘서계가 이곳에 그윽하게 숨어 산다(西溪幽居)’는 뜻의 바위글씨 위로 세찬 급류가 쏜살같이 흘러가는 모습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계곡에서 가장 멋진 바위글씨는 큼지막한 초서체로 유장하게 휘갈겨 쓴 수락동천(水落洞天)이다. 위의 바위글씨들과는 도보로 10여분 이상 떨어진 계곡 상단에 있다. 수량이 너무 많아 접근할 수가 없었던 탓에 참가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는다. 예전에는 이것이 김시습의 글씨라고 전해져 왔는데 요즘에는 남구만의 작품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김시습이 썼다는 확증도 없지만 남구만이 썼다는 확증도 없다. 다만 서계의 처남인 남구만이 자주 이곳에 와서 놀았고, 그가 남달리 초서에 능했다는 이유로 그리 짐작할 뿐이다.

이 일대는 서계가 동봉(東峯, 김시습의 호)의 선양사업에 힘썼던 성역(聖域)이다. 서계가 김시습의 초상을 모시고 그를 제향하기 위하여 청절사(淸節祠)를 세운 것은 1686년의 일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청절사를 ‘동봉사우’ 혹은 ‘동봉서원’이라고도 불렀다. 청절사 앞에 세운 작은 정자가 청풍정(淸風亭)이다. 역시 김시습을 기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있는 이 청풍정 터 바로 아래쪽의 계곡 저편에 수락동천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석림사로 불리는 석림암을 세운 것도 이즈음이 아닌가 한다. 애초에 석림암을 지을 때 그 건립비용의 대부분을 서계의 시주에 기댔다고 한다. 일종의 집안 사찰과도 같은 곳이어서 당시의 사람들은 이 암자를 ‘박씨 절집’이라 불렀다. 석림암의 주요 역할은 청절사를 잘 돌보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동봉에 대한 서계의 존경 혹은 흠모의 표현이다.

서계의 사후 방치되어 있다시피 했던 청절사 터에 새롭게 들어선 것이 현재의 노강서원이다. 서계의 둘째 아들 박태보는 인현왕후의 폐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곤장을 맞고 유배를 가던 중 노량진에서 죽었다.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 노강서원이다. 본래는 노량진에 있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1969년 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김시습을 기리던 곳에서 박태보를 기리게 된 셈이다. 일행들은 노강서원 맞은편에 있는 노강산장이라는 음식점에서 비를 피하며 점심식사를 하였다. 본래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들여올 수 없는 곳이나 역시 서계 집안의 배려로 편안한 식사를 하며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번 인문산행에서는 여러모로 이 집안에 큰 신세를 졌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매월정에 올라 동봉과 서계의 시를 읽다

다시 배낭을 들쳐 메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설 즈음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태풍이 밀려오고 있다는데도 기어코 산행에 나선 미련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뜻밖의 축복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수락산이 수락산인 것은 이 산이 그 아담한 규모에 비하여 유달리 많은 폭포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수락산에는 볼만한 폭포들이 모두 일곱 개 있는데, 남양주시에 속하는 것들이 옥류폭포·은류폭포·금류폭포 등 세 개고, 이곳 의정부시에 속하는 것들이 문암폭포·동막폭포·수락폭포·숨은폭포 등 네 개다. 석림사에서 깔딱고개로 비껴 올라가는 오늘의 산행코스를 따라 걷노라면 그 중의 두 개인 수락폭포와 숨은폭포를 만나게 된다.

수락폭포로 접어들기도 전에 등산로 자체가 이미 폭포를 방불케 한다. 참가자들은 모두 수락산에 이런 코스가 숨어 있었느냐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태풍이 몰고 온 빗줄기들은 가파른 바윗길과 너른 암반들 사이로 힘차게 요동치며 천상의 풍경을 연출해낸다. 동봉과 서계도 이 계곡의 선경에 취해 술잔을 기울이고 한시를 휘갈겨 쓰며 놀았으리라. 등산로에서 살짝 비껴난 숨은폭포에 이르자 일행들은 발길을 떼어놓지 못한다. 나 역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이곳 수락산 자락에서 놀았으면서도 삼단으로 이루어진 이 폭포에 이처럼 많은 수량의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지는 광경은 미처 보지 못했다.

깔딱고개 기점에서 방향을 틀어 매월정으로 오른다. 오늘 산행의 최고점에 도달한 것이다. 매월정은 이곳 수락산 자락에서 10 여년의 세월을 보낸 매월당 김시습을 기념하기 위하여 노원구청이 2008년에 세운 아름다운 정자다. 정자 안에는 우리 시대의 명필들이 김시습의 시에서 따온 문구들을 쓰고 새긴 현판들이 다수 걸려있고, 정자 주변에는 김시습이 남긴 한시 8수가 나무로 만든 안내판 위에 새겨져 있다. 매월정 아래 지척의 거리에는 맞은편에 펼쳐진 도봉산과 북한산 연봉들을 가슴 벅차게 조망할 수 있는 너럭바위 전망대가 있다. 일행들은 김시습이 남긴 그윽한 한시에 취하고 태풍에 씻겨 새롭게 태어난 산의 풍광에 취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곳에 서서 우리는 서계가 동봉에 대하여 남긴 산문과 운문을 한편씩 감상한다. 먼저 [유수락산시후서(遊水落山詩後序)]. 수락산에서 노닌 다음 시를 쓰고 그 후에 서문 삼아 쓴 것인데 1677년 9월에 쓴 글이다. 전문을 인용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산문이지만 여기서는 그 일부만 옮긴다. “삼각산과 도봉산은 도성 근교의 우뚝한 산으로 수락산과 더불어 솥발처럼 높이 솟아 있다. 우뚝 솟은 형세로는 삼각산과 도봉산이 갑을(甲乙)을 다투고, 유심(幽深)하고 기이(奇異)함으로는 동봉(東峯)이 으뜸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봉=수락산=김시습’임을 알 수 있다. 즉 김시습은 수락산 전체를 동봉이라 불렀고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호로 삼았다.

서계는 이날 수락산의 정상에 올랐고 그 부근에 남아있던 김시습의 옛터를 둘러본다. “청한자(淸寒子, 김시습의 또 다른 호)의 구서(舊棲)에는 등나무가 늙고 수목이 시들며 사람은 가서 자취가 없는데 (중략) 밤에 선원(禪院)에서 묵은 다음 아침에 부지(鳧池)에서 물을 마시고(하략).” 여기서 우리는 1677년까지도 김시습이 살던 곳의 흔적이 남아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곳이 현재의 수락산장 일대이리라고 추정한다. 위에서 언급한 선원(禪院)이란 현재의 내원암 혹은 수락산장 부근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암자일 것이다.

부지(鳧池)라는 샘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락산 정상을 예로부터 부봉(鳧峰)이라 불렀다. 오리 부(鳧)를 썼으니 오리를 닮았다는 뜻일 텐데 어느 방향에서 보아야 오리처럼 보이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건 정상 아래에 있는 샘물이 부지다.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부지천이라 부르는데 바로 금류폭포의 원류가 된다. 나는 이 부지를 수락산장에 있는 샘물로 본다. 어쩌면 정허거사가 [수락팔경]에서 읊은 “불로정 맑은 약수 감로수가 이 아닌가”라는 구절의 불로정 역시 바로 이 부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다음에 감상한 시는 제목 자체가 [동봉(東峯)]이다. 이 시에서 서계는 동봉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고백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을 동봉과 동일시한다. 하긴 2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갔지만 동봉과 서계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동봉은 조정에 등을 돌렸고 서계 역시 그러했다. 동봉은 유불선을 넘나들었고 서계 역시 그러했다. 서계가 훗날 송시열이 이끌었던 노론들에 의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던 빌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우 아름다운 시일뿐더러 오늘의 산행을 요약하는 의미도 담긴 듯하여 그 전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나머지 후기를 갈음한다.

東峯已無舊精舍   동봉이무구정사  동봉에 이미 옛 정사 없어졌으니

道人風流誰繼者   도인풍류수계자  도인의 풍류 이을 이 그 누구인가

西溪老翁住溪畔   서계노옹주계반  서계의 노옹 시냇가 언덕에 살면서

獨愛東峯行坐看   독애동봉행좌간  유독 동봉 사랑해 언제나 바라보네

東峯高入星漢邊   동봉고입성한변  동봉은 은하수 가에 높이 솟았고

道人道超隨夷前   도인도초수이전  도인의 도 수이보다 뛰어났네

凡僧俗士不好事   범승속사불호사  범속한 승려와 선비 일을 좋아하지 않아

道人遺蹤今莫記   도인유종금막기  도인이 남긴 자취 이제 기억하지 못하지

寂寞空巖吟久倚   적막공암음구의  적막한 바위에 오래도록 기대어 읊조리니

東峯月照西溪水   동봉월조서계수  동봉의 달빛이 서계의 물에 비치네

월간 [사람과 산]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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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인문산행 안내 

북한산 추사의 길을 가다

모임일시: 2018년 11월 3일(토) 아침 10시

모임장소: 북한산 구기탐방지원센터 앞

산행코스: 승가사-비봉-진관사

준비물: 회비 1만원, 중식과 음료

예약: 한국산서회 다음카페

[조장빈]

형님. 후기 감사합니다.

[심산]

이번 원고도 줄이느라 혼났습니다
너무 줄여서 할 말도 다 못한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벽운동천 바위글씨와 벽운동명 유래에 대해서는 운도 못 떼었습니다

위의 사진들 중 몇몇은 매우 맑았던 사전답사 때 찍은 것입니다

논란이 되었던 벽운동천 부근의 바위글씨는 '운원대'가 맞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jae-eul HEO 재을]

수락산편은 최소 10page정도 해야 되겠네요~~

[산짱/ 이송헌]

잘 읽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공간사랑(송민규)]

감사합니다.^^

[심산]

즐겁게들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감사하지요...ㅎ

[생각의나무(송석호)]

공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