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최용현(수필가)
‘딸들의 리그가 완성됐다.’
2000년 6월 20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내용인즉 70년대에 활약하던 세계헤비급 복싱의 세 강자인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그리고 조 프레이저의 딸이 모두 프로복싱 선수로 나섰다는 내용이다. 알리의 딸 라일라는 7전 7KO승, 프레이저의 딸 재키는 3전 3승 2KO승, 포먼의 딸 프리다도 얼마 전에 치른 데뷔전에서 KO승을 거뒀단다.
이 딸들의 아버지, 그 중에서도 70년대를 화려하게 풍미하고 은퇴했다가 복서로서는 환갑의 나이라 할 수 있는 마흔이 넘어서 다시 링에 복귀한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대조적인 행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하마드 알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아마 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세 번씩이나 차지하여 프로복싱사상 불멸의 신화를 남긴 금세기 최고의 철권(鐵拳)으로 추앙 받던 사람이 아니던가.
흑인 복서로서는 드물게도 밉지 않게 생긴 얼굴에다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특유의 탤런트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유행어를 남겼고, 또 ‘떠벌이’라는 애칭으로 웬만한 나라의 국가원수보다도 더 명성을 날렸던 무하마드 알리.
1974년 10월, 그는 가공할 해머 펀치의 소유자로서 당시의 헤비급 챔피언인 조지 포먼을 8회에 KO로 제압했다.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결과였고, 그가 두 번째로 헤비급 왕좌를 탈환한 순간이었다.
그 후, 그는 체력이 거의 한계점에 다다른 나이에도 자기를 쓰러뜨린 스핑크스를 다시 쓰러뜨려서 세 번째로 타이틀을 탈환하며 복서 생활의 대미(大尾)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은퇴했다. 그를 사랑한 전 세계 복싱팬들은 아낌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고, 또 그의 파란만장한 복서생활은 갈채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가 또 다시 재기전을 갖는다고 발표를 해서 세계의 복싱팬들을 놀라게 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몸엔 군살이 많이 붙어 경기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에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만류를 했다.
승산이 거의 없는데다, 설사 이긴다 해도 그의 명성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을 만큼 상대방도 신통찮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경기를 강행했고, 이 경기는 그가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역시 염려한 대로 그는 시종일관 뒷걸음질을 쳤고 몸놀림도 전성기 때와는 사뭇 달랐다. 결국 제대로 주먹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얻어터진 결과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 경기로 그는 많은 돈을 벌었으나 그 대신 그가 이때까지 쌓아 올렸던 명성을 하루 아침에 다 날리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상대방 선수만 일약 스타로 만들어 놓은 채…. 영웅은 자신의 치부를 결코 내보이지 않는다.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람쥐를 잡지는 않는다.
조지 포먼. 20세의 나이에 프로에 입문하여 무쇠 같은 주먹을 휘두르며 KO승 행진을 계속했던 가공할 펀치의 소유자. 그는 1973년 1월 자메이카에서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던 조 프레이저를 2회에 간단히 눕히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분간은 아무도 그의 아성을 허물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후, 그는 무쇠주먹을 휘두르며 KO승 행진을 계속하여 40전 40승 39KO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4년 10월, 그는 자이레에서 벌어진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에서 예상을 깨고 8회에 KO패, 처음으로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다. 그 충격으로 실의에 빠진 그는 능히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선수에게 또 한 번 패배를 당하더니 마침내 은퇴하고 말았다.
전도사로 변신한 그는 10년 후인 1987년 만 38세의 나이로 다시 링에 복귀하여 복싱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다시 알리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며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했다. 그러나 그는 링에 복귀한 후 30번을 싸워 28승 2패를 기록했다. 28승중에서 25번을 KO승으로 장식할 정도였으니 왕년의 무쇠주먹이 조금도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11월 6일 미국 라스베가스. 포먼은 만 45세의 나이로 WBA-IBF통합챔피언 무어러와 타이틀전을 벌였다. 무어러는 그보다 무려 19세나 어렸고, 그때까지 35연승 행진을 기록할 만큼 기량이 한창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번 대전에서 포먼이 이긴다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보기 딱하게도 노(老)복서는 9회까지 젊은 챔피언에게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10회의 역전 KO승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계속 밀리던 그는 10회 회심의 결정타로 아들 또래의 젊은 챔피언 무어러를 링에 대(大)자로 뉘었다.
이 경기로 조지 포먼은 그때까지의 최고령 챔피언 기록인 37세(1951년, 에저드 찰리)를 무려 8년이나 갱신한 세계 복싱사상 최고령 챔피언이 되었다. 무하마드 알리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내준 지 정확히 20년 6일 만이었다. 다시 챔피언에 복귀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영원히 알리의 망령을 떨쳐냈다.”
20년 전 알리와의 대전에서 당한 패배의 상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이번 무어러와의 대전은 포먼의 나이가 너무 많아 승인조차 받기 힘들었으나, 그는 혼신을 다한 훈련으로 복귀 후 가장 가벼운 체중(113.4kg)으로 링에 올랐다고 한다.
화려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무하마드 알리는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을 남기고 팬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최근에는 복서생활 후유증으로 인해 생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의 모습을 간혹 TV화면에서 보곤 한다. 그에게 패하여 절치부심하던 조지 포먼이 재기에 성공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들의 딸들이 만들어가는 여자 프로복싱의 역사를 지켜볼 일이다.*
첫댓글 와 좋아요
감사합니다
알리 팬이었는데~~~~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